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guitarist RAW novel - Chapter 103
폭한과 극열의 사인회 (6)
쿵 쿵 쿵 쿵.
심장이 뛴다.
심장이 빠르게 뛴다.
더불어 몸도 같이 떨린다.
긴장 탓이었다.
“괜찮으세요?”
“옙. 괜찮아요.”
“여러부운~ 우리 수재씨가 추워 보이네요~”
옆에서 따라 걷고 있던 설하가 말했다.
아마 내 팬이랑 말 좀 터 보려는 의도였겠지만,
“빨기좌가 …?”
“빨기좌가 춥다고 …?”
정작 나의 팬들은 …
“빨기좌 내 옷 입어!”
“아니야 내 옷 입어!”
정말 상상 이상의 반응을 보였다.
팬들이 배를 까며 상의 탈의를 하려 한다.
나와 에이트라는 그들을 필사적으로 말렸다.
“에이, 안 입어?”
“아저씨 옷을 누가 입겠어.”
“그건 그러네…”
“맞아 …”
“우린 안 돼 …”
아저씨들 사이에 침울한 공기가 감돌았다.
설하와 아이리즈 멤버들이 문화 충격을 받은 듯한 표정을 짓는다.
진짜 개 난감하네.
나는 짝짝 – 손뼉을 치며 팬들의 시선을 모았다.
“지금부터 3층 ‘남자’ 욕탕으로 내려가도록 하겠습니다! 전세를 냈으니 남녀 가리지 않고 모두 들어오셔도 괜찮습니다!”
“오 … 남자욕탕 …”
내 뒤에서 따라오던 여자애들이 눈을 빛냈다.
“욕탕 …!”
아이리즈 멤버들도 마찬가지였다.
목욕탕이 다 거기서 거기지 뭔 차이가 있나?
아이보리 비누 대신 클렌징폼이 놓여 있는 것도 아닐 텐데.
“레쉬가드 필요하신 여성분은 2층 여자 목욕탕에 준비되어 있습니다~”
어차피 나를 제외하고 입수하려는 사람은 없을 거다.
뜨거운 물에 옷 입은 채로 들어가기 좋아하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어.
뚜벅뚜벅-
나는 계단을 타고 3층으로 내려가 ‘사용금지’ 팻말 걸린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뭐, 그냥.
평범했다.
그냥 목욕탕이다.
그냥 목욕탕 …
인가?
“어?”
나는 순간, 숨을 크게 삼킬 수밖에 없었다.
“오오오오오!”
“우와아아아!”
“뭐야? 지옥 끝난 거 아니었어요!?”
“원래 남자 욕탕은 이래!?”
“아니 안 이런데 …?”
탈의실의 투명문 너머.
뭔가 이상했다.
뭔가 … 뭔가 …
“에이트라 … 님?”
“…예?”
“뭐예요 이거?”
“저도 몰라요…”
왜 모르는 거지?
왜 투명문 너머로 … 형형색색의 빛이 쏟아지고 있는 거지?
저기에 대체 뭐가 펼쳐져 있는 거지?
예상치 못한 광경에 정신을 못 차리겠다.
불가마도 다 끝냈고.
얼음방에서도 버텼고.
시원하게 몸 담그고 기타 좀 치다가 사인해 주고 해산하려 했는데 …
“김수재 철저하네 …”
“언제 준비했냐?”
뭔가 계획에서 벗어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꿀꺽.
마른 침을 삼킨다.
신고 있던 양말을 벗어 던지고,
나는 …
목욕탕의 문을,
화아아아아악-!
열어젖혔다.
“….”
뭉게 뭉게-
뭉게뭉게뭉게 –
드라이아이스 100킬로가 녹아 생긴 듯한 연기가 탈의실로 쏟아져 나온다.
습하다.
매우 습하다.
어느 목욕탕이든간에 습도 100%인 건 확실하지만,
같은 100%라도 체감이 다르단 사실을, 나는 오늘 처음 알았다.
마치, 끓는 물에서 뿜어져 나오는 수증기에 얼굴을 가져다 대고 보습하는 느낌이랄까.
뭉게뭉게뭉게뭉게 –
천장에 달린 형형색색의 조명이 연기를 비춘다.
파스텔톤의 분홍색, 하늘색, 초록색.
솜사탕이 공중에 둥둥 떠다니는 듯한 풍경이었다.
“우와 … 예쁘다 …”
“와…!”
사람들은 휘적휘적 허공에 손을 저으며 연기들을 한 움큼씩 잡아댔다.
누가 이렇게 손이 많이 가는 짓을 했을까…
‘목욕탕’이 아니라 초대형 사우나라 해도 믿겠다.
뭐 사우나의 기준이 별게 있는 것도 아니고.
습도 높고 뜨거우면 그게 사우나 아닌가?
찌익- 찌익-
슬리퍼 끄는 소리와 함께, 남탕의 한구석에서 누군가가 걸어 나왔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평범한 파마머리 아주머니는 인자한 웃음을 지으시면서 에이트라의 어깨를 두들겼다.
턱- 턱-
“물지옥 준비 다 됐다~”
에이트라의 고모는 손을 뒤로 흔들며 유유히 사라지셨다.
“… 역시 빨기좌야 …”
“얼음방은 그냥 훼이크였어 …”
“진짜가 아직 남았구나 …”
“이 공연이 7천 원밖에 안 한다고?”
160쌍의 반짝거리는 눈빛들이 나를 향했다.
그들의 눈에는 … ‘존경’이 담겨있었다.
“얼음방으로 끝난 게 아니었네요 힘낼게요…!”
아까 전 얼음방에서 필사적으로 버티던 여자애는, 레쉬가드까지 입고 왔다.
얼굴이 극적으로 고양된 상태였다.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감정을 못 읽을 리가 없을 정도로 말이다.
흥분.
사람들은, 이 몽롱하면서도 지옥 같은 습기 속에서 ‘흥분감’을 느끼고 있었다.
뭐야시발이거.
나는 머리를 두들기며 목욕탕을 묵묵히 걸었다.
물지옥이라 …
솔직히 수습이 불가능한 테마긴 했다.
팬들을 물에 떠내려 보내게 할 수도 없고.
물 온도로 고문하는 건 너무 위험하고.
습기로 괴롭히자니 사우나는 좁아터졌고.
그냥 쉬는 겸 욕탕 라이브나 할 생각이었는데 …
“오우 … 갑갑하니 좋은데?”
괜찮네 뭐.
숨이 턱턱 막힌다.
불가마와는 다르다.
불가마가 에어 프라이어라면,
여기는 찜통 내부다.
‘물’이 가져다주는 색다른 고통이 느껴진다.
그리고 …
디리리리리링-!
기타의 음색도 아주 크게 변화했다.
“소리 진짜 좋다 …”
“목욕탕 에코가 사기야 원래.”
엄청난 습기 때문에 아무 말이나 내뱉어도 괜히 몽환적이게 들리는 마법.
그런 ‘자연’의 마법을, 가만히 두기에는 아깝지 않은가.
훌렁-!
나는 윗옷을 벗어 던졌다.
“우오오오오오오!”
쩌렁쩌렁한 함성이 목욕탕에 왕왕 울려 퍼진다.
에코까지 섞이니까 고막이 터질 거 같다.
“우와아 …”
아이리즈 멤버들이 손가락으로 눈을 가리며 나를 바라본다.
“몸은 또 왜 좋은 거야…”
안 보려면 손바닥으로 가려야 하지 않나?
“빨기좌가 상의탈의를 하다니 …”
“무슨 의미야?”
“진심이라는 뜻이지.”
“뭐?”
“잘 들어봐 …”
웅성웅성.
팬들 사이에서 진지한 이야기가 오가기 시작했다.
“듣고 보니까 진짜 그런 거 같네 …”
“심오하기 그지 없구만.”
“어떤 연주를 할지 …”
대체 뭔 소릴 하는 건지 감이 잡히질 않는다.
뭐, 에이트라의 고모에게 감사한 건 감사한 거고.
의도치 않게 갖춰진 환경이 좋은 건 좋은 거지만.
연주를 해야 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첨벙-
나는 일말의 주저 없이 욕탕에 들어갔다.
뜨겁다.
다만, 버티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나는 ‘미니 폭포수’ 아래에, 하반신만 물에 잠기도록 자리를 잡았다.
물줄기가, 나의 머리를 때린다.
폭포수행을 하는 무림인이라도 된 듯한 기분이 든다.
“존나 멋있다 김수재 …”
“리얼 …”
차갑다.
차갑기에,
정신이 번쩍 든다.
스트랩을 어깨에 걸고, 피크를 쥐고,
디리리리링-!
온 힘을 담아 기타를 튕긴다.
또렷한 소리는 이제 없었다.
부드러운 소리도 이제 없었다.
몽롱하다.
한없이 몽롱하다.
“후욱! 후욱!”
“어우 습하다!”
슬슬 관중들에게서 반응이 나오기 시작했다.
왜, 목욕탕이 아무리 습하다 해도 불쾌감을 느끼진 않지 않는가.
몸을 물에 담그거나 적시니까.
다만,
이곳은.
“허어어어어억!”
“어우!”
“아아아아아! 답답하다아!”
몸을 적시지 못한다.
그저 욕탕 밖에서 멍하니 나를 쳐다볼 수밖에 없다.
사람들의 얼굴에서 땀이 벌벌 돋아나기 시작했다.
찝찝함의 극치.
찝찝함의 지옥.
진짜 시작이었다.
“여러분, 습하신가요?”
“네에에에에에에!”
괴로움 섞인 대답 소리가 물에 파동을 그릴 정도로 왕왕 울렸다.
“괴로우신가요!?”
“네에에에에에!”
나는 그들의 대답에 따라 대답하듯,
디리리리링~
코드를 튕겼다.
이전과는 다른 곡이다.
이것은, 통기타의 곡이 아니다.
원래라면 일렉기타 클린톤에 딜레이와 코러스를 왕창 걸어 몽롱하면서도 차가운 느낌을 연출해야 하지만…
“그럼 안 찝찝하게 해드리겠습니다! 이번 곡은 나숙호 선생님의 ‘사막을 걷는 노래’입니다!”
“와아아아아아아!”
함성과 긴장이 같이 찾아왔다.
이 느낌을 뭐라 설명해야 할까.
실수할까 봐 느끼는 긴장은 아닌데.
좀 더 고차원적인 의미의 긴장이다.
왜, 그렇지 않은가.
자신이 잘 알고 있는 뮤지션일수록, 카피하기가 난감해지는 법이다.
내가 사람들 앞에서 레드제플린의 곡을 잘 안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이다.
‘객관적’으로 보면 카피 싱크로가 상당히 높은데, 개인적으로는 마음에 안 들기 때문에.
그에게는 있고 내게는 없는 ‘무언가’가, 여실히 느껴지기에.
– 디이이잉~
‘미’
첫 음이었다.
나는 원래 쓰던 던롭 피크로 줄을 한 줄씩 튕기며,
E 펜타토닉과 블루스가 섞인 스케일의 지판을 짚어 나갔다.
사막을 걷는 노래.
‘좋은 기타 노래’라고 한글로 검색하면, 첫 번째로 추천 리스트에 뜨는 곡.
나는 이 곡을 잘 안다.
매우 잘 안다.
많이 들었으니까.
레드 제플린에 버금갈 정도로 많이 들었으니까.
그리고, 정말 많이 쳤으니까.
습기 때문에 시야가 뿌옜다.
천장에 있는 조명이 하늘색 파스텔톤으로 고정됐다.
아직 다섯 마디 채 연주하지 않았는데,
강렬하기 그지없는 음의 향취가,
진하기 그지없는 감정의 파동이,
나를 풍경으로 잡아끌었다.
화아아아악-!
머릿속에 아지랑이가 떠올랐다.
사막.
한국에서는 지극히 보기 힘든, 황금색의 사막.
그곳을 걷는 노래.
사막을 걷는 노래.
이름이 참 간결하기 그지없다.
건조하고, 뜨거우면서도, 밤에는 차가운.
사막의 하루와 그곳을 걷는 여행자를 그린 것이 전부인 곡이다.
보통 음악 차트는 ‘사랑 노래’가 대다수로 차지한다.
곡조를 표현하기도, 이야기를 전달하기 쉬우니까.
사랑 타령은 전 세계 어디에서나 인기가 있으니까.
다만, 그 외에는.
사랑 타령이 아닌 노래는 솔직히 말해 레퍼런스가 부족했다.
한국에서 특히 그랬다.
‘사막을 걷는 노래’는 나숙호 제1의 곡이자,
‘기타 곡’에서 ‘가사’가 나중에 붙여진 최초의 곡이자,
사랑 타령이 아닌 곡이자,
미래에는 더욱 유명세를 얻게 될, 명반 중의 명반이다.
나는 억센 통기타 줄로 힘차게 비브라토를 넣었다.
퉁퉁 불기 시작한 손마디 끝에 줄이 파고들어 매우 아프다.
다만 지금 이 감정을, 이 광경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는,
작은 고통쯤이야 충분히 감내할 수 있었다.
희뿌옇고 파란, 파스텔톤 하늘색의 하늘.
밀짚모자와 쌍안경,
화상을 입지 않게 온몸을 칭칭 감은 천 쪼가리와 배낭, 물 한 병.
사방에 펼쳐진 모래언덕이 여행자를 맞았다.
투둑 투둑-
나는 피킹을 하면서도, 중간중간의 포인트마다 손톱으로 바디를 두들겼다.
신발이 모래 더미에 파고 들어가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콧속을 빼빼 말리게 하는 건조한 풍경을 표현하기 위해.
‘명곡’이란, 사소한 디테일이 중요하다.
그리고 이 ‘사막을 걷는 노래’는,
멜로디 카피는 쉽지만 디테일 카피는 극악으로 어려운 곡이다.
티이잉~
자연스럽게.
분위기를 환기시키듯.
건조한 피킹 사이에 처음으로 깊은 피킹과 네츄럴 하모닉스를 넣는다.
목욕탕 에코가 섞여 아주 청아하기 그지없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는 물줄기가 기타에 흐르지 않도록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와우 …”
최유진이 턱을 잡아당기며 건조한 감상을 뱉어냈다.
소이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푸욱 숙일 뿐이었다.
상체만이 온전히 물줄기를 받아냈다.
티이이잉-!
사막은, 밤으로 바뀌었다.
습하기 그지없는, 답답하기 그지없는 목욕탕에,
‘건조하고 차가운’ 밤이 찾아왔다.
곡을 느끼지 못한 자는 답답함에 못이겨 탈의실로.
곡을 느낀 자는 답답함을 이겨내어 내 가까이에.
나는 묵묵히 연주를 진행하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
티이잉-!
멜로디 변화를 넣었다.
나는 나숙호 선생님이 아니니까.
그의 연주를 온전히 재현해 낼 수 없으니까.
아주 약간, 내 향을 첨가하기로 했다.
“ … 방금 뭐였어?”
“어레인지 아냐?”
“우와 …”
다시금 팬들 사이에서 대화가 오고 간다.
방금 건 어레인지이기도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또 아니다.
이것은,
기타리스트 나숙호에게 강한 영향을 받은,
나의 자작곡이었다.
곡과 곡이 융화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