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alter ego is becoming a tycoon RAW novel - Chapter (494)
비밀 (3)
“그럼 갈게. 나 없는 동안 할머니 잘 부탁한다.”
“걱정하지 마. 너나 몸조심하고.”
그 짧은 대화가 마지막이었다.
이미 필요한 말은 훈련하는 동안 충분히 나눴기에 더 길게 끌 필요도 없었다.
우우우웅—
슬슬 동이 터 올 시간.
그렇게 강태산은 발밑에 생성된 이세계 전송진 위에 올라 지구에서 모습을 감췄다.
“···후우, 갔나.”
혼자 남은 나는 잠시 녀석이 있던 자리를 보다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나뿐인 친구의 각성과 이계 전송.
그 갑작스러운 이벤트에 대응하면서 계속 신경을 쏟고 있었던 만큼 슬슬 피로가 몰려오는 듯했지만 벌써 쉴 수는 없었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있었으니까.
목덜미를 주무르던 나는 그 자리에서 눈을 감고 호흡을 골랐다.
그리고 자신의 내면 깊은 곳으로 침잠하며 심상 속의 신성에 집중했다.
계약과 믿음으로 엮인 통로를 통해 강태산이 넘어간 차원을 관측하기 위해서였다.
‘혹시 모르는 일이니 만약의 사태에 대한 대비는 해둬야겠지.’
녀석에게 허락된 신성력은 본디 나라는 존재에서 파생된 힘이었다.
당연히 그 힘에 대한 최종 권한 또한 내게 있었고, 나는 그것을 통해 여러 다양한 조건을 설정할 수 있었다.
예컨대··· 그 신성력을 보유한 ‘신도’의 능력으로 헤쳐 나올 수 없는 위기 상황을 능동적으로 파악해 직접 보고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그리고 원한다면 언제든 그 좌표로 「이계전송진 소환」을 사용할 수 있도록.’
진짜 신이라면 이렇게 신자 하나하나마다 전부 신경 쓰지 않겠지만, 난 아직 정식 신좌에도 오르지 못한 지망생 신분일 뿐이었다.
그렇게 난 최초이자 단 하나뿐인 신도인 강태산과의 연결고리를 찾아낼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알아낸 한 가지 뜻밖의 사실이 있었으니···.
‘어? 이건?’
알고 보니 자신에게 속한 신도가 하나뿐만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분명 신성력을 대가로 정식 계약을 맺은 건 강태산뿐일 터인데.
그 못지않게 두꺼운··· 아니, 아무리 봐도 그보다 확연히 굵은 연결 하나가 자신과 단단하게 이어져 있었다.
‘잠깐, 이거 디아나잖아?’
그게 누군지 알아내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걸 의식하는 순간 그 연결 대상에 대한 정보들이 머릿속에 선명하게 각인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왜 이런 현상이 발생했는지도 곧장 이해할 수 있었다.
‘···날 신뢰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맹목을 넘어서 광신에 가까운 절대적인 믿음.
신성을 싹틔우기 전에도 디아나의 내면에서 나는 이미 신앙이나 다름없었다.
내가 최소한의 자격을 만족하기 무섭게 곧바로 신도로 편입되어 올 정도로.
‘그게 전부가 아니군. 디아나만큼은 아니지만 적당한 계기만 있다면 바로 정식 신도가 될 수 있는 후보자들의 수도 상당하잖아?’
강태산처럼 계약으로 엮여있는 제국의 라일리 황태녀와 사바천 차원의 라뮤는 물론이고, 그동안 관계를 맺은 수많은 인연들과 심지어 한스 휘하 불사의 군대의 간부진까지.
국적과 종족, 성향, 그리고 차원까지 불문하고 그 영향력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다.
“하, 이거 참. 졸지에 전 차원적인 종교를 세우게 생겼네.”
뭔가 민망하면서도 뿌듯한 기분이 밀려들었다.
이 인연들은 모두 내가 그동안 온갖 우여곡절을 겪으며 쌓아 올린 자산이었다.
그런데 그런 걸 이렇게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게 되니 뭔가 뭉클해질 수밖에 없었다.
‘···일단 디아나와 이야기를 좀 해봐야겠군.’
휴버트의 비서인 그녀와 대화할 시간을 만드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지그시 눈을 감은 채로 그동안 맺은 인연의 끈들을 하나씩 되짚었다.
약 4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있었던 지난 일들을 떠올리며.
***
묘한 부유감이 몸을 감쌌다.
보통 사람은 평생 가도 느낄 수 없는, 차원을 넘어서면서 발생한 묘한 감각.
하지만 그 이질감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벌써 끝났나? 생각보다 별거 없네.’
순식간에 이루어진 차원 전송에 강태산은 질끈 감았던 눈을 뜨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전송이 끝나기 무섭게 떠오른 메시지들 덕분에 이 세계의 명칭이 무엇인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
《녹터니아 차원으로 전송이 완료되었습니다.》
《카르마 상점의 ‘귀환’ 항목을 통해 지구로 귀환할 수 있습니다.》
《현재 보유 카르마 0. 추후 카르마 상점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듬성듬성하면서도 높게 치솟은 나무와 그 사이로 보이는 푸른 하늘.
아무리 둘러봐도 그저 한없이 평화로워 보이는 산골의 풍경이었다.
“녹터니아···?”
하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 넘어온 차원이 지금 눈에 보이는 것처럼 그리 평화롭지만은 않다는 것을.
‘이걸 불행이라고 해야 할지,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그는 이 세상— 녹터니아에 대해 어느 정도는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업무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숙지해 둬야만 했던 세계 중 하나가 바로 이곳이었던 것이다.
“···당장 위험은 없는 것 같네.”
날카로운 눈으로 주변을 경계하던 그가 메고 있던 가방을 조심스럽게 풀어 내렸다.
그리고 잠시 그 안을 뒤적거리고는 곧이어 책자 하나를 꺼내 표지를 살폈다.
-No.102 녹터니아
세계 귀환자 협회에서 수많은 귀환자를 통해 수집한 정보를 정리해 발간한 공식 매뉴얼.
그중에서도 지도는 물론 변경된 세력 구도와 최근 정세 같은 것까지 모두 기록된 최신 수정본이었다.
“확실히 적재 공간이 넓으니까 편하네. 다른 사람들은 이런 건 엄두도 내지 못할 텐데.”
전자기기는 이세계로 가져갈 수 없다.
아무리 이 책자가 비교적 얇은 편이라고는 해도, 전송될 가능성이 있는 차원의 수가 수백에 달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모든 시리즈의 부피와 무게는 절대 무시할 수 없었다.
그런데 당장 생존 물품과 비상식량 등을 챙기기도 빠듯한 판에 다른 데에 여력을 할애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않나.
‘이게 다 성현이 그 녀석 덕분이지.’
공간 확장 배낭을 쓰다듬으며 다시 한번 친우에게 감사를 표한 강태산이 책자를 분류해 따로 챙겨 넣었다.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자리에 앉아 차분하게 정독하고 싶었으나, 일단은 안전한 장소부터 찾는 게 우선이었다.
숲속에서 맞이하는 밤은 해가 떠 있는 지금보다 훨씬 더 위험할 테니까.
‘근처에 마을이라도 있으면 좋겠는데. 일단 이곳의 지명만 알아도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기 더 편해질 테니. 아니면 랜드마크나 지역 특유의 무언가라도 있으면···.’
그런데 그 순간.
타다다당—
타앙—
숲 어디선가부터 시작된 총성이 연달아 울려 퍼졌다.
그 직후 일시에 날아오르기 시작한 무수한 새 떼.
다수가 참전한 교전이라도 일어난 건지 쉴 새 없이 터져 나오는 소음이 단번에 숲의 정적을 깨뜨렸다.
‘근처는 아니야. 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먼 것도 아니다.’
소리만 듣고도 알 수 있었다.
작정하고 움직이면 저 총성의 근원지까지 가는 건 그리 어렵지 않으리란 것을.
지금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었다.
정보를 얻기 위해 어느 정도의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다가가서 이 세상의 인간들과 접촉해 볼 것인가.
아니면 안전을 위해서 반대 방향으로 몸을 피한 뒤 다른 상황을 물색해 볼 것인가.
‘···일단 피하자.’
그의 선택은 후자였다.
아직 자신이 떨어진 위치가 어딘지, 지금 무슨 상황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두 파악하지 못한 상태였다.
이미 만반의 대비를 갖춰 온 데다 딱히 절박한 상황도 아닌데 굳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었다.
‘괜히 눈먼 총알에 맞을 수도 있고 말이지.’
하지만 상황은 그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최대한 기척을 죽인 그가 짐을 챙기고 앞으로 한 걸음 내디딘 찰나.
부스럭—
갑자기 수풀 너머에서 불쑥 튀어나온 한 인영과 그의 시선이 정면으로 마주쳤다.
“젠장···! 확실하게 따돌렸다고 생각했는데 설마 여기에도 매복이 있다니. 바퀴벌레 같은 사냥꾼 놈들이 끈질기기는 더럽게 끈질기구나!”
한바탕 격전을 치르고 왔는지 곳곳이 뜯어진 의복을 걸친 사내가 강태산을 보고 이를 갈았다.
그의 눈에 핏빛 광망이 어리며 사방으로 짙은 혈향이 퍼져 나갔다.
금방이라도 공격을 시작할 것처럼.
대화로 오해를 풀 여유 따위는 없었다.
‘젠장! 타이밍 참 거지 같네!’
생각과 행동은 동시였다.
강태산은 육체에 각인된 대로 뒤로 몸을 던지며 홀스터에서 꺼낸 블랙 스타를 겨눴다.
알 수 없는 기운 때문에 전신이 뻑뻑했으나 전송 직전까지 있었던 훈련 덕분인지 큰 무리 없이 움직일 수 있었다.
카강—!
하지만 채 방아쇠를 당기기도 전.
어디선가 날아든 칼날에 그는 손에 쥐었던 권총을 놓치고 말았다.
“하! 역시 보통내기는 아니었구나. 단번에 목을 베려고 했거늘, 설마 내 혈주안을 정면으로 마주하고도 움직일 줄이야. 하지만 여기까지다!”
「불요불굴」의 기운이 온몸을 휘돌며 육체를 억압하는 기운에 저항했다.
하지만 그것뿐.
아직 일반인일 때의 상태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지금 신체 능력으로는 상대의 움직임에 제대로 반응할 수조차 없었다.
‘고위 흡혈귀! 하필이면 넘어오자마자···!’
불합리하다고 하늘을 원망하고만 있을 시간은 없었다.
갑작스럽게 닥쳐온 위기 속에 그의 사고가 빠르게 가속했다.
그와 동시에, 몸속에서 꿈틀거리던 신성력이 뇌리로 치닫기 시작했다.
“감히 나 비숍 프루브를 혼자서 상대하려 한 네 무지함을 탓하라!”
전면에서 흡혈귀가 쇄도했다.
저주 섞인 붉은 혈기가 어른거리는 한 쌍의 눈과 쩍 벌어진 입가로 삐져나온 날카로운 송곳니, 사방에서 날아드는 무수한 핏빛 칼날.
더 시간을 지체할 생각도 없는 듯 무지막지한 기세가 사방을 찍어 눌렀다.
‘재수 한번 더럽게 없네!’
‘비숍’은 지구 기준으로 따지면 5~6레벨 정도였다.
극의라 할 수 있는 7레벨 ‘룩’과는 고작 한 단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강자.
막 이세계로 넘어온 신참 각성자가 어찌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어쩔 수 없지.’
그 절체절명의 순간.
딸깍—
강태산의 심상 속에서 하나의 스위치가 켜졌다.
***
이세계로 전송된 각성자는 지구로 귀환하는 순간 성장이 멈춰 버린다.
고유스킬을 비롯한 모든 스킬의 숙련도가 더 이상 증가하지 않고, 시스템의 보정이 사라져 스테이터스도 올릴 수 없으며, 지구에 자생하는 신비가 없어 기운을 더 쌓아 올릴 수도 없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점이 있지.”
그렇다면 아예 이세계로 떠나기 전 시점의 지구에서라면 어떨까?
필요한 에너지는 실시간으로 공급하는 신성력으로 대체하고, 따로 성장에 적합한 환경까지 구성해 준다면?
나는 강태산을 훈련시키면서 그 의문에 대한 답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결과는 상당히 고무적이었어. 물론 『성장의 비약』이 상당히 큰 몫을 했겠지만.’
실전 단련 과정에서 특히 신경 쓴 건 「불요불굴」을 계속해서 자극하는 것이었다.
특별한 기운을 이용하든 물리력을 이용하든, 녀석을 끝없이 극한의 상황으로 밀어붙이며 억지로 그것을 이겨낼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물론 그 체내에 깃든 신성력을 강제로 활성화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약 이틀.
전송 직전의 몇 시간을 제외하면 잠도 재우지 않고 녀석을 두들겨댔다.
억지로라도 극한의 상황으로 밀어 붙어 고유스킬을 성장시키기 위해.
“후, 정말 나 같은 친구가 또 없다니까.”
그리고 그 결과.
강태산은 이세계로 전송되기도 전에 고유스킬을 성장시킨 건 물론.
거기에서 비롯된 하나의 파생 스킬과 몇몇 자잘한 스킬들을 깨우칠 수 있었다.
‘거기다 내가 준 장비들에 신성력의 특성까지 더해지면···.’
운 나쁘게 극의 이상의 상대만 만나지 않으면 충분히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그걸 온전히 본인만의 능력이라고 보기엔 조금 애매하긴 하겠지만.
“뭐, 어때. 원래 인맥이라는 게 다 그런 거 아니겠어?”
자신처럼 유능한 친구를 둔 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이었다.
나는 태연하게 어깨를 으쓱이며 의자에 몸을 파묻었다.
지금까진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이세계로 넘어간 강태산을 포함해서.
***
녹터니아 차원.
이곳에 대해선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하나의 별칭이 있었다.
전 차원 최대의 흡혈귀 발생지.
지구는 다양한 차원의 흡혈귀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중심지였지만, 그중에서도 약 30%가량이 녹터니아 출신일 정도로 그들이 차지하는 비율이 압도적이었다.
지성체는 오로지 인간과 뱀파이어 단 두 종족만이 존재하며, 그 두 집단 사이의 대립이 끊이지 않는 세상.
사바천처럼 누가 중재하거나 어떻게 막을 수 있는 싸움이 아니었다.
이건 서로의 생존이 달린 투쟁이었으니까.
“끄그극··· 뭐, 뭐냐 이건···. 분명 축성된 탄환은 아닌데 대체 왜 재생이 되지 않는···.”
그 녹터니아에서 비숍급 뱀파이어는 실재하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천외천인 킹과 퀸은 완전히 논외였고, 한 지역의 우두머리나 다름없는 룩은 어지간해선 직접 나서지 않는다.
결국 인류가 마주한 위협 중 가장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행동대장 격인 비숍일 수밖에 없었다.
결코, 이렇게 초라한 몰골로 널브러져 있을 존재가 아니었다.
“뭐냐! 대체 뭐냔 말이다! 너는! 어째서 내가—!”
몸 곳곳에 구멍이 뚫리고 사지가 날아간 뱀파이어가 피를 토하며 발광하기 시작했다.
발악이라도 하듯 혈계 능력인 ‘혈주안(血呪眼)’으로 이리저리 저주를 퍼뜨려 봤지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상대는 조금의 미동도 보이지 않았다.
“후우.”
그런 그를 가만히 내려다보던 강태산이 「불요불굴」로 머리끝까지 치달았던 신성력을 겨우 가라앉히며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그의 모습도 그리 멀쩡한 편은 아니었다.
온통 먼지를 뒤집어쓴 건 물론 방어구 곳곳에 흠집이 생긴 데다 상처도 적지 않았으니까.
‘뭐, 상대를 생각해 보면 이 정도로 그친 게 다행이지만. 「백전불태」가 없었으면 불가능했겠지.’
적과 자신에 대해 파악한 정보를 바탕으로 본인의 모든 능력을 강제로 끌어올려 어떻게든 활로를 찾아내는 능력— 「백전불태」.
그것이 바로 친구인 한성현에게 이틀 내내 두들겨 맞다가 개화한 파생 스킬이었다.
물론, 자신의 한계를 넘어선 능력을 강제로 끌어내는 만큼 나중에 밀려오는 후폭풍도 장난이 아니었다.
‘젠장··· 대체 그 새끼는 평소에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거야? 「불요불굴」이 대부분의 충격을 거르고 있는데도 머리가 터질 것 같네.’
신성력을 극한으로 사용하면서 생긴 변화는 단순한 육체 강화뿐만이 아니었다.
어디서 비롯되었는지도 모를 전투 경험과 지식, 직감 등이 순간적으로 그에게 비숍을 능가하는 전투력을 부여해 주었던 것이다.
아직도 밝히지 않은 비밀이 많은 친구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기운은 그중에서도 유독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힘이었다.
“이제 그만 끝내자. 나도 좀 무리해서 이만 쉬어야 할 것 같다.”
강태산은 조금씩 아물다가 완전히 사라진 자신의 상처를 흘깃 바라보곤 블랙 스타를 들어 올렸다.
자신을 겨누는 총구를 멍하니 바라보던 뱀파이어가 그때서야 뭔가를 깨달았다는 듯 눈을 부릅떴다.
“너··· 너! 그 총···! 설마!”
탕—! 탕—!
그러나 그의 유언은 채 마무리되지 못하고 덧없이 흩어질 수밖에 없었다.
소실된 사지조차 제대로 재생하지 못했던 그에겐 심장과 머리가 동시에 날아가고도 부활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으니까.
‘본의 아니게 선택지가 강제되어 버렸네.’
총구를 내린 강태산이 재차 한숨을 내쉬며 뒤를 돌아보았다.
원래는 조용히 몸을 피해서 상황 파악부터 할 생각이었는데···.
‘어쩔 수 없지. 괜히 돌아갈 필요가 없으니 차라리 잘 된 걸지도.’
파스스슥—
그가 바라본 방향에서 수풀 헤치는 소리와 함께 일단의 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전신을 보호 장비로 감싸고 비효율적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온갖 기괴한 형상의 총기들로 무장한 대여섯 명의 남녀.
지구의 각성자 강태산이 녹터니아의 뱀파이어 사냥꾼— 슬레이어들과 대면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