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guitarist RAW novel - Chapter 88
황금 시간대의 강탈자 (4)
은은한 오렌지빛 조명과 원목 탁자, 울퉁불퉁한 모양의 방음벽.
청심환을 삼킨 네 명의 멤버들과, 언제나 묵묵한 얼굴인 윤대혁 선배.
싱긋거리는 미소를 짓는 설하민서.
나는 헤드폰을 꾹 눌러쓰며 종이 두 장을 읽어내려갔다.
라디오의 타임라인이었다.
“여러분, 악기와 함께하는 ‘노래’ 좋아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노래와 함께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나도 한 번쯤 ···.”
저런 건 작가가 써주는 건 줄 알았는데.
아니네.
그의 손에 들린 라디오 타임라인에는, 그 흔한 오프닝 멘트조차 적혀 있지 않았다.
진짜 존나 대단하다.
라이브라 듣기만 했지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종이에 적힌 것은 이러이러한 식으로 진행합니다~ 라는 안내설명뿐이었다.
“요즘 말로 ‘역대급’이라는 표현이 가장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싱어송라이터 설하씨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설하입니다! 제 옆에는 정말 귀여운 후배 ···”
설하민서 또한 조근조근 한 목소리로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라비다가 자기 힘으로 꾸역꾸역 올라와 혜택을 손에 거머쥔 거라면,
하민서는 처음부터 ‘회사’라는 거대 자본의 힘을 빌리고 있었다.
혼자서만 치트키 쓰고.
··· 부럽다.
존나 부럽다!
진짜 밑바닥의 밑바닥부터 기어 올라온 건 여기서 나밖에 없는 거 같네.
라비다는 초창기부터 주목을 받았으니까.
“네! 악기 연주와 노래를 굳이 한 명이 다할 필요는 없겠죠. 페스티벌 투표 2위를 당당하게 달성한 초신성, ‘라비다’ 밴드의 멤버들도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라비다입니다!””
다섯 명의 과격한 인사로 인해, 모니터 화면에 띄워져 있는 볼륨 게이지가 진노란 색까지 치솟았다.
미리 대사 같은 걸 맞춰 왔나 보다.
라비다 멤버들은 잔뜩 들뜬 목소리로 자기 소개를 시작했다.
청심환 효과가 상당히 좋은 모양이다.
나도 좀 먹고 올걸.
“그리고 마지막 ··· 이라고 해야 할까요, 사실 ‘예정’에는 없던 분이십니다. 가는 곳이면 가는 곳마다 주목을 받는 ··· 그야말로 ‘주목’의 강탈자! 관심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간다! 우리들의 ‘빨기좌’ 김수재 군도 오늘 함께하겠습니다!”
순간, 나는.
귀를 팠다.
잘못 들은 게 아닌가 싶었다.
“···.”
하지만, 아니었다.
라비다의 멤버들도, 설하도.
모두 나와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 나왔구나.
저 별명이 드디어, 방송까지 타게 되었구나.
스튜디오 유리 너머의 작가의 얼굴에, 경악이 물들었다.
그는 손으로 크게 x를 그리며 고개를 옆으로 흔들어댔다.
“아 ···”
페스티벌 같은 곳에서도 이 악물고 ‘빨기좌’ 라는 단어를 회피하던데.
이제는 그냥 전국을 타버렸구만.
실수를 인지한 강피디가 입을 틀어막았다.
나는 목에 힘을 꽉 주며 인트로를 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자랑스런 ‘빨기좌’ 별명을 가진 기타리스트 김수재입니다.”
하민서가 깜짝 놀라며 눈을 크게 떴다.
뭘 봐.
‘빨기좌’를 내 입으로 말하는 게 그렇게 이상한가?
아니 뭐, ‘빨기좌’잖아.
발기좌도 아니고.
문제란, 문제로 삼으려 해야 문제가 되는 법이다.
그러니, 문제 삼지 않으면 된다.
나는 얼굴에 철판을 깔기로 했다.
“··· 반갑습니다! 이야, 정말 별명이 특이한데요, 혹시 ··· 별명이 붙여지기까지의 이야기 같은 게 있을까요?”
“제가 빨간 색상의 기타를 자주 사용해서 ‘빨간 기타좌’라고 불렸었거든요. 구독자 분들이 줄여 부르다 보니 이렇게 된 거 같습니다.”
“아하~”
“어감이 참 신기한 거 같아요.”
“아하하하하~”
설하가 살살 웃으며 멘트를 맞받아쳤다.
“그러게요~”
오프닝은 매우 자연스럽고 스무스하게 넘어갔다.
에이트라랑 인터뷰하며 키운 순발력이 도움이 된 거 같다.
“자, 그럼 이번에 모신 귀하디귀한 게스트님들과 함께, 아주 진득하게 음악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방송 어디에서나 모시고 싶어 안달이 나 있는 우리 설하씨···.”
라디오 방송은 말 그대로 라디오 방송이었다.
게스트와 진행자 둘이서 즉흥적인 이야기를 나누고, 타임라인에 적힌 대로 진행을 이어나간다.
가만히 입 닫고 있으니까 뭔가 운전하고 있는 듯한 느낌까지 든다.
이게 바로 라디오의 힘인가?
“··· 아하~ 싱어송 라이터이자 기타 연주자이자 가수인 우리 설하씨의 뒤를 잇는 ··· 그러면, 민서양이 데뷔하면 설마 설하씨가 은퇴를···?”
“아, 아니예요~ 서로 같은 분야에서, 다른 활동을 하는 것뿐입니다!”
“소속사가 같다고 들었는데, 포지션이 좀 겹치는 느낌이 들지 않나요?”
“그게 전혀 그렇지가 않아요. 민서가 참 독특한 매력이 있거든요! 얼굴도 너어~무 예쁜데 라디오로는 보여 드릴 수가 없어서 너어~무 아쉽습니다!”
“얼굴은 못 보여 드려도, 목소리는 전해 드릴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맞습니다!”
멘트가 지린다.
설하에게서 방송국 짬빱냄새가 진득하게 풍겨져 나왔다.
가수가 제2의 진행자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연지선 누나는 입을 우물거리며 설하를 부럽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하민서는 아주 조심스럽게 일어나 타일러 어쿠스틱 기타를 가지고 왔다.
“이참에 그냥 확~ 노래까지?”
“그럴까요?”
“설하씨와 민서양의 합동 라이브. 두말 않고 들어보겠습니다.”
라디오는 사운드가 비어서는 안 된다.
하민서는 책상 위에 놓여 있던 마이크를 재빨리 기타에 붙였다.
다라랑-!
기타소리가 실시간으로 헤드폰에서 흘러나온다.
나는, 가만히 앉아.
둘의 라이브를 감상했다.
“···.”
하민서의 연주는 꽤 많이 들었다.
항상 대회에 같이 나갔으니까.
수업도 같이 받으니까.
하지만.
노래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얼마나 지나야 너에게 내 말이~”
설하의 유명 노래인데 ···
부르는 것은 설하가 아니었다.
하민서다.
나는 지금, 하민서의 노랫소리를.
처음으로 들었다.
“···.”
객관적으로 말하자.
잘 부른다.
짜증만 안 내면 목소리 좋은 편이긴 한데.
짜증 낼 때 저 목소리 들으면 진짜 머리 한 대 쥐어박고 싶은 기분이 들기도 하는데.
정말 좋다.
헤드폰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고막을 한껏 간질인다.
깃털로 목덜미를 자극하듯,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기타도 잘 치고 노래도 잘 부르고.
얼굴도 예쁘다.
게임 끝났다.
갖출 건 다 갖추고 있다.
못 뜨는 이유가 노래 때문인가 싶었는데.
아니었다.
나는 멍한 얼굴로, 하민서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나와 눈을 맞추며, 노래에 집중했다.
하민서와 설하의 라이브.
유명 가수와, 예비 가수의 라이브.
실수를 할 법한데, 실수가 없었다.
“와~ 귀가 정말 간지럽네요. 잠시 헤드폰 좀 벗겠습니다 ···”
라이브가 끝나자마자 강피디는 능숙하게 멘트를 이어나갔다.
하민서의 얼굴에, 환하기 그지없는 미소가 떠오른다.
“민서씨 노래 너무 좋다~”
“아, 감사합니다!”
라비다 멤버들과도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주고받는다.
노래가 문제는 아니구나.
그럼, 뭐.
역시 내 예상 대로겠지.
쟤가 못 뜨는 이유는 ‘인성’ 때문이다.
근데 저 정도 재능이면 웬만한 인성질이 아니고서야 몰락할 수가 없을 것 같은데.
대체 ··· 대체.
얼만큼의 인성질을 ‘누구’에게 하는 거지?
진짜 존나 궁금하다.
“민서양은 아직 고등학생이라 들었는데요. 그러고 보니 수재군이랑 ···”
진행은 자연스레 하민서의 ‘일상 얘기’로 넘어갔다.
내 얘기도 나오네.
자주 본다, 연주도 자주 듣는다, 기타 잘 친다.
미사여구는 없었지만, 딱히 까지도 않았다.
“···.”
근데 여기서 내가 인성 폭로만 하면 완전 매장시킬 수 있는 거 아닌가?
그래서 그런가?
그래서 친절한 건가?
“이야~ 같은 반 친구 사이라 그런지 상당히 묘사가 세세한데요 ···”
“아, 수재가 뭐랄까··· 이거 말해도 되려나?”
“오~ 갑작스러운 폭로전인가요? 뭐죠 뭐죠?”
“주변에 여자애들이 정말 많아요.”
“하하하! 민서 양이 시동을 걸었습니다.”
“정말정말 많아요.”
이,
이런 미친.
미친 시발!
아까 자판기에서 망설임 없이 데자와 뽑아 마실 때부터 알아봤다.
음~ 하면서 음미하는 모습이 정말 꼴도 보기 싫었다.
역시, 상종을 말아야 할 인간이다.
하민서는 싱긋, 나에게 미소를 지었다.
“··· 수재씨? 사실인가요?”
“그건 ···”
난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스튜디오 내에, 긴장감이 흐른다.
시비를 걸어왔으면, 피하지 않는 게 장수의 마음가짐이지 않은가.
“사람을 가리지 않고 대하니까 그렇게 보일 수도 있는 것 같습니다.”
“아~ 남녀 학생이랑 고루 어울린다, 이런 의미인가요?”
“맞아요. 그게 바로 락정신이죠.”
나는 가만히 있던 락을 끌어와 방패로 삼았다.
“오~ 락정신! 사람을 두루 사귀고, 차별 없이 사귀는 게 바로 락 정신이란 말씀이시군요. 락 하니까 수재씨의 새 앨범 얘기를 빠뜨릴 수 없을 것 같은데요~”
“앨범 수록곡 대부분이 락 아닌가요?”
“맞습니다!”
설하와 강피디는 나의 수습발언을 최대한 살려주었다.
하민서의 찔러보듯 한 공격은, 단단한 방패에 막혔다.
이제 내 차례다.
유리창 너머의 스탭들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나는 선이 꽂혀 있던 기타를 잡아들고, 의자를 뒤로 뺐다.
놓여있는 페달 보드와, 기다란 선 끝에 연결된 오디오 인터페이스.
라디오 방송국에는 기타 앰프가 없었다.
컴퓨터로 연결된 기타신호가 플러그인을 거쳐 송출되는 형식이다.
“그럼 유튜브 조회수 140만의 주인공! 기타리스트 김수재군의 미니앨범의 수록곡을 바로 들어보겠습니다!”
디이잉-!
-bgm들어갈게요, 하나 둘.
헤드폰에서 들려오는 스탭의 목소리와 함께,
나는 타이밍에 맞춰 혼신의 연주에 들어갔다.
방금전 노랫소리에 꿀리면 안 되지.
평소보다 더더욱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내 앨범 홍보가 끝나면, 곧바로 라비다의 홍보가 이어질 거다.
사실상 이번 방송은 ‘노가리 겸 홍보’가 테마이다.
악기와 함께하는 노래는 개뿔.
뭐, 그래도.
사람들은 유명 가수의 노래를 라이브로 들을 수 있어서 좋고.
게스트는 이름을 알릴 수 있어서 좋고.
좋은 게 좋은 거지.
쥬우우웅-!
나의 멜로디 연주가 모니터 헤드폰에서 들려온다.
좋다.
소리 진짜 좋다.
강피디는 릴렉스한 표정을 지으며 눈을 감았다.
라비다 멤버들은 가볍게 몸을 흔들며 비트를 탔다.
수 많은 운전자들이, 지금 내 연주를 듣고 있을 거다.
내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사람이 대다수겠지만.
그래도 내 연주를 듣고 있을 거다.
나는 유리창 쪽을 확인했다.
스태프들이 모니터 화면에 메시지를 띄우고 있었다.
-청취율 상승중!
느낌 괜찮네.
나는 마지막으로 blue purple bar의 중반부를 아슬아슬하게 끊어내며 기타의 볼륨을 확-! 줄였다.
“이야 ··· 정말, 뭐랄까. 참 맛깔납니다!”
“ ··· 술에 흠뻑! 취하는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그래도 음주운전은 안 되는 거 아시죠?”
“시원한 여름밤에 술 한잔이 어울리는, 그런 곡이었습니다!”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이걸로 내 파트는 마무리 되···
“일렉기타랑 통기타라··· 설하씨.”
“네 ··· 네?”
진지하기 그지없는 강피디의 물음에, 설하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수재군은 과연, 통기타를 칠 수 있을까요?”
“··· 그, 글쎄요?”
“라비다 여러분은 수재군이 통기타 치는 모습 본 적 있으신가요?”
“못 봤습니다!”
뭘 ···
뭘또 시키려는 거야?
강피디의 얼굴에 비릿한 미소가 떠올랐다.
시청자 반응에 목매는 진행자.
새로운 것에 목매는 피디.
그의 시선이, 하민서 기타와 내 기타 사이에서 머물렀다.
“둘이 ··· 기타 바꿔치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