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God-Killing Archmage RAW novel - Chapter 152
151화
현석의 시선이 구체로 향했다.
그곳에선… 어마어마한 양의 신격이 느껴지는 중이었다.
“디에손과 루아라의 신격이다. 본래라면 죽음과 동시에 소멸해야 하지만, 내 힘으로 붙잡아두고 있었다. 이게 있어야 싸움이 수월할 테니.”
고룡이 신격을 건넸다.
현석이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그것을 받았다.
“이거면 확실히 큰 도움이 됐겠군.”
그렇지 않아도 디에손과 루아라는 죽자마자 시체가 사라져 [포식]을 사용하지 못해 내심 아쉬웠는데 말이야.
후우우우웅!
현석은 곧장 신격을 흡수했다.
오색찬란한 빛이 현석의 몸을 감쌌다.
“후우… 좋은데?”
확실히 탑에 오래 있던 존재들인 만큼 격이 오르는 게 아주 선명하게 느껴졌다.
고룡은 만족스럽다는 얼굴로 현석의 모습을 훑었다.
“그 정도면 적어도 게일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진 않겠군.”
“내가 누군데. 그럼 일행들에게는 뭘 줬지? 말하는 걸 보면 걔네들한테도 뭐 준 거 같은데.”
“비슷하다. 신격을 올려주었지. 다만 너처럼 많은 양은 힘들었다. 한 번에 갑작스럽게 많은 신격을 받으면 몸이 붕괴할 수 있으니.”
어디까지나 현석의 신격이 높았기에 디에손과 루아라의 신격을 받을 수 있던 것이었다.
“그럼 얘기는 여기까지. 9층으로 바로 이동하도록 하지. 얘기는 끝내 놨으니 너무 놀라진 말고.”
“음? 그게 무슨 소리야.”
누구랑 얘기를 했다는 건데?
현석이 의문을 표하기도 전에.
화악!
강한 빛이 뿜어지며 현석의 시야를 가렸다.
* * *
빛이 사그라들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주변은 온통 암흑뿐이었다.
“뭐야. 고룡 녀석. 제대로 된 설명도 없이.”
현석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에단을 찾았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녀석의 기운은 느껴지지 않았다.
“뭐지?”
현석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고룡의 방이면 몰라도 그곳을 나온 이상 에단의 기운이 느껴지는 게 정상일 텐데.
이상하게도 에단뿐만이 아니라 다른 일행의 기운 또한 느껴지지 않았다.
“조금 전 고룡이 말한 ‘그 녀석’들과 관련이 있는 건가.”
아마 그럴 가능성이 높았다.
고룡이 친근하게 말할 정도면 보통내기들이 아닐 테고, 그들이 있는 장소 또한 마찬가지일 테니까.
달리 말해.
“바로 9층으로 가는 게 아니잖아?”
이곳은 9층으로 가기 위한 징검다리인 셈이었다.
어떻게 보면 고룡의 방과도 비슷한 장소.
“그나저나….”
현석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여전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어둠에 눈이 익으면 뭐라도 눈에 들어올 줄 알았건만.
허공에 화염이라도 피워보려 했지만, 어째서인지 기운이 모이지 않았다.
아마 지금 있는 장소의 특성일 것이었다.
“이렇게 아무것도 안 보이면 뭘 알 수가….”
현석이 그렇게 중얼거리는 순간이었다.
쿵!
강한 빛과 함께 그의 앞에 거대한 비석이 나타났다.
“….”
현석은 짐짓 놀란 얼굴로 눈앞에 있는 비석을 올려봤다.
실로 어마어마한 크기였다.
어지간한 고층 건물보다 훨씬 더 거대한 크기.
가만히 보고만 있어도 상당한 위압감이 느껴졌다.
비석엔 알 수 없는 글씨들이 굵게 적혀 있었는데, 현석조차 처음 보는 문자였다.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조차 모르겠는데?”
어지간한 문자는 쉽게 해석할 수 있는 현석조차도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가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쿵!
또 한 번의 빛과 함께 다른 비석이 모습을 드러냈다.
전체적인 느낌은 비슷하나, 처음에 보인 것과는 사뭇 분위기가 달랐다.
첫 번째 비석에 비해 두 번째는 색이 청록색에 더 가까웠으며, 세 번째 비석은 첫 번째와 큰 차이는 없지만 곳곳에 깨진 흔적이 역력했다.
쿵, 쿵, 쿵!
이어서 나타난 비석들도 마찬가지.
마치… 전부 하나의 개성을 가지고 있는 느낌이라고 할까.
현석은 어느새 자신을 둥글게 포위하고 있는 비석들을 쭉 둘러봤다.
“신기하네. 살면서 이런 것들을 보는 건 처음이야.”
현석은 자신도 모르게 감탄을 내뱉었다.
그도 그럴 것이 비석은 실로 신비로운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얼핏 보면 평범한 비석이지만, 생명력이 물씬 들어가 있어 순간 살아있는 생명으로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동시에 비석들로부턴 죽음이 느껴지기도 했다.
쉽게 말하자면 무생물과 생물, 생명과 죽음이 공존해 있다고 해야 할까.
아니지.
그냥 어렵게 말로 풀어 할 존재들이 아니었다.
비석들은 존재 자체가 모순덩어리인 기괴한 물체였으니.
“너희들이 고룡이 말한 자들인가?”
현석이 태연한 투로 물었다.
처음 비석을 봤을 때만 해도 내심 긴장감이 느껴졌지만.
비석에게 아무런 적개심이 없는 것은 물론,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일전의 고룡의 말이 떠오른 덕분이었다.
우우우우웅!
현석이 물음에 비석들이 발광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비석만을 비추고 있던 빛이 점점 범위를 넓혀가더니 이내 공간 전체를 밝게 비추었다.
현석이 있는 공간은… 판테온과도 같은 장소였다.
그 사실을 자각하기 무섭게 거친 바람과 함께 흙먼지가 사방에 흩날렸다.
참으로 묘한 일이었다.
빛이 없어 공간을 단지 어둠 속이라 인지했을 때만 해도 모래의 느낌은 주변에서 조금도 느낄 수 없었는데.
빛이 드러나 공간을 비추기 무섭게 모래바람이 불 줄이야.
하지만 지금은 겨우 그런 일에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그리고 공간 전체를 울리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현석은 눈살을 찌푸린 채 목소리에 귀를 집중했다.
-신전에 입장이 허가된 이여. 우리를 소개한다.
-우리는 잊힘과 동시에 기억되고 있으며.
-우리는 죽었으면서도 이렇게 살아 있으며.
-실체가 있지만 동시에 없기도 한 존재이다.
-누군가에겐 허상일 수도, 누군가에겐 현실일 수도 있지.
-누구는 우리를 올려다보고, 누구는 우리를 내려다본다.
-너는 우리가 누군지 알겠는가?
갑작스러운 질문.
도통 누가 말하는지 알 수 없는 목소리에 골이 울렸지만, 현석은 아무렇지 않게 답했다.
“너희들은… 탑 그 자체이군.”
오벨리스크의 탑.
현석이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간단했다.
앞서 비석들이 말한 모든 조건에 해당되는 존재는, 현석이 알기로 오벨리스크의 탑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탑은 분명히 존재하나 보이기 전까진 그 존재를 자각할 수 없으며.
탑을 포기한 자는 탑에 대한 기억을 잃으나, 탑에 머무르는 자는 누구보다 생생하게 이곳에서의 일을 기억하는 등.
모든 정황이 오벨리스크의 탑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정답이라는 듯 다시금 웅웅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해가 빨라서 좋구나.
-과연 그가 괜히 우리에게 순리를 비틀면서까지 부탁한 게 아니군.
“그라면 고룡을 말하는 건가?”
-그래. 녀석이 우리에게 부탁했다. 탑의 순리를 깨고 너를 9층으로 올려보내 달라고.
“하긴 그런 건 탑에게 부탁해야 될 일이군.”
분명 고룡은 자신이 직접적으로 탑에 개입할 수 없다고 말했었으니.
“사실 너희들에게 궁금한 게 많긴 한데 내가 상황이 급해서 말이야. 일단 9층으로 보내주면 안 될까?”
-안 된다. 어디까지나 우린 부탁을 받았지, 네 놈을 보내준다고 한 적이 없다. 네 놈을 올리기 전에 절차를 밟아야 한다.
-하지만 걱정하지 말거라. 나는 탑 그 자체이다. 네가 이곳에 온 순간부터 외부의 시간은 멈췄으니.
“뭐… 너희들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현석은 별다른 말 없이 그들의 말에 수긍했다.
사실 마나도 사용할 수 없는 이곳에서 자신이 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단지 궁금할 뿐이었다.
“그럼 그 절차라는 게 뭐지?”
-간단하다. 우리 중 모두가 네 녀석을 9층으로 올리는 데 승낙하면 된다.
-본디 탑은 순차적으로 오르는 장소.
-우리는 이런 식으로 뛰어넘도록 설계된 존재가 아니다.
-그렇기에 이러한 순리를 비트는 일엔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 하고.
-우리는 그것을 볼 것이다.
-네게 합당한 이유가 있는지.
우우우우웅!
비석들이 말을 마치자.
그들의 전신에 새겨진 글씨에서 푸른 빛이 새어 나왔다.
그러기를 잠시.
화아아아악-!
모든 빛이 일제히 현석을 향해 뿜어졌다.
현석이 반사적으로 눈살을 좁혔다. 하지만 눈이 부시지는 않았다.
단지 빛이 자신의 뇌를 헤집고 있는 기분이었다.
마치 자신의 모든 기억을 더듬고 현석이 느껴온 감정과 감각들을 음미하는 기분.
썩 달가운 감각은 아니었지만, 현석은 잠자코 있었다.
툭.
비석 중 하나에서 뿜어지던 빛이 꺼진 것은 그때였다.
이번만큼은 비석에서부터 명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승낙한다.
-이 정도면 순리를 거슬러도 문제가 없을 것 같군.
툭.
-나도 승낙한다.
-과연 고룡이 그토록 자신 있어 한 이유가 있군.
그렇게 승낙하는 비석이 하나둘 나오고.
툭.
-나도 승낙하지.
마지막 비석이 현석을 9층으로 보내는 것에 긍정적인 답을 뱉었다.
“내게서 무엇을 본 거지?”
-경우의 수.
-먼저 네 인생을 뜯어 보고 너라는 존재에 대해 100% 파악했다.
-한 마디로 너를 데이터화 한 거지. 예측이 용이하도록.
-그리고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과연 네가 8층을 무사히 넘을 수 있는지.
-그 결과 100%가 나왔다.
-무려 수억 개의 변수에도 너는 반드시 9층으로 향하더군.
-이러하면 순리를 거슬러도 문제가 없겠지.
“…탑이라 그런지 별별 게 가능하군.”
현석이 믿을 수 없다는 듯 혀를 내둘렀다.
설마 저런 게 가능할 줄이야.
이런 비석들의 능력을 눈으로 확인하고 나니 문득 그런 궁금증이 들었다.
“차라리 너희들이 관리자를 하지 그랬어. 그랬으면 게일을 비롯한 배신자들이 이곳에서 판치는 일이 없었을 텐데.”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곧바로 단호한 대답이 들려왔다.
처음 들었을 때처럼 누군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공간을 울리는 여러 개의 목소리였다.
-우리는 그저 탑이다.
-너는 본인의 몸을 스스로 고칠 수 있나?
-너는 본인의 몸을 직접 수술할 수 있나?
-아무리 네가 상당히 뛰어난 마법 능력이 있다고 한들, 스스로의 몸을 세포 단위 하나하나 쪼개며 관리할 순 없을 터.
-그건 애초에 신조차도 불가능한 일이다.
-신은 이해하고 바라보는 존재이지 결코 스스로를 돌보는 존재가 아니니까.
-그래서 우리의 아종과 같은 ‘관리자’들이 있는 것이다. 다만 조금 타락했을 뿐.
“조금이 아니라 많이 타락한 거 같긴 한데, 대충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는 알겠어.”
탑이 스스로를 하나의 유기물처럼 여기다니.
겉으로 티는 내지 않았지만, 여러모로 신기한 일이었다.
‘대체 여기서만 몇 번 놀라는 건지.’
탑의 설계도가 무척이나 궁금해짐과 동시에, 그런 것을 설계한 고룡은 대체 어떤 존재인지 새삼 궁금했다.
신과 탑을 초월한 존재라니.
아마… 게일과의 전투가 끝나면 알 수 있지 않을까?
여차하면 열매를 통해 탑과 관련된 정보를 습득해도 되고.
열매만 손에 넣으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했으니.
-그럼 가거라. 이곳에서의 볼일은 모두 끝났다.
콰르르르!
현석이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비석들과 함께 판테온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며 어둠이 찾아왔다.
그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현석 괜찮은가?
“눈 떠 보거라 둔치야. 괜찮느냐?”
“형 괜찮아?”
반가우면서도 반갑지 않은 얼굴들이 가까이서 보였다.
일행들이 머리가 자신을 내려다 보고 있는 탓에 주변의 풍경이 보이지 않았지만.
현석은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곳은 9층이라고.
동시에… 비석들을 통해 거쳤던 절차는 형식상에 불과했다는 것을.
‘이미 9층행은 확정이었군.’
단지 말만 안 했을 뿐.
그 이유는… 지금 당장은 알 수 없었다.
나중에 고룡을 만나면 물어보든가 해야지. 지금은 때가 아니었다.
9층까지 온 이상 더는 망설일 건 없었다. 서둘러 10층으로 향해야 했다.
그리고 현석의 생각이 거기까지 닿기 무섭게.
[10층으로 가기 위한 퀘스트.] [문을 열어라.]고룡이 남긴 것으로 보이는 퀘스트가 눈앞에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