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alter ego is becoming a tycoon RAW novel - Chapter (495)
신도 (1)
휴버트 상회 타라크 본점.
“디아나, 잠깐 나랑 이야기 좀 하자.”
“네, 회주님. 바로 다과를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부탁하지.”
그날의 업무가 대충 마무리되어 갈 무렵, 상회주 휴버트는 디아나를 호출해 따로 자리를 만들었다.
그녀의 몸에 자리 잡기 시작한 신성력에 대해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
‘그러고 보니 이 아이와 처음 만난 지도 벌써 4년이 훌쩍 넘었구나.’
그는 따뜻한 차와 쿠키를 내오는 그녀를 새삼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이온 대륙 서쪽 끝의 약소국인 탈리아 왕국에서도 변방에 자리한 도시, 아잔투에서 만난 디아나는 그가 아우테리카로 넘어와 처음으로 맺은 제대로 된 인연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연이 이렇게까지 길어질 줄은 몰랐는데.’
끼니도 제대로 챙기지 못해 왜소하고 비쩍 말랐던, 어린 동생을 부양하면서 하루하루를 근근이 버티며 살아가던 꾀죄죄한 소녀.
그랬던 아이가 지금은 훌쩍 자라 고급 정장을 빼입은 커리어 우먼이 된 걸 보니 감회가 새로울 수밖에 없었다.
‘물론 나이가 어린 건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이제 만 17살이라고 했던가.
그러나 어리다고 무시당하고 싶지 않아서인지 성숙한 화장을 한 덕분에 얼핏 보기에는 성인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영양 문제가 해결되며 요 몇 년간 폭풍같이 성장하기도 했고.
“따로 힘든 건 없어? 아론은 잘 지내고 있고?”
“예, 회주님께서 신경 써주신 덕분에 하루하루 충실하게 보내고 있어요. 아론도 학교에 잘 다니고 있고요. 요즘엔 기사가 되기 위한 훈련도 따로 받는지 매일 흙투성이가 되어서 들어오긴 하지만요.”
휴버트는 근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디아나를 찬찬히 관찰했다.
평상시와 그리 다를 바 없는 태도.
하지만 그의 「분석」을 완전히 피할 순 없었다.
‘이미 어느 정도는 짐작하고 있군.’
하긴, 자력으로 신성력까지 개화했는데 그 믿음이 향한 대상이 누구인지 모를 리가 없었다.
그저 그가 직접 말해줄 때까지 내색하지 않고 기다리고 있는 거겠지.
상황이 이렇게 됐다면 굳이 숨길 필요도 없었다.
“···역시 그랬군요.”
대충 신성력에 대해 설명해 주자 그녀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반짝였다.
그 눈빛에 담긴 것은 선명한 동경과 믿음, 감탄뿐.
딱히 뭐라고 반문하거나 의문을 품지도 않았다.
‘신뢰도 98%라 이거지. 이렇게 보니 조금 무섭기까지 할 정도네.’
솔직히 이 정도면 자신이 자결하라고 해도 뭔가 깊은 뜻이 있겠거니 하며 주저 없이 따를 수준이었다.
똑똑한 아이니만큼 그게 정말 본의로 내린 지시가 맞을까 의심은 할지언정, 덮어놓고 부정하거나 거부감을 느낄 단계는 이미 한참 지난 것이다.
“처음 봤을 때부터 범상치 않은 분이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신격이라니···. 역시 탈리아 왕국의 흡혈왕도 아저··· 아니, 회주님의 화신체 중 하나였죠? 그 공방에 틀어박힌 드워프 장인도 그렇고.”
그 말에는 오히려 휴버트가 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설마 거기까지 알고 있었다니.
심지어 드워프 하워드는 디아나와 직접 대면한 적도 없지 않은가?
어쩌면 훨씬 전부터 눈치챘으면서 일부러 모르는척하고 있었을지도.
“그런데 신기하네요. 그동안 회주님을 위해 매일 기도를 드린 건 맞지만 회주님께서 신이라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말이죠. 그런 저한테 신성력이라니.”
“···그러고 보니 그것도 그렇군.”
“으음.”
확실히 믿음의 정도와는 별개로 그 형태는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진짜 신앙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건 디아나뿐만이 아니라 친구인 강태산의 경우 또한 마찬가지.
이미 성기사 하인리히를 성자까지 키워본 입장에서 보면 이건 확실히 이질적이라 할 수 있었다.
‘즉, 나는 다른 신격들과는 달리 그저 순수한 믿음만으로도 어느 정도 효과를 볼 수 있다는 뜻이지.’
왜 그런지는 모른다.
아직 진짜 신좌에 오르지 못한 불완전함 때문일 수도, 시스템이 무언가 영향을 주었을 수도, 아바타의 수만큼 다양한 성향의 신성을 품고 있어서일 수도 있다.
다만 그 이유가 어찌 되었든 믿음의 조건이 까다롭지 않다는 건 자신에게도 그리 나쁜 이야기가 아니었다.
“···이거, 잘만 이용하면 신도의 수를 단번에 확 늘릴 수도 있겠는데요?”
“오호? 그래?”
“네! 마침 좋은 생각이 하나 떠올랐어요!”
신성을 쌓아가고 있는 입장에서 일단 신도의 수가 많아서 나쁠 건 없었다.
여느 교단이 다 그렇듯, 굳이 성직자 수준까지 가지 않더라도 작은 믿음을 가진 신도 하나하나가 모여 큰 힘이 되는 법이었으니까.
“다만 한 가지 불안 요소라면···. 주신교단이 어떻게 반응할지가 문제예요. 아무리 신앙의 형태를 띠고 있지 않다고 해도 들키는 순간 주신교단에 대한 도전으로 비칠 수 있으니까요.”
“흠, 그렇군. 갑자기 이단심문관들이 들이닥치기라도 하면 곤란한데.”
이곳 아우테리카는 엄연히 이미 주인이 있는 땅이었다.
창조신인 주신은 물론 세계수를 비롯한 종족신들까지.
그런 상황에서 외신이나 다름없는 그가 슬쩍 엉덩이를 들이미는 걸 다른 신들이 반길 리가 없었다.
‘그래도 아바타 중 하나인 하인리히가 주신의 천사인데 좀 봐주지 않을까? 따지고 보면 하위 신격이나 다름없기도 하고. 어떻게 따로 허락이라도 받아야 할···.’
그때 문득.
어떤 직감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와 동시에 흘러간 시간 속에 묻혀있던 기억 하나가 서서히 뇌리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주신교단의 교황이 타계하기 직전에 전해준 신의 말씀.
한참 전의 과거에서 출발했던 허가가 비로소 현재의 자신에게 닿은 순간이었다.
“하.”
시간을 초월한 문답에 저도 모르게 헛숨이 새어 나왔다.
역시 전지전능에 가장 가깝다는 주신급의 신격이라는 거겠지.
‘처음 들었을 땐 대체 무슨 말인가 싶었는데.’
그때부터 지금 상황을 내다보고 있었던 것일까.
어쨌든 승인이 떨어졌으니 다행이었다.
괜히 성자 하인리히와 하이 엘프 해리스의 입장만 난처해질 뻔하지 않았나.
심각한 표정으로 무언가를 고민하던 디아나에게 그 사실을 말해주자 그녀가 손뼉을 치며 반색했다.
“그거 다행이네요! 어느 쪽 물류 유통부터 차단해야 더 효율적으로 주신교단의 숨통을 조일 수 있을까 생각 중이었는데. 굳이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아도 되겠어요.”
“···혹시 여차하면 전쟁이라도 일으킬 생각이었어?”
“네? 그거야 당연하잖아요? 자칫하다간 회주님이 이단 심판을 받을지도 모르는데 무슨 수라도 써 봐야죠. 가만히 손 놓고 당하고만 있을 순 없잖아요.”
고개를 갸웃하며 순진하게 반문하는 소녀.
과연,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녀의 머릿속에선 이미 구체적인 시안까지 어느 정도 다 짜여 있었다.
교단으로 향하는 물류를 차단하고 용병을 대규모로 고용해 군사력을 갖추는 건 기본이었다.
상권을 집어삼킨 나라들을 흔들어 교단을 배척하도록 유도하며, 하이브리드의 뱀파이어들을 이용해 요인들을 암살하는 건 물론, 심지어는 불사의 군대와 손을 잡을 생각까지 했다고.
처음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줄곧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상대임에도 자비라고는 눈곱만큼도 존재하지 않는 계획이었다.
‘아, 어쩐지 익숙한 눈빛이네.’
초롱초롱 빛나는 천진난만한 눈망울.
하지만 그 안 깊은 곳에서 타오르는 은근한 불길은 주신교단의 광신도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역시 광신도에 대적할 수 있는 건 광신도뿐이라는 걸까.
‘디아나, 무서운 아이.’
총력을 기울여 불사왕과의 전쟁을 대비하고 있는 주신교단에게 그런 수작들은 치명타로 작용했을 것이다.
인류 전체가 커다란 혼란에 빠지는 것은 기정사실이라고 봐도 될 터.
그런데 그런 작전을 아무렇지 않게 구상하고 실행하려고까지 했다니.
‘그래서 더 믿음직스럽지만.’
어떤 위기가 닥치더라도 최선의 길을 모색하는 판단력과 인정 앞에서 주저하지 않는 과감한 결단, 그 누구보다 뛰어난 맹목적인 충성심까지.
이 정도 자질이라면 충분히 믿고 맡길 수 있었다.
아우테리카의 신도들을 관리하는 총책임자 자리를.
“그럼 이제 계획을 진행해도 아무 문제 없겠네요!”
“···그래. 너에게 전권을 위임해 줄 테니 한번 마음껏 해봐.”
“네! 맡겨만 주세요. 반드시 주신교단 못지않은 수의 신도들을 확보해 보겠습니다!”
의욕에 차서 씩씩하게 답하는 디아나의 모습에 휴버트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주신교단은 명실상부 아우테리카 차원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종교.
설령 신도가 아니더라도 주신의 존재와 그 권위를 의심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신앙의 대척점에 서 있는 흑마법사들조차 그럴 정도이니 더 말해 무엇하랴.
‘그 십분의 일··· 아니, 백분의 일만 되어도 기대치를 초과 달성한 거나 다름없지.’
그렇게 휴버트는 두 눈을 번뜩이는 디아나를 격려해 주고 자리를 파했다.
당연히 금방 결과가 나올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며칠 후.
휴버트는 디아나의 호언장담이 정말 진심에서 나온 말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신청서에 서명하고 멤버십에 가입하면 푸짐한 사은품이?
-멤버십 회원에게는 휴버트 상회에서 유통하는 모든 물건에 대한 평생 할인 적용! 전 세계 지점 어디에서나 사용 가능!
-이 모든 혜택이 공짜?!
타라크 전역에 커다란 포스터가 붙었다.
···아니, 타라크뿐만이 아니었다.
툴크 왕국이 소재한 이온 대륙 서부의 왕국 연합, 중앙의 아제리온 제국, 동부의 제피아 공화국, 남부의 칼코스 부족 연맹, 동남쪽의 작은 섬나라 위제트 마도국.
심지어 「차원 상인」으로 연결된 마계와 막 분점을 내기 시작한 이종족들의 에나멜 대륙까지.
그렇게 명실상부 대륙 제일 상단의 자리에 오른 휴버트 상회의 역량을 총동원한 전방위적인 마케팅이 시작되었고.
끝내 ‘멤버십’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입교 신청서가 아우테리카 전체에 살포되었다.
“하, 하하하···.”
신청서의 내용을 훑어본 휴버트의 입에서 허탈한 웃음이 새어 나왔다.
확실히 종교적인 느낌을 풍기는 문장은 일절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교묘하게 회주인 휴버트에 대한 신뢰와 믿음만을 강조할 뿐.
‘이거라면 주신교단의 신도도 별 저항 없이 서명하겠는데.’
딱히 문제 될 건 없었다.
여전히 그 신도의 ‘신앙’은 주신을 향해 있을 테니까.
그리고 그건 이종족들이나 마계의 마족들 또한 마찬가지일 터.
자신이 필요로 하는 믿음이 신앙이라는 형태에 국한되지 않기에 가능한 방법이었다.
거기에 디아나는 한층 까다로운 조건을 제시하는 ‘프리미엄 멤버십’에 대한 홍보도 잊지 않았다.
일반 신도들보다 믿음이 강한 정예 신도를 양성하기 위한 방책이었다.
“그렇군. 이거 하나 배웠네.”
휴버트는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기 시작한 미약한 ‘믿음’들을 갈무리하며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날, 그는 하나의 진리를 깨달았다.
충분히 많은 돈은 믿음조차 살 수 있다는 사실을.
***
온통 죽음만이 가득한 대지.
[아아···! 위대하신 왕이시여···!] [신 카람, 불사의 왕께 충의를 바치옵나이다!] [오오오오오—!]그 중심에서 새까만 기운이 거세게 요동쳤다.
단순한 흑마력과는 차원이 다른, 태풍처럼 휘몰아치는 순수한 죽음의 힘.
그 중심부의 높게 치솟은 거대한 옥좌에 앉은 불사왕 한스가 무심하게 자신의 ‘신도’들을 내려다보았다.
‘과연, 죽음의 신성은 이런 식으로 발현되는 건가.’
검은 기운이 맺힌 손가락을 까딱거린 그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는 다른 마이너스 신성력.
사실 말만 신성력이지 그동안 사용했던 ‘죽음’에 더욱 가까운 힘이었다.
그 순도가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짙어졌을 뿐.
‘아쉽네. 하위 언데드들은 신성을 키우는 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게.’
기본적으로 언데드들은 생전의 망념이 밀집하고 변질된 존재였다.
제대로 된 자의식을 갖춘 건 고위 언데드에 국한될 뿐, 숫자만 많은 하위 언데드는 그저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괴물에 불과했다.
‘하지만 뜻밖의 소득도 있었지.’
그동안 카르마를 수급한다는 이유로 꾸준히 쌓았던 공포와 증오.
그것이 그의 신성을 키우는 데에 적잖은 도움을 준다는 것이었다.
‘이런 건 예상도 못 하고 있었는데 말이야. 뭐, 좋은 게 좋은 거니까.’
덕분에 그는 자신을 따르는 몇몇 간부진에게 이전과는 다른 차원의 힘을 부여해 줄 수 있었다.
본디 섭리를 어기고 다시 태어난 탓에 신성력에 취약해야 할 언데드의 한계마저 극복하게 만들어주는 극에 달한 죽음의 기운.
그 광경을 접한 언데드들이 경외하며 미쳐 날뛰게 된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새로운 죽음의 신을 찬양하라!] [영원한 불사의 군주께 경의를···.] [전 차원에 절망을—! 고통을—! 무한한 죽음을—!]그야말로 착실한 악신 루트를 밟고 있는 한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