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guitarist RAW novel - Chapter 104
폭한과 극열의 사인회 (7)
후대는 전대의 음악에 영향을 받는다.
음악가는 음악을 들으며 어른이 되고, 들었던 음악을 거름으로 삼는다.
아무것도 없이 혼자 음악을 만드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디이이잉~
건조한 기타 소리였다.
사막의 밤.
춥고, 건조하고, 쉴 새 없이 불어오는 찬 바람에 몸을 웅크릴 수밖에 없는 밤.
간신히 찾아낸 바위 더미를 바람막이 삼을 수 있었던 여행자는, 가지고 있던 도구와 주워온 건초로 불을 피웠다.
피어오르는 연기와 불빛이 마음 한구석에 안도감을 만들어 낸다.
디리리링~
동시에, 아주 약간 특이한 멜로디가 관객들의 귀에 거침없이 파고 들어갔다.
나는 나숙호 선생님의 곡과 내 곡을 섞었다.
사막을 걷는 노래.
겨울 숲의 노래.
전자는 명반,
후자는 아직 완성이 채 되지 않은, 나숙호 선생님을 따라 하고자 만들어낸 멜로디.
카피는 창작의 어머니라고 하지 않던가.
‘사막을 걷는 노래’를 내 방식으로 치고, 치고, 또 치다가 어느새 그냥 툭 튀어나온 게 바로 겨울 숲의 노래다.
펜타- 블루스 스케일 기반의 진행에 메이저 스케일을 강하게 개입시켜서 변화를 꾀한, 사막을 걷는 노래의
아류.
개인적인 평가를 내리자면 그랬다.
“… 원곡이랑 조금씩 다른데요?”
“뭐야?”
“….”
사람들은 의문과 놀라움을 동시에 내뱉었다.
가까이에 붙어 있던 이름 모를 여자애는 동공 풀린 멍한 눈빛으로 중얼거렸다.
“너무 좋아…”
좋아하니 참 다행이다.
사람들은 문명 속에서 생활을 하며 자연을 꿈꾼다.
주말마다 강원도 산골짜기로 캠핑을 가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사실 시골로 가봤자 우리나라는 우리나라다.
어딜 가던, 알고 있던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이 노래는, ‘익숙하지 않은’ 풍경을 익숙하게 머릿속에 그리게 하는 마법을 보여줬다.
“귀 시려워.”
“그러게 …”
몽롱하고, 건조하고, 차갑다.
걱정거리를 다 벗어놓고, 내일 뭘 먹을지 어디서 잘지를 고민하는 밤.
생각이 단순해지는 밤.
멀고 먼 오지로, 여행을 떠나는 노래.
“언니도 이거 칠 수 있어요?”
“….”
설하의 강렬한 시선이 내 안면에 날아와 꽂혔다.
연주 시작부터 입을 꾹 다물고 있던 그녀는,
“잘 모르겠어. 못 들어본 곡이라 …”
송아린의 물음에 처음으로 감상을 표했다.
“근데 좋긴 좋다. 좀 더 춥다고 해야 할까…”
나는 그녀의 감상에 무한한 감사를 느낄 뿐이었다.
원본의 표현 1순위가 ’건조함’이고, ‘차가움’은 후순위로 밀려난 느낌이라면,
겨울 숲의 노래의 멜로디를 첨가한 ‘어레인지 버전’은 차가움과 건조함이 동등하게 맞선다는 느낌이다.
같지만 다른 곡.
내 의도가, 내 향기가 첨가된
나만의 버전.
티이이이잉~
나는 왼 손목을 힘차게 꺾으며 통기타로 하이프렛을 짚었다.
피킹 하모닉스로 옅게 배음을 넣어
차갑게.
사막의 ‘밤’이 더더욱 강조되도록.
목욕탕에 가득 들어차 있는 답답한 습기나 열기가 느껴지지 않도록.
필사적으로 줄을 튕긴다.
에이트라는 살금살금, 미세한 카메라 무빙을 시도했다.
물방울이 렌즈에 튀어도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저게 다 영상미를 위한 거겠지.
나는 열심히 찍어주는 그에게 보답하듯, 열심히 연주를 이었다.
“….”
듣기론 ‘여행’하는 기분이란 게 참 복잡 미묘하단다.
돈이랑 거리가 멀던 내가 사막이니 스위스니 가본 적 있을 리 만무하지만, 그래도 마음속으론 관광이 아닌 ‘여행’을 꿈꾸긴 했다.
여럿이서 떠나는 게 아닌, 혼자서 도전하는 여행.
막상 실현하기는 어려운 여행.
일에 쫓기는 현대인은 대개, 여행을 ‘상상’만으로 한다.
대리 만족을 하려, 일부러 유튜브 여행 채널 같은 걸 찾아보기도 한다.
나도 그랬다.
디잉-!
사막의 여행자가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근심 걱정을 품고 있던 그의 머릿속은, 태어난 이래로 가장 단순해졌다.
무수히 내리쬐는 별들이,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 없던 진짜 은하수가, 그를 맞았다.
타들어 가는 장작더미 위에 올려진 주전자.
반짝반짝 빛나던 금속 면에 시꺼먼 검댕이가 덮인다.
그는 익어가는 도구들을 보며 피식, 실소를 지었다.
주전자의 외형이 어떻게 변하든, 이제 그는 개의치 않았다.
짧은 일탈을 위한 물건이 아니니까.
그저 차갑디차가운 바람을 느끼며 커피 한 잔을 마실 수 있는 걸로 만족할 뿐이니까.
그는, 진심으로 자연에 몸을 던졌다.
사막을 건너며, 못 보던 풍경을 눈에 새기기 위해.
깨달음이니 뭐니 그런 고상한 감상이 아니라
살아있음을 느끼기 위해.
별빛이 사막을 잿빛으로 비춘다.
누렇기 그지없는 불빛이, 이리저리 날아오르는 검댕이, 여행자의 얼굴을 그을린다.
사막 한가운데에서.
건조하지만, 바위 더미 속에 피어난 잡초를 찾아낼 수 있는 곳에서.
그는 커피를 들이켰다.
팅-!
곡이 후반부에 달했다.
나는 6번 줄부터 차근차근 올라오는 풀 피킹 속주를 준비했다.
아주 빠르지는 않지만, 느리지도 않은 구간.
‘빠르지’ 않기 때문에 괜히 해머링으로 얼버무리기가 불가능한 구간.
나는 그곳을 …
드르르르르르륵-!
젖은 손으로,
젖은 기타줄로,
완벽히 소화해냈다.
딩, 디이잉~
다시 한번 곡조가 느리게 변화했다.
건조함에는 변화가 없었지만 아주 살살, ‘따뜻함’이 멜로디에 드리워졌다.
건초더미, 바위 무더기, 모래가 그를 감싸 안는다.
춥디추운 바람을 밤새 맞았던 여행자는 웅크렸던 몸을 바로 폈다.
자연에게 괴롭힘당함과 동시에 자연에게 도움을 받은 그는, 얇은 담요에 내려앉은 모래를 털어내며 채비를 마쳤다.
그리고, 오늘도.
사막을 걷는다.
건조한 자연을 걷는다.
어디까지 갈지, 무엇을 먹을지, 어디서 잘지를 고민하며.
단순한 생각을 하며.
자연을 있는 그대로 느끼며.
“…”
나는 나숙호 선생님이 하셨던 말씀을 떠올렸다.
곡에 감정을 담으라, 표현을 주저하지 말라, 테크닉은 곡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똑바른’ 것에만 연연한다면 연주자는 가상 악기와 다를 게 없다.
일부 사람들은 테크닉을 얕잡아 본다며 불평을 토하기도 했다.
늙은이의 가짜 일침이라 조롱하는 자까지 있었다.
잘 모르는 인간들이다.
기타를 치는 것은, 악기를 연주하는 것은.
소리를 내는 게 끝이 아니다.
소리를 어떻게 내느냐가 중요하다.
이 곡은, 내가 좋아하는 곡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들었다.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을 알려주니까.
연주를 거듭할수록 느껴지는 어려움이, 성장을 자연스레 이끌어내게 했으니까.
머리를 비운 여행자가 사막을 걸으며 조금씩 성장하듯,
나는 이 곡을 치며 성장했다.
퉁- !
생각을 너무 많이 하고 사는 현대인들에게 바치는 노래이자,
삼류 기타리스트의 목표점인 곡은
첫 음과 같이 ‘미’로 끝났다.
“후우.”
나는 마른 숨을 토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줄줄 흘러내리는 미니 폭포.
물과 물방울이 맞닿는 소리.
걷힐 기미가 보이지 않는 달달한 솜사탕 같은 안개와,
멍한 얼굴로 내 옆에 다가와 있는 열일곱의 사람들.
사람 수는 조금 줄었다.
조금 줄었지만 …
짝짝짝짝짝짝짝짝짝-!
소이와 이름 모를 여자애가 거의 동시에 박수를 쳤다.
박수의 시작.
퍼져나가는 감정과 감상.
답답함에 못 이겨 도망친 사람들이 있다는 게 체감이 안 될 정도로,
박수소리는 아주 우렁찼다.
“레전드다 …”
“이거 레전드다 …”
사람들의 시선은 내 얼굴에서 머물다가 이내 에이트라에게 향했다.
“저, 저기 이거 언제 올라가요?”
“오늘 올려주시면 안 되나?”
“….”
우르르르르르-!
장소가 장소이니만큼 핸드폰을 꺼내놓은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아주 자연스레, 단 한 명의 카메라맨에게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구와아아아아악!”
인파에 에이트라가 파묻혔다.
뭔가 익사할 것 같은 얼굴이다.
나는 기타를 물 위에 둥둥 띄워놓고 그를 구하러 갔다.
“올릴 거야 안 올릴 거야!”
“빨리 올리라고오!”
나는 과격해진 아저씨들을 헤집고서 허우적거리던 그의 팔을 붙잡았다.
“오, 올릴게요! 오늘 올릴게요!”
“구라치면 그냥 악플 세례받는 거야.”
“처신 잘하라고.”
내 팬이지만 진짜 개또라이들밖에 없네.
에이트라는 젖어버린 머리카락을 꾹 짜며 침울한 표정으로 일어났다.
“빨기좌 그 곡 좋은데 왜 안 올려?”
“아껴둔 건가?”
“아껴두다가 지금 푼 거야?”
“아~ 알겠다 이거….”
딱히 아껴둔 건 아니고 그냥 완성이 안 돼서 방치해 둔 것뿐인데.
팬들은 대답할 틈을 주지도 않고 나에게 달라붙었다.
나는 그들의 얼굴에 떠올라 있는 ‘흥분’이 두려워 재빨리 물속으로 도망쳤다.
이렇게 뜨끈뜨끈한 욕탕에 옷 입고 들어올 용자는…
“흐읍 …!”
숨을 한껏 참은 이름 모를 여자애가 가장 먼저 다리를 내밀었다.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욕탕에 뛰어들기 시작한다.
물은 이제 안전지대가 아니었다.
“너무 좋아 …”
“이거 다음 앨범 맞죠? 그렇죠?”
“일렉으로 듣고 싶다 …”
사람들이 왁자지껄 각자의 감상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우글거리는 목소리가 벽에 반사되어 시끄러움이 한층 가중됐다.
라이브는, 개 난장판으로 치달았다.
“빨기좌! 한 곡 더 해줘!”
“한 곡 더!”
“한 곡 더!”
“….”
무수히 많이 쏟아지는 앵콜요청.
나는 그들을 향해…
디리리링-!
인정없이 코드 하나만을 튕겨주었다.
“오오오오오오!”
“우와아아아아아!”
팬들이 소리친다.
앵콜 앵콜.
평소같았으면 들어줬겠지만, 지금은 안 될 거 같다.
나는 작게 고개를 저었다.
“여러분!”
“예!”
“아쉽지만, 시간이 다 됐습니다.”
“아 …”
“연주만 들으러 오신 게 아니잖아요! 사인도 받아 가셔야죠!”
손이 퉁퉁 불었다.
불어버린 굳은살에 쇠줄 자국이 생겨서 당장은 더 못 칠 거 같다.
제대로 말린 다음에 찜질방 광고도 찍어야 하고 … 그리고,
“아…”
“아 맞다 사인…!”
내 근처에 몰려 있던 17명의 팬들.
진정한 강자들.
기억했다.
똑똑히 기억했다.
50명에서 20명으로, 그리고 17명으로.
나는 이 사람들에게만 ‘리미티드’ 사인을 전달할 것이다.
“자~ 여러분들! 비치된 수건에 발이랑 잘 닦으시고 2층 불가마 앞에 모여 주십시오!”
아쉬운 듯한 표정을 짓는 아저씨들.
곧 저녁이고, 여기도 장사를 해야 하긴 하니까.
어쩔 수 없지 뭐.
“에잉 …”
“다음 라이브는 언제 한대?”
“몰라 …”
“잠깐, 불가마라니 … 설마 …”
“에이 설마 …”
쯥쯥 입맛을 다시는 아저씨들이 가장 먼저 자리를 벗어났다.
일부 팬들은 내 얼굴을 바라보며 불안한 듯한 표정을 띠었다.
이래서 눈치 빠른 꼬맹이는 싫다니깐.
에이트라가 그들을 인솔했다.
친구들과 아이리즈 멤버들, 설하만이 욕탕에 남았다.
사람이 꽉 찼다가 비니까 좀 허전하네.
“저기…”
설하는 휙, 나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서,
“이거 … 다른 곡이랑 섞은 거죠?”
한 치의 주저 없이 질문을 쏟아냈다.
“네.”
“자작곡이죠?”
“맞아요.”
“우와아아아…”
설하는 고민에 잠긴 듯한 표정을,
아이리즈 멤버들은 선망의 눈빛을 내게 보냈다.
“김수재 언제 또 작곡함.”
“개신기하네.”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어차피 미완성인 곡이라 당장은 들려줄 수가 없…
설하는 턱-
내 어깨에 한쪽 손을 올렸다.
“곡 진짜 좋아요… 이거 완성만 되면 …아,”
턱-
이어서 나머지 한쪽 손도 올렸다.
“소속사 다운으로 오실 거죠?”
“네?”
정말 개뜬금 없는 질문이다.
왜 갑자기 이런 질문을 하는지 모르겠다.
소속사라 …
뭐지원해줄 회사 있으면 좋긴 한데.
데려간다는 곳이 없는데?
페스티벌에서 난리 치고 인터넷에서 유명세 좀 날려도 연락 한 번이 안 온다.
소형 소속사는 크게 데이는 사람들이 많아서 아무 데나 함부로 갈 수도 없고.
다운 정도면 땡큐지.
“아 맞다! 그 수재씨 소속사 때문에 회사들ㅇ..읍읍”
목소리를 높이려던 송아린은 옆에 있던 주희에게 입이 틀어막혔다.
“저희 소속사 오시면 좋겠어요. 전 그렇게 생각해요.”
“왜 갑자기 그런 질문을 …”
“올라가 있을게요! 저도 사인받아야죠!”
설하는 후다닥 발을 닦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 뭐지?”
“뭐임?”
“회사 넣어준다는 거 아님?”
“김수재를?”
“하민서랑 맨날 보겠네.”
걔랑은 지금도 맨날 보는데.
설하는 아리송한 의문만을 남겼다.
“올라가자.”
“사인회는 어디서 하냐?”
“어디서 하냐고?”
……나는, 다시 불가마로 돌아갔다.
불 얼음 물
또다시 불.
이게 바로 순환의 이치 아니던가.
새빨간 조명이 내리쬐는 이 안락한 공간이,
사인회장이 아니면 대체 어디가 사인회장이겠는가.
“역시 빨기좌야 … 기대를 배신하지 않아 …”
“시련은 마지막까지 끝나지 않는구나.”
17명에게는 한 땀 한 땀을 공들인 리미티드 사인을.
“우와 이게 뭐냐 …”
“대박이네.”
“피카소여?”
다른 사람들에게는 ‘기타’가 그려지지 않은, 내 이름이 적힌 사인을.
“우와아아아아!”
마지막까지 버티는 데 성공한 집념의 여자애는, 사인판을 가슴에 끌어안은 채 행복하기 그지없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뭔가,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다.
이런 팬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좋겠다.
…좋
겠다.
팬들과 인사를 나누고, 찜질방 홍보 영상도 찍고, 준비한 모든 것을 끝냈을 때.
보관해 두었던 가방을 찾기 위해 탈의실로 돌아왔을 때.
나는 철렁, 가슴이 내려앉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게 대체 …”
“뭔데?”
“뭐야 시계?”
“오~ 이거 비싼 거 아냐?”
고급스러운 상자 안에 들어 있는 메탈시계.
내가 놀란 건 시계가 고가였기 때문이 아니다.
너무나도 익숙하기 그지없는 ‘문체’로 적힌 쪽지가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빨기좌사랑해오늘라이브너무잘봤고너무재밌었어사인받아서기뻐아마내얼굴도봤을거야주변에여자애들진짜많더라연예인들도예쁘고그런사이는아니겠지만나는빨기좌만있으면되니까나중에결혼은나랑해야돼알겠지옆에있던앞머리일자여자애눈치되게빠르더라걔는좀신경쓰이는데나는마음이넓으니까괜찮아
메탈시계는, 조정이 필요 없을 정도로 손목에 딱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