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interpreter RAW novel - Chapter (219)
**************************************************
아지트 소설 (구:아지툰 소설) 에서 배포하였습니다.
웹에서 실시간으로 편리하게 감상하세요
****************************************************
*
제1일차, 한불 순차통역 시험.
우리 42기들은 통역과와 번역과로 나뉘어 각기 다른 시험장에 들어갔다.
통역용 부스 열 개가량이 죽 늘어서 있는 중형 강의실.
교탁 앞에는 선욱재 교수가 앉아 있었다.
“모두 앉아요. 시험 방식부터 설명하겠습니다.”
제법 널찍한 크기의 중형 강의실.
이곳은 지금 열 명의 학생들이 뿜어내는 팽팽한 긴장감으로 터질 듯하다.
그러한 분위기에 나 또한 전염된 듯 문득 긴장이 되며 손 끝이 차가워졌지만···.
바로 건너편에 앉은 송하늬가 시야에 들어온 순간, 방금 전 휴게실에서 그녀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신기하단 말야.’
‘응?’
‘분명 아까 나 혼자 휴게실에 있을 땐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긴장됐는데···.’
인생에는 종합시험보다 중요한 게 훨씬 많다며 실실거리던 추의 얼굴을 보니.
아무려면 어떤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나 또한 그 말에 십분 공감하는 터.
‘그래, 인생 뭐 있나.’
때마침 설명을 마무리한 선욱재 교수는, 그런 내 생각을 뒷받침해주기라도 하듯 이렇게 말했다.
“···이것 하나만 기억하세요. 시험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
“···.”
“여러분이 늘 하던 걸 그냥 하면 됩니다, 알겠죠? 그럼···.”
우리는 선 교수의 호명에 따라 자신에게 배정된 부스로 들어갔다.
사면에 방음벽 처리가 된 부스 안에서 문을 닫자 돌연 숨 막힐 듯한 정적이 찾아왔다.
전에는 통역 부스 안에만 들어오면 마치 짓눌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는데.
1년간 동고동락했기 때문일까, 이제는 이곳이 내 방처럼 느껴진다.
‘좁은 벽장 속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을 때의 편안함이라고 해야 할까.’
내가 앉은 팔걸이 의자부터 시작해 통역용 마이크, 동시통역 기기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익숙하고 친숙하다.
전에는 이곳에 압도당하는 기분이었다면, 지금은 내가 온전히 이곳을 지배하는 느낌.
덕분에 한결 더 부동심을 되찾은 채 헤드폰을 끼자, 그 안에서 선욱재 교수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자, 다들 헤드폰 착용 완료했죠? 낭독은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뉘어 각각 2분씩 진행됩니다.
그리고 이내, 선 교수의 입에서 오늘 시험의 주제가 흘러나왔다.
‘···뭐라고?’
순간 잘못 들었나 싶었지만, 아니었다.
– 주제는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ISIL)의 테러가 국제 정세에 미친 영향’입니다.
“···하.”
아마 다른 부스에서도 다들 한숨 쉬고 있지 않을까.
이슬람 불법무장단체의 테러 사건은 통대에서도 곧잘 다루는 주제이긴 하지만···.
‘중동 정세를 제 손바닥처럼 파악해야 하는 데다, 낯선 인명과 지명, 이슬람교 관련 용어가 쏟아져 나오니 시험에서 접하기엔 영 달갑지 않은 주제이지.’
아니나 다를까.
선 교수가 주요 키워드를 불러주기 시작했는데, 예상했던 대로의 용어들이 쏟아져 나왔다.
– 수니파, 시아파, 칼리파, 성전, 알카에다, 페슈메르가 민병대···.
이래서 선 교수가 떨어져도 괜찮다고 미리 얘기해둔 건가 싶어 잠시 헛웃음이 나왔지만.
‘정신 차리자.’
나는 선 교수가 말한 키워드들을 얼른 프랑스어로 번역해 노트 한구석에 메모해두었다.
이전에 북아프리카 지역에서 짧게나마 해외 근무를 해본 덕분에 이슬람 관련해서는 어느 정도 제반 지식이 있는 터.
‘제대로 해보자고.’
그렇게 정신을 다시 붙잡자마자, 선 교수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지난 달 중순,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라며 국가를 자칭하는 이슬람 수니파 근본주의 불법무장단체 IS는···.
사각사각.
좁은 부스 안, 노트테이킹 하는 소리만이 울린다.
중요한 것은 연사의 말을 받아적는 게 아니다.
노트테이킹이란 ‘통역 전략’을 짜는 최후의 기회인 셈.
‘단어’를 적는 것이 아니라, 말 속에 숨어 있는 논리를 파악해 그것이 이루는 구조도를 내 손으로 그려나가는···.
‘나만의 네비게이션을 만드는 과정!’
– 이에 미군은 아프가니스탄 분쟁지역에 대규모의 파병을 결정했으며···.
노트테이킹 기호들이 노트를 빼곡히 채워나감에 따라 나는 점점 더 침착해진다.
– ···끝없는 영토 분쟁으로 오늘날의 중동 지도는 역사의 유물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Lm/中. IS// tr
US s人 ⇒ AF
···
하나 하나씩 쌓아올린 벽돌이 사면의 벽을 이루고, 그리하여 한 채의 건물을 이뤄냈음을 깨달았을 때.
– 전반부 낭독은 여기까지입니다. 곧바로 AB 통역 시작하세요.
선 교수의 안내 멘트가 끝남과 동시에.
눈앞의 부스 유리창에 붙은 전자 타이머가 똑딱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00:01
00:02
···
총 2분 30초의 제한 시간.
그 이후에 통역된 내용은 아예 채점 대상에서 제외되는 형식이었지만.
‘속도만큼은 걱정할 필요가 없지.’
나는 노트 제일 위쪽을 보며 입을 열었다.
「Au milieu du mois dernier, État islamique en Irak et au Levant, un groupe armé terroriste, d’idéologie islamique sunnite fondamentaliste qui se fait appeler l’État···.」
모든 준비가 끝난 만큼.
첫 음절부터 윤활유를 바른 듯 매끄럽게 흘러나왔다.
그렇게 미리 마련해둔 네비게이션을 따라 길을 가되···.
‘이제는 몸이 본능적으로 아는 기분이지.’
···어떤 길로 가야 가장 적은 에너지를 소모하면서도, 가장 아름다운 경로를 완성할 수 있는지를.
「Ainsi, la carte actuelle du Moyen-Orient devient un vestige de l’histoire···.」
그리하여 나는 쏟아지는 어휘의 홍수 속, 스포츠카를 타고 질주하듯 그 고속도로 위를 거침없이 달렸다.
그저 흐름에 몸을 맡긴 채 유려하게 문장을 이어나가는 가운데, 언젠가부터는 나 자신의 통역에 완전히 몰입해버렸고.
마지막 순간에는-
“···이상입니다.”
짜릿하디짜릿한 희열마저 느끼며 통역을 마쳤다.
“후아···.”
몰아두었던 숨을 몰아쉬는 순간.
머리 뒤쪽이 지잉 울릴 정도의 강렬한 쾌감이 뒷골을 타고 올라왔고, 그와 동시에 확신할 수 있었다.
···합격은, 불보듯 뻔한 일이라고.
*
그러한 긍정적 예감은 나머지 5일간의 시험에서도 비슷하게 적용되었다.
2일차의 불한 순차통역은 내가 가장 자신 있는 과목이었고.
3일차와 4일차에 각각 치른 한불, 불한 동시통역 또한 생각 외로 (내 기준에서는) 무난한 난이도였다.
그리고 종합시험의 꽃이자 최대의 난관이라 할 수 있는 전문동시 또한-
‘내가 다뤄본 주제가 나와서 다행이었지.’
시험 1주 전에 공개된 전문동시 주제, ‘패션뷰티 업계의 전망에 관하여’.
평소 통대에서는 잘 다루지 않는 주제인 만큼 동기들 대부분은 낯설어하는 반응이었지만.
디올 수석디자이너 통역, 향수 CEO 통역을 하며 프랑스 패션뷰티업계 전반을 공부했던 나에게는 편안하고도 익숙한 주제였다.
‘그런 만큼 자신감 넘치게 통역할 수 있었지.’
그렇게 종합시험이 끝난 뒤.
우리는 그다음 주에 곧바로 기말고사를 치러야 했으며, 정신이 나갈 것 같은 상태로 금요일의 마지막 시험까지 마무리했다.
“···끝났다.”
다같이 불어과 휴게실로 지친 몸을 끌고 온 가운데, 추성원이 새카매진 얼굴로 외쳤다.
“끝났다고! 진짜 끝났어! 으아아아아!”
실성한 사람처럼 울부짖는 추.
그 모습이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위에서 난동부리는 킹콩을 연상케 했으나···.
정신 나간 반응을 보이는 것이 추 하나뿐은 아니었다.
“이게··· 지옥의 문턱에 갔다가 돌아오는 기분이구나···.”
수용이 형이 시험 보기 직전에 비해 살이 10kg는 빠진 듯한 얼굴로 중얼거린 말에, 유정 누나 또한 동감했다.
“그러게. 괴물 아가리에 머리를 넣었다가 뺀 기분이네.”
웬만큼 멘탈이 단단한 편인 그녀조차도 혼이 반쯤 나가 있었던 것은 물론.
원체 긴장을 잘하는 송하늬는 의식이 반쯤 나간 채로 이상한 말을 중얼거렸다.
“단두대에서··· 살아서 돌아왔다···. 내 목 제대로 붙어 있는 것 맞지?”
그 외에 다른 동기들도 맛이 간 것은 마찬가지였는데.
“정신 나갈 것 같아···.”
“C’est parce que je suis fou que vous m’amenez là(내가 지금 맛이 가서 니들이 나 여기로 데려온 거야)?”
프랑스어가 좀 더 편한 몇몇은 불어로 비슷한 내용의 말을 중얼거리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방금 전, 미친 사람처럼 울부짖던 추는 나한테 “시험 잘 봤냐? 하고 묻더니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니, 당연히 잘 봤겠지. 내가 궁금해서 물어본 거 아니란 거 알지? 그냥 튀어나온 말이라는 거지 뭐.”
“···.”
“지금 내가 하는 말은 다 제정신이 아니니까 그냥 얘가 맛이 갔구나- 하는 거만 알아둬라, 으흐흐···.”
추 녀석은 그렇게 말하고 나서도 한참 동안 말을 이어나갔는데, 언제부턴가는 내가 아닌 허공에다 대고 말하는 느낌이었다···.
‘뭐야 무서워.’
다들 조금씩 맛이 간 것이 꼭 어느 코스믹호러 소설의 한 장면 같은 분위기를 풍기던 그때.
“선배님들! 졸시 끝내신 것 축하드립니다!”
“축하드려요!”
“지옥에서 돌아오셨군요!”
싹싹한 인상의 1학년 과대를 필두로, 1학년들이 우르르 휴게실에 들어왔다.
우리 2학년의 졸업을 축하하는 의미로 뒷풀이 장소를 잡아놨다는 1학년 과대의 말에, 42기들의 표정이 대번에 밝아졌다.
‘집 나갔던 이성이 되돌아온 듯한데.’
그리고 이어진, 싹싹한 1학년 과대의 한마디.
“1학년들은 원하는 경우에만 참석이지만, 2학년 선배님들은 부디 전원 참석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그 같은 반가운 제안을 거절할 2학년은 한 명도 없었다.
*
“부어라 마셔라!”
“으히히히···.”
“오늘 같은 날은 마시고 죽는 거야!”
어디서 들어본 듯한 진부한 대사와 함께, 테이블 주위를 돌며 여기저기 잔에 술을 따라주는 추.
그리고 그 술을 받아마시며 마냥 신이 난 불어과 통대생들.
1학년은 절반가량이, 2학년은 한 명도 빠짐없이 참석한 오늘의 뒷풀이 장소는 한명외대 근처의 어느 생맥주집.
테이블은 미리 주문해둔 안주로 꽉 차 있었다.
모듬 소시지에 치킨, 돈까스, 감자튀김 등 특별할 것 없는 메뉴들이지만.
‘시원한 생맥주와의 궁합만큼은 최고이지.’
별다른 양념 없이 갓 튀겨낸 옛날식 통닭만큼 맥주와 잘 어울리는 게 있을까.
“닭다리살이 살살 녹아···.”
“크으, 죽여준다!”
“사장님 여기 2천 하나 더요!”
우리는 추의 말대로 정말 부어라 마셔라를 온 몸으로 시전했다.
덕분에 다들 거나하게 취한 채, 벌개진 얼굴로 기분 좋게 헤실헤실거리고 있을 때.
“얘들아, 잠깐 할 얘기가 있는데.”
유정 누나가 가방에서 뭔가를 주섬주섬 꺼내며 말문을 열었다.
“···다른 게 아니고, 청첩장 주려고.”
그녀의 말에 절반은 탄성을 질렀고, 절반은 꺅꺅거리며 좋아했다.
“와 드디어!”
“넘 축하해요, 언니!”
“청첩장이라니···.”
“꼭 갈게요.”
“당연하지, 전원 참석이야 전원 참석!”
여기저기서 축하의 말이 쏟아져 나오자, 술 때문인지 민망해서인지 유정 누나의 얼굴이 발개졌다.
‘전부터 결혼 이야기가 오간다 하더니.’
청첩장을 펼쳐보니 겨울방학 종료 직전, 그러니까 2013년도 전기 학위수여식이 있기 1주 전인 2월 중순이 결혼식이다.
“축하해요, 누나. 꼭 갈게요.”
“고마워, 찬영아.”
그렇게 누나에게 한마디하고 나니, 괜히 내가 다 새삼스러운 기분이 든다.
물론 회귀 전에도 추를 통해 청첩장을 전달받았지만, 그땐 딱히 친한 사이도 아니었고 내가 낄 자리가 아니라고 생각해 축의금만 보냈었으니 말이다.
비단 누나의 결혼뿐이 아니다.
그때와 지금은 이 졸시 후의 풍경부터가 다른 상황인데.
‘그때 추한테 전해듣기로는, 애초에 다들 뒷풀이 같은 데에 가질 않는다고 했지.’
하지만 지금은 꽤 다르지 않은가.
가장 중요한 차이는 여기 이 졸시 뒷풀이에 내가 있다는 것이며···.
나는 맞은편에 앉은 레아를 돌아보았다.
레아도 오늘만큼은 고삐를 쥐지 않은 채로 즐겁게 마시고 있었다.
‘여기 이 레아가, 내 곁에 있다는 사실이 아닐까.’
그렇게, 좋은 소식이 겹쳐진 덕분에 분위기는 한층 더 왁자지껄해졌고.
새벽이 다 되어서야 뒷풀이가 마무리되었다.
“웬일로 안 취했네?”
술이 그다지 센 편이 아닌 서이준이 멀쩡한 것을 보고 한마디하자.
이준이 놈은 어깨를 으쓱했다.
“조절해가며 마셨지.”
“오늘 같은 날에?”
서이준은 피식 웃더니 우리 테이블을 눈짓으로 가리키는 것이 아닌가.
“오늘 같은 날에도 누군가는 애들을 정리해서 보내야 할 것 아냐?”
“···.”
“여긴 나랑 저기 1학년 과대랑 둘이서 정리할 테니 먼저 가봐.”
그때, 등 뒤에서 수용이 형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준이가··· 너 생각해준다···. 이거지.”
“···수용이 형.”
취한 탓에 말 끝이 길게 늘어지긴 했지만, 다행히도 정신은 멀쩡해 보이는 수용이 형은 여자동기들과 서 있는 레아를 가리켜 보였다.
“촨용이 넌··· 여친도 있는데··· 꽐라된 놈들 챙긴다고··· 여기 발 묶이지 말고···.”
형의 말에 나는 이준이 놈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땡큐.”
“···고맙긴.”
등 뒤로 둘에게 손을 흔들고는, 레아의 곁에 다가가 섰다.
“나갈까?”
나를 돌아본 레아가 “응” 하며 활짝 웃었다.
술 기운에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이 평소보다 좀 더 예뻤다.
잠시 후.
생맥주집을 나서자 한겨울의 칼바람이 뺨을 스쳤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서로 손을 붙잡은 터.
레아는 내 주머니 속에 제 손을 집어넣은 채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자기야.”
“응?”
“우리 잠깐 따뜻한 거 마시러 갈까?”
그녀가 가리킨 것은 24시간 영업하는 카페.
“그러자.”
매서운 바람이 부는 가운데도, 내 주머니 속에서 느껴지는 그녀의 체온이 무척이나 달콤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