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guitarist RAW novel - Chapter 100
폭한과 극열의 사인회 (3)
-빨기좌 불물얼음지옥 사인회 겸 라이브 합니다-
장소 : 토요일 오후 2시 불가마 찜질사우나 3층
입장료 : 찜질방비
참가 자격 : 강자
김수재의 인스타와 에이트라 채널에서 쏘아 올린 하나의 공지.
보는것만으로는 무슨 내용인지를 짐작하기 지극히 어려운 공지.
그리고, 뜨거운 반응.
송아린은 입안에 넣은 목캔디를 신나게 굴리며 핸드폰에 시선을 고정했다.
뭘까
대체뭘까
뭐지…?
“음 ···”
“뭐 봐?”
옆에서 고개를 불쑥 내미는 주희에게 화들짝 놀라며 핸드폰을 감춰본다.
하지만 눈은 손보다 빨랐다.
주희의 얼굴에 ‘놀리고 싶은 의지’가 가득 돋아났다.
“아 이거~ ?그렇게 신경 쓰여? 궁금해?”
“너무 궁금해 ··· 궁금해 미칠 거 같아 ···”
“어우 솔직한데?”
황금같은 토요일에도 어김없이 스케쥴이 잡혔다.
하늘 같은 ‘설하’선배의 사인회에 약간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얼굴을 비추는 일정.
하지만 송아린은 지금, 선배의 사인회보다도 또래 남자애의 ‘이상하기 그지없는’ 팬 사인회가 더더욱 신경 쓰이는 참이었다.
뭐랄까.
뭔가.
죄책감 같은 게 마음속에서 스물스물 올라왔다.
“이게 대체 뭘까 ···?”
“사인회도 하고 연주도 한다는 거 아니야?”
“어 ··· 음···”
사인을 받으러 모인 팬들에게 간단한 이벤트를 여는 것.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오히려 ‘성의 넘치는’ 커뮤니케이션 방식이라고 확신할 수도 있을 정도다.
하지만 ···
이상하다.
“왜 찜질방에서 ···”
달리는 차량 내부.
멤버들의 시선이 송아린에게 몰렸다.
“그러게···”
“장소 섭외를 못 한 건가?”
“비용이 비용이니까··· 힘들 거야 아마.”
팬 사인회는 팬들을 위한 서비스다.
회사의 품속에 안겨 있는 연예인들과는 달리, 독고다이로 움직이는 뮤지션은 모든 것을 혼자 준비해야 한다.
다만, 그럼에도 사인회의 장소가 찜질방인 이유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우리 몇 시에 끝나?”
“사인회하고 ··· 사진 찍고 하면 ··· 한 두 시 반?”
“··· 좀 늦을 거 같네.”
“가게!?”
“이 다음에 일정 없잖아!”
송아린은 활짝 미소를 지었다.
선배의 사인회를 눈앞에서 지켜보는 것도 기대되지만, 이것도 기대된다.
사인회와 연주를 같이 들을 수 있다니
그것도 찜질방에서!
정말, 특이하기 그지없었다.
“막 불가마 같은 데서 기타 치는 거 아니야?”
“에이 설마~”
흐흐흐흐흐.
검은색 밴의 실내에 어이없다는 웃음소리가 작게 울려 퍼진다.
말도 안 돼.
그런데서 기타를 어떻게 쳐.
아무리 별난 짓을 하는 사람이라도, 할 수 있는 게 있고 없는 게 있다.
분명, 말만 찜질방이고 평범한 곳은 아닐 것이다.
알게 모르게 장치를 ···
끼익-
자동차는 세련된 건물 앞에서 멈춰 섰다.
작은 안내 카드들이 도배된, 설하의 개인 사인회.
그리고, 아주 짧은 홍보 무대를 담당한 자신들.
건물 앞에는 이미 설하의 팬들이 줄을 서고 있었다.
대단하다.
아직 여덟 시인데 ···
시작까지 두 시간이나 남았는데 ···
“저기 아니야?”
주희는 아린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맞은 편의 건물을 가리켰다.
“···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건 좀 ···”
“그러게 ···”
“우리도 끝나고 들리자!”
“그럴까?”
“응! 찜질방 오랜만에 가 보겠네.”
겉보기엔 진짜 그냥 찜질방이었다.
“그건 그렇고··· 이건 무슨 의미일까?”
“··· 참가자격 ··· 강자?”
“···”
아이리즈 멤버들은 어깨를 으쓱했다.
분명, 락 팬들만이 이해하는 용어일 것이다.
송아린은 핸드폰을 뒤적이며 관련 용어 공부를 시작했다.
* * *
– 빨기좌 사인회 ㄹㅇ 실화냐?
ㄴ 하루 전에 공지 띄우는 거 보니까 가슴이 웅장해진다.
ㄴㄴ 패기 개지리네 진짜 ㅋㅋㅋㅋ
– 근데 왜 찜질방에서 사인회를 함?
ㄴ 사인회가 아니라 공연도 같이 한다는데
ㄴㄴ 아니 그러니까 왜 찜질방이냐고
ㄴㄴㄴ 그걸 내가어케 암.
– 저 방금 소름 돋는 사실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참가 요건 중에 ‘강자’ 라는 단어가 쓰여 있는 것을 미루어 볼 때 ···
ㄴ 와 해석 ···
ㄴㄴ 이게 맞는 거 아님?
– 강자만희 사인을 손에 넣는다.
ㄴ 빨기좌는 사인 해줄 상대를 직접 시험함 ㄷㄷㄷ
반응은 생각보다 뜨거웠다.
댓글이 300개는 넘게 달렸다.
그때문에 나는, 밤잠을 설쳤다.
사인회라니.
공연이라니.
지르긴 질렀는데, 생각해 보니까 어이가 없네.
회귀 전의 나는 꿈도 못 꿀 만한 행위다.
여러가지를 뭉탱이로 한다곤 하지만, 그래도 어쨌거나 개인 공연이다.
기대감이 잔뜩 부풀어 올랐다가 꺼졌다가.
밤새 반복됐다.
왜, 그렇지 않은가.
웬만한 빠돌이 빠순이가 아닌 이상에야 갑자기 시간을 내기는 힘들다.
댓글로 ‘꼭 갈게요 ㅠㅠㅠ’ 라고 달아놓아도 실제론 귀찮아서 안 오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팬은 만만한 대상이 아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나’만을 보기 위해 달려오는 사람은 실제론 얼마 안 될 것이다.
반대로 생각하면, 내일 오는 사람들이 나의 초기 콘크리트 팬이라는 의미이다.
나는 그들에게 특별한 경험을 선사하고 싶었다.
“오늘은 왜 댓글 안 달지.”
나는 슥슥 댓글창을 스크롤 했다.
사인회 예고 공지에는, ‘얀데레좌’의 댓글이 없었다.
6월 25일 오후 1시 30분.
찜질방 옆 블록에 자리 잡은, 24시 김밥천국.
밥을 진짜 왕창 먹었다.
체력이 국력이라고 하지 않던가.
제육덮밥 먹다가 참치 김밥도 먹고.
최유진이 먹다 남긴 라볶이도 뺏어 먹고.
개맛있네 진짜.
거의 밤을 새웠더니 배가 더 고프다.
“우와 ··· 그게 다 들어가냐?”
“다 들어가.”
“왜 살 안 쪄?”
“운동도 하지.”
“열~”
상의 탈의 했을 때 간지 나야 하잖아.
동생 방에 부착된 문틀 철봉으로 턱걸이를 매일 조지고 있는 중이다.
몇 개월 만에 상체가 꽤 커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회귀 전에는 근육 키우기가 정말 힘들었는데.
10대의 성장기 버프가 여실히 체감된다.
나는 마지막 국물을 후루룩, 들이킨 다음에 수저를 내려놓았다.
도현이, 혁오, 최유진, 소이. 그리고 ···
왁자지껄 떠들고 있는 동생이랑 동생 친구들.
“오빠 잘 먹었습니다!”
“잘 먹었습니다!”
병아리 같은 동생 친구들이 나에게 다가와 꾸벅. 고개를 숙인다.
이러면 사줄 맛 나지.
“빨리 계산해.”
이러면 사줄 맛 안 나고.
나는 놓아두었던 숟가락을 다시 손에 들었다.
움찔, 위협을 느낀 세연이가 두 발자국 물러난다.
몸에 각인된 방어본능이었다.
“허, 뭐해?”
하지만 세연이도 바보는 아니었다.
내 주변에 ‘친구’들이 있는 걸 확인한 동생은, 마치 천군만마를 얻은 듯 기세등등했다.
이걸 그냥 ···
징징징-
주먹이 운다 ···!
“어후. 그래 가자.”
나는 모두의 식비를 계산했다.
있는 사람이 써야지.
자본 자체는 소이가 제일 많긴 하지만, 다들 시간 내서 와줬으니 이 정도는 당연했다.
“나도 낼게 ···”
“놉.”
“···.”
소이는 가끔 소름 돋을 정도로 눈치가 빨랐다.
동생이랑 동생 친구들은 왁자지껄 떠들며 찜질방으로 먼저 향했다.
문에 반쯤 걸친 최유진이 나를 멀뚱히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김수재 미안.”
“··· 왜?”
“나 거기에··· 흡··· 아니야.”
소이가 고개를 갸웃한다.
나도 인상을 썼다.
뭐지?
“··· 라볶이에 머리카락 빠뜨렸는데 너 먹길래···”
“···뭐?”
“다시 보니까 사라졌흨흐흐”
“으아아아아아아아안들린다아아아!”
나는 귀를 힘차게 두들기며 밖으로 뛰쳐나갔다.
최유진과 혁오, 도현이가 고소해 죽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서 멀어져 간다.
점심으로 남의 머리카락까지 같이 먹다니.
죽고 싶다.
내 옆에 남은 건 소이뿐이었다.
“긴장하지 말라고 저러는 걸 거야 ···”
내 옆에 있던 소이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수재 ··· 긴장하면 자꾸 입 만지니까 ···”
“···아.”
소이가 눈치가 엄청 빠른 것일까,
아니면 그냥 최유진이 골탕먹인 것뿐일까.
잘은 모르겠다.
하지만, 뭔가 뒤숭숭하던 마음이 한결 나아졌다.
“아 그리고 …”
“응?”
“혹시 우리말고 다른 사람도 불렀어?”
“아니…?
“알았어.”
소이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뭘까.
괜스레 신경이 쓰인다.
“왜?”
“음… 아니야.”
“뭐야뭐야.”
“진짜 아무것도 아니야.”
“···.”
우리는 빠른 걸음으로 찜질방을 향해 걸었다.
주인 아줌마께 묵례 후, 이미 올라 본 계단을 하나하나 밟아 오른다.
옆 건물 대형 스파에는 낮부터 줄이 서 있던데.
여긴 내 팬을 불러모아도 여전히 조용했다.
“···”
직접 동원한 인원은 총 일곱.
동생 1 동생 친구 2
혁오 도현이 최유진 소이
‘시험기간’이라는 커다란 장벽을 뚫고 내 사인회에 와 주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몇 명 예상하냐?”
“2,30명?”
“우리 포함해서?”
“당연하지.”
“히히히흐흫”
혁오가 잔뜩 상기된 얼굴로 웃었다.
턱-
마지막 계단을 밟자, 눈에 띄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내가 아까 직접 써 붙여 놓은 것이다.
노약자존 ···
은 아니다.
‘NO 약자존’이다.
“이곳부터 ··· 약자는 들어갈 수 없다 ···”
나는 문 앞에서 몸을 돌리며 심각한 얼굴로 선포했다.
“··· 김수재 개 멋있어 ···”
“··· 오늘만큼은 인정한다.”
혁오와 도현이가 고개를 끄덕인다.
여자애들은 그저 입을 굳게 다물 뿐이었다.
내 ‘첫’ 사인회에 사람이 많이 몰릴 리는 없다.
소수만이 올 것이다.
하지만 소수만 왔다고 해서, 대충할 수는 없다.
이럴때일수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나는 그들에게 ‘특별한’ 연주를 보여줄 것이며, 특별한 선물을 줄 것이다.
내 첫 솔로 공연 비슷한 것이니까.
“가자 ···”
“그래.”
벌컥-!
나는 3층 본실의 문을 열었다.
원래 주인공은 가장 늦게 등장하는 법이다.
일찍 도착한 팬들이랑 만나면 뻘쭘할 수밖에 없으니, 나는 에이트라의 제안으로 밖에 나가 있었다.
시계는 1시 5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과연 사람들이 얼마나 왔을까?
얼마나 ···
흡.
나는, 숨을 거세게 삼켰다.
“와! 빨기좌다!”
“와아아아아아아!”
“우와아아아아!”
훅,
음압이 내 귀를 덮쳤다.
자체 동원한 애들을 포함해서 한 30명이 한계일 줄 알았는데 ···
아니었다.
그정도가 아니었다.
텅텅 비어 있어야 할 찜질방에는 ···
무려,
80명은 넘어 보이는 사람들이, 하늘색, 분홍색의 찜질복을 입은 채 앉아 있었다.
“···.”
이게 ··· 이게 대체 ···
이럴수가···
“빨기좌! 빨기좌!”
사람들이 내 이름을 열창한다.
그냥 들어온 손님들도 문뜩 멈춰 서 기이한 광경을 바라본다.
친구들은 후다닥 흩어져서 문앞에는 나만이 덩그러니 남게 되었다.
나는 최대한 표정 변화를 억제하며, 당당한 걸음걸이로 에이트라를 찾았다.
에이트라의 손에는 단열재가 잔뜩 발라진 카메라를 든 채 나에게 엄지를 척! 올려 보였다.
“와 ··· 빨기좌다 ···”
“오늘은 빨간 기타 안 가져왔어요?”
“귀엽다 ···”
“실물이 훨씬 나아요!”
“저, 저번에 페스티벌 갔었어요!”
연령층은 다양했다.
10대,20대,30대,40대,50대.
20대 남성은 적었지만, 30, 40대 아저씨들은 아주 많아 보였다.
그렇지.
요즘애들이 락은 잘 안 듣지.
고마워요 아재들!
에이트라가 나에게 다가와 마이크 하나를 내민다.
나는 마이크를 받아들고서, 수 십 쌍의 눈동자와 마주했다.
가까웠다.
아주 가까웠다.
야외나 실내 무대와는 거리 감각이 다르다.
손을 뻗으면 바로 닿을 수 있는 거리다.
내 앞에는, 초롱초롱 눈을 빛내고 있는 아재들이 앉아 있었다.
나는 약 10초 동안의 깊은 고민 끝에 입을 뗐다.
“빨기좝니다.”
와아아아아아아아-!
80명에 달하는 팬들이, 동기화라도 한 듯 소리를 질렀다.
“와 ··· 목소리도 은근 좋아 ···”
“노래는 안 해요?”
뭐라고 말을 이어야 할까.
자기소개?
지루할 거 같은데.
괜히 시간만 잡혀먹히고.
나는 겉치례를 싫어한다.
나는, 다 생략하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여러분 문앞에 쓰여있는 문구 보셨나요?”
“문구요?”
“아 ··· 노약자존이요?”
“No 약자존이던데?”
“유튜브 댓글 안 봤어?”
“아 나 인스타 보고 온 거라서···”
웅성이는 팬들.
나는, 이번 ‘이벤트’를 아주 간결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팬 사인회를 연 이상, 여러분 모두에게 사인을 해드릴 생각이예요.”
오오오오오오오-!
80명이 실내에서 함성을 터뜨리니 은근 소리가 우렁찼다.
“와 ··· 다 사인해준대 ···”
“희귀한 거 아니었어?”
“대박 ···”
“분명 강자만 해준다고 ···”
“다만.”
나는 말을 끊었다.
80명이나 모일 줄 몰랐지만, 특별한 경험을 선사해야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강자’들에게는 더욱 특별한 사인을 해드릴 겁니다.”
물불얼음지옥 사인회.
저세상 사인회.
나는 메고 있던 기타를 꺼내었다.
“특별한 사인 ···?”
“사인이 두 종류야?”
“아 맞다 공지에서 ···”
“형님, 들어갑시다.”
“당연하지.”
“첫 공연 첫 사인 아니냐? 당연히 들어가야지.”
사인이 희귀템 취급받잖아.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지.
팬들이 만들어낸 환상과 이미지를, 나는 그대로 이용하기로 했다.
나는 헤드에 튜너를 꼽아, 걸으며 튜닝을 시작했다.
매점에서 물을 한 병 받아와,
-2~4시 이용금지- 팻말이 적힌 불가마의 문을 화악! 열어젖혔다.
가득 차 있던 열기가 뿜어져 나온다.
나는 ‘잔뜩’ 기대하는 표정을 짓던 팬들에게 대고,
아주 당당하게 말했다.
“강자만 들어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