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interpreter RAW novel - Chapter (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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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급 리예트와 잘라놓은 바게트가 담긴 접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라따뚜이와 부르기뇽에 와인까지.
요리가 한가득 차려진 테이블을 본 찬영이 탄성을 터뜨렸다.
「와.」
「할머니 요리 먹는 거 오랜만이네. 기대된다.」
레아의 말에 마리옹 여사는 생긋 웃으며 말했다.
「Bon appétit(맛있게 먹어요).」
그리고 그 말대로, 찬영은 정말로 맛있게 먹었다.
제 몫의 부르기뇽을 남김 없이 싹싹 긁어먹더니, 남은 바게트 조각으로 그릇을 닦아내듯 깨끗이 먹는 것은 물론.
바게트 조각에 리예트를 듬뿍 발라 한 입에 왁 넣는 것을 보며 저도 모르게 생각했다.
‘어쩜 저렇게 맛있게 잘 먹누.’
찬영이 채소든 고기든 가릴 것 없이 잘 먹는 모습에 마리옹 여사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한 접시 더 먹어요.」
「감사합니다.」
체격만큼 위장도 큰지 복스럽게 먹는 것이 그렇게 보기 좋을 수가 없었다.
먹는 것을 지켜보기만 해도 즐거워지는 기분이랄까.
식사가 끝난 뒤 커피와 디저트가 나왔을 때, 레아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엄마한테 전화왔네. 할머니, 찬, 나 잠깐 통화 좀 하고 올게요.」
레아가 잠시 자리를 비운 틈을 타, 마리옹 여사는 줄곧 묻고 싶던 질문을 던지기로 했다.
「찬,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찬영은 편히 물어보라는 듯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당신은 레아의 어떤 점이 좋았나요?」
두루뭉술하면서도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
그러나 그는 반쯤 예상했기라도 한 듯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음, 좋은 점을 꼽자면 손가락 열 개로도 모자르지만, 그중에서도 딱 하나만 꼽자면···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점이라고 할까요.」
의외의 말에 레아의 외할머니는 눈을 크게 떴다.
「저희 통대에서도 레아는 독보적인 실력을 자랑하거든요. 근데 그게 다들 레아가 타고난 재능이 대단해서라고만 생각하는데···.」
그녀가 알지 못하는, 스물다섯 살 이후 레아의 생활이 찬영의 입을 통해 모습을 드러냈다.
「잘 관찰해보니 그것 때문만은 아니더군요.」
다이어리에는 언제나 계획이 빼곡하게 적혀 있고, 그렇게 세운 계획을 굳은 의지로 실천해나간다.
공부는 물론이고 운동과 체력 단련도 게을리하지 않으며.
때로는 막막해 보이는 목표 앞에서도 포기하는 법이 없다는 것.
···마리옹 여사가 어쩐지 새삼스러운 기분으로 그 말을 경청하는데, 찬영이 웃는 낯으로 말을 마무리했다.
「그렇게 성실하고 책임감 강한 사람에게 반하지 않고는 못 배기겠더군요.」
그리고 그 웃는 얼굴 앞에서, 마리옹 드노엘은 헐겁게 걸어둔 마음의 빗장이 스르르 풀리는 것을 깨달았다.
「통화하고 왔어요. 어, 분위기가 뭔가 묘한데?」
마침 통화를 마치고 돌아온 레아가 장난스레 던진 말에, 그녀의 외할머니는 그저 흠흠 헛기침을 할 뿐이었다.
레아가 합류하고 나자 화제는 좀 더 일상적인 것으로 흘러갔다.
취미는 무엇인지, 어떤 음악을 듣고 어떤 영화를 좋아하는지.
그러다 찬영이 자신이 좋아한다는 소설의 이름을 꺼내자, 마리옹 여사의 눈이 커졌다.
「저주받은 군주들?」
「네, 통역을 맡기도 했는데···.」
「어쩜, 나 그 책의 엄청난 팬이에요!」
제 할머니와 남자친구가 에 관해, 이후 수많은 인문학 서적에 관해 이야기 꽃을 피우는 모습을 레아는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잠시 화장실 좀 써도 될까요?」
「그럼요. 여기 오른쪽으로 들어가면···.」
식당 문 너머로 사라지는 찬영의 뒷모습을 지켜보는 마리옹 여사의 입꼬리가 잔뜩 올라가 있었다.
‘중세사뿐 아니라 인문학에도 해박하네.’
웬만한 프랑스 청년들보다 훨씬 더 프랑스 책을 많이 읽은 듯하다.
식견을 갖춘 젊은이와의 대화가 즐거울 수밖에, 라고 생각하며 그녀가 흐뭇하게 미소를 짓는데.
레아가 풋, 웃음을 터뜨렸다.
「할머니.」
「응?」
「할머니, 찬영 씨 맘에 들었지?」
「···.」
벌써 들켜버린 것 같지만, 마리옹은 짐짓 시치미를 뗐다.
「얘, 나 까다로운 사람이야.」
「근데 왜 그렇게 실실 웃고 있어?」
결국 그녀는 참지 못하고 진심을 입 밖으로 꺼냈다.
「저 친구 진짜 괜찮네. 게다가 외모도 너무 근사하잖아!」
그 말에 레아가 눈을 반짝 빛냈다.
「역시 할머니라면 내 취향을 알아줄 줄 알았어!」
「취향을 알아주다니, 누가 봐도 멋있는 스타일 아니니?」
「아니 그게···.」
찬영을 두고 동기들이 ‘무서운 노안’이라고 자꾸 놀린다는 말에, 마리옹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무섭다니? 대체 어디가? 눈빛이 선량하고 올곧구만. 얼굴도 남자답게 잘생겼고 말이야.」
「그치? 웃을 땐 좀 귀엽기도 하고.」
평소 아놀드 슈왈타인이나 그웨인 존슨 같은 남성미 가득한 배우들을 좋아하는 할머니는 손녀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그래, 그렇더구나.」
「역시 우리 할머니.」
레아는 생긋 웃더니 할머니 옆으로 자리를 옮겨 그녀에게 팔짱을 끼었다.
「나, 다른 누구보다도 할머니가 찬영 씨를 마음에 들어해서 너무 기뻐.」
「···.」
「나한테 제일 소중한 사람 중 한 명이,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마음에 들어하는 모습을 보니까 괜히 안심되는 거 있지.」
「그거야 당연하지.」
···레아 네가 고른 사람이, 내 마음에 안 들리가.
뒷말을 입안으로 삼킨 마리옹 여사의 머릿속에 문득, 어린 시절 손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
레아가 이 집에 온 것은 열세 살 때였다.
여덟 살부터 죽 파리에서 살던 아이를, 부모의 갑작스러운 전근으로 딱 1년만 마리옹이 맡아 기르기로 한 터였다.
원체 그리 자주 보던 사이가 아니었던 만큼, 혼자 이곳에 맡겨져 불안하고 어색했을 텐데.
‘잘 부탁드려요, 할머니.’
의젓한 것을 넘어 다 큰 어른처럼 인사하는 손녀가 마리옹은 그저 신기하게만 느껴졌다.
별다른 의사 표현을 잘 안 하고, 언제나 지시에 순응하기에 무던한 아이라고만 여겼고, 학교에서도 별 탈 없이 지내는 줄만 알았다.
그러던 어느 날.
중간고사를 앞두고 무리하게 공부하다 열이 오른 아이에게 마리옹은 이렇게 말했다.
‘레아, 열심히 하는 건 좋지만 무엇을 위해 그렇게까지 열심히 하는지 모르겠구나.’
입을 꾹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손녀가, 그저 경쟁심이 유달리 강한 편이라고만 생각했다.
‘물론 경쟁에서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일 중요한 건 나 자신과의 경쟁이야.’
‘···.’
‘그리고 레아 넌 이미 충분히 그 경쟁에서 높은 성과를 올리고 있으니, 좀만 여유를 가지는 게 어떻겠니.’
건강을 해쳐가면서 할 필요는 없다고, 그저 그런 마음으로 꺼낸 말에.
‘나 자신과의 경쟁이요?’
레아는 웬일로 제 진심을 꺼내 보였다.
마리옹으로서는 처음 보는, 비틀린 미소를 지은 채.
‘그건 할머니나 클로에, 쥐스틴, 드니스 같은 우리반의 다른 애들 같은 ‘보통의 프랑스인’들에게나 해당되는 말이겠죠.’
‘···레아.’
‘그리고 난, 보통의 프랑스인이 아니잖아요?’
설마, 학교에서 이제껏 그런 일로 힘들어했던 걸까.
마리옹이 여지껏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는 가운데, 레아가 봇물처럼 말을 쏟아냈다.
‘걔들은 본인의 이름으로 불리지만, 나는 아시아티크(asiatique, 아시아인)라고 불려요. 내가 무얼 하든, 걔들한테는 그저 아시아 출신 혼혈이라고요.’
‘···.’
대체 누가 그랬냐고.
누가 분위기를 선동했으며, 누가 널 상처 주는 인종차별적 발언을 했냐고 묻고 싶었지만.
할머니의 입에선 그중 무엇도 나오지 않았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것을 묻는 것보다 손녀의 상처에 공감해주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이 들었기에.
‘그러니 할머니도 이해해주세요. ···내가 왜 이렇게 바보 같고 무식하게 경쟁에 목을 매야 하는지.’
나는 그들에게 보여줄 필요가 있거든요.
내가 단순한 혼혈도, 아시아티크도 아닌-
저희들 중 그 누구보다도 높은 성적을 낼 수 있는 ‘레아 신’이라는 걸요.
···그때의 그 독기 어린 눈빛을, 마리옹 여사는 지금도 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의 레아는 어떤가.’
어느새 돌아온 찬영과 둘이서 웃으며 대화를 나누는 손녀를 보자, 마리옹은 레아가 많이 변했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다.
전보다 마음이 편안해 보이는 것은 물론.
별것 아닌 말에도 웃음을 터뜨리고, 실없는 농담도 곧잘 던진다.
정해진 목표만을 향해 맹목적으로 달려가던 그때와는 사뭇 달랐다.
그리고 아마도, 그러한 긍정적 변화에 가장 일조한 것은···.
‘좋아하는 사람의 존재다, 이건가.’
둘이 서로를 마주 보며 활짝 웃는 모습에, 그녀의 다 늙은 심장마저 간만에 두근거리는 듯했다.
언젠가 딸 실비가 이런 말을 했던 것이 기억난다.
‘엄마, 한국엔 인연이란 말이 있어.’
‘인연?’
‘만나게 될 사람은, 어떻게든 만나게 된다는 의미이지.’
그리고 아마도, 이 두 사람은 인연인 것이 아닐까.
서로가 서로를 더 행복하게 해주는 것은 물론, 힘들고 고된 상황에서도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양보하고 노력할 수 있는 관계.
‘참 보기 좋구나.’
마리옹은 간만에 진심으로 만족스러운 기분을 느꼈다.
*
말이 프랑스 가정식이지, 호화롭기 그지없던 식사를 마치고 커피와 디저트까지 먹자 배가 터질 듯이 불렀다.
‘처음만 해도 긴장이 됐지만.’
쇠고기를 베이스로 한 부르기뇽의 첫맛이 너무 훌륭했기 때문일까.
음식이 맛있는 덕분에 긴장감은 스르르 사라지고, 오늘 이 자리를 준비한 레아 할머님의 호의만이 오롯이 느껴지는 듯했다.
‘덕분에 편안하게 식사할 수 있었지.’
다 같이 테이블을 정리한 뒤에는 내가 설거지를 하겠다고 나섰다.
할머님은 처음에 거절하셨지만, 내가 계속 고집을 부리자 웃으며 말씀하셨다.
「어쩜 이렇게 천사 같을까. 고마워요, 찬.」
주방에 들어서는 나를 레아가 자연스럽게 뒤따랐다.
“자기야, 같이 해.”
“내가 해도 되는데.”
“무슨.”
그렇게 둘이서 사이 좋게 설거지를 하고 뒷정리까지 완벽하게 마친 뒤.
“정원부터 둘러볼래?”
레아는 내게 할머니 댁을 구경시켜주겠다고 나섰다.
그녀의 할머니 댁은 자그마한 정원과 뒤뜰을 갖춘 소박한 2층 주택이었는데.
손수 가꾼 듯한 정원에서 싱그러움이 물씬 느껴졌다.
뒤뜰에는 오래돼 보이는 나무 그네가 있었는데, 레아의 말로는 한참 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손주들을 위해 직접 만든 것이란다.
“이 그네에 앉았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해.”
“···.”
그리고 지금.
그녀와 나란히 그네에 앉아 대화를 나누는 이 순간이 조금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찬영 씨.”
“응?”
“할머니 보니까 어땠어?”
혹시 부담스럽지는 않았냐는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너무 좋으시던데. 직접 요리해주신 것도 하나 하나 다 맛있었고. 무엇보다···.”
나는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그녀의 귀 뒤에 꽂아주었다.
“할머니가 레아 당신을 정말 사랑하시는구나, 가 느껴졌달까.”
“···맞아.”
조금 뭉클한 표정으로 웃던 그녀는 자신이 할머니 댁에서 열세 살 때 1년간 살았다고 털어놓았다.
“그때가 한창 질풍노도의 시기였는데, 할머니가 나를 참 잘 보듬어주셨던 기억이 나.”
그렇게 말한 레아는 벌떡 일어나더니 보여줄 게 있다며 주택 지하실로 데려갔다.
지하실이라기보다는 창고 겸 피트니스룸, 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공간.
작은 환기창을 통해 여름 햇살이 손바닥만큼 들어오는 이곳은 먼지 하나 없이 깔끔하게 정리돼 있었다.
“여기가 내 비밀 장소야.”
“비밀 장소?”
그 안으로 나를 데리고 들어간 레아는, 내 손을 잡은 채 구석에 자리한 운동 기구 앞에 멈춰 섰다.
그것은 다름 아닌 다 낡아빠진 샌드백이었다.
“이거 보여?”
“···.”
레아가 손으로 짚은 곳을 자세히 보니, 터진 것을 꿰매어 수선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내가 터뜨린 거야.”
“···자기가?”
내가 눈에 띄게 겁먹은 척하자, 레아가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나, 이래 봬도 복싱을 좀 할 줄 알거든.”
그녀는 사춘기 시절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털어놓았다.
이모가 아마추어 복서였는데, 그녀에게서 복싱을 배우며 힘들 때마다 이 샌드백을 치며 스트레스를 풀었다고.
“덕분에 삐뚤어지지 않았던 건지도 모르겠어.”
“음, 이모님께 감사드려야겠는걸?”
내가 그렇게 대꾸하자, 레아가 씩 웃어 보였다.
“찬영 씨, 이 얘기 했다고 나 무서워할 거 아니지?”
“어떡하지, 벌써 무서워졌는데···.”
“풋.”
내가 너스레를 떨자 웃음을 터뜨리는 레아.
그 얼굴이 너무 사랑스러운 동시에, 이런 생각이 든다.
‘남들은 그녀를 보며 저런 완벽한 여인이 무슨 걱정이 있을까 생각하겠지만.’
당사자에게는 본인만이 알 수 있는 무거운 짐이 있는 법.
그리고 그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누구나 다 그렇겠지만···.
“레아.”
“···.”
“앞으로는 이 샌드백이 아니라, 내가 마음의 짐을 덜어줄 수 있으면 좋겠어.”
그 말에 레아가 나를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잠시, 눈의 마주침이 길어지는가 하더니-
“···찬영 씨.”
그녀에게서 흘러나온 살짝 억눌린 듯한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긴장하고 말았지만.
“얼굴에 뭐 묻었는데.”
“아, 그래?”
나는 당황한 기색을 애써 숨기며 아무렇지 않은 척 대꾸했다.
“잠깐만.”
레아의 손짓에 나는 가만히 고개를 숙였고···.
이내 그녀가 발을 들어 내 입술에 부드럽게 입을 맞췄다.
나는 그에 화답하듯 다시 입을 맞췄다.
“···.”
이제는 제법 익숙해질 떄도 되었건만, 키스는 하면 할수록 더 달콤하고 강렬해지는 법.
···아까부터 줄곧 빠르게 뛰던 심장이, 주체할 수 없이 세차게 뛰는 중이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