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guitarist RAW novel - Chapter 225
232화. 우상을 올려다보는 사람들 (4)
당당하기 그지없는 대답에, 분위기가 경직됐다.
이렇게 굳은 공기를 느껴본 적이 대체 얼마 만이더라?
“음 … 그렇구나.”
박작곡가와 나선생님의 반응은 아주 애매하기 그지없었다.
초등학생이 ‘피카소나 고흐를 뛰어넘는 최고의 미술가가 될 거예요’라고 선언한다면, 열심히 하라는 대답이 돌아올 것이다.
평생 관련 분야에 접점이 없던, 다 큰 어른이 같은 선언을 한다면, 취미라도 생겼냐? 정신 나갔냐? 같은 대답이 돌아올 것이다.
근데 만약, 개인 전시회를 몇 번 정도 연 프로가 같은 말을 한다면?
… 뭐라 대답해야 할지 참으로 난해할 것이다.
부정하자니 무시하는 것 같고.
긍정하자니 그것도 좀 아닌 것 같고.
“지미 페이지라 ….”
나선생님이 턱수염을 쓰다듬으셨다.
나도 내가 무슨 말을 한 것인지 잘 알고 있었기에, 멋쩍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냥 개인적인 희망 사항이에요.”
지미 페이지는 내 우상이다.
그러므로 지미 페이지처럼 연주해보고 싶다.
하지만 안 될 거 같다.
그럼에도 뛰어넘고 싶다.
입문 후, 어느 정도 실력이 물올라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던 시절에 했던 생각.
아주 오래되긴 했지만, 풍화되지는 않은 감정이었다.
“… 누구에게나 우상은 있으니.”
“그럼 그럼.”
“우선 천천히 얘기 나눠 보자고. 내가 괜찮은 식당 알아봐 뒀거든.”
“오 …!”
우리는 나선생님과 박 작곡가를 따라 호텔을 빠져나왔다.
-스읍!
비 냄새가 잔뜩 풍기는 어둠이 내려앉은 런던의 거리.
누리끼리한 조명이 도시 전체를 은은하게 뒤덮고 있다.
아직 11월밖에 안 됐음에도 위도가 높아서 그런지 해가 엄청 빨리 지는 것 같다.
사람들이 많다.
관광객도, 현지인도.
도시에 활기가 넘친다는 말이다.
“어디로 가나요?”
“좋은 곳.”
박작곡가는 대로변 안쪽의 골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 구석에는 …
둥둥둥-!
드럼 킥 소리가 세차게 새어 나오는, ‘라이브 펍’이 자리 잡고 있었다.
“여긴….”
그냥 펍이 아니다.
무려 ‘라이브 펍’이다.
낮에는 우리도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있긴 하던데.
밤에도 그게 되나?
“신기하다 ….”
소이가 똘망똘망한 눈빛을 내비친다.
한국에 있는 곳이라면 나도 많이 가봤지만, 외국에서 이런 데 오는 건 처음이다.
나까지 가슴이 두근거린다.
“어른 동반이면 너희도 괜찮다 하더라고.”
“오오!”
“아, 그 전에.”
박작곡가는 내게 마스크를 건넸다.
“쓸래?”
그렇지.
유명인들 하면 마스크긴 하지.
뭔가 특별 대우를 받는 것 같아서 입꼬리가 슬금슬금 올라가려고 한다.
“에이, 뭘 저까짓게.”
“싫음 말고.”
“헤헤.”
결국 나는 얼굴을 가리지 않고 들어가 보기로 했다.
그리고 아주 다행히도…
둥둥둥-!
쾅쾅-!
아주 격렬한 드럼 비트에 다들 정신이 팔려 있어서 그런지, 이쪽으로 눈길을 주지는 않았다.
작은 무대.
보컬의 마이크에 드럼 소리랑 기타 소리랑 막 뒤섞여서 수음될 만큼 작은 무대.
그곳에서 이름 모를 밴드가 공연을 하고 있었다.
“분위기 죽이네요 ….”
“거봐 임마.”
“태현이는요?”
“전화해도 받지를 않더라. 어디 있는지 아니?”
“저도 아까 카톡 보냈었는데….”
답장은 없었다.
뭐 김태현이니까 알아서 하고 있겠지.
본선이 끝나고 나서 위로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걱정했는데, 딱히 그럴 필요는 없어 보였다.
표정이 아주 태연했으니까.
김태현이 태연하다.
좀 웃긴데?
“크큭.”
“…?”
혼자 실실 웃자, 소이가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쳐다본다.
“… 표정 풀렸어!”
“진짜?”
“응! 다행이다.”
오늘은 좋은 날이다.
나만 인상을 찌푸리고 있으면 너무 꼴사납지 않겠는가.
결선을 혼자서 치르는 것도 아니고.
“먹고 마시자!”
“응!”
자리에 앉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종업원이 메뉴판을 들고 왔다.
메뉴는 뭐 … 평범하다.
감자 곁들인 소시지랑 이상한 생선 튀김 등등.
나는 양고기 야채 스튜가 있어서 그걸 시켰다.
소이는 배가 많이 고팠는지 튀김 요리를 잔뜩 시켰다.
“… 다 먹을 수 있겠니?”
“네!”
주문은 나선생님이 하셨다.
다 받아적은 종업원은 …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헉….”
입을 가로로 모으면서 세로론 벌리고, 눈을 크게 뜬. 모니터 너머에서나 볼 수 있을법한 표정.
뭔가 미국 개그 영화의 한 장면 같은데 ….
설마?
“빠… 빠빠 … 빨…”
발음이 팔이 아닌, 한없이 빨에 가까웠다.
“Hi.”
“Oh my god!”
끼애애애액!
역시나, 내 팬이었구나.
내 팬들은 되게 한결같은 반응을 하는구나…!
마침 딱 밴드가 연주를 마무리한 타이밍에 맞춰 괴성이 터져 나오자, 엄청난 시선이 내게 쏟아졌다.
“[빠빠ㅃ빨기좌!]”
“[뭐?!]”
“[그게 누군데?]”
“[빨기좌를 모른다고?!]”
“[100기타! 그게 빨기좌야!]”
“[뭔 소리야?]”
“[답답하네 진짜!]”
날 알아보는 사람도 있었고, 모르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전자는 후자를 보고 열불을 냈다.
빠가 까를 만든다던데 … 이거 괜찮은 걸까?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
“[오늘 콘서트 갔어요! 아, 콘서트가 아니라 대회요!]”
“[저도요!]”
이곳의 분위기가 일순간에 뒤바뀌었다는 것이다.
후자가 전자를 보며 반감을 가지기보다, 궁금하다는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유명인이구만~”
“열~”
웅성웅성웅성.
원래도 시끄러웠던 펍이, 더더욱 크게 요동쳤다.
그리고 눈에 핏발을 세운 손님들이 자리를 박차고서 내게 다가왔다.
“거봐. 마스크 써야 했다니까.”
“흐흐.”
“웃네 …?”
나는 박작곡가에게 새하얀 이를 자랑했다.
“수재는 평소에는 늙은이 같더니, 이럴 땐 꼭 제 나이 같아.”
나선생님의 인자하신 말씀이 가슴이 아프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아니, 이건 칭찬이다.’
나는 당당히 자리에서 일어나, 당당히 팬들을 맞이하였다.
“[즐거운 저녁 보내고 계신가요?]”
– 으아아아아악$#*&$%!
그냥 안부인사 한 것뿐인데, 광기 어린 괴성이 돌아왔다.
분위기가 이상하다.
꼭 무대에 올라야 할 것만 같은 느낌?
작은 무대라도 내가 오르고 싶다고 해서 오를 수 있는 게 아니다만.
“[연주 들려주세요!]”
“[기타 쳐주세요!]”
“호응이 엄청나 ….”
“근데 이미 일정 다 잡혀 있을걸.”
남의 무대를 빼앗는 건 최악의 수다.
무대에 서는 것 자체가 ‘기회’이고, 노력의 ‘결실’인데.
내가 아무리 유명세를 얻는다 하더라도 이 부분만큼은 평생 실수할 일 없을 거다.
“[환영 정말 감사 드립니다! 하지만 저는 여기에 밥을 먹으러 온 것이고, 또 지금부터 다시 이어질 공연을 들으러 온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오늘은 그걸로 만족하겠습니다! 배가 너무 고파요!]”
펍의 손님들, 특히 내 팬들은 아쉬워하면서도 납득했다.
“[배가 … 고프시다니!]”
그리고 접수를 받았던 종업원은 호다닥 주방으로 달려갔다.
아무래도, 한껏 달아오르려고 했던 분위기를 억누르는 데 성공한 것 같다.
대신에 …
“[사진 좀 찍어도 될까요?]”
관심을 아예 물리치는 건 불가능한 듯싶었다.
“[같이 찍을까요?]”
“…!”
마치 세상을 다 가진 듯한 표정.
뭐랄까 적응을 좀 하긴 했는데.
그래도 ‘이렇게까지 좋아해 주는 게 말이 되나?’라는 생각이 간간이 떠오르긴 한다.
유명세를 얻은 지 시간이 그리 많이 안 지났으니까.
“[아, 18번 참가자님…도 같이 찍어도 되나요?]”
“…!”
콜라를 홀짝이던 소이도 깜짝 놀라며 얼떨결에 내 옆에 붙었다.
꾸욱.
소이가, 내 팔을 감싸 안았다.
찰칵-!
“[고마워요~!]”
소이도 오늘 무대 때문에 얼굴이 알려졌구나.
그리고 나는…
“[오오 … 빨기좌.]”
중년 남성들에게 ‘호감’인걸 넘어서 ‘숭배’되고 있구나.
“[오오 … 저는 사인을 ….]”
“[사진도 같이 찍으셔도 돼요.]”
“[진심으로 영광… 입니다!]”
저 감격스러워하는 표정을 보아라.
꼭 TV에서 사이비 종교 다큐멘터리 할 때 나오는 신자 같다.
물론 나도 지미 페이지에게 사인을 받는다면 같은 표정을 지을 것이다.
“[여기 있습니다.]”
“[우오오오아아아악…!]”
한바탕의 소동이 끝나고, 다시 작은 무대가 이어졌다.
지금도, 회귀 전에도 들어보지 못한 밴드들.
약간 어색한 자작곡을 자랑하는 밴드도 있었고, 유명 곡을 카피한 밴드도 있었다.
막 실수가 아예 없는 그런 완벽한 무대를 바라며 이곳에 오는 건 아니지 않은가.
그래서 좋았다.
음악이 만들어내는 생기가, 사람들의 활기가, 방전되었던 체력을 채워주는 것 같다.
도중에 최 주임이 생각나서 부르려고 했는데, 바쁘다더라.
하긴 뭐 그 사람이 영국에 놀러 온 건 아니니까.
“이 집 잘하네.”
“맛있다!”
튀김을 와구와구 먹던 소이가 환한 미소를 지었다.
나선생님과 박작곡가는 연신 맥주를 가득 들이켜셨다.
그리고 이어서 …
딩딩 징징징~
오늘의 마지막 밴드의 피날레가 시작되었다.
“이건 ….”
“오 … immigrant song.”
“라이브 버전이구나.”
딱히 ‘레드 제플린’이라는 그룹에 관심이 없더라도 어디선가 한 번은 들어본 곡.
아아아악~ 하는 부담스럽지 않은 샤우팅과, 엄청나게 빡세지는 않으면서도 또 공격성은 하나는 죽여주는 리프.
일순간, 머릿속에 스위치가 켜진 느낌이었다.
엄격
근엄
진지.
내 얼굴이 그리 변화했다.
“수재야 …?”
“이건 중대사항이야.”
레드 제플린 곡을 완벽히 소화해내지 못하더라도 나무랄 생각은 없다.
다만, 그렇잖은가.
좋아하고 잘 아는 분야에 대해 누가 코앞에서 떠든다면, 나까지 입이 근질거리지 않는가.
똑같다.
나는 그들의 무대를 분석했다.
“아아아아아~”
그리고,
“퀄리티 좋은데요?”
나름 괜찮은 연주를 듣고서 기분이 좋아졌다.
둥둥둥둥-!
탁 – 탁!
베이스도, 드럼도, 실력이 괜찮다.
밸런스가 잘 잡혀있다.
라비다와 비교하면 약간 아쉽긴 하지만, 그건 비교 대상이 라비다여서다.
“연슙마니했나바.”
“넌 많이 배고팠나 봐.”
“웅.”
소이는 입, 코, 눈, 귀, 손이 전부 바빠 보였다.
저 튀김이 다 들어가다니.
니글거림을 느낄 수 없는 건가…?
나는 콜라를 홀짝이며, 무대를 계속 주시했다.
‘만약 내가 저기 있었으면.’
지금 들려오는 솔로를 어떻게 칠까?
어레인지를 가미할까? 톤은?
드라이브는 그리 강하지 않게, 가능하다면 자연스러운 크랭크업으로.
근데 또 ‘자연스러운 크랭크업’을 쓰면서 공격적인 연주를 해야 맛이 살겠지.
톤이 빡세지는 않되, 날 서 있어야 한다.
이 뭔 모순적이기 그지없는 말인가.
“… 어렵네.”
“저 곡?”
“네.”
“당연하지 인마. 지미 페이지가 나중에 라이브에서 좀 말이 많아져도, 녹음본은 결점 자체가 없어. 그 시대 기술 생각하면 말도 안 됐지.”
“….”
“레코딩이 지금이랑은 차원이 다르게 어려웠다고.”
지금은 박자를 약간 절어도 나중에 편히 수정할 수 있다.
초월적인 박자감각을 가지고 있어도, 트랙에 칼질 한 번 안 당할 리는 없다는 것이다.
근데 그때 그 시절에는?
티끌만큼이라도 잘못되면 다시 쳐야 하고, 작업시간이 늘어나고, 결국 비용이 늘어난다.
연주자의 ‘기량’에 따라 녹음작업이 마구 휘둘리는 것이다.
그 와중에 지미 페이지는 당대 영국 탑급 세션맨이었고, 기타리스트였다.
지금 이 자리까지 올라와도, 나와 지미 페이지의 격차는 명확했다.
“지미 페이지가 여기 딱 등장해서 기타 잡으면 어떻게 될까요?”
“난리 나겠지?”
“그렇겠죠?”
“그냥 줄 하나만 튕겨도 다 자지러질 거야.”
지금 관객들의 반응도 충분히 뜨겁다.
근데, 지미 페이지가 올라가면 더 할 것이다.
그가 기타를 튕기면 …
좌아아아앙-!
오오오오오오오오오-!
일순간, 환호성이 몰아쳤다.
라이브 버전의 마지막 리프.
‘끝’을 상징하는 리프.
그 일순간에, 분위기가 아주 약간 더 달아오른 것을 느꼈다.
‘뭐지 …?’
기이한 감각.
짧은 순간이었다.
단 몇 마디였지만, 나는 그 ‘몇 마디’가.
조금 더.
저 기타리스트가 가진 ‘역량’보다도 미약하게 조금 더
좋게 들렸다.
“One more please!”
의문과 함께 무대가 끝났다.
나는 고개를 돌려 세 사람의 반응을 살펴보았지만,
‘눈치를 못 챘나?’
소이는 여전히 튀김을 씹고 있었고, 두 분은 술에 얼큰하게 취해서 전혀 신경을 쓰지 않으셨다.
“[벌써 밤늦은 시간이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남아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아쉽게도 저희가 준비한 공연은 여지까지입니다 ….]”
무수한 앵콜의 요청에도, 공연이 이어지지는 않았다.
“아쉽니? 좀 더 일찍 올 걸 그랬나?”
“에이, 아니에요.”
그리고 나는 …
서서히 돌아갈 채비를 하는 사람들을 제치고 무대로 달려 나가, 이름 모를 기타리스트 앞에 섰다.
“[정말 잘 들었습니다. 멋진 무대였어요.]”
“[오 … 빨기좌! 저도요. 저도 오늘 공연… 이 아니라 대회였죠. 직접 가지는 못하고 스트리밍으로 챙겨봤어요. 저도 나이가 어렸으면 꼭 참가했을 텐데.]”
급하게 나누는 악수.
나는 머릿속에 떠오른 궁금증을 한시라도 빨리 해소하고 싶어, 염치없이 직빵으로 물었다.
“[어떻게 한 거죠?]”
“[뭐가요?]”
“[마지막에 그거요.]”
“[어? 하하하하하.]”
이름 모를 기타리스트는 멋쩍게 웃었다.
그리고,
“[이야, 귀 진짜 좋으시네요. 근데 제가 왜 알려드려야 하나요?]”
역시나.
예상했던 대답이 돌아왔다.
“[그러… 게요?]”
“[죄송해요. 조금 짓궂었죠?]”
“….”
“[오해하지 마세요. 저는 당신을 좋아해요. 그래도, 이건 안 돼요.]”
씨익, 해맑게 미소를 짓는 이름 모를 기타리스트.
“[진짜 별거 아니긴 한데… 아니, 아니에요. 부끄럽네요. 부끄러워서 알려주기가 싫어요. 그 정도로 별거 아니니까 … 오늘 이거 눈치챈 것도 빨기좌밖에 없었잖아요?]”
그는, 마치 문파의 비급을 캐내려는 사람을 바라보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뭐지?
대체 뭐지?
더 캐물어야 하나?
고민은 길었고, 그들의 철수는 빨랐다.
“갈까?”
“어 … 응. 그래야지.”
피곤이 몰려온다.
“우린 더 마시고 갈게!”
“밤길 위험하니까 택시 불러줄까?”
“아, 저희가 잡아서 타고 갈게요.”
나 선생님과 박 작곡가는 한 잔씩 더 걸치고 오시려는 모양이다.
이름 모를 기타리스트도 바람과 같이 사라졌다.
“….”
“가자.”
우리는 펍에서 나왔다.
그리고 곧장 나오자마자 …
“[김수재씨 되십니까?]”
마른 장작 같은 인상의 장발 남성에게, 앞을 가로막혔다.
“[맞습니다.]”
그는 위에서 아래로, 나를 훑었다.
기분이 썩 좋은 느낌은 아니다.
내 앞을 가로막았지만, 내 팬은 아닐 것이다.
눈빛 때문이었다.
“[강도세요?]”
“[불쑥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표정 때문에 그렇게 보신 거 같은데, 그냥 피곤한 것뿐입니다.]”
“[아하.]”
그럼 남은 건 하나.
일 때문이다.
“[회사 통해서 연락 주셨으면 좀 더 편하셨을 거 같은데….]”
최주임은 내가 여기 있는 걸 안다.
아까 위치를 고이 찍어 보내주었으니까.
근데 회사를 거치지도 않은 이 사람이 대체 어떻게 알고 찾아왔을까?
“[직접 연락은 안 드렸습니다만, 더 타임 편집장님을 통해 전해 들었지요.]”
중간 다리를 한번 거쳤었구나.
“[이해했습니다만… 왜 굳이?]”
“[공적으로 접근하면 곤란해서 말이죠.]”
… 나랑 사적으로 친해지고 싶다는 건가?
“[그러니까 저는 … 그래요. 그저 그쪽이랑 진솔하고 짧은 대화를 나누고 싶은 것뿐이에요. 돈이 오가는 얘기가 아니라요.]”
척-!
검은 코트 주머니에서 작은 수첩과 펜이 튀어나왔다.
그는 탐문이라도 하는 양, 빠르게 무언가를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번 결선에서, 어느 정도의 격차로 1등을 하실 생각이십니까?]”
“….”
갑자기 나타난 나서 묻는다는 게 존나 뜬금없다.
애초에 1등을 ‘할 수 있겠냐’ 묻는 게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1등을 하겠냐’라니.
“[절 너무 과대평가하시는 거 아닙니까?]”
“[과대평가가 아니라, 과소평가입니다.]”
“….”
“[당신이 어떤 행동을 취할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다만 예측과 대비를 해둬야 해서요. 그래서 제가 찾아온 겁니다.]”
대비?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걸까.
아니 그 전에 ….
“[… 그쪽은 뭐 하는 사람입니까?]”
이것부터 알아둬야겠다.
사람 대 사람이 처음 만나면 자기소개가 먼저일 텐데.
아무리 ‘공’이 아닌 ‘사’로 만나는 관계라 할지라도 말이다.
“[오해하지 마세요. 저는 당신에게 도움이 될 만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럴 생각도 없고요.]”
그는 차가운 말투로 그리 대답을 이어나갔다.
“[당신이 ‘위대한 기타리스트’에 어울리는지, 가까운, 혹은 먼 미래에 명단에 이름을 올릴 자격이 있는지. 지켜보는 역할을 맡았을 뿐입니다.]”
“명단이요?”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명단이라니?
머릿속에 ‘반짝’ 떠오른 이름이 있긴 했지만 나는 고개를 흔들어 생각을 부정했다.
근데 …
“[아무리 요즘 세대가 잡지를 안 본다 하더라도, 상징성은 여전히 강력하니까요. 누군가의 이름을 올리려면 누군가의 이름을 내려야 하죠. 정말 하기 싫은 일입니다. 얼마나 욕을 먹을지 짐작도 안 되는군요. 지금 상황은 … 그래요. 그럼에도 ‘할 수밖에 없는’ 일이 돼 버렸습니다.]”
아무래도, 부정이 부정당한 모양이다.
오금이 저렸다.
그리고 아주 서서히, 눈앞에 있는 이가 누군지,
어떤 회사인지.
싫어도 추측이 갔다.
“[롤링 스ㅌ….]”
피식, 마른 장작 같은 남자가 마른 웃음을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