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estors who see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519)
외전4. 시리아의 밀알 (4)
택규는 팔짱을 낀 채 말했다.
“영화나 게임에서는 쉽게 구해내는 데, 역시 현실은 쉽지 않구나.”
정보 없이 낯선 타지에서 군사작전을 펼치는 것은 부대를 사지로 몰아 넣는 길이다.
다른 방법은 없을까?
그렇게 생각하는데, 정기홍 홍보팀장이 노크를 하고 들어왔다.
“잠깐 전화를 받아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누구 전화인가요?”
“술라이만 빈 살만 왕세자님의 전화입니다.”
그 말에 우리는 깜짝 놀랐다. 술라이만 빈 살만 왕세자는 사우디 아라비아 국왕의 아들이자 후계자로, 현재는 국왕이 몸이 안 좋아 일선에서 물러난 상태이니 사실상 그가 국왕이나 다름없었다.
일전에 한국에 왔을 때 나와 만나기도 했고, 그 뒤로도 가끔씩 연락하며 친분을 쌓았다.
난 김성철 외교부장관에게 물었다.
“잠깐 전화 좀 받고 와도 될까요?“
그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무, 물론입니다! 전 신경 쓰지 마시고 편하게 받고 오시면 됩니다.”
난 택규와 함께 CEO실로 올라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술라이만 왕세자는 유창한 영어로 말했다.
[오랜만입니다, 강진후 대표님. 그 동안 잘 지내셨습니까?]“안녕하세요, 왕세자님.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알 시리아가 한국인들을 납치했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그들은 이슬람의 적이고, 모든 무슬림들이 이번 사태에 분노하고 있습니다. 혹시나 이번 일로 인해 이슬람에 대한 오해가 생기지 않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IS, 알 누스라 전선, 알 시리아 모두 수니파 무장단체다. 원래부터 시아파와는 사이가 안 좋 았던 데다가, 아부 바르크 알 바그다디가 자신을 칼리파로 참칭하며 수니파들과도 원수가 됐다.
중동의 패권국인 사우디아라비아 입장에서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당연한 얘기지만, 그들이 죽인 사람 대부분은 기독교인이 아닌 무슬림들이다. 정상적인 무슬림들이 이런 미친놈들을 좋아할 리 없겠지.
“저야말로 모든 개신교인들이 이슬람 지역에 선교를 하러다니지는 않으니, 오해하지 말아달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내 말에 그는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이번 일을 해결하기 위해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뭐든 돕겠습니다.]“말씀만이라도 감사합니다.”
[금전적인 도움을 드리고 싶지만, 필요없다고 하실 것 같으니, 대신 다른 도움을 드리고 싶습니다.]그나 나나 돈이 아쉬운 사람은 아니다.
“어떤 도움인가요?”
[알 시리아 내부에 무캇바라 정보원이 몇 명 잠입해 있습니다.]무캇바라는 사우디 정보국(GIP)으로, 우리나라로 치면 국정원 같은 방첩조직이라 할 수 있다. 이 조직 정 보원들이 알 시리아에 들어가 있다고?
조금만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중동에서 테러단체들이 설쳐대는 것은 우리한테는 먼 나라 이야기지만, 사우디아라비아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앞마당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당연히 철저하게 감시를 하고,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을 것이다.
[알 시리아의 조직구성, 무장상태, 경계병력, 인질들의 위치 등의 정보를 넘겨드리겠습니다.]그 말에 난 속으로 놀랐다.
정보를 넘기는데는 리스크가 따른다.
구출작전이 성공하는 실패하든, 어디선가 정보가 새나갔다는 사실이 알려질 것이다. 잘못했다가는 알 시 리아뿐 아니라 다른 테러단체에 잠입해 있는 정보원들이 노출될 수도 있다.
“피해가 갈 수도 있을 텐데요.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친구를 돕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또한 한 명의 무슬림으로서 알라를 외치며 살인을 저지르는 행위를 지켜볼 수만은 없습니다. 부디 거절 하지 말아주시길.]이렇게까지 말하는데, 사양하는 것 도 예의는 아니겠지?
“감사합니다, 왕세자님.”
난 술라이만 왕세자와 좀 더 구체적인 얘기를 나눈 다음 전화를 끊었다.
통화가 끝나자마자 택규가 물었다.
“오일 왕자님이 뭐래?”
“정보를 넘겨주겠대.”
내 얘기를 들은 택규는 감탄했다.
“오오! 잘됐네. 이제 알 시리아 애들한테 인생이 실전이라는 것을 알려주자.”
“아까 못 들었어? 특수부대가 시리아로 못 들어간다잖아.”
“시리아정부에 정보를 넘겨주고 구출을 부탁하는 건?”
“그것도 하나의 방법이긴 한데, 걔들 군대가 당나라군대로 유명해.”
“하긴, 잘 싸웠으면 진작 반군이고 IS고 밀어버렸을 테니.”
뭐, 전투력이 메롱인 건 아랍군이 대체로 비슷하다. 그러니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한테 그렇게 처발렸지.
택규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그 문제는 그 형한테 전화하면 해결되지 않을까?”
“역시 그렇지?”
사실 나도 같은 생각이다.
사막 나라 지도자에게 도움을 받았으면, 이번에는 동토 나라의 지도자에게 도움을 받을 차례인가?
사막 나라나 동토 나라나 시차가 똑같다. 지금 전화해도 되겠지?
난 전화를 걸었다. 시간이 좀 걸릴 줄 알았는데, 한 단계 절차를 거치고 나자 전화는 바로 연결됐다.
대화는 통역을 통해 영어로 진행됐다.
“갑자기 전화 드려서 죄송합니다.”
[하하! 우리 사이에 무슨. 언제든 연락해도 되네. 모스크바에는 언제 올 건가? 와이프랑 부대표 데리고 한번 놀러오게.]“조만간 놀러 가겠습니다. 그보다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역시 알고 계시네요.”
군사작전을 준비하는 게 알려지면 인질들을 위험에 처하게 할 수 있다. 때문에 부대 이동은 철저하게 비밀리에 진행됐다.
언론에도 나오지 않은 극비사항을 알고 있는 걸 보면, SVR이 놀고 있는 건 아닌 모양이다. 하긴, 시리아는 러시아의 안방이나 다름없지.
[부탁이 뭔지 한번 말해보게.]“다름 아니라……”
통화를 끝나고 나니, 거의 한 시간이 지났다.
다시 회의실로 내려가자, 김성철 외교부장관은 어디 가지 않고 얌전히 기다리고 있었다.
“혹시 왕세자님과 어떤 대화를 나누셨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난 그에게 말했다.
“피랍 사건과 관련된 얘기라서 대통령님을 직접 만나 뵙고 말씀드리는 게 나을 것 같네요. 혹시 지금 바로 만날 수 있을까요?”
* * *
우리는 다 같이 청와대로 향했다.
청와대는 매일 같이 NSC를 열어 시리아 피랍 사태 해결방안을 논의 중이었다. 잠시 기다리자, 허창민 대통령이 두 명의 남자와 함께 안으로 들어왔다. 우리는 서로 인사를 나눴다.
“정상철 안보실장입니다.”
“이석우 국방부장관입니다.”
대통령은 국군통수권자. 그리고 안보실장과 국방부장관은 군의 실권자다.
인사가 끝난 뒤 우리는 자리에 앉았다. 허창민 대통령은 며칠 동안 잠도 제대로 못 잤는지 수척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원래는 동남아순방을 갈 예정이었으나, 일정을 다 취소하고 여기에만 매달리는 중이다. 선교단은 자신들 때문에 외교력이 낭비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려나?
내가 술라이만 왕세자와 통화했다는 얘기는 미리 전했다. 이런 타이밍에 사우디 왕세자가 심심해서 전화했을 리는 없다고 생각하는지, 다들 내용을 궁금해하는 표정이다.
난 그 얘기를 하는 대신 먼저 물었다.
“대통령님께서는 이번 일을 어떻게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계신가요? 정말로 몸값을 지불하실 생각인가요?”
허창민 대통령은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방법이 없다면 몸값을 지불해서라도 국민들을 살려야 합니다.”
사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정답이 없다.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뭐라고 하기는 힘들겠지.
“지난번 연못교회 사태 때도 몸값을 지불하는 바람에 같은 일이 발생했습니다. 만약 이번에도 그렇게 한다면, 전세계에 있는 한국인들이 표적이 될 겁니다.”
“그 문제는 정부도 인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흘이 지나면, 당장 인질 중 한 명이 죽게 될 상황입니다. 혹시 강진후 대표님께서는 좋은 방법이 있으십니까?”
난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군을 파견했다는 얘기는 외교부장관께 들었습니다. 군사작전으로 인질들을 구출해내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정상철 안보실장은 고개를 저었다.
“저희도 구출작전을 검토 중이고 시리아정부에도 도움을 요청했습니다만, 현재 인질들을 어디로 옮겼는 지 파악도 못 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석우 국방부장관도 말했다.
“현지 정보원들과도 접촉하고 있지만, 정보를 얻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시간이 얼마 없습니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알 시리아가 그렇게 만만한 상대였다면, 진작 정부군이 섬멸했겠지.
난 방금 술라이만 왕세자에게 들은 얘기를 전해주었다.
“알 시리아에 무캇바라의 정보원들이 잠입해 있다고 합니다. 알 시리아에 대한 정보를 넘겨주는 것은 물론이고, 작전을 시작하면 내부에서 인질구출을 돕겠다고 합니다.”
내 말에 자리에 있는 모두가 깜짝 놀랐다.
“그, 그게 정말입니까?”
인질구출 같은 특수작전에서 정보의 중요성은 이루 말로 설명할 수가 없다. 상대가 정규군이 아닌, 게릴라 전에 강한 테러단체라면 더더욱.
이석우 국방부장관이 말했다.
“그런데 우리 군의 영내진입을 시리아정부가 허가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어서 김성철 외교부장관이 말했다.
“외교채널을 총동원해 허가를 받는다 해도 시간이 걸릴 겁니다.”
저쪽은 이미 사흘 후에 인질을 처형하겠다고 공표해놓은 상황. 여유 부릴 만한 시간이 없다.
“그 문제에 대해서는 방금 전 비소츠키 대통령님과 얘기했습니다. 한국군이 시리아 영내로 들어갈 수 있도록 시리아정부를 설득해주겠다고 합니다.”
시리아 내전에서 러시아는 정부군을, 미국은 반군을 지원했다. 로날드가 대통령이 된 뒤 미국은 철수했지만, 러시아는 여전히 남아 정부군을 지원 중이다. 러시아는 시리아 내전에 가장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는 나라였다. 군사고문단 파견, 무기 지원, 군대 투입, 여기에 더해 흐메이밈에 공군기 지까지 두고 있다.
러시아가 강력한 힘을 행사하고 있는 만큼, 비소츠키 대통령이 요청한다면 시리아정부는 바로 한국군의 진입을 바로 허가해줄 것이다.
예상치 못한 얘기였는지 이석우 국방부장관은 당황하며 말했다.
“음, 그래도 우리 팀만으로 작전을 완벽하게 수행할 수 있을지는 좀 더 검토해봐야……” “또한 시리아 내에 있는 GRU 직속 스페츠나츠가 한국군의 작전을 지원해주겠다고 합니다.”
내 말에 안보실장과 국방부장관의 기가 막힌다는 표정이었다.
GRU 소속 스페츠나츠는 러시아 연방 소속 최정예 특수부대. 이들은 5년 넘게 시리아에서 각종 군사작전을 펼쳐왔다.
현지사정에 밝은 최정예 특수부대가 지원해주면, 작전의 성공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린 정상철 안보실장이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흠흠, 그런데 아시다시피 한미군사 동맹이 우선인 만큼, 러시아군과 협력을 하기 위해서는 미국 측에 먼저 양해를 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맞는 말이다. 한미동맹이 우선 아니겠는가?
“그 부분은 오해가 없도록 제가 로날드 대통령님께 말씀드리겠습니다.
자국민을 구출하기 위한 작전이니 충분히 이해해주실 겁니다. 더 필요 하신 게 있나요?”
”아, 아닙니다.”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너무 쉽게 해결됐기 때문인지, 다들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었다.
허창민 대통령은 쓴웃음을 지었다.
”이번 일로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에 큰 빚을 지게 됐군요.”
국가 사이에 대가 없는 도움은 없다.
당장 돈이 들어가는 것은 아니지만, 나중에 그쪽에서 도움을 청하거나 요구를 해온다면 거절하기 힘들어진다.
이러한 외교력 낭비로 인한 피해는 사실상 전국민이 나눠서 지는 셈이다.
“설마 모든 걸림돌이 이렇게 빨리 해결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두 분의 도움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제까지 조용히 얘기를 듣고 있던 택규는 슬쩍 말을 꺼냈다.
“이번에야 구출한다고 해도, 다음에 또 그럴 수는 없잖아요.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철저한 처벌과 함께 대책을 세워야 하지 않을까요?”
허창민 대통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법을 위반한 사항에 대해서는 당사자들에게 반드시 책임을 묻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