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903)
00903 %3C프리시즌 딜러편%3E 내가 돌아왔다! =========================================================================
유지웅은 놀랐다. 괴수가 말을 해서 놀란 게 아니다.
아까 잡았을 땐 너무 약해서 블랙인 줄 알았다. 당연히 블랙은 말을 하지 못한다. 그런데 말을 했다. 그래서 놀랐다.
“너! 너! 화이트였어?”
―크윽!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인간!
“이럴 수가…….”
유지웅은 충격에 빠졌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혼란스러웠다.
녀석을 두들겨 패던 손맛을 기억하고 있다. 아직도 그 찰진 감촉이 손에 남아 있으니까. 블랙치고는 너무 약하다는 느낌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쿤겐과 정효주를 압도하는 그 힘은 분명히 최상위급 블랙이었다.
그런데 블랙이 아니라니! 화이트라니!
‘말도 안 돼!’
두드려 패기 전까지만 해도 긴가 민가 했지만, 두들겨 패면서 확신했는데. 이 놈은 절대로 화이트가 아니었다. 근데 말을 한다는 건 화이트라는 증거인데?
“화이트라니요? 그게 무엇입니까?”
WWE 촬영 스태프가 감 잡았다는 얼굴로 물었다. 유지웅은 흠칫 했다. 경솔하게 화이트라는 말을 꺼내도 말았다.
‘이, 인류는 아직 준비가 덜 됐는데!’
마음 같아서는 촬영 스태프한테 ‘응 너흰 아직 준비가 안 됐어!’하고 꺼지라고 하고 싶은데, 이건 게임이 아니니까 그렇게 해서는 안 되겠지?
머리가 터질 것 같다. 뭐라고 둘러대야 하나? 그냥 과감하게 질러 버려?
‘좋아! 언제까지 어린 아이처럼 돌봐줄 수만 없지! 인류는 이제 스스로 일어설 힘을 찾아야만 해!’
유지웅은 그렇게 결심을 굳혔다. 아직 준비가 덜 된 건 알겠지만, 그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기어이 메인 퀘스트를 수행하고 싶다는데, 어쩔 도리가 있나. 그냥 퀘스트 공유해야지.
“화이트는…….”
막 말을 떼려는 참이었다. 다 죽어가는 줄 알았던 히카리가 갑자기 몸부림을 쳤다. 있는 대로 방심하고 있던 유지웅은 순간 살짝 놓치고 말았다.
“이, 이 녀석이 어딜!”
유지웅은 얼른 다시 움켜잡으려고 했다. 그러나 죽을힘을 쥐어짜낸 히카리의 저력은 놀라웠다. 그의 손아귀를 피해 재빨리 옆으로 크게 구른 것이다. 그대로 땅을 박찬 히카리는 하늘 높이 날아올라, 저 멀리 힘껏 날갯짓을 했다.
“도망칠 수 있을 것 같으냐!”
유지웅은 급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디 던지고 올라탈 만한 게 없나 해서였다. 그러나 마땅한 게 보이지 않았다.
바로 그때, 인터뷰 중인 스태프가 내밀고 있는 마이크가 눈에 들어왔다. 그의 머릿속에 전구가 반짝 켜졌다. 그래! 저거라면 어쩌면?
“잠시만 빌립시다!”
“네? 네?”
“급해요! 인류 전체를 위해서니 양해 좀!”
다짜고짜 마이크를 뺏은 유지웅은 있는 저 멀리 도망치는 히카리를 향해 있는 힘껏 던졌다. 동시에 힘껏 발을 굴러 점프했다.
‘올라타라!’
마이크는 슝 하고 빠르게 날아갔다. 유지웅은 조마조마해서 제발 올라타기를 빌었다. 그의 얼굴이 낭패로 일그러졌다.
‘아, 안 돼! 조금 짧아!’
그는 있는 힘껏 다리를 뻗었다. 그러나 다리를 찢을 듯이 뻗었는데도, 발끝이 마이크를 살짝 빗나가게 밟고 말았다. 이럴 때는 유연하지 못한 몸이 원망스러웠다.
“안 돼애애!”
유지웅은 비명을 지르며 허공에서 미끄러지듯이 추락했다. 애처롭게 히카리를 향해 손을 뻗어 봤지만, 이미 히카리는 너무나 멀리 있었다.
퍼억!
빠르게 날아간 마이크가 엉덩이에 꽂혔다. 애써 피한다고 했지만 피하진 못한 모양이다. 히카리의 몸이 크게 비틀거렸다. 유지웅은 추락하면서 희망을 품었다.
‘그래! 떨어지면!’
그러나 히카리는 심히 비틀거리긴 했지만, 추락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유지웅은 추락하면서 애처롭게 빌었다.
‘제발 떨어져! 제발! 제바알!’
애타게 기도했지만, 신은 들어주지 않았다. 히카리는 비틀거리면서도 그대로 도주하고 말았다.
쿵!
유지웅은 힘없이 땅에 추락했다. 몸을 움직일 생각도 않은 채, 히카리가 사라진 방향을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분하고 원통했다. 한순간의 방심이 녀석을 놓치게 만들고 말았다.
“지웅아!”
“써! 괜찮습니까?”
놀란 정효주와 쿤겐이 달려왔다. 쿤겐은 합작이 들키면 안 된다는 것도 잊은 듯했다. 지금 그런 걸 챙길 겨를도 없었다.
창피한 모습을 보인 유지웅은 분한 듯이 땅을 내리쳤다.
“젠장! 내가 너무 방심했어!”
정효주는 안타까웠다.
절호의 기회였는데! 영국에 쌓인 오해를 풀 수 있는 찬스였는데! 그걸 풀었으면 미국에 쌓인 오해도 쉽게 풀 수 있었고, 그럼 더 이상 희대의 테러리스트라는 멍에를 쓰지 않아도 됐는데!
그러나 유지웅은 다른 이유로 분한 모양이었다.
“레드 결정체! 으으아악! 레드 결정체! 그 아까운 걸 눈앞에서 놓쳐 버렸어!”
“…….”
아무래도 영국이 가진 악감정이나, 미국 사이에 쌓인 오해 같은 것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모양이다.
“대단한 녀석입니다. 어떻게 써의 손아귀에서 탈출할 수 있었는지 놀랍습니다. 이제 인류의 앞에는 어둠만이 도래하겠군요.”
쿤겐이 결연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전 믿습니다. 써, 그 마귀 녀석을 물리치고 인류를 구원해주실 거죠?”
“…….”
정효주는 왠지 여기서 비켜줘야 하나 하고 진지하게 고심했다. 여자에게 위기감을 불러오는 쿤겐의 절세 미모만 아니었으면 둘이 알아서 짝짜꿍하라고 비켜줬을 것이다.
“쿤겐, 카메라 온다.”
“예! 써!”
쿤겐은 얼른 살짝 비켜났다. 너무 친한 듯한 모습을 보여줘서는 안 된다. 어디까지나 인류의 공적, 괴수 앞에서 잠시 같은 포지션을 취한 것인양 보여야 한다.
카메라맨이 허겁지겁 달려왔다. 아까 인터뷰를 진행하던 WWE 스태프가 얼른 물었다.
“어떻게 된 겁니까?”
짧은 질문이지만, 많은 의미가 함축된 말이었다. 유지웅은 굳은 얼굴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제가 방심했습니다. 그래서 그만 다 잡은 녀석을 놓치고야 말았습니다.”
“화이트는 대체 뭐죠? 그리고 아까 분명히 그 괴수가 말을 하지 않던가요? 이 모든 게 어떻게 된 겁니까?”
“…….”
유지웅은 입을 다물었다.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까.
괴수는 어디까지나 짐승일 뿐이다. 인간과 동등한 사고, 언어 능력을 가지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카리는 말을 했다.
그 장면은 이미 모든 이가 목격했다. 전 세계에서 모르는 이를 찾는 게 더 어려우리라. 이제 순식간에 온 세상이 알게 될 것이다. 인간의 말을 하는 괴수가 나타났다고.
“화이트는 블랙보다 상위 등급의 괴수를 말합니다. 이 등급에 도달한 괴수는 비약적인 지능 발달을 이루게 됩니다. 당연히 인간의 말을 이해할 수 있고, 말도 할 수 있습니다.”
“……!”
카메라맨을 비롯한 스태프들의 얼굴이 충격으로 물들었다. 그들의 표정은 죽어가듯이 새카맣게 변했다.
그만큼 유지웅의 대답은 충격적이었다.
“그, 그럼 이제 어떻게 되는 겁니까?”
“녀석은 단순한 괴수가 아닙니다. 고도의 지능을 지녔기 때문에 무모한 싸움은 걸지 않을 겁니다. 전술, 전략, 회피의 개념을 충분히 이해할 테니까요. 기회를 봐서 주저 없이 도망친 것도 그 증거입니다.”
“인류는 최악의 적을 만난 거로군요.”
카메라맨은 우두커니 선 채 중얼거렸다. 어느 스태프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혹시 휴스턴 참사도 저 녀석이 관련돼 있습니까?”
“네?”
유지웅은 어리둥절했다.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다. 휴스턴 대참사는 히카리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데? 왜 갑자기 그 이야기가 여기서 나와?
그러나 대답이 늦은 것을, 스태프들은 전혀 다르게 받아들였다. 긍정으로 해석한 것이다.
“역시 그랬군요!”
“어쩐지, 백악관과 사이좋게 공동성명까지 발표한 사람이 갑자기 휴스턴에서 그런 일을 벌였다고는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잠깐, 그럼 지금까지 줄곧 휴스턴을 파괴한 히카리를 쫓고 있었던 건가요?”
유지웅은 당황했다. 왜 이야기가 그렇게 가지? 뭐 알아서 자기한테 좋게 생각해주는 거야 고맙지만…….
WWE 스태프 인솔 책임자가 결연한 얼굴로 말했다.
“알겠습니다. 이 내용은 극비로 하겠습니다. 어디에도 유출하지 않겠습니다.”
“잠시만, 그럼 생중계로 내보낸 거 아니었어요?”
“네? 찍고는 있었습니다만, 생중계는 하지 않았는데요. 나중에 편집해서 방영할 계획이었습니다만.”
“아니, 그걸 중계하지 않고 뭐 했던 겁니까? 중계 중일 거라 생각하고 나름 엄청 고민해서 인터뷰했는데!”
유지웅은 억울했다.
히카리, 화이트 괴수의 존재를 인류가 알게 되고, 함께 힘을 모아 그 책임을 지게 한다는 계획이 어긋나 버렸다. 이렇게 되면 다시 고민을 해야 한다. 혼자 감당할 것인가, 아니면 인류에게도 책임을 떠넘길 것인가.
‘아니, 차라리 잘 된 걸지도.’
준비 없이 무턱대고 진실을 흘리는 것보다는 이쪽이 더 낫지 않을까?
‘그나저나 그 녀석을 또 어떻게 잡지?’
한숨만 나온다. 또 다시 끝이 보이지 않는 지겨운 술래잡기를 해야 하나? 사실 술래잡기 하다가 너무 지루해서 녀석을 쫓고 있었다는 사실도 잠시 까먹었었는데.
‘아니지. 브라우니와 모비딕이 있잖아? 그리고 지금쯤이면 이제 임시 WCO에서 글로벌 탐지 장치 뭐라도 만들어냈겠지? 이제 녀석은 하늘이든 바다든, 내 눈을 피할 수 없다.’
유지웅은 그렇게 마음을 다잡았다. 녀석이 비록 도망쳤지만, 이쪽도 예전과는 다르다. 이번에는 쉽게 녀석을 추적해서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고민은 할 필요가 없었다.
「너희 인간들이 유럽연합이라 부르는 이 지역은 이제부터 내가 점령한다.」
사흘도 되지 않아 히카리는 유로 뉴스에 모습을 드러냈다.
3억 유럽 인구와 그 국가를 인질로 잡은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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