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necromancer in a fantasy game RAW novel - Chapter 180
180
피에트의 범선은 연녹색 빛깔이 감돌고, 항해를 지속하기엔 돛이 조금 찢어지긴 했어도 뇌물 몇 푼만 먹여준다면 충분히 판가우에 입항할 만한 외형이었다.
그러나 고드프리 선장이 이끄는 갤리선은 누가 봐도 명백히 망자가 모는 유령선이다.
파손된 선체, 넝마나 다름없는 돛은 정상적으론 항행이 불가능한 지경.
그래서 부두 대신 라즐이 마련해준 해식동굴에 두 유령선이 나란히 정박했다. 그의 말마따나 밀수꾼들이 은밀히 장물을 세탁하는 곳에 불과했기에, 계류를 위한 말뚝도 새로 박아야만 했다.
가뜩이나 유령선은 손실된 부위가 많아서 선체의 중량 자체가 가벼웠다. 토드의 마력에 의해 부양되곤 있지만, 파랑이 일 때마다 유달리 넘실거리는 경향이 있었다.
갑판을 오간 고드프리가 쩌렁쩌렁하게 외쳤다.
【이것들아! 홋줄은 팽팽하게 묶어라! 이 빌어먹을 폭풍해의 물결이 만만히 보이냐! 느그들이 살아있을 적에 찾던 판가우의 화냥년들보다 앙칼지고 변덕스러운 게 이 북해의 파도란 말이다!】
쇠렌도 한 수 접고 들어갈 정도로 천박한 욕설과 고성이 쉴새 없이 오간다.
얌전하게 물자를 내리는 피에트 쪽과 비교하면 유령 해적들은 극성맞게 요란을 피우며 녹슨 대포알, 따개비가 핀 오크통, 해초가 낀 인골 따위의 쓸모없는 잡동사니들을 내렸다.
갑판에 묶인 줄을 어림해본 고드프리는 대뜸 지나가던 선원을 불러세웠다.
【크누프! 이 등신 같은 놈! 네놈은 대갈통까지 말미잘이 자랐나?! 이걸 매듭이라고 묶어놨어!】
정수리에 자라난 말미잘을 뻐끔거린 선원이 턱을 바짝 세웠다.
【죄, 죄송합니다! 선장!】
거칠게 영체를 쥐고 멱살을 흔들어댄 고드프리가 연녹빛 안광을 세차게 흩뿌렸다.
【이따위로 갑판 줄을 묶어놓으면 치맛자락 뒤엎을 바람만 불어도 네놈 대가리 위로 밧줄이 날아다닐 거다! 아, 어차피 뒤진 몸이라 머리통 정돈 날아가도 상관없다는 건가?】
【아닙니다! 선장!】
고드프리는 그를 거칠게 내동댕이치곤 거침없이 발길질해댔다.
【이 쌍놈아! 네놈은 그 저주받은 목숨을 연명할지 몰라도, 선체에 손상이 가잖나! 내가 팽팽하게 묶으라 함은, 가랭이 사이 물건마냥 빳빳하게 당겨놓으라는 거다! 이젠 썩어 문드러져서 쓸 일도 없으니 못 알아 처먹겠나?!】
【시정하겠습니다!】
커틀러스로 매듭을 내리친 고드프리가 날을 들이밀었다.
【다음에도 매듭이 이따위면 그땐 네놈 발목이 날아갈 줄 알아! 어차피 뒈지지도 않겠지만, 귀신 중에도 기어 다니는 놈이 있다는 걸 똑똑히 알려주마.】
서슬 퍼런 엄포에 고개를 끄덕인 선원이 다시금 끊어졌던 줄을 되감았다.
기존에 고드프리 휘하에 있던 인원들과 달리, 빠져 죽은 지 얼마 안 된 악령들은 어리바리한 기색이 일부 남아 있었다.
고드프리는 그들을 가혹한 규율로 통솔했다.
채찍질까지 서슴지 않는 모습에 피에트가 얼굴을 찡그렸다.
“너무 지나친 게 아닌가?”
쇠렌은 대수롭지 않은 듯 수염을 만지작댔다.
“지나치다고? 글쎄올시다. 후스카를 땐 저거보다 더했소. 가령 숫기가 없어 보이는 놈한텐 산양을 들이민다던가···.”
어딜 가나 악습은 있기 마련. 한술 더 뜨는 스칼바냐르의 악독함에 피에트가 이마를 짚었다.
더 무서운 건 산양의 뿔을 장식으로 쓰려 잘라놓은 상태라 성별을 알 수 없었다고 한다.
도저히 그와는 상식이 통하지 않으리라 생각해서인지, 피에트는 관망하고 있는 사령술사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저는 고드프리 선장의 방침에 개입할 생각은 없습니다.”
“진심인가? 저자는 선원들을 가축처럼 부리고 있네! 아무리 불경한 악령들이라도 저런 처우로 어찌 크라켄을 상대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자 유령이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영감. 배는 얼마나 몰아보셨나.】
느닷없이 면전에서 나타난 고드프리의 모습에 피에트가 기겁했다.
【나는 이 바닥에서 갑판닦이부터 해왔다. 청어잡이 배부터 군선까지 타는 동안, 숱한 뱃놈들을 보면서 깨달은 게 하나 있지.】
그는 씨익 이빨을 드러내며 속삭였다.
【사내놈들, 특히 갑판 위에 올라선 놈들은 짐승이나 다름없다는 걸. 저놈들에겐 인간의 언어가 통하지 않아. 선상에서 육지처럼 굴었다간 파도가 놈을 휩쓸어가지. 뱃놈들은 거칠어야 해. 그래야 오래 버틸 수 있거든.】
침을 삼킨 피에트가 답했다.
“내가 비록 배를 몰아본 경력은 짧아도, 사람 부리는 일은 여럿 해봤네. 자네처럼 가혹하게 몰아붙이는 작자들치고 조직이 오래가는 꼴은 본 적 없어.”
【크흐흐. 역시 뱃놈들의 생태는 아예 모르는구만.】
고개를 내저은 고드프리가 나직이 읊조렸다.
【바다에선 어떤 일이 벌어날지 몰라.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지. 목숨을 부지하려면 적어도 통제할 수 있는 것들은 목줄을 단단히 조여놔야 하지 않겠어?】
그는 자재들을 옮기는 유령 선원들을 가리켰다.
【게다가 여긴 판가우야. 사령술사가 말했듯, 제국에서 제일가는 비열한 놈들만 모인 곳이지. 난 배의 선장이야. 저 이리 새끼들을 이끌고 크라켄을 잡으러 가야 한다고.】
비웃음을 흘린 고드프리는 손목에 감긴 회중시계를 빙글빙글 돌렸다.
【영감은 영감 방식대로 배를 몰라고. 난 내가 잘 아는 방식으로 키를 잡을 테니.】
토드가 어깨를 으쓱이자 고드프리는 찢긴 옷자락을 펄럭이며 함선으로 돌아갔다.
그를 바라보는 사령술사의 눈동자에 이채가 감돌았다.
“···생각했던 것보다 쓸만한 선장을 건졌군요.”
팔짱을 낀 채 관망하던 이스라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본인이 생각하기에도 해적 놈들을 통솔하기엔 적임자일세. 엄격한 규율만큼 집단을 결속하기에 효과적인 방법도 없지.】
선원들을 통솔하는 고드프리 선장의 모습이 인상 깊었는지, 이스라의 안광이 세차게 이글거렸다.
추후 그녀가 이끌 기사단의 기조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게 아닌가 우려됐지만, 명예를 숭상하는 파멸의 기사라면 적절히 취사선택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미리 대기하고 있던 라즐이 물자와 인부를 공수해온 덕에 너무 부식된 판자는 보강하고, 물에 젖은 화약은 모조리 교체했다.
“선체 하부에 따개비가 많이 붙어있다는데, 유속을 저하하지 않을까요?”
라즐의 물음에 토드는 히죽 웃었다.
“어차피 유령선은 제 마력을 기반으로 움직입니다. 문제가 되진 않을 겁니다.”
유령선에 붙은 따개비 정도야 멋에 지나지 않는다. 갑판과 선미를 보호하는 부위를 덧대는 것만으로도 족했다.
게다가 고드프리를 비롯한 선원들은 유령이다 보니, 선적하는 보급 물자의 대부분은 무기와 자재였다.
【어챂피 뒈진 몸들이니 쓸데없이 음식을 실을 필요가 없구만. 적어도 쥐새끼 굴러다닐 일은 없을 테니 잘 됐어!】
“그래도 럼은 실어드리겠습니다. 비록 맛은 느끼지 못하시겠지만요.”
찢어지는 미소를 흘린 고드프리가 낄낄거렸다.
【뱃놈들은 럼에 죽고 못 살지! 배려에 눈물이 날 지경이야. 사령술사! 진심으로 챙겨주려는 건지, 놀리려는 건진 모르겠다만, 알게 뭐람!】
넌지시 라즐이 속삭였다.
“이틀 뒤, 판가우에서 밀수업자 조합에서 4척이 출항할 겁니다. 남부 도시에서 건조된 갈리온 2척, 카락 2척이지요.”
“···규모가 상당한 함선들이군요.”
“벌써 크라켄이 판가우 연해에 머무른 지 2주째입니다. 당장 차기 라이히슈타크가 다음 주로 다가오면서 폭풍해의 물동량이 최고조에 달했는데, 시의회의 손실이 감당할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렀고요.”
이런 상황이라면 누구보다도 반사 이익을 볼 자는 당연히 남부 해역의 패권을 거머쥔 황소대공이다.
크라켄은 흑마법 따위로 사역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님을 확인한 만큼, 그로선 괴수의 출몰이 희소식이었으리라.
토드는 눈을 가늘게 떴다.
“놈이 꽤 성대하게 포식했겠는데요.”
이를 간 라즐이 낮게 중얼거렸다.
“놈은 교활하게도 상선들이 오가는 해로의 주요 길목을 순찰하듯 돌면서 섭식하고 있지요. 마냥 항만에서 대기할 순 없으니, 상선 하나를 던져주면 그사이에 겨우 다른 상선이 통과하는 정도입니다.”
“시의회에선 따로 크라켄이 흘리는 포효에 대응할 방책은 강구해뒀답니까?”
“우선 스칼바냐르인들이 놈의 울부짖음에 저항성을 지니고 있다는 건 파악했습니다. 그래서 최대한 그들로 선원을 구성하고, 함선들의 화망으로 놈을 제압한다는 게 시의회의 구상입니다만···”
그는 자신 없는 표정으로 말꼬리를 흐렸다.
아무리 대형 함선들이라곤 하나, 4척으로 전설적인 바다 괴물을 쓰러트린다니, 어림도 없는 소리다.
토드는 고개를 내저으며 대꾸했다.
“대포로 놈을 쓰러트릴 수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일이 커지진 않았겠지요.”
라즐이 쓴웃음을 흘렸다.
“여긴 특정 권역령에 속하지 않은 지역인지라, 제국 함대를 끌어올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함선을 보유한 제후들은 크라켄의 출몰을 기회 삼아 판가우에 진 채무를 덜어내려 물밑에서 수작질을 부리고 있지요.”
가까운 대양에서 인간을 위협하는 괴물이 출몰했다 하더라도 인도적인 도움 따윈 기대할 수 없다. 더욱이 지금처럼 혼란스러운 시대엔 대의에 따라 움직이는 이들은 이 땅에 없었다.
오로지 실리만을 쫓을 뿐.
자유시의 재정 상황으론 함선 4척을 끌어오는 게 전부.
라즐이 고개를 숙였다.
“부디.”
차례로 갤리선에 실리는 작살을 바라보던 토드가 낮게 답했다.
“노력은 해보겠습니다. 개인적으로 그 짐승의 사체에 아주 많은 관심이 있으니까요.”
물론 자신의 목적에도 부합되어 판가우를 돕는 것이니, 토드도 다른 영주들을 손가락질할 생각은 없었다.
‘크라켄은 단신으로 바닷길을 봉쇄할 수 있는 위력을 지녔어. 하물며 탁 트인 폭풍해에서도 이런데, 섬들로 가득한 팔색조 군도라면 어떨까.’
짐승이 지닌 전략적 가치는 무궁무진했다.
본격적인 사냥을 앞두고 토드 일행은 작당 모의에 들어갔다.
하지만 크라켄 공략은 토드도 처음인지라,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던 차였다.
쇠렌이 어시장에서 직접 들고 온 수조를 자신 있게 내려놓았다.
“크라켄 역시 존나게 큰 문어요. 비록 울부짖는 것만으로 심장이 멎고, 또 무슨 요상한 힘을 부리는진 모르겠으나, 어쨌든 요놈 친척뻘 아니겠소?”
제법 큼직한 어항엔 적갈색 문어가 담겨 있었다.
피에트가 의심스러운 눈길을 보냈다.
“자네가 그 괴악한 놈들에 대해 아는 바가 있었나?”
코를 훔친 쇠렌은 능숙하게 문어 머리를 집어 들었다.
“스칼바냐르에선 오죽 먹을 게 없으면 이놈들까지 잡아먹겠소.”
놈은 화가 났는지 자꾸만 빨판으로 쇠렌의 손목을 칭칭 감아올렸다. 피에트는 후스카를 시절 이야기를 들었을 때보다도 표정이 가관이었다.
고드프리 선장조차 혀를 내둘렀다.
【저걸 처먹는다니. 북부 놈들도 만만치 않은걸.】
“자고로 문어 놈들이란, 요 몸통 가죽을 바늘로 뒤집으면···”
철퍽, 철퍽!!
수조에 담긴 물이 죄다 튀길 정도로 문어가 격하게 저항했다. 진땀을 흘리며 제압하는 모습이 영 못 미덥긴 했으나, 이내 문어의 몸체가 축 늘어졌다.
“이렇게 기절시킬 수 있지. 하지만 크라켄은 지랄 맞게 큰 놈이니, 상식적으로 그만한 덩치를 뒤집어엎는 건 말이 안 되고. 우린 놈의 약점을 노려야 하오.”
쇠렌이 몸을 톡톡 두들기자, 문어는 재차 다리를 꿈틀거리며 약동했다. 그는 머리를 거머쥔 채 이어 말했다.
“이렇듯 문어는 온몸에 뼈가 없이 온통 근육으로 되어있어 쉽게 처리하는 게 쉽지 않지. 요 눈깔 사이! 여길 찌르면 단번에 죽일 수 있소.”
【크라켄은 수면 밑에 도사리고 있는데, 어찌 뭍에 드러난 몸체가 아닌 미간 사이를 타격할 수 있겠나? 물에 대고 화포나 작살을 날려봤자 저항력 때문에 힘을 잃을 텐데.】
전투와 관련해선 누구보다도 냉철해지는 파멸의 기사였다. 드물게 합리적인 이스라의 지적에 쇠렌이 고개를 긁적였다.
“그, 건 잘 모르겠소. 흐흐. 나야 건져 올린 문어를 잡아봤지, 물속에 있는 크라켄을 잡아본 건 아니잖소.”
젖은 머리카락을 털어낸 피에트가 인상을 구겼다.
“에라이, 네놈한테 기대한 내가 등신이지.”
“출항하기 전에 결의를 다지는 겸, 이놈이나 구워 먹는 건 어떻소? 이만한 안주가 따로 없는데···”
미약하게 꿈틀대는 문어를 보곤 피에트가 질색했다.
“그 흉물을 먹느니 생쥐를 잡아먹고 말지.”
‘흠. 그 정돈가. 아직 현지인들에겐 너무 이른 괴식일수도.’
하물며 제국 사람들은 바닷가재조차 꺼리는 걸 생각해보면 문어를 먹는 게 야만인의 풍습 정도로 여길지도 모르겠다.
토드는 별달리 거부감이 없어서 쇠렌이 모닥불에 구워준 다리를 질겅였다.
그런 행동에 이스라가 탄식했다.
【허어, 토드! 그대가 이리 크라켄 사냥에 열의를 보일 줄은 몰랐군! 본인도 질 수 없지! 내일 있을 출항에선 본인도 나름의 결의를 다지도록 하겠네!】
그냥 맛있어서 먹는 건데요.
파멸의 기사가 보기엔 유약한 사령술사가 악마의 하수인 정도로 치부되는 잔해를 뜯는 게 생소한 모양이었다.
‘문어 숙회도 나쁘지 않지.’
정작 장본인은 별생각 없었다.
미간을 타격하는 방안에 대해선 유령들을 크라켄의 머리 위로 날려 보내는 방법을 생각해봤지만, 고드프리 선장과 선원들이 물귀신이긴 해도 유령선에 얽매인 존재들이다. 형체가 조금 흐릿할 뿐, 비행 능력은 전무했다.
‘그렇다고 날아다니는 정도의 망령들은 물리적 실체가 옅어서 크라켄에게 유효한 타격을 입히기도 어렵단 말이야.’
유령선의 기동력이 크라켄을 상회하긴 하나, 아무리 재주껏 배를 몰아도 놈의 머리 위를 점하는 구도는 실현이 불가능했다.
어지간한 함선보다 못한 방어력으론 단숨에 두 동강 날 게 분명했다.
적어도 현재로선 수중에 있는 크라켄을 잡을 방도가 마땅치 않았다.
펄럭···.
문득 홀연히 불어온 해풍에 접어둔 돛이 휘날린다. 단단히 정박해둔 덕에 선체가 떠내려가는 일은 없었으나, 토드의 눈동자는 수면에 비친 유령선의 하부에 고정되었다.
언뜻 흐릿한 달빛에 반사된 모습은 마치 선박이 공중에 떠오른 것처럼 보였다.
‘가만. 고드프리와 선원들은 선박에 묶여있다 하더라도, 유령선까지 물리적 법칙에 고정된 건 아니잖아.’
저들이 지면에 발을 디디고, 갑판 위를 오가는 건 생전의 잔영 때문이다.
유령이라 하더라도 자신들의 정체성은 선박을 매개로 활동하는 뱃사람이라고 생각하니까. 그 덕분에 선박 운용에서 보너스를 받긴 해도, 영체 특유의 자유로운 기동이 불가능한 게 단점이었다.
‘하지만 유령선이 물 위로만 다니던가?’
토드의 입꼬리가 삐딱해졌다.
벌떡 일어난 사령술사는 고드프리에게 다가갔다.
“고드프리 선장, 큰 돛의 하활을 선미 쪽 돛대에 묶고, 하부 매듭을 수직으로 결박한 다음 돛을 펼친다면 어떻게 됩니까?”
황당한 물음에 고드프리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었다.
【그랬다간 배가 멈춰설 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사령술사. 돛으로 바람을 받아야지, 밑으로 흐르게 두면 저걸로 부채라도 지필 생각인가?】
넋의 거울을 꺼내든 사령술사는 명계의 바람을 미미하게 일으켰다. 덩달아 수면 위로 맺힌 유령선의 파문이 두둥실 떠오른다.
“그야말로 뼈대만 보강한 수준이라, 선체가 가볍군요.”
눈을 치켜뜬 고드프리는 유령선과 토드를 번갈아 보더니, 낮게 중얼거렸다.
【말도 안 돼. 그렇다고 배가 물 위도 아니고, 허공에 떠오를 순 없다.】
거울을 집어 든 사령술사가 미소를 흘렸다.
“왜 안된다고 생각합니까. 그럼 죽은 자가 다시 움직이는 건 말이 되고요?”
【······.】
가불기가 들어오자 고드프리는 금붕어처럼 뻐끔댔다.
상대가 자신의 환경에서 유리한 강점을 보인다면, 구태여 휘말릴 필요 없이 우회하면 그만.
토드는 상상력이 빈약한 유령을 위해 친절한 설명을 곁들였다.
“고드프리 선장, 가끔은 물이 아니라, 저 구름 위를 해치고 나아가보고 싶단 생각··· 해본 적 없으십니까?”
푸르스름한 유령선의 선체 역시 분류상으론 영체에 해당했다.
화약까진 등장했어도, 아직 이 땅에 글라이더는 한참 이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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