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 Pil Heaven RAW novel - Chapter 149
신필천하(神筆天下) 149화
10. 칼끝은 사랑하는 이에게 향하지만
식사가 끝난 뒤 진양은 무인들과 제자들을 먼저 신필문으로 돌려보냈다.
대신 진양과 유설은 따로 구화산의 무림맹 총단에 들렀다가 가기로 했다.
챙겨올 짐도 있었지만, 가신풍이 아직 무림맹 총단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다.
유설은 오랜만에 진양과 단둘만의 시간을 가지게 되자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두 사람은 말에 타지 않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걸었다.
“얼마 만인가요?”
유설이 영롱한 눈빛을 빛내며 물어오자, 진양이 부드럽게 웃으며 답했다.
“그동안 미안했소.”
“미안하긴요. 대의를 위해서인 걸요. 제가 사랑하는 사람이 대의를 저 버리고 작은 것에 집착하면 싫은 걸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신필대협 양 문주님?”
유설이 놀리듯 말하자 진양이 웃음을 터뜨렸다.
“나도 놀릴 수 있도록 누이에게 어울릴 만한 별호라도 지어줘야겠소.”
“호호호. 어떤 걸 지어줄 건가요? 기대되는 걸요?”
“누이는 옥처럼 아름다우니…… 옥미인(玉美人)이 어떻소? 옥미인 양 부인.”
유설이 깔깔거리며 웃었다.
“아주 잠깐 칭찬인 줄 알았는데, 곱씹을수록 정말 촌스러운 별호군요.”
“말했잖소, 놀리려고 지은 별호라고.”
“못살아. 또 있나요?”
“글쎄…… 누이는 사람을 홀려 버릴 만큼 아름다우니, 섭혼마녀(攝魂魔女)는 어떻소?”
“싫어요. 왜 하필 마녀예요?”
“누이를 보면 정신을 똑바로 차릴 수 없으니, 마녀가 아니고 뭐겠소?”
“치. 당신만 그럴 걸요?”
“그렇다면 참 좋겠군. 남들이 누이를 추녀로 여기고 관심도 가지지 않는다면, 나는 쓸데없는 걱정을 하지 않아도 좋으니.”
“뭐라구요?”
“하하하!”
유설이 고운 눈썹을 성큼 추켜올리며 노려보다가 곧 웃음을 터뜨렸다.
선남선녀의 기분 좋은 웃음소리가 맑은 하늘에 울려 퍼졌다.
그렇게 얼마나 걸어갔을까.
맞은편에서 사람 한 명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진양과 유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뿐사뿐 걸어오는 자태를 보아서는 여자가 분명했다.
상대가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왔을 때, 진양과 유설은 그녀가 바로 소담화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진양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소 낭자, 대별산으로 돌아가지 않으셨소?”
소담화는 눈을 곱게 흘기며 툭 쏘아붙였다.
“왜요? 제가 두 분의 알콩달콩한 시간을 방해라도 했나요? 제가 나타난 것이 영 마뜩찮아 보이는군요.”
유설은 대번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고, 진양은 얼른 손사래를 치며 부인했다.
“그럴 리가 있겠소. 단지 길을 돌아온 것이 의아해서 물어본 것이라오.”
소담화는 여전히 냉랭한 시선으로 진양을 쏘아보았다.
진양은 자신을 뚫어질 듯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이 여간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그가 어색하게 미소 지으며 물었다.
“왜…… 그러시오, 소 낭자?”
“무기를 드세요.”
“예?”
“무기를 드시라고요.”
“갑자기 왜…….”
“어서요!”
소담화가 날카롭게 소리쳤다.
진양이 움찔거리며 물러났다.
보다 못한 유설이 끼어들었다.
“소 낭자,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죄송해요, 언니. 무례를 저지르고 있다는 것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정말 마지막으로 무례를 저지를게요. 언니, 비켜주실 수 있나요?”
소담화는 자못 간절한 눈빛으로 유설을 바라보고 있었다.
유설은 한참이나 그런 소담화를 마주 보다가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물러났다.
소담화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고마워요, 언니.”
상황이 이렇게 되자 진양은 더욱 어쩔 줄을 몰랐다.
“소, 소 낭자?”
“빨리 그 수호필을 드세요!”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소담화는 빠르게 검을 내찔러 들어갔다.
떨어져서 지켜보던 유설도 깜짝 놀라 어깨를 움찔 떨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더 이상의 동요는 없었다.
그녀는 믿었다.
소담화를 믿었고, 무엇보다 진양의 능력을 믿었다.
진양은 상체를 활처럼 휘며 뒤로 젖혔다. 그의 배 위를 아슬아슬하게 스친 검이 허공을 날카롭게 베어냈다.
쒜에엑!
뒤이은 파공음에 진양은 얼른 몸을 뒤틀어 옆으로 물러났다.
“흥! 언제까지 맨손으로 상대할 수 있을 것 같나요?”
소담화는 용수철처럼 튕겨 진양을 향해 쇄도해 들어왔다.
까앙!
결국 진양이 수호필을 꺼내 들고 말았다.
“진작 그러셨어야지!”
소담화는 앙칼지게 소리치며 검을 횡으로 휘둘러 들어왔다. 그 순간 그녀의 발은 지면에서 한 뼘 정도 떨어진 채 부드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얼음 위에서 미끄러지는 듯한 움직임, 바로 십절류 검법의 빙상활행(氷上滑行)이라는 절초였다. 이미 진양은 십절류에 대해서는 오래전에 파훼법을 익힌 상태였다.
진양은 곧바로 숲이 있는 쪽으로 몸을 날렸다.
그러자 소담화는 더 이상 빙상활행 초식을 쓸 수가 없었다.
대신 그녀는 다른 초식으로 바꾸었다.
이번에도 바로 십절류의 초식 중 하나였는데, 부드럽고도 유연한 움직임으로 나무 사이사이를 피하며 진양의 급소를 노려가는 검초였다.
바로 정감교류(情感交流)라는 초식이었다.
이 초식의 특징은 무엇보다도 상대의 마음을 읽고, 나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 중요했다.
그러다 보니 소담화는 날카로운 검날을 쏟아내면서도 어느새 눈가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진양 역시 정신없이 피하는 와중에도 그 모습을 본지라 당황하며 소리쳤다.
“소 낭자, 대체 왜 이러시오? 서운한 것이 있다면 말로 합시다!”
“이미 말로 풀기에는 너무 오래됐어요! 몇 마디 말로는 절대 풀 수 없는 응어리가 되어 버렸는걸요!”
소담화의 공격은 더욱 매서워졌다.
어찌나 강맹한 공격을 연쇄적으로 퍼부었는지, 주변의 나뭇가지들이 마구 잘려 나가고 나무 기둥마저 싹둑 베여 통째로 쓰러지기까지 했다.
결국 다시 길가로 나온 진양은 수호필을 휘둘러 소담화의 검을 올려쳤다.
깡!
한 줄기 공력이 검날을 타고 전해지자, 소담화는 통증에 이맛살을 구겼다.
“크읏!”
“괜, 괜찮소?”
“더 큰 아픔도 견뎠는데…… 이딴 건 아무것도 아니죠!”
소담화는 다시 앙칼지게 대답하고는 매섭게 진양을 몰아붙여 갔다.
그동안 소담화 역시 신필문에서 파자공을 통해 무공을 연마해 왔다.
때문에 그녀의 무공 수위는 예전에 비해 월등히 높아져 있었다.
하나 그 파자공을 창안한 자가 누구인가.
바로 신필대협 양진양이 아닌가?
진양은 우선 그녀의 손에서 무기를 빼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진양이 갑자기 저돌적으로 부딪쳐 오자, 소담화는 조금씩 손발이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진양이 자신의 목숨을 위협하는 살초만은 쓰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오히려 그것이 그녀를 더욱 화나게 만들었다.
“왜 살초를 쓰지 않죠? 나는 지금 있는 힘을 다해 당신을 죽이려 하고 있는데!”
“어째서 그렇소?”
“당신이 사부님을 돌아가시게 만들었으니까!”
“복수요?”
“그래요! 난 당신을 구한 것을 몹시 후회하고 있어요!”
그 순간 진양은 갑자기 수호필을 거두어들이더니 훌쩍 물러났다.
소담화가 이맛살을 구기며 물었다.
“무슨 짓이죠? 어서 무기를 드세요.”
“나를 구한 것을 후회한다고 하지 않았소. 사부님의 복수를 하고 싶다 하지 않았소. 기회를 주는 것이오. 나를 찌르시오.”
진양이 처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말 한마디 한마디가 너무나 슬프게 들려 소담화의 가슴을 후볐다.
“그, 그런다고 내가 못 죽일 줄 아나요? 당신을 베지 못할까 봐?”
“어차피 낭자가 구한 목숨이오. 낭자가 거둔다면 억울할 것이 없소.”
“잘난 척하지 마!”
소담화는 이를 악물고 달려가더니 검을 크게 휘둘렀다.
진양은 눈을 내리감았다.
쒜에엑!
“…….”
“…….”
챙그랑.
금속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 그리고 이어지는 여인의 흐느낌.
진양은 천천히 눈을 떴다.
“소 낭자…… 스스로를 너무 궁지로 내몰지 마시오.”
순간 소담화는 오른손을 들어 올려 진양의 뺨을 후려쳤다.
짝!
그녀는 화끈거리는 오른손을 왼손으로 잡았다.
왜 그런지 뺨을 때린 손바닥이 너무 아팠다. 화끈거리고 따가웠다. 장력으로 바위를 부술 때도 아프지 않았던 손이 지금은 유리처럼 깨질 것만 같았다.
‘눈물이 날 만큼 아파.’
그녀가 몸을 돌리며 잔뜩 젖은 목소리로 나직이 읊조렸다.
“나를 궁지로 내몰고 있는 건…… 내가 아니라 당신이야.”
그녀는 길을 따라 터벅터벅 걸어갔다.
진양은 뺨을 어루만지다가 그녀를 불렀다.
“소 낭자……!”
소담화가 말을 가로채듯 입을 열었다.
“찾지 말아요. 그냥…… 떠돌 거예요. 언젠간…… 다시 보겠죠.”
소담화는 그렇게 천천히 걸어갔다.
그녀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진양도 유설도 움직일 수 없었다.
이윽고 그녀가 완전히 보이지 않을 만큼 멀어지자, 유설이 진양에게 다가왔다.
진양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나는 괜찮소.”
한데 그 순간 유설이 그의 뺨을 세차게 후려쳤다.
짜악!
졸지에 두 여인에게 뺨을 얻어맞은 진양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왜, 왜……?”
유설이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다시는…… 다시는 목숨을 걸고 도박하지 말아요!”
그제야 진양은 부드럽게 웃음을 머금고는 그녀를 품에 꼭 끌어안았다.
진양과 유설이 구화산에 거의 다다랐을 때였다.
갑자기 길옆 숲에서 검은 그림자가 불쑥 튀어나오더니 두 사람을 가로막았다.
그의 초라한 행색에 처음에는 진양과 유설 모두 상대가 누군지 알아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곧 상대의 고함 소리에 두 사람은 그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유설! 왜 하필 내가 아니라 저놈이오!”
바로 곽연이었던 것이다.
천의교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 후, 그는 줄곧 사람들을 피해 도망을 다니다가 구화산 입구에서 진양과 유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진양은 얼른 유설을 뒤로 밀어내며 앞을 가로막았다.
그가 등 뒤에 선 유설을 향해 나직이 말했다.
“내가 뭐랬소? 누이를 보면 정신을 똑바로 차릴 수 없다니까. 나만 그런 것이 아니지 않소?”
“지금 농담이 나와요?”
그 순간 곽연이 바닥을 박차고 화살처럼 날아왔다.
진양이 얼른 수호필을 내세우자 ‘쩡!’ 하는 소리와 함께 불티가 휘날렸다.
곽연의 공격이 어찌나 강맹한지 진양은 주륵 미끄러지며 석 장이나 밀려났다. 바닥에는 그의 발자국이 썰매자국처럼 길게 새겨졌다.
“크웃! 지독하군!”
하나 곽연은 진양이 몸을 추스를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유설에게 쇄도했다.
그러나 유설 역시 만만찮은 무공을 소유한 고수였다. 그녀가 잽싸게 몸을 굽히며 초식을 펼치자, 허공을 베어낸 곽연의 허벅지를 찌를 수 있었다.
곽연은 허벅지에 상처를 입고도 아랑곳하지 않고 유설에게 쇄도해 들어왔다.
자신의 목숨을 돌볼 생각은 전혀 없는 듯했다.
그때 다시 진양이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어 곽연을 공격했다.
곽연은 이미 목숨을 도외시한 채 오로지 강맹 일변도로 무공을 펼치는 중이었다.
반면 진양은 자신뿐만 아니라 유설까지 보호하며 싸우려고 하니 조금씩 밀릴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