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God-Killing Archmage RAW novel - Chapter 151
150화
현석은 곧장 개미굴을 향해 돌아갔다.
워낙 전투가 치열했던 탓에 내셔는 제법 멀리 도망쳤지만.
에단이 함께 있는 덕에, 현석은 금방 그들의 위치를 찾을 수 있었다.
“오셨군요….”
현석이 도착하자 내셔가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지금껏 내셔의 얼굴에서 큰 감정의 변화가 보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일이었다.
“왜. 내가 거기서 죽기라도 할 줄 알았어?”
현석이 피식하고 웃음을 흘렸다.
“솔직히 말하면 그렇습니다. 제가 관리자 생활을 한 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흐른 줄 아십니까? 그 덕에 척 보기만 해도 결과가 보이는 싸움이 꽤 많습니다.”
“그리고 디에손과의 전투는 네가 봤을 때 내가 질 전투였고?”
“그렇습니다. 신격도 디에손이 미세하게 더 높은 것은 물론, 상성 자체가 불리해 보였거든요.”
정확하게 봤다.
분명 현석도 전투 초반까지만 해도 그렇게 느꼈었으니까.
만일 성화를 만들 생각을 하지 못했다면, 내셔의 말대로 싸움의 승자는 디에손이 됐을 수도 있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내 경험에 의한 결론에 불과합니다. 이번엔 틀린 것 같군요.”
물론 성화를 모르는 내셔의 입장에선 당연히 그렇게 생각했겠지.
그 순간에 판을 뒤집을 만한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긴 어려우니까.
어디까지나 현석의 기지가 빛을 발한 것이었다.
달리 말해 지극히 낮은 확률의 경우의 수가 발동한 것이었다.
그렇기에 현석은 내셔의 어깨를 두들기며 그를 격려했다.
“아니야. 잘 봤어. 앞으로도 그 감을 유지해.”
고룡이 데리고 있는 관리자가 유능하면 현석 본인에게도 좋을 일이니.
내셔가 자신의 감이 겨우 한 번 틀렸다고 생각을 고쳐먹을 관리자 같진 않지만.
그렇다고 칭찬하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감사합니다.”
“뭘.”
“그럼 이제 나와 대화를 해보자꾸나.”
현석과 내셔의 대화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는 것 같자.
오르비스가 짐짓 무거운 얼굴로 현석을 불렀다.
이유야 금방 알 수 있었다.
분명 성화 때문이겠지.
그녀는 현석을 데리고 일행들과 떨어진 구석으로 향했다.
“아니 대체 뭘 얼마나 대단한 얘기를 하려고 여기까지 사람을 끌고 와. 성화가 그렇게 대단한 힘인가?”
“…알고 있었구나 성화를.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나도 알고 있던 건 아니야. 우연히 힘을 얻었고, 그것이 성화라는 사실을 알게 된 거지.”
답을 했으니 이제 질문을 할 차례.
현석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런데 성화가 대체 어떤 힘이길래 네가 이렇게 관심을 보이는 거지?”
“그건… 내가 아이들을 탄생시키며 잃은 본래의 힘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이라 하면 디에손과 루아라를 뜻하는 것일 터.
하지만 현석의 신경은 뒤에 이어진 말에 꽂혀 있었다.
“…본래의 힘이라고?”
현석의 미간이 절로 좁혀졌다.
아니 그럼 그동안 사용하던 힘들은 뭐지?
자신과 싸울 때 쓰던 힘도.
그건 본래의 힘이 아니란 말인가?
현석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하고 있자.
오르비스가 생각을 읽었는지 그에 대한 답을 해주었다.
“물론 내가 지금 사용하는 힘과 기술들 또한 본래의 힘이 맞다. 정확히 말하자면… 성화는 내가 주로 사용하던 힘이다. 가령 네가 과거에 태초의 불을 사용하던 것처럼 말이다.”
달리 말해 지금 오르비스가 사용하는 기술들은 비유하자면 현석에겐 루아라의 힘과 같은 맥락이었다.
알고는 있되, 주로 사용하던 기술보다 위력이 조금 부족해 잘 사용하지 않던.
그렇게 생각하니 내심 오르비스가 대단해 보였다.
‘그럼 약해진 상태로 나와 배신자들을 상대한 거 아니야?’
순간 아카르덴에서 있던 오르비스와의 전쟁이 떠올랐다.
조금도 물러섬 없이 자신을 상대하던 모습.
그런데 그게 약해질 대로 약해진 상태였다니.
현석이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오르비스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나는 나 자신을 포기하면서까지 바쳐 아이들을 탄생시켰다. 그리고 그 중 하나가 바로 ‘성화’지.”
오르비스의 말은 이랬다.
원래 그녀는 지금 사용하는 것보다 훨씬 더 높은 격의 힘을 사용했고.
또 다른 신들을 만드는 과정에서 그것을 희생한 것이었다.
디에손을 위해선 성화를 포기한 셈이고.
“하나의 신을 만드는 과정은 아주 험난하더구나. 분명 성화의 힘을 최대한 담으려 했으나 그 과정에서 아주 많은 힘이 손실됐어.”
“그렇군.”
현석이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괜히 디에손이 성화를 알아보지 못한 게 아니었다.
애초에 자신은 느껴본 적도, 경험해본 적도 없는 힘이니 알 수가 없지.
그래도 본능적으로 자신의 불보다 상위의 힘이라는 건 아는 걸 보면.
무의식 속에 성화가 제 근본이라는 사실은 내재해 있는 모양이었다.
“그럼 네가 이렇게 말하는 것도 납득이 되네.”
“그래. 다시는 되찾을 수 없는 힘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아무리 깊은 잠에 들어도 회복되지 않던 힘.
그런데 현석이 그러한 힘을 보유한 채 떡하니 나타나니 놀라지 않을 수 없던 것이었다.
“그래서 돌려 달라는 거냐?”
“그럴 리가 있나. 아니, 그 전에 돌려달라고 하면 돌려주긴 할 것이냐?”
“내가 미쳤냐. 천신이 전성기 때 사용하던 힘인데 포기할 리가.”
“내 그럴 줄 알았다.”
흥. 오르비스가 팔짱을 끼며 콧방귀를 뀌었다. 그리곤 재차 입을 열었다.
“그냥… 신기할 뿐이다. 영영 잃어버릴 줄만 알았던 힘을 다시 볼 수 있게 됐으니.”
그렇게 말하는 오르비스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이유는 금방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그 아이는 잘 갔느냐?”
디에손.
오르비스는 자신의 자식이나 다름없는 디에손의 마지막을 묻고 있었다.
현석을 일행에서 빼온 것도 이것 때문이었다.
현석은 몰라도 적어도 다른 이들에게까지 약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뭐… 가는 거야 잘 갔어.”
현석은 순간 좋은 식으로 포장해줄까도 생각했지만.
그런 행동은 무의미하다고 여기곤 대충 돌려 대답해주었다.
세상에 어디 아름다운 사투가 있는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오르비스라면 그러한 사실 정도는 이미 알고 있을 터. 그럼에도 괜히 묻는 것이었다.
디에손은 그녀가 처음으로 창조한 신이기도 하니.
“그래. 그거면 됐다.”
오르비스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루 만에 디에손과 루아라. 두 자식이 소멸해서 그럴까.
이번만큼은 오르비스의 얼굴에 슬픈 감정이 역력하게 드러난 상태였다.
때문에, 현석은 괜히 그녀의 어깨를 치며 물었다.
“그럼 루아라는 어떤 힘을 희생해서 만든 거냐?”
“…뭐라?”
“디에손이 성화면 루아라도 뭐가 있을 거 아니야. 그 힘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좀 얻고 싶은데.”
“넌 지금 꼭 그걸 물어야겠느냐?”
오르비스가 미간을 와락 좁혔다.
그리곤 현석을 향해 불만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네 녀석이 눈치 없는 것쯤은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구나.”
그래. 이래야 내가 아는 오르비스지.
현석은 그 모습을 보며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간만에 상념에 좀 빠져서 옛 생각이나 하려고 했더니 너 때문에 다 망쳤구나.”
“그래서 무슨 힘을 포기했는데.”
“없다 그런 거! 디에손을 창조하며 얼마나 큰 희생이 따르는 줄 알게 됐는데 똑같은 실수를 할 것 같으냐?”
됐으니 어서 오기나 해라.
그녀는 그렇게 덧붙이곤 씩씩거리며 일행을 향해 돌아갔다.
“역시 그랬군.”
홀로 남은 현석이 중얼거렸다.
뭐… 루아라를 창조하는 데 희생한 힘이 없다는 것쯤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안 그래도 개미굴로 이동하며 이미 한 번 시도해봤으니까.
그래도 혹시 몰라 물은 것인데.
당사자에게 직접 들으니 내심 아까웠다.
잘하면 게일을 상대할 때 쓸 수 있는 무기가 하나 더 늘어날 수 있었는데.
그래도 상관은 없었다.
지금은 성화만으로도 어마어마한 수확이었으니.
* * *
현석은 곧장 일행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이제 다음 층으로 가면 되는 건… 음?”
그런데 다른 일행들이 보이지 않았다.
오직 내셔 혼자만 그곳에 서 있었다. 다소 어두운 얼굴로.
“뭐야? 왜 너 혼자 있어? 다른 애들은.”
“그분들은 상황을 설명한 뒤 위로 먼저 보내드렸습니다.”
“설명? 무슨 설명.”
“그건… 고룡께서 더 자세히 설명해주실 겁니다.”
“갑자기 고룡이 왜 나오….”
현석이 그렇게 묻는 순간.
눈 깜빡할 사이에 공간이 반전되며 고룡의 서재가 나타났다.
늘 그랬듯 고룡은 의자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진 않네.
녀석 또한 내셔와 마찬가지로 표정이 썩 좋지 않았다.
그것만으로 현석은 상황이 얼마나 안 좋은지 직감할 수 있었다.
지금껏 고룡은 단 한 번도 제 감정으로 겉으로 드러낸 적이 없었으니.
때문에, 현석은 사설 없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무슨 일이지? 게일 쪽에서 무슨 움직임이라도 있었나?”
“역시 눈치가 빠르군.”
“네가 이렇게 심각한 표정을 할 정도의 일은 그것밖에 없으니까.”
사실상 현재 탑에서 일어나는 일의 구도는 ‘고룡 vs 게일’이었다.
배신자들의 주동자인 게일은 모종의 이유로 탑의 생태계를 부서뜨리는 중이고, 고룡을 그걸 막고자 하고 있었으니.
“그래서 어떻게 된 건데.”
“후우… 일단 게일의 상황부터 설명하자면 녀석은 10층에 있는 상태다.”
동시에 탑에 있는 누구보다 ‘열매’와 가까운 등반자이기도 했다.
“너도 알겠지만, 게일은 그곳에서 꽤 오랜 시간 머무르며 가지 구역으로 넘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어.”
“그렇지.”
현석이 팔짱을 낀 채 답했다.
“관리자들과 결탁은 하긴 했지만, 녀석은 그 이상의 행동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가 손을 잡았다는 걸 눈치챈 모양이야.”
“그걸?”
현석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게일이 자신과 고룡의 관계를 추측했다면 분명 내셔를 보고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었다.
하지만 현석은 7층에 있던 관리자들을 한 놈도 빠짐없이 죽였다.
그리고 그건 내셔 또한 확인한 바였다.
다른 관리자들과의 전투 이후 내셔에게 혹시 다른 관리자가 더 있냐고 물어본 현석이었으니까.
그렇기에 게일이 지금 상황에서 자신과 고룡과의 일을 알아냈을 리는 없을 텐데….
“나조차도 그건 알 수 없다만 아무래도 디에손이 죽었다는 사실만으로 우리의 관계를 알아낸 모양이더군. 말은 안 했지만 디에손은 탑 내에서도 손에 꼽는 등반자였거든.”
“아. 그러면 충분히 그럴 수 있겠어.”
디에손이 만약 고룡이 말한 위치였다면 게일이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채는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굳이 우리 관계가 아니더라도 디에손이 그 정도였다면 경각심을 가질 만하군.”
“맞는 말이다. 열매를 코앞에 둔 녀석의 입장에선 작은 위험 변수 하나조차도 신경 쓸 수밖에 없으니까.”
더군다나 게일이 바보가 아닌 이상 현석이 탑에 왔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을 터.
“그럼 녀석이 무슨 짓을 했기에 네 표정이 썩은 거지?”
“놈이 10층을 완전히 장악했다.”
“장악했다고?”
“달리 말해 그곳을 제 요새처럼 만들었다는 뜻이다. 아무도 못 들어오게 말이야.”
“그게 가능해?”
“불가능하진 않다. 만약 그만한 신격을 쌓았다면 말이지. 그래도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고룡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현석의 앞으로 다가온 뒤 다시금 입을 열었다.
“길이야 내 능력으로 뚫으면 돼. 게일은 10층으로 올라갈 퀘스트조차 막았지만, 그것 또한 만들어주면 될 일이고. 문제는… 녀석이 제 세력을 전부 9층으로 보냈다는 뜻이지.”
현석은 그 말의 속뜻을 알 수 있었다.
아무리 고룡이 쉬운 퀘스트를 주려고 해도.
방해가 워낙 심해 쉽지 않을 거란 얘기였다.
하지만 현석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래도 해야지 뭐 어쩌겠어.”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군. 그래서 이번에 너를 한 번에 9층으로 보내줄 생각이다.”
“그게 낫겠군.”
원래라면 층을 오름과 동시에 보상을 얻어 힘을 키워야 했지만.
상황이 너무 긴급했다.
자칫 게일이 열매를 손에 넣을 수도 있는 상황.
지금은 한시라도 빨리 10층으로 올라가는 것을 목적으로 해야 했다.
“그럼 내 일행들에게도 우리 관계나 이런 사정을 다 말해줬겠네?”
“그래. 이제 남은 건 너다. 그리고 너에겐 다른 특별한 거 하나를 더 주도록 하지.”
고룡은 그렇게 말하며 양손에 발광하는 구체를 소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