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estors who see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520)
외전5. 그 후 (1)
인도양 세이셸의 리조트. 리조트와 연결된 해변이라 우리 외에 다른 사람은 없었다.
난 그 해변에 앉아 짙게 깔린 노을을 보며 그동안의 일을 말해주었다.
얘기를 듣는 내내 엘리는 다채로운 표정을 지었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듯했지만, 그녀는 내 이야기가 다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한참 후에야 엘리는 입을 열었다.
“초능력이라니…… 정말로 그런 게 세상에 존재한단 말이에요?”
이런 반응이 정상이겠지. 오히려 한 번에 믿은 택규가 이상한 거다.
“믿기 힘든 얘기죠?”
잠시 생각하던,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믿어요.”
“정말요?”
“그게 초능력인지 직감인지를 떠나서 적어도 진후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거잖아요. 사실 브렉시트도 그렇고, 빅원도 그렇고, 이번 금융위기도 그렇고…… 어째서 그렇게 확신을 가졌는지 궁금했었어요. 그런데 이런 이유가 있었군요.”
엘리는 여전히 놀라움이 가시지 않은 표정이었다.
예리한 분석력과 통찰력으로 알아 낸 줄 알았던 게 알고 보니, 예지력 덕분이었다고 하니 놀랄 만도 하겠지
“미래를 볼 수 있다니……”
”모든 걸 볼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원하는 걸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비유하자면, 창문 틈으로 살짝 엿보는 거랄까요?”
“그래도 그게 어디에요?”
“그건 그렇죠.”
이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능력인지는 내가 번 돈이 말해준다. 증권사에서는 매일같이 특정종목의 목표주가를 설정하고, 유망업종과 시장에 대한 리포트를 쏟아낸다. 하지만 그중 맞는 게 얼마나 되겠는가?
수많은 전문가와 천재들이 온갖 데이터를 가지고 분석해도 다 틀리는 데, 난 모든 걸 정확하게 맞췄고, 엄 청난 돈을 벌어들였다.
“실망하진 않았어요?”
”실망이요?”
“예지에 의존해서 투자를 했다는 것에 대해.”
“그것도 진후의 능력이잖아요. 다들 말로는 통계니 분석이니 해도 직감에 의존해서 투자하는 사람들도 많을걸요.”
어떻게 투자하는 돈만 벌면 된다. 이는 금융시장의 생리나 다름없다.
“로스차일드 가문에도 그런 비밀이 있었다니. 웬만한 음모론보다 더 놀랍네요. 진후는 어째서 로스차일드의 제안을 거절한 거예요? 정말로 영연방 공국의 왕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
“몇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어요.”
“뭔데요?”
“전 엘리를 사랑하니까요.”
내 말에 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눈을 흘기며 입술을 살짝 내밀었다.
“그런데 그동안 잘도 속여 왔네요.”
난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미안해요.”
“칫! 그래도 지금이라도 말해줬으니 용서해줄게요.”
엘리는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우리는 달과 별이 빛나는 밤하늘 아래서 긴 얘기를 나눴다.
* * *
사흘 후, 우리는 유럽으로 이동했다.
제라티늄으로 새로운 배터리를 만들 수 있고, 달에서 제라티늄을 캐올 수 있다고 알게 된 순간…… 세상은 변했다.
언론과 전문가들은 JN배터리로 인해 산업이 어떻게 바뀔지에 대해 주목했고, 각국마다 우주개발과 제라티늄 확보를 위해 서둘렀다. 제라티늄이 향후 실물자산인 금과 원유를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바로 이 JN배터리를 만들 수 있는 핵심기술을 OTK컴퍼니가 가지고 있다.
다른 나라와 기업들 역시 기술개발을 서두르고 있지만, 당분간은 OTK 컴퍼니의 독주가 이어질 것이다.
돈 많은 투자자는 어느 나라를 가나 환영받기 마련이다. 각국 정상들은 앞다퉈서 투자와 협력을 부탁함과 동시에 새만금과 대북사업에 대한 투자의사를 밝혔다.
정부는 마치 내 뒤를 쫓아다니기라도 하듯, 내가 가는 나라마다 투자유치회를 개최했다.
무슨 신혼여행이 아니라, 해외순방을 다니는 느낌이 들 정도다.
이탈리아에서는 교황을 만났고, 영국에서는 여왕과의 만남의 예정됐다. 유럽 명품회사들의 초청도 이어졌다. 우리는 세기의 커플로 전세계에 주목을 받고 있는 데다가, 엘리는 모델이라 해도 좋을 만큼 아름다운 얼굴에 늘씬한 몸매를 지녔다.
패션잡지들은 엘리가 어떤 옷을 입고, 어떤 구두를 신고, 어떤 가방을 들고 다니고, 어떤 화장품을 쓰는지 일일이 분석하는 기사를 실었고, 명품회사들은 옷, 가방, 구두, 시계 등 을 협찬해주겠다며 나섰다.
영국언론들은 연일 엘리가 ‘영국인’ 이라는 점을 부각시켰다.
이번 금융위기를 겪으며, 영국의 금융중심지 시티오브런던은 반쯤 초토화됐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 하나는 영국 투자은행들이 로스차일드를 따라 세계경제 붕괴에 투자했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로스차일드가 막판에 손실을 떠넘겼기 때문이다.
영국정부는 금융회사들이 무너지지 않도록 RP를 매입하는 등 긴급 유동성을 공급했다. 그럼에도 로스차일드 관련 은행들이 파산하는 것은 피할 수가 없었다. 브렉시트 역시 제동이 걸렸다. 우주 개발과 제라티늄 확보에 뛰어들기 위해서는 EU에 붙어 남아있는 편이 낫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무를 수는 없으니, 영국은 EU에서 나가지도 않고 나가지 않은 것도 아닌, 애매한 스탠스를 유지한 채 상황을 지켜보았다.
우리는 영국여왕의 환대를 받으며 버킹엄 궁전을 방문했고, 엘리가 유학했던 런던정치경제대학교를 둘러 보았다. 그리고 그 뒤에는 콘월에 사시는 엘리의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를 다시 만나 인사드렸다. 두 분이 사시는 곳은 작은 마을이 었는데, 손녀사위가 강진후라고 동네 방네 자랑을 하신 덕분에 마을사람 들이 다 몰려나왔다.
유럽에서 일정과 주요 관광지 구경을 끝마친 후, 우리는 전용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 워싱턴 D.C.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오랜만에 로날드 대통령과 만났다. 그는 영부인과 함께 우리를 반겨주었다.
“결혼 축하하네.”
“감사합니다.”
예상했던 금융위기는 오지 않았고, 미국경제는 순조롭게 정상화됐다.
알베르트 매니지먼트를 비롯한 헤지펀드들의 파산과 JP모건 등의 구 제금융신청도 있어 금융시장 내 여파는 아직 이어졌지만, 그보다는 향 후 새롭게 열릴 시장에 다들 기대감을 나타내는 모습이다.
자본과 기술 모두 미국은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는다. 미국인들은 향후 우주개발과 산업경쟁에서도 승리하겠다는 자신감이 차있었다.
경제가 회복세로 들어선 만큼 대선 가도는 탄탄대로였다. 공화당 경선은 요식행위나 다름없었다. 대선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워싱턴 D.C.에서의 일정이 끝나고는 디트로이트로 이동했다. 카로스 경영진과 OTK게임즈 경영진들을 만나 앞으로의 사업방향에 대한 얘기를 나누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신혼여행인 만큼 오대호, 라스베이거스, 그랜드캐넌, 요세미티 국립공원, 그리고 LA 디즈니랜드 등도 놀러갔다.
난 녹초가 되었지만, 엘리는 하나라도 더 타겠다는 일념으로 나를 끌고 돌아다녔고, 결국 불꽃놀이까지 보고 나왔다.
모한 교수와 캐리는 직접 차를 몰고 LA 시내관광을 시켜주었다. 할리우드가 인접해있기 때문인지 LA는 거대한 영화 세트장이나 다름없었다.
엘리는 영화배경으로 나온 장소와 건물들을 보며 즐거워했다.
학생들의 요청으로 칼텍에서 강의도 한번 했다. 다들 앞으로 일어날 변화에 대해 큰 기대감을 나타냈다.
어디를 가나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 됐지만, 우리는 신경 쓰지 않고 마음 껏 여행을 즐겼다.
* * *
호텔에서 샤워를 끝마친 엘리는 가운을 입고 나와서, 내 팔을 베고 누웠다. 살짝 젖은 머리카락에서 샴푸 향이 느껴졌다.
“내일이면 드디어 한국에 돌아가네요.”
“여행은 재밌었어요?”
“그럼요. 우리처럼 재밌게 신혼여행 한 사람도 없었을걸요.”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한 뒤로 이 정도로 길게 놀러간 적은 없다. 회사 일은 택규와 상엽 선배에게 맡기고, 아무 생각 없이 여행을 즐겼다.
다행히 회사는 내가 없어도 잘만 돌아갔다.
“다들 얼른 보고 싶어요.”
“며칠 전에도 화상통화했잖아요.”
“그래도 직접 보는 것만은 못하잖아요.”
맞는 말이다. 나도 왠지 택규가 보고 싶은 것 같기도 하고.
“집도 그립구요.”
새만금에 우리가 살 집을 짓는 중이다.
내후년쯤에는 회사도 옮기고, 집도 옮겨야겠지만, 그때까지는 지금 집에서 계속 살 예정이다.
“회사에 출근해 보니, 제 책상 치워져 있으면 어떡하죠?”
이건 모든 직장인들이 하는 걱정이겠지.
“그럼 우리 회사로 와요. 제 옆자리에 책상 하나 놔줄게요.”
내 말에 엘리는 농담처럼 말했다.
“흐음, 스카우트 제의예요? 저 연봉 비싼데.”
욕심 같아서는 데려오고 싶지만, 현주 누나가 안 놔줄 것 같다. 엘리는 누나랑 같이 일하는 모습이 어울리기도 하고,
한국에 가면 다시 일상이 시작될 것이다. 한동안은 바빠지겠지?
엘리는 나를 보며 물었다.
“진후는 앞으로도 계속 투자할 거죠?”
“그렇겠죠.”
투자자는 투자를 하는 게 본업이다. 돈 벌 기회가 생기면 가만히 있기는 힘들 것이다.
“지금도 세계 최고 부자인데, 앞으로 더 많은 돈을 벌게 되겠네요. 그 돈은 다 어떻게 할 거예요?”
“글쎄요.”
난 로스차일드 가문을 떠올렸다.
“로스차일드는 그 능력을 가문의 부와 영향력을 유지하는 데 사용해 왔어요. 저 역시 그렇게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부는 더 많은 부를 얻을 수 있는 기반이다. 현재의 금융시장은 그것을 얼마든지 가능하게 한다. 내가 가진 부는 내 핏줄을 타고 자자손손 이어져, 로스차일드보다도 유명한 가문이 될지도 모른다.
엘리는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진후는 안 그럴 거잖아요.”
난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내가 이 많은 돈을 벌게 된 이유는 어느 날 미래를 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저한테 이런 능력이 왜 생겼는지는 아직도 의문이지만, 적어도 혼자서 잘 먹고 잘 살라고 생긴 능력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럼요?”
”뭔가 세상에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엘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진후는 이미 세상에 충분히 도움이 됐잖아요. 빅원도 그렇고, 이번 금융위기도 그렇고, 아마 21세기 들어서 가장 많은 사람을 살렸을걸요. 노벨평화상도 받았잖아요.”
”그것처럼 앞으로는 더 많은 도움을 줄 수도 있겠죠.”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할 때 흔히 하는 얘기 중 하나가 ‘부자는 더 부자가 됐고, 가난한 사람들은 더 가난해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은 틀렸다.
부자가 더 큰 부자가 된 것은 맞지만, 가난한 사람들이 더 가난해지지는 않았다. 지난 수십 년 동안 극빈층은 줄고, 전쟁과 내전은 감소했고, 후진국의 GDP는 증가했고, 더 많은 사람들이 기본적인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되었고, 평균수명은 크게 늘었다.
과거에는 귀족이나 재벌들이나 누릴 수 있던 것들이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것으로 바뀌었다.
이 모든 건 세계의 부가 늘어나고, 기술이 발전했기 때문이다. 나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부를 가졌다. 열심히 사치를 한다 한들 그 돈을 다 쓸 수도 없을 것이다. 크고 좋은 집에 살아도 한번에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은 정해져 있다. 좋은 차를 많이 가지고 있어도 한번 에 한 대의 차밖에는 탈 수 없다.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볼 생각이에요.”
예전이었다면 나 혼자서 결정하면 그만이었지만, 이제는 아니다.
난 엘리를 보며 물었다.
“아무래도 혼자서는 힘들 것 같은 데, 도와줄래요?”
그녀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