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knight in a fantasy novel RAW novel - Chapter 102
102. 이곳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봐도 희극이네
“그래서 이렇게 교수실로 데려온 겁니까?”
루키엘이 기가 차다는 얼굴로 내게 물었다.
“혹시 음흉한 의도로 제압해서 데려온 것은…….”
“내가 뭐 하러?”
당장 그랑블루를 타고서 얘보다 더 예쁜 세레나데를 볼 수도 있다.
아니면 좀 더 조심해서 이노를 찾아가도 된다.
오스카에서 지금 여왕의 대역을 하고 있을 브리기트는 또 어떤가?
“으으……. 뭔가 굉장히 부럽습니다.”
내 한마디에 연상되는 게 있는지 루키엘이 진심으로 부러운 표정을 지었다.
나는 녀석의 부러운 시선을 즐겼다.
“그나저나 얘를 어찌한다?”
그러면서, 소파에 짐짝처럼 누워 있는 데이지를 보았다.
어찌나 울었는지 눈은 퉁퉁 부어 있었고 눈물 자국이 볼과 눈 주변에 남아 있었다.
“안 돼……. 실……프…….”
자면서도 악몽을 꾸는지 잠꼬대를 계속한다.
그러다 문득 루키엘을 내 교수실로 부른 이유가 생각났다.
“아! 이걸 물어보려고 불렀지.”
이놈의 정신 좀 봐.
“너 아까, 갑자기 그딴 연극은 왜 시킨 건데?”
내 물음에 루키엘의 표정이 다소 진지해졌다.
“아프릴레라는 이 정령학 교수…… 제국과 왕국의 이중 첩자일지도 모릅니다.”
루키엘의 말에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저렇게 감정도 제대로 못 숨기는 게 첩자라고?’
나는 그 생각을 굳이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대신, 루키엘에게 계속 말해 보라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본래 아프릴레 교수는 왕실과 인연이 깊은 교수입니다.”
‘아아, 그래서 그토록 자신만만했던 건가? 자신의 뒤에 왕실이 있다고?’
루키엘은 말을 이었다.
“그러다 몇 달 전, 아프릴레 교수에게 왕실에서 의뢰한 모양입니다. 그 후 교환 교수라는 명분하에 제국의 고트 아카데미로 파견을 갔었죠.”
그 부분은 나도 익히 알고 있다.
“교환 교수라 하면, 우리 아카데미에도 고트 아카데미에서 온 교수가 있나?”
교환 교수라니, 파견인 걸로만 알고 있었다. 이건 처음 듣는 얘긴데?
“원래라면 그래야 하지만, 제국의 상황이 어렵다는 이유로 그쪽에선 보내지 않았습니다.”
‘뭐야, 그건?’
그래서 파견으로 설명되었던 건가?
“뭐, 말만 교환이지, 사실상 유학, 파견 같은 겁니다.”
“왕실에선 아프릴레 교수를 그냥 보내진 않았겠군. 모종의 지시를 내렸다거나.”
“정확합니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제국과 북부는 대립 중이다.
마법사들처럼 국경을 초월한 자들이 아니면, 사실상 북부와 제국은 교류가 없다고 봐야 했다.
물론 용병이나 상인, 폰테임 같은 일부 귀족은 뒤에서 몰래 교류를 하긴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제한적인 교류다.
공식적인 교류는 거의 없다고 봐도 됐다.
하지만 가끔씩, 이렇게 학술적인 명분으로 유학이나 파견 등의 교류가 발생한다.
무엇보다 공식적인 교류이기 때문에 당당히 상대 진영 곳곳을 돌아다닐 수도 있다.
양 진영은 이를 활용하여 서로의 정세를 파악한다.
“그런데 그렇게 보낸 아프릴레가 갑자기 너무 일찍 복귀했다, 이거지?”
“예…… 마치 우리 아카데미에서 말이 나오기를 기다렸달까요? 최근 사건 때문에 제국에 별 기대 안 하고 통신을 보냈는데…….”
“기다렸다는 듯이 아프릴레 교수를 보냈다 이건가?”
“네, 그것도 제국의 와이번 마차까지 지원해서요.”
그래서 이틀도 안 돼 제국에서 날아온 거구나.
“그래서 왕실에서도, 아카데미서도, 아프릴레 교수를 의심하고 있습니다. 제국에서 첩보 활동이 발각되었거나, 아니면 역으로 포섭되었을 수도 있으니까요.”
“아프릴레 교수에게 은근히 접근해서 어떻게 된 것인지 확인하겠다는 것인가?”
“뭐, 그런 셈입니다.”
“그런데 다른 교수들도 많은데 왜 네가 그 일을 하는데?”
‘미남계, 뭐 그런 거 아닌가? 그런 거라면 얘보다는 내가……’라는 생각을 했지만, 입 밖으론 뱉지 않았다.
물론 루키엘도 잘생긴 편이다.
능력도 출중하고. 커리어도 탄탄하다.
‘……생각해 보니까 꽤 적임자네?’
늘 나한테 부림당해서 그렇지, 의외로 능력자다.
“저도 모르겠습니다. 마리아 총장님이 갑자기 저를 불러 지시한 사항이라서…….”
“총장이?!”
루키엘에게 총장이 언급되자 갑자기 관심이 생겼다.
“마리아 총장님뿐만이 아닙니다. 율카네스 님도 한번 알아보라고 얘기했어요.”
루키엘은 그렇게 말하다가 소파에 쓰러져 있는 데이지를 힐끔 보았다.
그리고 내 귀에 작게 속삭였다.
“저 데이지의 뒤에 사천왕 중 한 명인 제국의 폰셔 백작이 있다고 합니다.”
“폰셔 백작?!”
루키엘의 목소리에 맞춰 나도 작게 되물었다.
폰셔 백작은 제국의 사천왕 중에 가장 전투력이 ‘낮은’ 인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천왕 중 그 누구도 그를 무시하지 않는다.
이카본과 헌스터가 무력을 담당하고, 타르타트가 마법과 기술을 담당한다면, 폰셔는 제국의 재정, 정치, 정보, 행정 등을 담당한다.
사실상 제국의 재상이자 현재 미라가 된 황제를 대신하여 제국을 통치하는 섭정이기도 하다.
사천왕 중 가장 상대하기 까다로운 자이기도 하다.
“특히 그 폰셔 백작이 로니아드 님께서 주시하시는 로지스트 왕세자와 끈이 있는 모양입니다.”
그 말에. 내가 눈을 크게 뜨고는 루키엘을 쳐다봤다.
이걸 왜 이제야 말하냐는 눈빛이었다.
내 생각을 눈치챘는지, 그가 급히 말을 이었다.
“저도 어젯밤에 총장실에서 마리아 총장과 율카네스 님에게 들은 정보입니다.”
그렇다는데 어쩔 수 있나.
‘그러고 보니, 요새 마리아 총장과 율카네스가 자주 붙어 다니는 것 같던데?’
노인네가 이젠 하다, 하다…….
에휴, 말을 말아야지.
루키엘과의 대화를 끝낸 나는 여전히 의식을 잃고 있는 데이지를 보았다.
우리 둘의 대화를 엿들을 수 있을 수도 있어서, 대화를 나누면서 계속 신경을 쓰긴 했다.
다행히도 아직 의식을 차린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봐도 이중 첩자가 될 인재는 아닌데?’
한편으론 저 모습이 전부 연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났다.
‘하지만 아무리 연기라도 눈앞에서 자신의 정령을 빼앗겼는데, 그것도 연기이거나 계획일 수는 없지.’
모르겠다.
원작에서 비참한 운명을 맞이했을 공작 부인과 오스카 여왕을 구했을 뿐인데…….
일이 너무나 줄줄 꼬여 버렸다.
나는 뒷머리를 박박 긁다가 교수실 벽에 걸린 시계를 봤다.
벌써 수업 시간이 다 되었다.
아까 데이지와 반에서 나오면서, 예법 교수가 알트 반으로 들어가는 것까진 봤다.
어느덧 예법 시간이 지나고 나의 행정학 시간이 다가왔다.
“너 바쁘냐?”
“아뇨. 제 수업 시간은 오후에나 있습니다.”
“그래? 그럼 여기 있다가 얘가 깨어나면 안내나 마저 해 줘.”
“제가요?”
“총장님이 너보고 하라 그랬다며?”
“그렇긴 한데…… 여자 꼬시는 건 로니, 아니, 루카스 교수님이 잘하시잖아요?”
루키엘의 말에 나는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난 이 여자와 이미 글렀어.”
그 말과 동시에 실프가 내 뒤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히히히, 새 주인님이 좋아! 따듯해! 시원해!
실프가 해맑게 웃으며 내 어깨에 앉았다.
“아이고…….”
그 모습을 본 루키엘이 200%로 납득한 표정을 지었다.
“여하튼 잘해 봐라. 난 수업이 있어서…….”
그렇게 내 교수실에 데이지와 루키엘을 남겨 놓고는 교실로 향했다.
* * *
룬-아르미 아카데미에서 1, 2학년은 반에 소속되어 수업을 한다. 마치 지구의 초중고처럼.
그러다가 3학년부턴 지구의 대학생처럼 기사학부, 행정학부, 마법학부 등에 속해 수업을 듣는다.
4학년이 되면 사실상 아카데미에 있는 시간보단 현장에서 지구의 인턴 형식으로 실무를 익힌다.
각각 내정된 마탑이나 기사단, 상단, 귀족 가문 등에서 말이다.
그렇다고 반에 속한 1, 2학년이라고 전부 다 똑같은 수업을 받는 것은 아니다.
수업 중에는 특화 수업이 있는데 그 수업 때에는 각자 심화 수업을 받으러 이동 수업을 한다.
기사 지망생은 기사학과 군사학을, 마법 지망생은 마법학과 원소학, 연금술을 배운다.
그리고 나는 지금 행정 심화 수업을 하는 중이다.
“행정에서 기호와 그림을 무시하거나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잘 정리된 기호와 그림만큼 효과적인 표현 수단은 없다.”
나른한 햇빛이 아른거리는 오전과 오후의 사이.
“이게 바로 그래프라는 것이다. 예시를 보면 알겠지만, 단순히 숫자로 쓰는 것보다…….”
특화 수업이라 기존 알트 반의 인원은 10명도 되지 않았다.
대신 베이와 코일 반에서 행정에 뜻이 있는 아이들이 합반이 된 상태.
학생들의 눈은 대부분 초롱초롱하다.
미래에 이 나라의 문관이 될 인재들답다.
“전에 말한 표는 일상적인 행정에서 쓰는 것을 추천한다면, 이 그래프는 행정적 지식이 다소 없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나도 아카데미에 취직(?)하면서 알게 된 것인데, 지구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상당수 기법들이 이세계에선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다.
“그래프에도 종류가 여럿 있는데, 대표적으로 그림 그래프, 막대 그래프, 선 그래프, 원 그래프…….”
즉, 그들에겐 신기할 수밖에 없다.
이걸 심화 과정이라고 하면서 가르치는 것이 웃기기는 하지만.
‘문제는 저 다섯 명은 도대체 왜 행정 심화를 선택했냐는 것이지.’
나는 앞자리서 내 수업에 유독 집중 중인 다섯 학생들을 보았다.
제인, 아스카, 로지, 앨리스 그리고 아리아.
‘제인, 아스카, 앨리스까지는 이해해. 그런데 로지, 너는 기사학 배워야 하지 않나? 아리아, 쟤는 마법학 놔두고 왜 여기 있는 건데?’
입으로는 수업을 떠드는데 머릿속은 상념이 가득하다.
‘아리아는 훗날 공작령을 물려받아야 해. 그래서 원작과 달리 마법학이 아닌 행정학을 배우는 것일 수도 있어. 로지스트? 하긴 저 녀석 실력이면 어지간한 최상급 기사를 능가할 텐데. 차라리 훗날을 위해 행정학과 정치학을 배우는 게 나을지도.’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또 지금 이 상황이 말이 됐다.
‘그래도 열심히 수업을 듣는 모습을 보니 기분은 좋군.’
심지어 현타가 강하게 온 로지스트 녀석도 이 시간만큼은 제법 집중하는 얼굴이다.
‘그나저나 로지스트 저 녀석은 힘을 기른다더니 왜 제국까지 가서 일을 벌이는 거야?’
수업할 때는, 보통 학생들과 눈을 마주치는 편이다.
그러다 로지의 눈과 마주쳤는데, 아까 루키엘에게 들은 말 때문에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앨리스, 저건 왜 또 저런 표정인데?’
거기다 어제 구해 준 앨리스의 태도도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차라리 어제 일 때문에 더 호감이 커져 아스카처럼 헬렐레라도 하면 모르겠다.
‘다신 도와주나 봐라.’
지금 나를 보는 앨리스의 얼굴은 두려움과 혼란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제인이랑 아리아 때문에 참는다.’
제인은 초롱초롱한 눈으로 내 말 한마디, 한마디를 필기하는 전형적인 모범생의 모습이었고, 아리아 또한 훗날 렌슬렛의 여공작이 될 위치라서 그런지 내 수업에 집중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리고 아스카는…….
‘넌 어디에 집중하고 있는 거니?’
뭔가 집중은 하고 있는데, 수업에 집중하지 않고 내 모습 그 자체에 빠진 느낌이다.
만약 프리미오가 아스카의 지금 꼴을 봤다면…… 통곡했을 것이다.
‘저거, 이제 침까지 흘리네?’
곧 점심시간이니까, 점심 생각하면서 침 흘리는 거겠지?
‘날 보면서 침 흘리지 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