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knight in a fantasy novel RAW novel - Chapter 177
177. 악의 포식
카론과 미샤, 크샤트 그리고 아고르가 수도에 도착한 때는 네 번째 연극이 끝난 직후였다.
“어서 오십시오, 왕자 전하, 성녀님, 추기경님, 심판관님.”
왕도의 경비를 맡고 있는 경비대장이 그들을 맞이했다.
“아바마마와 형님들은?”
“급히 남쪽의 왕실 직할령으로 피신하셨습니다.”
카론의 물음에 수도 경비대장이 담담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알았다. 현재 병력의 상황을 듣고 싶은데?”
“왕자님께서 원정을 떠나시면서 명한 징집령으로 약 1,000명의 병사가 집결했습니다.”
“1,000명이라.”
적은 숫자다. 하지만 작금의 왕국 상황을 보면, 1,000명이라도 징집에 응한 것이 기특할 정도.
“연극은 어떻게 됐지? 오늘이 네 번째인가? 영혼석은?”
카론의 질문이 끝나자, 곧이어 추기경 크샤트가 수도 경비대장에게 물었다.
“방금 네 번째 연극이 끝났습니다. 그리고 지금 막 환상 군단의 의식이 진행 중이고요.”
“의식이 벌써?”
“네, 영혼석의 혼령들도 상황의 심각함을 인지했나 봅니다.”
“제르다시여, 감사합니다.”
크샤트가 안도의 한숨을 쉬며 성호를 그었다.
하지만 제르다를 향한 그의 감사는 그걸로 끝이었다.
“저기 뭔가가 보입니다!”
지평선 너머로 거대한 검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두 개의 달이 뜬 어두운 저녁이지만 어두운 저녁보다 더 검고 깊은 것이 지평선을 집어삼켰다.
그것들은 어찌나 크고 넓은지 한눈에 담기도 어렵다.
“저게 뭐야……!”
셀 수 없는 시체의 군대.
셀 수 없는 검은 촉수들.
셀 수 없는 끔찍한 괴물들.
시체 중에는 신성 연합군으로 보이는 복장도 있었다.
“저것들인가?”
모두가 멍하니 절망조차 느끼지 못하고 있을 때, 그들 앞에 율카네스가 등장했다.
“많군요. 폰테임이 이 정도면, 악황제는 도대체……! 설마, 폰테임이 본체인 것일까?”
율카네스뿐만 아니라 마리아와 세피로스 등 도시와 아카데미에 남아 있던 모든 마법사와 기사들이 집결했다.
“일단 환상 군단을 얻을 때까지 버틴다.”
우드득, 우드득.
율카네스가 몸의 봉인을 풀면서 말했다.
“……준비한다던 고대의 주문은 힘들까요?”
“미완성인 걸 써 봤자 오히려 역효과야. 타르타트에게 맡겨 봐야지.”
대마도사의 목소리에는 분함이 담겨 있었다.
고대의 주문, 최근에는 심연의 주문이라고 불리는 것을 제때 선보이지 못해서다.
‘멍청한 교단 놈들, 이렇게 빨리 무너지다니.’
어쩔 수 없이 지금은 아카데미에 있을 환상 군단에 기대를 걸어야 했다.
‘타르타트 녀석이 성공해야 할 텐데.’
타르타트는 수도로 오지 않고 야만의 땅에서 주문을 마저 완성하기로 했다.
헌스터와 야만 군단, 이카본과 타르타트의 심연의 주문은 최후의 보험이자 보루였다.
“……우리가 저걸 이길 수 있겠습니까?”
카론이 떨리는 눈으로 지평선에서 몰려오는 것들을 보았다.
쿠르르르 촤르르륵.
그런데 몰려오는 적들이 이상했다.
“합쳐져?!”
“뭐 저런 게 다 있어!”
몰려오던 무리들이 합쳐지기 시작한 것이다.
“리바이어던?”
“아니. 리바이어던보다 더해.”
시체와 촉수, 괴물들이 검은 흙덩어리처럼 변하더니, 거대한 물결을 만들었다.
“마리아, 저 현상에 대해서 아나?”
율카네스의 물음에 마리아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가 회색으로 가득한 세계에 있던 시간은 그리 길지 못했으니까.
“저걸 어떻게 막습니까?”
옆에 있던 한 마법사가 겁에 질린 눈을 했다.
눈앞에서 수백 미터 크기의 검은 해일이 온다면 패닉에 빠질 법하다.
“어떻게든 해 봐야죠.”
마리아가 차가운 눈으로 앞을 본다.
“온다아!”
“마법포를 가동하라!”
상황이 이런데도 이성의 끈을 놓지 않은 수도 경비대장이 공격을 외쳤다.
“모든 아티팩트를 아낌없이 써라!”
수도를 비롯해, 왕궁에서 각종 마법포와 아티팩트들이 마법진과 함께 가동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제 역할을 하는 아티팩트들을 보면서 카론은 감회가 새로웠다.
‘아버지의 돈 낭비가 이렇게 도움이 되다니.’
전에, 국왕 카실은 왕궁과 수도에 방어 아티팩트를 무리하게 설치했었다.
왕국의 보물인 마법함까지 팔아치우면서 말이다.
당시에는 미쳤다는 소리가 공공연히 나왔지만.
‘아이러니하군.’
적어도 지금은 그때의 선택이 작은 희망 중 하나가 되었다.
“버텨라! 환상 군단이 올 때까지!”
율카네스의 마나가 담긴 외침이 퍼졌다.
‘마누스의 적통이 환상 군단을 얻어 오면 바로 선악검을 주자!’
‘만약 환상 군단이 로니아드 녀석을 선택한다면, 그 녀석을 믿을 수 있을까?’
누구는 착각 속의 희망을 품고, 누구는 만약의 불안감을 가지고.
번쩍, 콰아아앙.
마법포에서 발사된 광열의 폭발이 전투의 시작을 알렸다.
* * *
많은 사람이 도시를 빠져나갔지만, 여전히 도시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남아 있었다.
갈 곳이 없어서 못 간 사람도 있지만, 적이 너무 빨리 도달한 이유도 있었다.
반면에, 자신의 의지로 이곳에 남겠다고 한 사람도 있었다.
“가기엔 이미 늦었어.”
“순간 이동이 있잖아?”
대표적으로 아스카와 두 세이렌이다.
“프리미오와 시종 시녀들만 오스카로 보냈어. 좀만 버티면 마법함을 끌고 지원하러 올 거야.”
“마스터, 저희도 돕겠어요!”
“맞아요. 이래 봬도 어지간한 인간 기사보다 힘이 좋아요.”
아스카는 이미 프리미오와 브리기트를 비롯한 시종, 시녀들을 오스카로 대피시켰다.
그리고 다시 아카데미로 귀환했다.
두 세이렌은 무슨 고집인지 안 가겠다고 버텼다.
“하아, 모르겠다. 너희들 목숨 챙겨 줄 여유는 없으니까 알아서들 각자도생해, 그럼.”
‘무슨 생각이 있는 걸까?’
늘 도움을 주고 방해되지 않았던 세레나데와 세이나다.
저렇게 고집 피운다는 것은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라 짐작했다.
“제인은?”
“아직 깨어나지 않았어요.”
앨리스가 말했다.
“괜찮겠어?”
로니아드가 앨리스의 얼굴을 보며 물었다.
많은 내용이 담긴 물음이다.
대표적으론 그녀의 가문과 관련된 걱정이기도 했다.
“이제부터 제 이름은, 앨리스 칸브라만이에요.”
다짜고짜 자신의 성을 바꿔 버린 앨리스.
“내 동생이 되겠다는 거냐?”
“모르는 척하긴. 이 일이 끝나면 그쪽에게 시집갈 거라는 뜻이에요.”
앨리스의 돌발 선언.
“이소레타 힌미르 칸브라만. 이제부터 이렇게 부르도록.”
“저희 세이렌들은 성을 가지지 않지만, 인간 세상의 규칙에 따라야겠죠?”
주변에 있던 아가씨들이 너도나도 자신의 성을 칸브라만으로 바꾸겠다고 한다.
“오스카 왕국의 국호를 이제부터 칸브라만으로 할까?”
프리미오가 들었다면 혈압 올라 쓰러졌을 아스카의 발언.
“실버 엘프가 되었으니 인간의 성이라는 것을 가져 봐도…….”
조용히 중얼거리는 테노바까지.
“아주~ 대륙을 통일한 대제국이 탄생하겠는데요?”
이걸 본 아리아가 가자미눈을 하고 로니아드를 째려본다.
“설마 렌슬렛도 칸브라만이 되는 것은 아니겠죠?”
“……일단 의식부터 진행하자. 준비됐으면 봉인석 앞에 서.”
로니아드는 일단 이 상황을 회피하기로 했다.
―시간이 없구나. 어서 진행하도록 하겠다.
봉인석의 혼령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웅웅거린다.
번쩍, 콰아앙.
마법포의 공격으로 추정되는 거대한 폭발음과 섬광이 수도 중심부까지 들렸다.
―우리들은 새벽의 냄새가 나는 그대를 선택하기로 했다.
‘나한테서 새벽의 냄새가 난다고?’
영혼석의 빛이 로니아드, 단 한 사람을 가리킨다.
남들은 들을 수 없지만, 혼령들의 목소리가 로니아드의 머릿속으로 들려왔다.
―그대여, 우리의 충성을 받아 주겠나?
―그 대가로 우리에게 영원한 안식을 줄 수 있을까?
바람이 휘날리고 영혼석이 영롱한 빛을 내면서 부웅 하늘로 떴다.
로니아드 또한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함께 하늘로 떴다.
우우우웅.
도시 전체에 퍼져 있던 모든 혼령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영혼석과 로니아드를 셀 수 없이 많은 혼령들이 회오리처럼 빙빙 돌면서 둘러싼다.
화아악, 파앗!
로니아드 눈앞에 아공간이 펼쳐졌다.
‘아아!’
의식이 진행될수록, 로니아드는 데자뷰처럼 무언가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본래의 육신 로니아드에게 봉인되었던 기억들 중 몇몇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뭐지? 이 그립고 따스한 기운은!
―이자는? 설마, 드디어!
의식이 점차 진행될수록 혼령들의 반응이 심상치 않다.
―선택받은 이여, 그대는 우리를 해방할 순백 달의 존재요!
―오오! 마침내!
혼령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한다.
―진심으로 부탁드리오. 우리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이윽고 왕관을 쓰고 화려한 마법 갑주를 입은 기사가 나타났다.
몸은 유령처럼 흐릿했지만 만질 수 있었다.
유령 기사가 로니아드 앞에 무릎을 꿇더니 그의 발에 입을 맞췄다.
―우리에게 영원한 안식을!
―그 대가로 절대적인 충성을!
수만의 영혼들이 도깨비불 같은 혼령의 모습에서, 생전의 모습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랬군. 그래서 내가 선택된 건가?’
로니아드는 그들을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물론이다.
그렇게 모든 충성 서약이 끝나기 직전.
콰아아아악.
아공간 밖에서 무언가가 찢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오, 안 돼!
환상 군단의 사령관인 왕관 쓴 기사가 절규하기 시작했다.
―이제야 희망을 찾았는데.
―이대로 다시 심연의 노예가 될 수는…….
순식간에 로니아드 앞에서 무릎 꿇고 충성을 맹세했던 환상 군단 전체가 어디론가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벌써 뚫렸다고?!’
환상 군단뿐만 아니라, 로니아드 또한 함께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본능적으로 심연의 존재가 이곳에 도달했다는 것을 느꼈다.
그는 어떻게든 흡수되지 않기 위해 발악했지만, 소용없었다.
처음에는 시체로 된 군대였고. 흉측하고 검은 촉수와 괴물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이들은 마치 찰흙처럼 하나로 합쳐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완성된 것은 거대한 해일이었다.
심연의 검은색으로 이뤄진 거대한 해일.
마법포와 각종 아티팩트들이 마법진과 함께 빛을 뿜었고 도시를 덮치려는 거대한 검은 장막 곳곳을 불태웠지만, 압도적인 거대함을 막을 순 없었다.
“마, 막아!”
“이럴 수가…….”
모두가 싸울 생각마저 포기했다.
멍하니 입을 벌리고선 들고 있던 무기를 떨궜다.
“어림없다!!”
그런 와중에도, 율카네스가 거대한 염력 마법으로 거대한 검은 해일을 막았다.
“빛이여!”
성녀와 아고르 그리고 크샤트가 이때를 놓치지 않고 빛을 휘둘렀다.
장막의 곳곳이 빛에 의해 불탔다.
“마리아, 세피로스! 어서 놈의 본체를 찾아!”
율카네스는 이 거대한 검은 장막 안에 분명 폰테임이라는 본체가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알겠어요!”
율카네스가 도시를 한입에 삼키려는 검은 해일을 염력으로 막는 동안, 마리아와 세피로스는 하늘을 날아다니며 본체가 있을 법한 곳을 스캔했다.
“찾았다!”
마침내, 세피로스가 본체로 추정되는 것을 찾은 듯했다.
인간의 형상을 한 약3미터 크기의 검은 인영이 저 아래에 보였다.
그것은 빠른 속도로 어디론가 활강 중이었다.
“이런!”
그 인영이 가고 있는 방향을 본 세피로스의 표정이 구겨졌다.
“본체만 따로 아카데미로 가고 있어!”
그것을 본 마리아가 추락하듯이 따라붙었다. 세피로스도 마리아의 뒤를 따랐다.
“막아!”
아카데미에서 의식을 지키던 루키엘과 아스카, 이소레타, 테노바 등이 본체를 공격했다.
촤아아악.
하지만 3미터 크기의 본체가 순식간에 100미터 크기의 장막처럼 넓게 퍼지기 시작했고, 동시에 도시를 덮을 것 같았던 거대한 검은 해일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촤르르르륵, 쿵콰콰쾅, 콰앙!
“이게 무슨 일이야!”
염력을 사용하던 율카네스가 황당한 얼굴로 아카데미 쪽을 보았다.
“해일은 속임수였어?!”
본체가 변신한 거대한 장막이 로니아드와 영혼석을 크게 집어삼켰다.
“안 돼!”
앨리스가 절규하듯 비명 질렀고, 아스카는 코와 귀에 피를 흘리면서까지 로니아드를 덮은 장막을 공격했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감은 장막은 절대 놓지 않겠다는 듯 꾸역꾸역 로니아드와 영혼석을 집어삼켰다.
“…….”
마리아가 멍한 눈으로 이 광경을 지켜봤고, 그런 마리아 옆에 떠 있던 세피로스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어쩔 수 없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