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voice phishing, but it's a life reversal RAW novel - Chapter 424
외전 (23/ 외전 完)
시상식 시작부터 영화 ‘Control’이 불리자, 아카데미상 시상식이 열리는 웅장한 돌비 극장에 박수가 쏟아졌다.
“ 축하합니다! 어서 올라오세요, 마야 루돌프! ”
사회를 맡은 케빈 록 역시, 흰색 턱시도를 펄럭이며 박수쳤다. 그런 와중에 ‘Control’팀 끼리 앉은 좌석에서 몸이 전체적으로 얇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Control’에서 미술 감독을 맡은 마야 루돌프가 활짝 웃으며 일어났다.
“ 축하해, 마야! ”
“ 어서 나가라고! ”
“ 축하드려요. ”
곧, 존 스필버그 감독이나 마크 헤이스 사장 그리고 강주혁 등등. 같이 앉았던 인원들 모두가 처음으로 호명된 마야 루돌프를 축하했다.
“ 감사합니다! ”
마야 루돌프는 뛸 듯이 기쁜 표정으로, 모두의 축하를 뒤로하고 무대로 걸었다. 이어 돌비 극장에는 ‘Control’에서 사용했던 음악이 흘러나왔고.
-♬♩♪
무대에서 금빛 나는 트로피를 받은 미술 감독 마야 루돌프가 잠시간 손에 쥔 트로피를 보다가, 마이크에 대고 입을 열었다.
“ 무척 영광입니다. 처음 영화 ‘Control’에 참여 했을 때가 생각납니다. 입이 근질근질했어요. 작업할 땐 술도 끊었습니다. 어디 가서 말해버릴까 봐요. ”
이어 미술 감독 미야 루돌프의 수상 소감은 약 1분간 이어졌고, 그가 무대서 내려가자마자 수상은 계속 진행됐다.
“ 다음은 단편 다큐멘터리상입니다! ”
아카데미상 시상식은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최고의 시상식이었지만, 진행 자체는 한국의 영화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 폴 데미언! 축하합니다! ”
상을 수여한 부문마다 후보를 소개하고, 카메라가 후보들을 담아낸 뒤, 발표할 인물이 무대에 올라 후보 중 상 받을 이름을 부르면 축하가 쏟아졌다.
다만, 자유분방한 점이 좀 달랐다.
“ 여러분! 폴이 걸어오는 모습을 보세요! 그는 지금 춤을 추고 있습니다! ”
이름 불린 수상자가 무대까지 걸어가며 약간의 춤을 가미하거나, 수상 소감에 평소 서운했던 사람에게 불만을 표출하거나.
“ 윌! 다음에 작품에서 만나면 좀 상냥하게 대해달라고! ”
수상 소감 내내 개그를 가미한 농담을 뱉다가 내려가는 수상자도 있었다. 어쨌든 이런 탓에 아카데미상 시상식에 참여한 모두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시상식을 즐겼고.
“ 음악상! 오! 두 번째네요? 축하합니다! ”
미술상 다음으로 또다시 ‘Control’이 불렸다.
“ ‘Control’! 제이미 맥스! ”
벌써 2관왕이었다. 여기서 영화 ‘Control’의 음악 감독 제이미 맥스에게 축하를 던지던 주혁이 ‘Control’ 관련 보이스피싱 정보를 떠올렸고.
‘ 총 6개 부문에서 상을 받는 꽤 이례적인 기록을 남긴다고 했지? 이제 2개 받았으니까, 남은 것이 4갠데, 어찌 되려나······ ’
퍽 기대감 섞인 얼굴로 무대를 향하는 제이미 맥스를 보며 축하의 박수를 쏟아냈다. 곧, 무대에 올라 트로피를 받은 제이미 맥스는 약간 울먹이며 수상 소감을 뱉었고.
“ 다음은 국제 편집상입니다! 수상은 우리 모두의 친구 존 캐리가 해주겠습니다! ”
시상식 진행은 계속됐다. 여기서 재밌는 것은.
“ 오- 이번 편집상에도 영화 ‘Control’이 올랐네요? 벌써 몇 번째죠? ”
코미디 연기의 대가 존 캐리가 편집상 후보에 오른 영화들을 보며 감탄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아카데미상 시상식이 시작하고 지금껏 영화 ‘Control’이 벌써 후보로만 6개 부문에 올랐기 때문.
“ 후보에 6번, 그중 2개의 상을 탔네요? 존 스필버그 감독! 대단한데요? ”
여기서부터 이미 시상식의 주역은 ‘Control’이었다. 사실, 아까부터 시상식에 참가한 배우나 감독 등은 모두 감탄 중이었다.
“ ‘Control’ 또 올랐네요? ”
“ 그러게, 수상을 2개나 탄 것만으로도 대단한 건데······ ”
“ 이젠 몇 개 부문에 오르는지 세는 것도 재밌을 정도야. ”
이미 수상 트로피 중 2개가 ‘Control’ 팀이 가져간 상황에, 모인 모두는 ‘Control’이 무슨 기록을 세울 것 마냥 그들을 주목했다.
이어 약 20분 뒤.
“ 신사 숙녀 여러분, 안녕하세요.
다시 시상식이 뒤집어졌다. 그 이유는.
“ 각본상의 발표를 맡은 로라 링입니다. 오늘 제가 할 일의 전부에요. 각본상의 발표. 분위기 좀 띄워주고, 이름을 호명하면 되죠. 사실 저도 수상자로서 이 자리에 서고 싶었는데. 아아- 투정은 그만 부리고 상이나 주라고요? 예예~ 그럼 바로 발표하겠습니다. ”
‘Control’이 세 번째로 불렸기 때문.
“ 각본상! 세 번째네요. 이러다 상 다 쓸어 담겠어요? 축하합니다! ‘Control’ 존 스필버그 감독! ”
곧, 지금까지 쏟아졌던 그 어떤 박수보다 강렬한 박수 소리가 쏟아졌고.
“ 감독!! 축하드립니다! ”
“ 세상에! 3번째라고?! ”
“ 하하하! 이럴 수가! 축하해요, 감독!! ”
오른쪽 왼쪽 뒤쪽 앞쪽, 모든 곳에서 쏟아지는 축하를 받던 존 스필버그 감독이 주름진 입가에 웃음을 띠며 자리를 나서는 와중.
“ 축하드립니다, 감독. ”
웃고 있는 강주혁과 마주쳤고.
“ 고맙네. ”
주혁과 가볍게 악수하며 포옹한 그가, 잠시간 미묘한 눈빛으로 강주혁을 쳐다보다 천천히 무대로 향했다.
이어 트로피를 받은 존 스필버그 감독이 자동으로 크기가 조절된 마이크 앞에 섰고.
“ 전 아카데미상에서 상을 꽤 받았어요. 몇 번인지 세보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늘이 그 어떤 때보다 감정이 복받치는군요. ”
말을 잠시 멈춘 그가 코끝에 걸친 동그란 안경을 들여쓰며 ‘Control’팀에 시선을 던졌다.
“ 이번 영화 ‘Control’은 제게 도전이었고, 참여한 모든 인원에게도 도전이었습니다. 멈추고 싶지 않았고, 변화를 꾀했습니다. 이제 헐리웃도 변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인종, 성별 등 차별은 없어야 하고, 실력으로만 판단해야 합니다. ”
이윽고 존 스필버그 감독의 시선은 다리 꼰 채 앉아, 미소짓고 있는 강주혁에게 닿았다.
“ 그러다 보면 보석을 발견하실 수 있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
-짝짝짝짝짝짝짝짝!!
-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
곧, 장내가 떠나가라 엄청난 박수 소리가 퍼졌고.
“ 잠깐잠깐. 감독! 아마 또 상을 받을지 모르는데, 아예 여기 저랑 같이 서 계시는 건 어때요? ”
각본상의 발표를 맡았던 배우 로라 링의 농담으로 각본상의 무대가 끝났다. 그리고 다음 차례는.
“ 이제 시상식도 끝을 향해 달리고 있네요? 자- 다음은 남우조연상입니다! ”
조연들의 최고를 가리는 조연상의 무대였고.
“ 후보부터 만나보시죠! ”
총 7명의 배우 후보 중에는 이번에도 ‘Control’의 배우가 포함되어 있었으며.
“ 남우조연상! 와우! ‘Control’의 숀 그랜트!! ”
영화 ‘Control’이 네 번째 상을 거머쥐었다.
약 10분 뒤.
어느새 제96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은 마무리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클라이맥스였다. 이제 남은 상은 그랜드 슬램이라 불리는 작품상, 감독상, 남우·여우 주연상.
단 4개의 상만 남은 상황.
원래도 이정도까지 오면 시상식 자체의 분위기가 달아오르는 것은 당연했지만, 어째선지 오늘의 시상식 분위기는 그 어떤 때보다 달아올랐다.
“ 맙소사! 존 스필버그 감독! 후보에만 11부문에 올랐다니까요?! 좀 더 좋아해도 괜찮지 않나요?!! ”
지금 사회자 캐빈 록의 외침처럼, 영화 ‘Control’이 제96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꽤 이례적인 기록을 세우고 있었기 때문.
살짝 나열하자면 이랬다.
‘Control’ 무려 총 수상 부문 중 13개의 부문에 후보로서 올랐고, 그중 미술, 편집, 음악, 남우조연상까지 총 4개의 상을 거머쥐었다. 4관왕.
거기다.
“ 이러다 작품상, 감독상, 남우·여우 주연상까지 전부 휩쓸어버리는 거 아닌가 이거?! ”
남은 상 모두 영화 ‘Control’이 받을 가능성이 점점 커지는 상황. 어째서 영화 ‘Control’은 이런 센세이션 일을 만들어 냈을까?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포함되어 있었다.
존 스필버그 감독의 이름값도 있을 것이고, 그 거장 존 스필버그 감독이 도전적으로 만들어 낸 작품 ‘Control’이 대단했기 때문도 있었다.
뭐가 됐든 아카데미상은 6000명의 회원의 투표로서 선정되니까.
‘Control’이 현재까지 13부문 후보에 올랐고, 4개의 상을 탄 것은 그 모든 아카데미상 회원들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았을 것이 자명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 하하하, 존 스필버그 감독의 수상 소감처럼 아카데미상도 변화하고 있다는 증거겠죠? ”
지금껏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아카데미상 시상식이 변화의 바람을 받아드렸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어쨌든 ‘Control’의 메인 주연이 한국인 배우 강주혁이었으니까.
“ 같은 영화인으로서 저도 이런 변화는 찬성입니다!! ”
팩트로 보자면 지금껏 아카데미상 시상식의 상은 백인의 비율이 상당히 높았다. 그런데 동양인이 주연인 영화가 그것도 헐리웃이 아닌, 컨텐츠 플랫폼인 넷플렉스가 주관하여 만든 영화가 상을 쓸고 있다는 것은 확실한 변화였다.
어쨌든.
“ 자! 지금부터 하이라이트입니다! 거기거기! 졸지 말라고! 이제부터 올해 최고의 배우가 올라올 시간이라고! ”
사회자 캐빈 록이 살짝 흐트러진 자신의 흰색 턱시도를 단정하게 추스르며 말을 이었고.
“ 다음은 남우주연상! 발표는 작년 여우주연상이었던 올리비아 로페즈가 하겠습니다! ”
이름 불린 헐리웃 여배우 올리비아 로페즈가 무대 뒤편에서 흰색 드레스를 펄럭이며 등장했다.
“ 안녕하세요. 작년 이 자리에서 여우주연상을 받고 펑펑 울었던 올리비아 로페즈예요. 음- 또다시 이 자리에 서서 올해 최고의 배우를 제가 발표할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
금발을 단정하게 묶은 그녀는 짧은 인사말을 끝으로 들고 온 큐카드를 보며 다시 말을 이었다.
“ 제가 여기 적힌 배우들을 먼저 봤는데요. 선택 못 하겠어요. 보시고 여러분도 한번 선택해보세요! ”
곧, 전광판에 후보들이 나열됐고.
-‘Fantasticboy’/ 조던 스레드, ‘Shadow runner’/ 로저 아워, ‘Sharp’/ 로버트 가드너, ‘Black helmet’/ 샘 라일런스, ‘Control’/ 강주혁.
나열된 후보를 보자마자, 장내에 웅성거림이 커졌다.
“ ‘Control’이 또 올랐어. ”
“ 오 마이······이것까지 타면 5관왕? ”
“ 저 강주혁이라는 배우, 지금 심장이 벌렁거리겠는걸? ”
“ 강주혁······탈 수 있을까? ”
“ 글쎄. 못 타더라도 이 아카데미상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것만으로도 대단한 거야. ”
그리고 ‘Control’팀이 앉아 있는 좌석은 거의 축제 분위기였다.
“ 주혁! 저기 주혁의 이름이 있는데?!! ”
“ 하하하. 이럴 수가! 복귀하자마자, 일 치는 거 아닌가 이거!! ”
“ 저기에 주혁 이름이 있으니, 내가 더 떨려! ”
이미 상을 받은 미술, 음악 감독 등과 마크 헤이스 사장과 존 스필버그 감독이 강주혁에게 찬사를 쏟았다.
뭣보다.
“ ······저기에 왜 자네 이름이 들어가 있어? ”
김재황 사장이 보고도 못 믿겠다는 듯, 충격에 휩싸인 표정으로 입을 쩍 벌렸다.
“ 잠깐만. 노안이 왔긴 했지만, 잘못 본건······강사장. 자네 이름이 들어간 것이 확실하지?! ”
이어 그의 표정은 충격에서 환희로 바뀌었고, 옆자리에 앉은 강주혁 쪽으로 고개를 휙 돌렸다.
반면.
“ 네. 그러네요. 확실히 제 이름이 들어가 있네요. ”
강주혁은 꽤 담담하게 다리를 꼰 상태 그대로, 그저 무대 쪽을 응시했다. 평온했다.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전부 받아드리겠다는 느낌이 풀풀 풍겼다.
그런 그가 속으로 읊조렸고.
‘ 가능성은······있어. ’
평온한 상태에서 무릎 위 올려둔 겹친 양손에 힘을 가득 넣어, 주먹을 쥐었다. 사실 그로서는 앞선 ‘Control’의 수상에는 큰 전율이 없었다.
당연했다.
이미 강주혁은 ‘Control’의 미래를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보이스피싱 미래정보에는 남우주연상에 관한 얘기는 없었다.
즉, 여기서부터는 미지의 세계였다.
배우로서 몰락한 뒤, 8년 만에 복귀. 그 작품이 현재 세계 최고의 시상식인 아카데미상에 올랐고, 남우주연상에 강주혁의 이름이 포함된 상황. 평온했던 강주혁의 마음속에서 점점 욕심이 피어올랐다.
‘ 후- 미치겠군. ’
배우로서 이 상황에 안 떨릴 리는 이가 있을까?
그쯤.
“ 자- 그럼 영광의 남우주연상을 발표할게요. ”
흰색 드레스를 팔락이며 여배우 올리비아 로페즈가 방금 도착한 결과표를 펼쳤다.
“ ······ ”
“ ······ ”
장내는 침묵에 빠졌고.
“ 남우주연상. ”
들리는 거라곤 침 넘기는 소리가 전부인 상황에 올리비아 로페즈가 웃으며 나지막하게 남우주연상의 주인공을 불렀다.
“ ‘Control’/ 강주혁. 축하드립니다. ”
곧, 모여 앉아 있던 ‘Control’팀 전체가 벌떡 일어났다.
“ 우왁!!!! 세상에!! ”
“ 주혁! 축하해!! ”
“ 어서 나가보라고!! ”
이어 엄청난 박수가 쏟아졌고.
-짝짝짝짝짝짝짝!!
-짝짝짝짝짝짝짝짝짝!!
-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
수십 대의 카메라가 강주혁을 비췄다. 돌비 극장에 모인 수백의 사람들도 모두 강주혁을 향해 기립박수를 쏟았다.
모두가 강주혁이라는 배우에게 열광했다.
곧, 살짝 전율이 흘렀는지, 오른손으로 입을 막고 있던 강주혁이 천천히 일어났고.
“ 감사합니다. ”
옆에 있던 김재황 사장이 주혁의 양어깨를 두드렸다.
“ ······하하하. 강사장. 내가 이런 엄청난 순간에 자네와 같이 있다니. 정말 축하해. ”
평소 꽤 건조한 존 스필버그 감독 역시, 화사한 웃음을 지으며 강주혁에게 손을 내밀었다.
“ 내가 말했지? 주혁은 더욱 유명해질 거라고? 이젠 가격 비싸져서, 쉽게 쓰지도 못하겠군. 정말 축하하네. ”
그때 마크 헤이스 사장과 여배우 엠마메이도 끼어들었다.
“ 주혁. 이젠 사업가 강주혁은 없어도 되겠는데요? 당신은 이미 헐리웃에서 최고의 배우라는 게 증명됐어요. 축하합니다. ”
“ 제가 다 기뻐요! 같이 작품을 해서 영광이었어요, 주혁! ”
엄청난 축하가 쏟아지는 와중에, 주혁은 특유의 미소로 화답하며 한 명 한 명 모두 악수나 작은 인사로 축하를 받았고.
-휘이익!!
-파파파파팍!!
와중에 여기저기서 커다란 휘파람 소리와 카메라 플래시가 어마어마하게 터졌다.
그때.
“ 남우주연상 강주혁. 슬슬 앞으로 나와주실래요? 이 영광스러운 트로피를 드려야 해요. ”
여배우 올리비아 로페즈가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강주혁에게 내미는 시늉을 했고.
-뚜벅, 뚜벅.
자리에서 가까스로 빠져나온 강주혁이 천천히 무대로 걸었다. 그러는 와중에서 스치는 배우나 감독 등 강주혁의 어깨나 등을 치며 축하를 던졌다.
-뚜벅, 뚜벅, 뚜벅.
이윽고.
“ 축하합니다, 강주혁! ”
무대에 오른 강주혁에게 올리비아 로페즈가 금빛 나는 트로피를 내밀었다.
“ ······ ”
그런 트로피를 말없이, 가만히 내려보던 주혁이 천천히 팔을 내밀어 받았다. 그러자마자 상을 전달한 올리비아 로페즈는 한걸음 빠졌고, 무대에 설치된 스탠딩 마이크가 강주혁의 길쭉한 키에 맞춰, 쭉 올라왔다.
그러나.
“ ······하. ”
작게 숨을 뱉은 주혁은 아직도 손에 쥔 트로피를 내려보고 있었다. 무언가 수많은 감정이 소용돌이치는 듯. 한 사람이 긴 칼의 손잡이를 잡고 늠름하게 서 있는 형태의 금빛 트로피.
이 트로피는 영화인이라면, 배우라면 누구나 꿈꾸는 트로피였다.
그것이 지금 강주혁의 손에 쥐어져 있고, 이 트로피는 그야말로 강주혁이 쟁취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거기다 최초였다. 한국인 배우가 이 아카데미상에서 상을 받는 것은.
그쯤.
-스윽.
내내 트로피를 내려보던 강주혁이 자신의 턱시도 재킷의 단추를 풀며 마이크 앞에 서서, 천명에 가까운 모두를 한번 쭉 훑었다.
모두 강주혁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윽고.
“ 어- ”
강주혁의 수상 소감이 시작됐다.
“ 일단, 감사합니다. 많이 긴장되네요. 아시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전 한국의 어느 영화제에서 미친 짓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보다 한 100배는 떨립니다. 뭔가 압도되는 기분이네요. ”
여기서 강주혁이 무대에 가까이에서 인터컴을 목에 두른 진행 스탭들을 쳐다봤다.
“ 맘 같아서는 그냥 이 상을 한번 흔들고, 인사한 뒤, 냅다 뛰어 내려가고 싶지만. 저기 계신 분들이 허락해주지 않겠죠. ”
곧, 장내에 웃음이 퍼졌고, 강주혁이 손에 쥔 트로피를 다시 내려보며 말을 이었다.
“ 제게는 힘든 시기가 있었습니다. 꽤 길었죠. 그럼 에도 전 여기 섰습니다. 서야만 했고, 서고 싶었습니다. 왤까요? ”
되물은 주혁의 시선이 트로피에서 앞으로 다시 향했고.
“ 배우라면 누구나 이 자리에 서고 싶어서 할 것이고 저 역시 마찬가지였기 때문입니다. 흔히들 말하는 목표와 비슷하지만, 전 좀 달랐습니다. 전 실패했었습니다. 그렇기에 증명하고 싶었어요. 한번 실패했지만, 다시 일어나 걷는다면 어떻게든 이 자리에 도달할 수 있을 거라는 것을. ”
그의 고개가 1층에서 2층에 닿았다.
“ 실패는 불편합니다. 그러나 불편함이 사람을 성장하게 합니다. 저는 아직 부족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단 한 가지는 명확해졌습니다. 하기 싫은 것을 하고 심지어 하기 싫은 것을 끝없이 반복해야만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요. ”
여기서 강주혁이 손에 쥔 트로피를 살짝 들어 올렸고.
“ 여기서 고통스러운 것은 그렇게 미치도록 하기 싫은 것을 반복해도, 죽도록 반복해도 원하는 것을 손에 움켜쥐는 것이 명확하지 않다는 거죠. 그래도 여기서 중요한 건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적어도, 최소한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 저는 배우지만 여기 계신 관계자, 제작자, 배우 등 모든 분에게도 똑같을 거로 생각합니다. 내가 가는 길이 아무리 험난하다 할지라도, 걸어야 합니다. 왜냐면 포기라는 놈은 길이 없어요. 그냥 추락일 뿐입니다. 제가 한 번 추락해 봤는데요, 별로예요. 두 번은 하기 싫습니다. ”
이어 주혁이 입가에 미소를 띄웠고.
“ 지금 저를 보고 계신 배우 여러분 또는 배우로서 자신만의 목표가 있거나, 연기를 사랑하고, 배우가 목표인 여러분. 저를 TV로 보시는 분, 인터넷으로 보시는 분, 핸드폰으로 보시는 분 상관없이 모두 실패해도 포기하지 말고 다시 일어나 걸어보세요. 계속 걷고, 그러다 뛰고 그러다 전속력으로 달리다 보면. ”
오른손으로 자신을 찍었다.
“ 촬영장에서 저와 작업하고 계실 겁니다. ”
힘 실린 강주혁의 목소리가 웅장한 장내에 그대로 전달 됐다. 그를 비추는 조명은 여전히 반짝였고, 주혁의 수상 소감을 듣는 모두의 눈이 빛났다.
이어 강주혁이 자신을 바라보는 모두에게 말했다.
“ 촬영장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
그리고 잠시 뒤.
“ 감독상! 존 스필버그 감독!! ”
‘Control’이 두 번이나 더 불렸다. 영화 ‘Control’은 13개 부문 후보에 올랐으며.
“ 올해 영광의 작품상!! ”
총 7개의 상을 거머쥐며 7관왕을 이뤄냈다.
“ ‘Control’ 축하드립니다!!! ”
전 세계가 뒤집힐 기록이었다.
약 한 달 뒤, 3월.
분당 미금역 주변 원룸촌. 그 원룸촌 중 회색 원룸 건물에 대략 50대로 보이는 갈색 파마머리 여자와 익숙한 검은색 경량패딩을 입은 남자가 들어섰다.
이어 갈색 파마머리 여자가 계단을 내려가며 남자에게 말했다.
“ 반지하긴 하지만, 조용하고 살 만하실 거예요. ”
“ 그렇습니까? ”
“ 그럼요! ”
잘 보니 남자는 황실장이었다. 그리고 그를 인도하는 여자는 이 원룸 건물의 임대 거래를 맡은 부동산 업자.
어쨌든 중년 여성인 부동산 업자가 계단을 내려가다 말고, 무언가 떠오른 듯 양손을 부딪쳤다.
“ 참! 여기 주변에 강주혁 살았데요! ”
강주혁의 이름이 나오자, 황실장이 미묘하게 웃었다.
“ 사장님······아니. 강주혁씨가 여기 주변에 살았다고요? ”
“ 네에!! 아시죠? 강주혁? 한국인 최초로 아카미상인가? 거기서 상 받은 배우! 엄청 유명하잖아요! 뉴스서도 막 나오고. ”
“ 아카데미상이요. ”
“ 맞다! 거기! ”
이어 부동산 업자가 계속해서 계단을 내려가며 조잘댔고.
“ 우리 딸한테 들었는데, 헐리웃에서도 슈퍼스타라고 하더라고요! 지금 엄청 국위선양하고 있다고! ”
그녀의 뒤를 따르던 황실장이 픽 웃었다.
“ 그 강주혁씨가 살던 곳이 혹시 여기 아닙니까? ”
“ 예에?! 무슨 말씀이세요? 강주혁이 여길 왜 살아? 여기 주변엔 대학생들 밖에 안 살아요~ ”
손사래 치던 그녀가 한 반지하 월세방 철문 앞에 멈춰 서더니, 익숙하게 도어락을 풀었다. 풀자마자 철문을 연 부동산 업자가 문 앞에서 살짝 비켜서며 황실장에게 들어가란 손짓을 던졌다.
“ 한 번 보세요. 세탁기, 냉장고, TV까지 최신식이고 완전 풀. ”
그때.
-우우우우웅, 우우우웅.
부동산 업자의 핸드폰이 울렸고.
“ 어~ 나야. 어?! 진짜? 계약서 거기 없어?! 아닌데? 아! 나 차에 있나? 잠깐만 다시 전화할게. ”
다급하게 전화를 끊은 그녀가 이미 월세방 안에 들어가 있는 황실장에게 외쳤다.
“ 죄송한데, 좀 보고 계실래요?! 금방 차에 갔다 올게요! ”
“ 그러시죠. ”
-타닥!
부동산 업자가 바쁘게 계단을 뛰어 올라갔고, 그녀가 사라지는 것을 확인한 황실장이 핸드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내려던 때.
-뚜벅, 뚜벅.
계단 쪽에서 누군가 천천히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덕분에 문자 보내던 황실장이 고개를 들었고.
“ 아, 어떻게 알고 오셨네요. ”
풀 정장에 마스크, 네이비 코트를 오른손에 걸친 남자가 월세방에 모습을 드러내며 답했다.
“ 네. ”
답한 남자가 검은색 마스크를 벗었고, 황실장을 쳐다보며 웃었다. 그 순간 현관 전등이 띵 켜졌다. 덕분에 남자의 얼굴이 확실하게 보였다.
“ 차에서 보니까, 업자분이 바쁘게 어딜 뛰어가길래. ”
남자는 강주혁이었다. 이어 그에게 황실장이 물었다.
“ 사장님이 여기서 사셨던 겁니까? ”
주혁이 픽 웃었다.
“ 그렇죠. 꽤 오랫동안. ”
답한 그가 지금은 살림살이 하나 없이 텅 비어버린 월세방 여기저기를 걸어 다니다가 창문 달린 벽면을 찍었다.
“ 여기. 여기에 내 침대가 있었고, 바로 옆에 쓰레기가 쌓여있었죠. TV 위치는 그대로네요. ”
과거 유일한 친구였던 TV를 보던 주혁의 시선이 주방으로 향했다.
“ 여기에 밥솥이 있었고, 이 찬장에는 그릇보다 즉석밥이랑 3분 카레가 더 많았어요. 막판에는 그마저도 몇 개 없었지만. ”
“ ······상상이 안 갑니다만. ”
황실장이 턱을 긁으며 말하자, 주혁이 입꼬리를 올렸다.
“ 그래요? 그때는 나름 꽤 진지했는데. 그 즉석밥이랑 3분 카레 다 떨어지고, 남은 돈도 떨어지면 저 진짜 죽는 생각까지 할 정도는 데요. ”
“ 큰일 날 소리를. ”
“ 그때는 그랬다는 겁니다. ”
짧게 답한 주혁이 월세방 중앙에 서서 한 바퀴를 빙 돌았다. 그리고 과거 흡사 짐승 같았던 자기 자신을 떠올리며 황실장에게 말했다.
“ 여기 사두는 게 좋겠어요. 새로운 감정도 파생되고, 뭔가 초심을 찾기에 좋을 것 같습니다. ”
“ 여기서도 배우에 보탬을 찾으시네요. 그럼 계약하겠습니다. 계약 기간은. ”
“ 뭐, 보통으로 하죠. 계약이야 연장하면 그만이니까. ”
이어 황실장이 다이어리를 꺼내 무언가를 적다, 시간을 확인하곤 화들짝 놀랐고.
“ 사장님! 이제 움직이셔야 합니다!! 기자회견까지 1시간 남았어요! 전 세계가 지켜보는 기자회견입니다. 지각은 안 됩니다! ”
강주혁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답했다.
“ ······그거 안 가면 안 되나? 너무 각 잡힌. ”
“ 그럼 아카데미상 남우주연상 반납하시면 됩니다. ”
“ 황실장님, 좀 잔인해지셨네요. ”
“ 사장님과 일하려면 이렇게 해야 합니다. 이 기자회견 끝나면 바로 헐리웃 넘어가야 해요. 에런쇼 녹화 있습니다. ”
빡빡한 스케줄을 읊는 황실장의 굳건한 모습에 주혁이 작게 한숨을 뱉으며 발걸음을 뗐다.
“ 예예~ 갑니다, 가요. ”
그 순간.
♬띠리리 띠리리링 띠리리 띠리리링!!
강주혁의 속주머니에서 핸드폰이 벨소리를 뱉어냈고, 황실장이 신발을 빠르게 신었다.
“ 그것 보세요! 빨리 오라고 재촉하는 걸 겁니다! ”
그런데 강주혁의 입에서는 다른 말이 나왔고.
“ 아닌 것 같은데요? ”
황실장이 고개를 갸웃하며 “예?” 정도의 답변을 던질 때쯤, 주혁의 눈은 핸드폰 화면이 표시하는 익숙한 번호를 보고 있었다.
*070-1004-1009
보이스피싱이었다.
곧, 강주혁이 미소지으며 보이스피싱을 받자마자, 그의 핸드폰에 경쾌한 여자 목소리가 들렸고.
[‘블랙’단계의 주인이신 강주혁님 안녕하세요!]
잠시간 전화를 받던 주혁이 수첩을 꺼내, 무언가 메모를 시작했다. 그 모습에 두 눈을 끔뻑이던 황실장이 방금 통화를 마친 주혁에게 물었고.
“ 무슨 전화였습니까? ”
강주혁이 산뜻하게 답했다.
“ 보이스피싱이요. ”
“ 예?! 뜬금없이 그게 무슨······ ”
멍청한 되물음을 던진 황실장에게 강주혁이 ‘농담입니다’ 정도의 말을 뱉었고, 신발장에 벗어둔 구두를 신으며 대답을 정정했다.
“ 차기작 제의 전화였어요. 방금 결정했습니다. 제 차기작. ”
이어 입꼬리를 올린 주혁이 월세방을 나서며 작게 혼잣말을 뱉었다.
“ 뭐, 어디에 숨었는지 찾는 게 먼저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