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guitarist RAW novel - Chapter 6
개천 속 용 (2)
아마 내가 가장 늦게 온 듯 싶다. 이미 반에는 남은 빈자리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정원은 약 30명.
미래에는 출산율이 계속 줄어들어서 한 반에 20명도 안 되는 경우가 허다하지만, 지금 시대는 아니었다.
“기타 뭐야?”
동글동글한 인상의 남학생에 다가왔다. 고1이면 젖살이 빠질 법한 나이인데, 얘는 그냥 턱이 둥글다.
이름이 뭐였더라?
기억이 너무 희미했다.
“가만있어보자··· 콜트?”
“콜트야?”
“뭐? 콜트라고?! 꼴등 확정!”
이놈들은 대체 뭔 순위를 매기고 있는 거지?
참 콜트에 어그로가 많이 끌린다. 회사 마크에 대한 편견이 언제쯤 없어질는지.
콜트는 가격이 올라갈수록 가성비가 수직상승하는 회사다.
회귀전에 중고로 헐값에 들인 x700은 정말 잘 써먹다 못해 뽕까지 뽑았다.
락 스타일 비대면 세션을 할 때, 하이게인 백킹연주시 매우 묵직한 소리를 노이즈없이 내준다.
어차피 비대면에 컴퓨터로 바로 뽑으면 이게 esp인지 아이바네즈인지 콜트인지 어떻게 알아.
소리도 비슷한데.
“오오 ··· 콜트다.”
기타 좀 친다는 애들이 나에게 다가왔다.
유민석, 조동수, 최유진.
기억났다. 나를 포함해 반에서 기타 치는 애들은 총 넷이다.
학교에는 음악 하는 애들을 몰아넣은 ‘특별반’이 존재한다. 그리고 1학년 1반은 특별반이 아니다.
예고라면 전공별 강의도 빡세고 일반수업도 빡세겠지만 여긴 다르다.
전공 ‘지원’수업은 일주일에 2회, 연습실은 선착순, 그리고 수업은 그냥 일반고 수준.
대신 다른 고등학교에 비해 방과 후 동아리 지원이 되게 부실한 편이다.
특별반 애들은 주 2회 있는 전공 지원 수업을 받을 수 있다.
일반 반과의 차이는 단지 그뿐.
내가 졸업할 때쯤 학교 교훈이 바뀌었는데, ‘속박되지 않는 자유로운 나비가 되어 날아라’ 였다.
딱 봐도 빡쎈 예고 저격이다. 물론 걔들은 콧방귀도 안 뀌겠지만.
“입문자? 우리한테 배우려고 기타 들고왔어?”
최유진.
이름도 얼굴도 확실히 기억이 났다. 얘는 싸가지는 없는데 은근 유쾌한 면이 있다.
미래에는 잠깐 밴드를 하다가 예대 삼수해서 붙고, 기타강사로 일하지.
실력은 썩 나쁜 편은 아니다. 딱히 친했던 것도 아니지만.
“아니, 나도 전공할 건데?”
“어 …?”
“콜트로?”
“야 근데 늬들은 뭔 순위를 매기고 있냐?”
“기타순위. 재밌잖아”
“1위는 누군데?”
최유진이 자신의 하드케이스를 당당하게 들어 보였다. 팔힘이 은근 센데. 마크는 깁슨이다.
“졌다···”
“음핫핫.”
기타 메이커 서열정리가 끝났다. 당연히 내가 꼴등이다.
근데 얘는 근시용 뿔테안경을 꼈으면서도 눈이 큰데 벗으면 얼마나 큰 거지?
문뜩 의문이 들었다.
“기타 치는 애들은 다 특별반 가지 않았어?”
“몰라. 쟤넨 못 간 애들인가?”
일반고인 만큼, 그다지 음악에 관심이 없는 애들도 있었다.
회귀 전의 나처럼 그냥 집 가까워서 온 녀석들이다.
하지만 사람은 환경의 동물이라고 하지 않나, 2학년 즈음 되면 취미로라도 악기 하나씩은 배우는 애들이 많았다.
바이올린, 첼로 같이 어려운 찰현악기는 피하면서, 기타나 드럼같이 간지나는걸 시작하곤 했다.
“떠들지 말고 자리에 앉아라.”
거친 인상이면서도 눈은 졸려 보이는, 항상 피곤에 절어 있는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나는 기타를 풀어서 교실 뒤에 놓고, 자리에 앉았다. 옆에는 최유진이다.
“콜트안뇽~”
“응 돈빨.”
“뭐래~ 너도 꼬우면 깁슨 사~ 아니면 에피폰도 좋아~”
깁슨 많이 쳤어. 좋아하기도 하고.
“에피폰이라 ···”
“진짜 사게?”
“글쎄.”
어제 확인해본 바, 세뱃돈이나 용돈을 모아둔 통장이 책상에 잠들어 있었다. 잔고는 42만원이다.
‘비트코인에 돈도 넣어야 하는데 ···’
그래야 돈 걱정 없이 살지. 나는 당장 굴릴 수 있는 시드머니가 없는 것이 너무 아쉬웠다.
“자, 우선 우리 유산고 입학한 거 축하하고, 난 1년 동안 1반 담임 맡게 된 김철대다. 교과는 수학이니까 열심히 해라.”
“으엑.”
최유진은 토하는 소리를 직접 입 밖으로 내었다. 얘는 분위기 읽는 것도 잘 못했지.
“앞으로 나와.”
“죄송해요! 근데 쌤 저 수학 못 해요!”
“임마, 못 하면 될 때까지 해야지. 내가 해병 수색대에 있을 때에는 ···”
김철대 선생님은 입학 첫날부터 자기썰을 풀기 시작했다.
난 그냥 한 귀로 흘려들으며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오늘은 코인 가격이 좀 떨어졌다. 지금은 오르지 마. 내가 사야 되니까.
-아아, 신입생 여러분들은 지금 입학식이 진행될 예정이니 강당으로 ···
“아, 이야기가 딴 데로 샜네. 바로 강당으로 가고, 돌아오면 종례하고 일과 끝이다. 특별반 추가모집 신청할 애들은 여기 남고.”
김철대 선생님은 귀찮은 듯이 손을 휘적였다. 아이들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어색한 분위기를 따라 강당으로 이동했다.
나도 말 없이 걸음을 옮겼다.
특별반.
전생에 나는 특별반에 관심이 없었다. 학원이나 개인레슨없이도 혼자 존나 치면 실력이 오를 거라 확신했으니까.
세계적인 뮤지션들, 기타를 사랑한 60년대 기타리스트들은 혼자서 연습했다.
기타를 너무 사랑하고, 치는 것이 재밌어서 더 치고, 그러다 보니 실력이 늘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야, 이따 피방 콜? 나 레슨 6시임.”
혁오가 와서 내 등을 두들겼다. 난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특별반 추가모집 신청하려고.”
“뭐!?”
쩌렁쩌랑한 외침. 진짜 목청 하나는 대단하네. 귀가 찢어질 것 같다.
“니가? 니가?”
“어.”
“야 롤만 존나하던 애가 어떻게 특별반에 들어가냐.”
“그냥 함 도전이나 해보려고. 의외로 신청하는 애들이 많이 없을 수도 있잖냐.”
“도전하는 자, 멋있네. 나도 들어갈까?”
“관둬 임마. 경쟁자 늘어나.”
“키킥, 그렇지.”
혁오는 싫증을 잘 느끼는 성격이다. 1년동안 죽어라 기타만 치다가, 아 이제 공부나 해볼까 하고 서울대에 붙는다.
기타는 아마 ··· 다시 안 잡는 걸로 기억하는데. 서른 넘어서는 연락도 거의 끊겼었다.
나는 강단 맨 왼쪽 자리에 앉았다. 이어서 선생님이 단상에 올라와 잠깐의 안내를 하고, 신입생 선서가 이어졌다.
“선서. 신입생 대표 김태현 외 259명은 ···”
어?
아는 얼굴이다.
저번에 윤대혁 선배의 옆에 찰싹 붙어 있던, 나와 같은 또래의 남자애.
이름이 김태현이구나.
전생에 김태현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었다. 얘도 아마 특별반이겠지.
물론 난 특별반 애들뿐만 아니라 인간관계 자체가 좁았다.
2학년 2학기에 민수가 전학오는데, 걔가 정말 찐 부랄친구다.
지금 못 보는 게 좀 아쉽네.
비트코인으로 돈을 벌면, 크게 한턱 쏴야겠다.
“정직한 사람이 될 것을 엄숙히 선서합니다.”
목소리는 그냥 평범했다. 하지만, 생긴 것은 딱히 평범하지 않았다.
내 얼굴이 온통 b로 도배되어 있다면, 쟤는 최솟값이 a- 정도일 것이다.
“와 ··· 잘생겼다.”
“쟤 누구야?”
“아까 기타 매고 있는 거 봤어.”
재잘거리는 여자애들의 목소리. 자기가 더 낫다며 괜한 허세를 부리는 남학생의 목소리.
‘얼굴로 기타 치는 건 아니지.’
근데 인기도에는 큰 관련이 있다.
김태현… 미래에 뭘 하더라? 역시 잘 모르겠다.
기억을 짚어보니 학교에 미남미녀 몇 명은 있었던 거 같은데 애초에 이 학교는 원래 얼굴평균이 높았다.
나도 못생긴 얼굴은 아닌데.
선서를 마친 김태현이 내려가고, 교장이 나왔다.
“입학을 허가합니다. 유산고등학교는 사립학교이지만 40년의 역사를 ···”
난 대충 눈을 감으며 존버했다. 두 번째 맞이하는 지루한 고등학교 입학식이 끝나고, 지루한 담임의 일갈과 함께 일과도 끝났다.
드디어,
“너희 둘만 ··· 남은 거냐?”
“네.”
“네!”
특별반 추가모집 지원자들.
우리 반에서는 두 명이었다.
한 학년당 특별반은 두 반이 정해진다. 7반, 8반이 특별반이었다.
“둘 다 일렉기타고 ···?”
“네!”
“특이하네. 오늘 반에서 기타만 네 명 들고왔다지? 보통 이렇게 많지는 않은데.”
“테스트 같은 걸 보나요?”
“뭐, 그렇지. 한 10분 뒤에 8반으로 가면 된다.”
김철대 선생님은 그 말을 남긴 뒤, 자리를 떴다.
“흠흠흠~”
동글동글한 인상의 조동수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케이스에서 기타를 꺼냈다.
펜더 스탠다드 스트라토 캐스터.
입시생의 전형적인 국민기타이다.
“어때?”
“뭐가.”
“기타 어떠냐고~”
조동수는 비아냥 대듯이 떠들었다. 난 그게 귀여운 나머지 그냥 피식 웃음을 흘렸다.
“좋네. 과분할 만큼.”
“그치?···어. 이게 아닌데. 뭐?! 과분하다고?”
너 아마 특별반 통과 못 할걸? 네가 몰래 급식 두 번 퍼먹다가 내 옆에서 국자로 대가리 맞는 걸 똑똑히 기억한다.
“기타 메이커에 연연하지 말고, 연습 잘해라. 입시 치를 거면 꾹꾹이 하나가 고작일 텐데 그렇다고 톤도 아예 손 놓지는 마라.”
“··· 선생님이 노브는 그냥 건드리지 말랬는데.”
“어휴, 너도 나중에 다 알게 돼.”
얘랑은 별로 안 친했다. 성격이 도통 안 맞고, 말도 잘 안 통한다.
아마 이번 생에서도 엮일 일은 없겠지.
나는 기타가방을 들쳐메고 8반으로 향했다.
다른반은 이미 텅텅 비었음에도 복도 저 끝에 있는 8반 만큼은 북적거리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윽 ···”
낑낑거리며 앰프 두 개를 들고 계단에서 고전하시는 선생님이 보였다. 나는 재빨리 달려가 짐 옮기는 것을 거들었다.
“고맙다~”
앰프는 아주 묵직하다. 특유의 오렌지 색깔이 인상적인, 오렌지 앰프.
그냥 회사 이름이 오렌지다.
크기로 봐서는 한 60w즈음 되나?
자세한 모델명은 잘 모르겠다.
나는 무거운 앰프를 양손으로 들고 8반까지 옮겼다.
“추가모집 지원생?”
“네.”
무테안경이 인상적인 여자선생님. 그녀는 나를 아주 천천히 훑었다.
선생님 뿐만 아니다. 이곳에 있는, 거의 25에 달하는 아이들의 눈이 하나같이 나에게 고정되었다.
“그래? 손에 있는건 ···”
“지쌤, 제가 옮기는 거 도와달라 했어요.”
짐을 옮기던 남자선생님이 말했다.
나는 앰프를 바닥에 내려놓고, 콘센트를 꼽았다.
기타 지원자는 오렌지 앰프로 보라는 건가?
나머지 하나는 베이스 지원자를 위한 것이었다.
“음 ··· 이번 년도에는 추가지원자가 좀 많네.”
8반 특별반에 지원한 기타지원자는 나와 동수, 다른 반 애 한 명.
베이스기타 두 명, 드럼은 없고 보컬 한 명.
“너희도 알겠지만, 특별반에 들어온 애들은 이미 사전에 시험을 끝마쳤어.”
“··· 네.”
“너희들만 오늘 여기서 간단히 테스트 보고, 평가는 내일 나올 거야. 바로 시작하면 되겠네.”
가방을 풀었다. 20만원짜리 싸구려 기타.
그리고 20년의 기타 외길인생.
실력을 보여줄 때였다.
손에 착 감기는 파란색 피크가 있다면, 어디에 서든 두렵지 않다.
“옮기는 거 도와줬으니, 먼저 할래?”
“아,”
네. 라고 대답하기 직전,
“자, 잠깐만요!”
동수의 외침이 들려왔다.
“제가 먼저 하면 안 되나요?”
“응?”
저자식 손 풀고 있었던 거 아닌가?
치사한데.
“곡은 뭐로?”
“잉베이 말름스틴의 black star요!”
나는 귀를 팠다.
그걸 치겠다고?
지금 여기서?
왠지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 네가 먼저 해라.”
“아싸!”
나는 동수에게 순번을 양보했다.
그리고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까 단상에 올랐던 김태현.
그는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오직 나에게만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다.
쳐다본다고 내 몸이 닳는 건 아니지만, 정말 부담스럽기 그지없을 정도의 눈빛이다.
“뭐 할 말 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