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guitarist RAW novel - Chapter 5
개천 속 용 (1)
다음날 오후 9시, 나는 대충 씻고 의자에 앉았다. 단련되지 않은 손으로 무리했더니 역시나 통증이 찾아왔다.
“물집은 ··· 안 잡힐 것 같은데.’
왼손가락 끝은 말랑말랑하지만, 굳은살이 좀 덮여 있는 상태.
그게 살짝 까졌다. 물집이 잡히고 줄에 베이고 하는 것은 완전히 기타를 처음 접했을 때 일어나는 일이다.
1년정도 띄엄띄엄 친 경력이 큰 고통을 막아준 듯했다.
“아 힘들어.”
온종일 기타 닦고, 한 세트 남아있던 줄로 갈고. 트러스로드를 돌려서 넥도 교정하고.
악기점에 가려 했지만 완전 늦잠을 자버린 데다가 기타 정비를 하느라 못 갔다.
“피크도 마음에 안 들고~ 기타도 마음에 안 들고~”
다 맘에 안 든다.
회귀 전의 나는 펜더 디럭스 스트랫과 깁슨 스탠다드 레스폴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이건 유독 비싼 두 개고, 자잘한 용도의 기타도 세 대 더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컬렉션은 없다. 하꼬기타리스트가 밥굶어 마련한 과실이 증발해 버린 것이다.
가진거라곤 오직 20만 원짜리 기타뿐.
넥을 훑어보면 오돌토돌 프렛이 튀어나온 게 지압하기 딱 좋았다.
만든 회사가 나쁜 게 아니다. 이 가격대 기타는 그냥 다 이렇다.
“기타창 ···”
이름 : 김수재
나이 : 17
체력 : b
지능 : b
기타 연주력 : b
작곡능력 : b-
외모 : b
인지도 : f+
자세히 보기 +
그리고 하루 동안 이 알 수 없는 것의 정체를 간신히 파악했다.
첫날에는 보이지 않았던, ‘자세히 보기’라는 글자.
양손으로 위에 나열된 글자와 자세히 보기를 같이 누르면 ···
눈b5
코b5
입a1
눈썹c4
귀b4
턱b7
전체적인 조형 :b
이런 식으로 나에 대한 상세 정보를 알려준다.
“외모는 두 개 빼고는 다 b급인가.”
왜 그런 사례가 있지 않은가, 눈 빼고 전부 a급 얼굴 조형인 사람이 눈만 수술에서 a급 외모가 되는 거.
성형외과에서 광고하는 그거.
난 그게 안 된다는 소리다.
“눈썹은 그려야겠네.”
나는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곧바로 기타 연주력을 터치했다.
-축약 yes or no –
기타 연주력 탭은 외모 탭보다 더하다. 나의 최대 연주속도, 정확도, 테크닉에 대한 명확한 수치가 눈앞에 가득 떠오른다.
이걸 클릭하는 순간 시야가 꽉 차버려서 아무 데서나 함부로 띄울 수도 없다.
이게 다 만점인 기타리스트가 과연 있을까?
아마 지미 헨드릭스도 만점은 못 찍었을 거다.
하루종일 분석한 결과, 나는 역시 오른손이 문제였다.
피킹 정확도.
아르페지오 활용성.
오른손 유동성.
태핑 터치포인트 정밀도 등등.
다른것들보다 수치가 낮은 편이었다.
당연하다. 난 오른손에 신경장애가 생겼었으니까.
“아르페지오라 ··· 못하는 건 아닌데.”
일렉기타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우선 통기타부터 배워야 한다는, 세간의 잘못된 이야기가 있다.
반드시 꼭 그럴 필요는 없다.
통기타로 배운 일렉기타에 쓰이는 주법은, 당연히 일렉기타에서도 배울 수 있다.
통기타를 치고 싶으면 통기타로 시작하고, 일렉기타를 치고 싶으면 일렉기타로 시작하면 된다.
아르페지오는 통기타에서 주로 쓰이지만, 일렉기타의 클린톤에서도 쓰인다.
일렉기타라 해서 무조건 피크만 쓰는 건 아니다.
당, 당당당 –
난 코드를 잡고 아르페지오 주법으로 현을 튕겨 보았다.
사실 잘 모르겠다. 아예 할 줄 모르는 게 아니라서 더 모르겠다. 딱히 지적받은 적은 없는 거 같은데.
통기타 고수 있으면 좀 배우고 싶네.
나는 유튜브를 켜서 통기타 강의에 집중했다.
“와 이 사람은 손톱 끝으로 그냥 튕겨버리네···.”
손톱이 없어서 살로 튕겨 보았지만 무진장 아프다. 오른손은 굳은살 하나 없이 매끈했다.
한참 삽을 파고 있자, 방문 두들기는 소리가 났다.
“왜?”
“기타 쳐? 들어가도 돼?”
“어.”
동생 김세연.
얘 얼굴은 몇 등급일까? 내 눈에는 그냥 나한테서 테스토스테론 제거한 버전 같은데.
대학가서 화장하면 인기 많이 지긴 하던데 나도 화장이나 할까?
실없는 생각을 하고 있자 세연이가 나한테 와서 무언가를 내밀었다.
“내일 입학하지?”
“어? 응.”
“자.”
“···”
녹색 포장지가 덮인 작은 상자.
“받아 빨리.”
멀뚱히 쳐다보고 있자 재촉이 들어왔다.
“이게 뭐야.”
“아 입학선물! 내 생일 때 달라고 했잖아!”
땍땍거리면서도 챙겨주는 건가? 세연이 생일은 2월 3일이다. 이건 잊지 않고 기억하는데 18년 전의 나는 이런 요구를 했던가?
“고마워. 열어봐도 돼?”
“응.”
상자는 거의 무게가 느껴지지 않았다. 안에 들어있는 것은 파란 색깔 피크 스무 개 들이 묶음이었다.
“오 ··· 뭐야뭐야. 이건 또 어떻게 알고 사 왔어.”
“그냥. 인터넷으로 사람들 많이 사는 거 샀어. 오빠도 이거 알아?”
거북이가 그려진 파랑색 피크.
난 이걸 애용했다.
왜 이걸 고집했나 가끔 의문이 들었지만, 지금에서야 풀렸다.
내가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기타에 미치기 직전, 선물 받았던 게 이 피크이기 때문에.
이게 유난히 손에 잘 맞았기 때문에.
이건, 나를 기타인생으로 인도한 원동력 중 일부분이었다.
“아 ···”
이걸 잊고 살았다니. 난 병신인가?
자괴감이 들었다. 하지만 동시에 고마움을 표현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고맙다.”
“음 ··· 쪼잔하다고 할 줄 알았는데 아니네?”
“아니야.”
난 당시에 이 선물을 마주하고 뭐라 했던가. 이 피크가 뭔지도 잘 몰랐을 텐데.
-어 ··· 음. 피크? 에게.
개병신이었다. 중학생이 기껏 골라준 선물 보고 그런 반응을 보이다니.
당시에 동생이, ‘아 짜증나!’ 라고 고래고래 소리쳤던 광경이 머릿속에 플래시백 되었다.
“잘 알아보고 사줬네. 진짜 고마워. 이거 하나에 천 원은 할 텐데.”
“맞아. 무슨 플라스틱이 이렇게 비싸? 싸구려 사주긴 좀 그래서 걍 샀어.”
그러게 왜 이렇게 비싸냐.
미래에는 더 비싸다.
“잘 쓸게. 내일부터 기타 자주 칠 거 같은데.”
“볼륨 크게 올리지 마~”
“알았어.”
“빨리 자. 내일 입학하는데.”
“너도 내일 개학하잖아. 잘 자라.”
세연이는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방에서 나갔다.
주물주물.
동생이 손수 골라준 피크.
나는 그것을 손에 쥐었다. 까끌까끌한 느낌이, 제 살인 양 손에 익었다.
“이제 피크는 마음에 드네.”
자연스레 웃음이 흘러나왔다.
*
고요한 리무진 안.
노년의 베테랑 기사가 운전하는 차량의 뒷좌석에, 부녀가 앉아 있다.
고급스럽고 안락한 실내 디자인과는 달리, 차내의 공기는 전혀 안락하지 않다.
딱딱하기 그지없는 공기.
공기 중 산소농도는 밖이랑 같을 텐데. 이곳에는 숨 콱 막히는 적막함만이 들어차 있었다.
“학교 잘 다녀라.”
“네. 아버지.”
“기타는 어떻게 잘 좀 되니?”
“어제 채예림 선생님께 레슨받았어요.”
“그러냐.”
대화는 뚝뚝 끊어졌다. 누가 옆에서 가위를 들고 자르는 것도 아닌데.
그럼에도 최대한 말을 이으려고 하는 것은 아버지 쪽이었다.
“소이야, 예전에 바이올린 할 때보다는 표정이 나아진 것 같구나.”
“···네. 더 나아요.”
“다행이다. 입학식 잘 치르고. 앞으로 공부도 열심히 하고. 반은 따로 얘기해 뒀다.”
“네···”
학교에서 한 블록 정도 떨어진 곳에, 리무진이 멈춰 섰다. 소이라 불린 아이는 폴짝 차에서 내린 다음, 곧바로 트렁크에서 기타케이스와 스티커가 붙여진 검은색 가방을 꺼냈다.
기사는 급하게 운전석에서 내렸다.
“아가씨, 제가 하겠습니다.”
“괜찮아요 ···”
소이는 인사도 없이 학교를 향해 천천히 걸었다.
버릇처럼, 반듯이 잘린 앞머리를 정리했다.
“걔 ··· 학원 더 다니려나??”
같은 나이처럼 보였는데.
같은 학교 입학한다던데.
소이는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혼자 흥얼거렸다. 밤새 생각한 자작곡이었다.
**
씨발 좆됐네.
바지가 왜이래.
바지를 안 입어봤어.
나에겐 이런 기억이 없다. 등교 중에 바지 때문에 고역을 겪는 기억 자체가 없다는 거다.
사실 교복은 엄마가 사온 거라, 방치해 놓은 채 입어보질 않았다.
아마 일요일에 이상 징후를 발견하고, 세탁소에서 수선했던 걸로 기억한다.
바지가 미묘하게 길고, 허리가 헐렁하다. 근데 가뜩이나 가진 벨트가 없었다.
아버지 벨트를 빌려 오긴 했는데, 아버지도 고장 나서 그냥 놔두셨나 보다.
자꾸 바지와 벨트가 같이 풀린다.
“하 인생.”
나는 학교에 들어가기 전 골목에서, 지갑에 굴러다니던 플라스틱 쪼가리로 벨트를 애써 고정하려 했다.
근데 뭔가 ··· 시선이 느껴진다.
“뭘 봐.”
급하게 바지를 정리하면서 따끔한 시선을 보내본다. 낯이 익은 여자애는 총이라도 맞은 듯 움찔거렸다.
약1초간의 정적. 여자애는 곧바로 호다닥 도망갔다.
“어후. 살겠네.”
거리 한복판에서 뿌득 소리가 났을 때는 십 년 감수했다.
그때는 다리를 오므려서 간신히 버텼다.
플라스틱아 잘 부탁한다. 제발 찌그러지지 말아줘.
나는 기타를 고쳐메고, 교문으로 들어갔다.
교문에서 보이는 풍경은 그야말로 ‘다채’로웠다.
예술 2군 학교라 하지 않았나.
근데 다시 떠올려 보면, 우리 학교에는 미술이나 무용 쪽 애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예대중 음대를 노리는 애들이 훨씬 많았다.
벌써부터 달달달달 거리며 첼로 캐리어 끄는 소리가 난다. 저건 그나마 바퀴라도 달려서 다행이지.
그리운 풍경을 감상하고 있자, 저 멀리서 숨을 헐떡이며 뛰는, 얼굴이 조금 긴 남학생이 눈에 들어왔다.
어딜 저렇게 달려가는 거지? 아.
나한테 오네.
“야 김수재!”
반가움에 겨운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내 귀를 강타했다.
나와 비슷하게 기타를 들쳐메고 있는 녀석.
나한테 학원을 소개시켜준 녀석.
그래놓고 자기는 개인레슨으로 도망가 버린 녀석.
“아오. 귀 떨어지겠다.”
곽혁오였다.
“와 잘 지냈냐? 너 어제랑 그제 왜 롤 안 들어왔어.”
“롤 …?”
이때 한참 유행했던 게임이다.
중학교 땐 기타보다 롤을 더 많이 했지.
“야 내가 롤 할 시간이 어딨어.”
“개소리하지 말고 빨리 가자.”
난 혁오의 뒤를 따라갔다.
다시 생각해보면, 참 개새끼다.
나랑 다르게 저 녀석의 지능은 a급은 될 거다. 1학년 때 기타만 죽어라 치던 애가 정시로 서울대에 갔으니까.
“오···”
학교 본관에 들어오니 잊혀져 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저 끄트머리에 있는 제1연습실. 본관과 붙어있는 곳이라 소음 때문에 거의 안 쓴다. 하지만 가끔 주말에는 개방된다.
유산고는 부지도 꽤 넓고, 건물도 보통 고등학교들 보다는 많았다.
나는 기억을 더듬었다. 과거에는 비리 덩어리 사립학교, 지금은 나름 가성비 좋은 사립 학교.
특목고가 아니다. 근데 여기는 유독 예술 쪽 애들이 많다.
보통 부모 된 마음에서 자기 아이를 학군 좋은 데로 보내려 하지 여기로 보내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그림쟁이에 딴따라에 각종 악기소음이 bgm인 이곳.
일반 학생들 기준으로는 지망순위가 저 뒤로 밀려있을 터.
거의 예고 멀티니까.
근데 납입금은 의외로 크게 비싸지 않다.
상식선이다.
“야, 너 1반이랬나?”
혁오가 물었다. 1반··· 아마 맞을 것이다.
“그치 뭐.”
“나 2반.”
“특별반 신청 안 했냐?”
“거기 경쟁 빡세잖아. 난 아예 신청 안 함. 신청 안 해도 연습실 쓸 수 있음. 레슨은 개인레슨 받으면 됨”
개부럽다 금수저새끼.
근데 너 정시로 서울대 간다니까?
기타치지 말고 지금부터 공부하면 하버드도 가겠다.
“야 들어봐. 내가 어제 정글에서 …”
나는 고등학생이 된 기분으로 맘 편히 노가리를 까며 1학년 반이 있는 꼭대기 층으로 올라갔다.
1반과 2반. 혁오와는 자연스레 찢어졌다.
1반 애들 ··· 기억이 좀 흐릿한데.
나는 교실 문턱을 밟았다. 곧바로 들려오는 굵직한 목소리.
“기타쟁이 하나 추가!”
“기타쟁이 총 넷!”
유쾌한 놈들이네.
그리고 정말, 그리운 풍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