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guitarist RAW novel - Chapter 7
개천 속 용 (3)
“아니.”
먼저 시선을 돌린 것은 김태현 쪽이었다.
내가 이겼다.
근데 35살이나 처먹고 난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순간적으로 엄청난 자괴감이 몰려왔다.
“잉베이 말름스틴 ···? 블랙스타?”
“그걸 진짜 치겠다고?”
아이들은 그리 중얼거렸다. 기타 전공자들은 사실 예닐곱 정도밖에 되지 않을 거다. 특별반은 각 분야의 전공자들을 몰아넣은 반이니까.
하지만 비전공자, 일반인이라 하더라도 ‘잉베이 맘스틴’이라는 이름 한 번쯤은 들어봤을 터. 진짜 발음은 잉베이 말름스틴이다.
전설적인 헤비메탈 기타리스트이자, 수많은 고난도 연주기법을 메탈에 가져다 쓰고 정립시킨 뮤지션.
엄청난 속도의 연주에도 불구하고, 정확한 피킹을 해내는 속주의 신.
기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들어도 ‘이걸 어떻게 치지’ 라는 반응이 나올 정도로 잉베이의 속주는 대단하다.
나도 연습을 통해 잉베이의 속주를 따라할 수는 있다. 그런데···
‘나와는 정 반대 스타일이지.’
어디서 개하꼬 기타리스트를 잉베이에 갖다 붙이느냐 욕을 먹을 수도 있다. 맞는 말이다.
잉베이는 왼 손과 오른손이 동기화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대단한 정확도를 보여준다.
그 속도로, 삑사리 하나가 안 나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어떤가? 오른손의 동기화 ··· 재활을 통해 많이 극복하긴 했지만 잉베이에게는 명함도 못 내밀 수준이다.
“··· 알았다.”
무테안경을 낀 여자 선생님은 가져온 노트북으로 BGM을 검색하고 있었다. 나는 동수에게 물었다.
“야 괜찮겠냐?”
“그러엄~ 잉베이는 내 우상인데!”
우상을 따라 하고 싶다. 그 마음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었다.
“기타는 얼마나 쳤는데?”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통기타 시작했거든? 일렉기타는 ··· 한 2년?”
“흐음 ···2년이라.
맞아. 얘 연력은 좀 길었지.
동수는 자신 있게 기타에 케이블을 꼽았다.
화이트 색상의, 펜더 스트라토 캐스터. 잉베이도 앨범 녹음할 때 저거 쓰지 않았나?
팬심이 엄청나구만.
“난 너처럼 취미가 아니라 전공자야 까불지 마.”
말을 진짜 싸가지 없게 한다. 뭔 자신감이 저렇지?
동수는 주저 없이 도입부에 들어갔다. 사실 도입부는 통기타와 크런치톤으로 시작해서 페달이 없으면 표현하기 힘들다. 하지만 ···
‘아니 병신아 앰프에 리버브가 달려 있잖아.’
왜 있는 걸 안 쓰냐.
난 그게 너무 답답했다. 주어져 있는 것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 이건 기타리스트의 기본이다.
기타리스트의 톤은 성악가의 목소리와 같다.
뮤지션을 동경한다면 뮤지션의 톤을 어느 정도 흉내 낼 줄은 알아야 한다.
띠리리링 –
초반의 크런치한 톤이 흘러나와야 하는 구간. 하지만 동수는 어쩔 수 없이 그냥 디스토션 잔뜩 먹인 사운드로 갈겼다.
키이이이잉-!
본격적으로 메탈릭한 구간이 시작되었다. 밴딩과 이어지는 해머링풀링, 속주.
이게 반복되는 것이 블랙스타의 특징이다.
“밴딩은 어느정도 괜찮은데 .”
쟉. 지직.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잉베이 말름스틴이 대단한 이유.
엄청난 속도의 곡을 연주함에도 불구하고, 아주 절제된 소리를 들려줌과 동시에 뮤트 또한 완벽하기 때문에.
키이잉-직, 지이이잉-!
초반을 넘어가자, 특징적인 속주 리프가 시작됐다.
“잘 치는 거 아냐?”
전공이 아닌 어느 여자애가 김태현한테 물었다.
김태현은 그냥 시선만 고정한 채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드르르르르륵-
해머링과 풀링. 대충 듣기에도 엄청난 잡음이 연주에 섞였다.
디스토션을 강하게 걸면 걸수록 음의 서스테인이 길어지고, 잡음이 짧게 끝나지 않는다.
계속 남아있다.
“···”
선생님의 표정은 애매했다.
동수의 연주력을 평가하자면 이렇다. 일반인이 보기에는 되게 잘 치는 수준.
애초에 이 정도의 속주를 구사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취미로서는 꽤나 높은 경지에 올라 있다는 증거였다.
근데 ···
‘곡은 외웠지만, 그것뿐이야.’
그냥 그것뿐이다.
초반을 넘기자 실수가 잦아졌고, 음은 거의 다 흘러버렸다.
피킹을 해야할 부분도 해머링으로 그냥 얼버무린다.
자꾸 템포가 느려져서 잉베이의 맛은 하나도 살지 않았다.
“그만. 잘 들었어. 이름이 어떻게 돼?”
“1반의 김동수입니다!”
“그래 동수, 기타는 얼마나 쳤어?”
“5년이요!”
선생님은 미묘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고개를 돌렸다.
“근데 ··· 너희들 안 가니?”
반에 남아있던 애들을 향해 선생님은 그리 말했다.
“가야 돼요?”
“더 보고 싶은데~”
합격자와는 1년 내내 부대끼며 살아야 할 것이다.
같은 반이니까.
“난 테스트 볼 때 엄청 긴장했는데.”
어느 여자애 한 명이 그리 중얼거렸다. 이제 자기들은 구경하는 입장이라 재밌다는 건가.
“흠.”
어쨌건 동수 다음은 내 차례다. 나는 머릿속으로 뭘 칠지 고민했다.
‘아임 얼라이브? 아니면 ···’
뭘 치든 동수보다는 잘할 것이다. 그건 당연한 거다.
“자 다음은 ··· 앰프 옮기는거 도와준 애지? 이름이?”
“김수재입니다.”
“그래 수재. 뭘 칠 거야?”
“잠깐만요 ···.”
뭐 치지? 역시 솔로는 레드 제플린 아닌가? Stairway to heaven 같은 거.
“레드제플린의 ···”
“레드제플린? 잠시만.”
“아뇨 솔로 부분만 치게요. 솔로만 해도 좀 길어서.”
이 곡은 레드제플린의 전성기에 탄생한 곡이자 70년대의 정수다.
곡 자체가 워낙 길고, 솔로 부분도 길다.
라이브 버전은 그냥 솔로가 날아다닌다.
나는 머릿속을 더듬었다. 하도 듣고 또 듣다가 라이브버전 까지 다 외워버린 곡.
나는 회귀전, 애드립이 어느정도 들어간 Stairway to heaven의 솔로를 완성했다.
이걸 민수에게 들려줬을 때는 ‘아주 좋다’라는 평가가 돌아왔었지.
“어디보자···”
이 곡은 그냥 앰프 오버드라이브에 리버브만 넣고 쳐도 될 것 같다. 나는 트레블을 2시 방향에 놓고, 나버지 노브를 12시 방향에 맞췄다. 찌르는 듯하면서도 중간은 잡힌 톤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오렌지 앰프는 거의 써보질 않았네. 생긴 건 진짜 예쁘다.
리버브가 세 개나 달려있다니, 조금 당황스러웠다.
역시 홀리버브지.
관중은 30명 밖에 안 되지만, 내가 커다란 홀에서 연주하는 것 같잖아.
볼륨을 줄이고 살짝 손을 풀었다. 레드제플린의 곡을 연주할 생각에 벌써부터 신이 난다.
“근데 ···”
시작 바로 직전, 김태현이 입을 열었다.
“응?”
“왜그래 태현?”
“태현아?”
사내놈 한 명이 입 벌린 것뿐인데 반응이 아주 혜자다. 나는 김태현을 쳐다보았다.
“무슨 할 말 있어?”
“방금 전 곡.”
“방금전 곡?”
동수가 치다 망한 잉베이 말름스틴의 블랙스타?
“그게 왜?”
“아니, 너도 칠 수 있지 않나 싶어서.”
김태현은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김태현과 처음 마주친 건 그저께였다. 윤대혁 선배의 레슨생. 나랑은 말도 섞은 적 없다.
“그걸 어떻게 확신하냐?”
“태현아, 쟤 알아?”
“태현이가 쟤를 어떻게 알아.”
“기타 보니까 취미 아냐?”
언제 친해졌는지, 여자애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동조했다.
동수가 처음 기타를 꺼냈을 때와 내가 기타를 꺼냈을 때. 어딘가 반응이 미묘하게 다르다.
이것도 메이커 탓인가? 하여간 속물들이란.
“그냥 ···”
“칠 수는 있지. 근데 나라고 잉베이의 곡을 완벽히 재현할 수 있는 건 아니야.”
커버 수준이라면 충분히 가능하다. 애초에 잉베이의 곡을 완벽히 칠 수 있는 건 잉베이 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 그래도 듣고 싶은데.”
“그러지 뭐.”
난 딱히 빼지 않았다. 그리고서, 선생님께 방금전과 같은 bgm을 깔아달라고 요청했다.
“김동수랑 같은 곡 한다는 거지?”
“네.”
초반부.
원래 이 부분은 통기타 파트다. 나는 픽업 셀렉터를 프론트에 놓은 다음 피크를 입에 물고, 손가락으로 기타를 튕겼다.
그 다음에 이어지는 약간 자글거리는 크런치톤. 나는 셀렉터를 미들로 바꾸었다. 리어가 험버커라 게인 량을 줄이기 위해서다.
원래라면 페달을 밟아서 조정해야 하지만, 지금 내가 가진 페달은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키이이잉-!
본격적인, 메탈릭한 멜로디로 들어갔다.
밴딩과 속주.
전체적으로 어두우면서도 절제된 분위기와 피부를 타고 느껴지는 비장한 선율.
나는 그것을 느꼈다. 손은 이미 내 손이 아니다. 내 의지로 움직이고 있기는 하지만, 딱히 뇌를 거치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았다.
‘이맛이야.’
멜로디가 너무나 아름답다. 새 기타줄을 타고 내려가는 손가락 끝의 감각도, 녹이 남아서 거칠거리는 프렛의 감각도 지금은 너무나 좋다.
“와 ··· 뭐야.”
“엄청 잘치는데?”
확실히 하자.
난 잉베이 말름스틴이 아니다. 그저 그가 연주중에 느꼈을법한 감정을 따라하고 있는 것일 뿐.
완성도 자체만 놓고 보자면, 나는 레드제플린의 곡들을 훨씬 더 잘 흉내낼 수 있다.
난 잉베이 말름스틴을 좋아하지만, 커버 싱크로로 따지면 아주 낮은 편이었다.
“··· 어?”
내 옆에 있던 동수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작게 중얼거렸다.
나는 멈추지 않고 손가락을 계속 미끄러뜨렸다.
원작자 만큼의 잡음 하나 없는 속주는 어렵지만, 동수랑은 비교도 안 될 정도의 정갈함을 흉내낼 수는 있었다.
곡이, 끝났다.
폭우가 내리치는 한밤중의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비장한 느낌이 나에게서 사라졌다.
짝짝-
작은 박수소리.
이어서 봇물 터지듯이 들려오는, 서른에 달하는 사람들이 손뼉을 마주치는 소리.
나는 기타를 뒤로 고쳐맨 다음, 고개를 숙였다.
‘박수받을 줄은 몰랐네.’
처음 박수를 튼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나는 눈을 굴려 아이들을 훑었다.
그리고,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이름은 모른다.
앞머리가 유난히 반듯한 단발머리 여자애가 앉아 있는 자리에, 내 시선이 고정됐다
그저께 이펙터를 빌려준 고마운 녀석이다.
나는 손을 들어 그 애한테 감사를 겸해 인사했다.
부끄러운지 휙, 고개를 돌리는 반응만이 나에게 돌아왔다.
“와··· 수재는 기타 엄청 잘 치네? 몇 년 쳤어?”
“1년이요.”
이젠 구라가 익숙해져서 마음이 메마를 정도다.
“1년 만에 블랙스타를 친다고!?”
그래, 솔직히 말하자.
난이도로 따진다면, 이걸 1년만에 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이정도 연주를 1년 만에 터득한다면 그게 지미 환생이지 누구냐.
“에이 ··· 구라 아니야?”
“구라 맞는 거 같은데?”
“도저히 ··· 1년 친 실력이 아닌데.”
비전공자도, 전공자도 확실히 느꼈을 것이다.
몇 년을 기타친 동수보다도 내가 훨씬 정갈했다는 것을.
근데 다시 생각해 보면 좀 웃긴 상황이기도 했다.
난 몇 년이 아니라 20년을 쳤는데?
기타 외길인생.
당연한 결과였다.
“대단하네 ···. 진짜 이름이랑 똑같이 수재네~”
선생님은 처음으로 웃음을 띄우며 그렇게 말했다.
“내, 내가 보기에는 똑같은데. 뭐가 그렇게 다른데요?”
자연스레 다음 기타 연주자로 넘어가려던 순간, 동수가 분에 찬 듯이 소리쳤다.
“별로 소리 차이도 안 나고 ··· 속도도 비슷하고 ···!”
팬심과 그것에 기반한 선곡.
“진짜 어이없네! 저런 싸구려 기타로 ···!”
동수는 악기가 아닌 목청으로 울부짖었다.
난 내 연주를 비하 한 것에 대한 짜증과, 다른 의미에서의 짜증이 같이 올라왔다.
“적당히 해.”
김태현이 입을 열었다.
“하늘과 땅 차이야. 비빌 수도 없어. 너는 그냥 타브 보고 곡을 카피한 거고, 김수재의 연주는 뮤지션을 완벽히 분석하고 따라 한 그야말로 ‘연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