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necromancer in a fantasy game RAW novel - Chapter 203
203
사령술사와 달리, 암살자의 표정은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감사해···? 우린 여기 납치당한 거라고!”
그녀는 바닥에 침을 뱉으며 일갈했다.
“애초에 이 상황 자체가 전부 구라야. 내가 만든 게임 속 캐릭터가, 날 초대했다고? 넌 상식적으로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분명 기이한 일이다.
성전사를 플레이했던 기억은 토드뿐만 아니라 이전 회차에 해당하는 라노 역시 보유하고 있다.
엔터키를 누른 순간, 이 땅에 떨어졌다 하더라도 모니터 너머에서 움직이던 캐릭터와 그 밖에서 조종하던 플레이어는 별개로 존재했다.
이 모든 게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단 말인가?
정말 안톤이 이 세상의 호스트라면 계란보다 닭이 먼저 존재했다는 셈이다.
인과의 순서가 잘못되었다. 라노로선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역치에 치를 떠는 가운데, 대신 사슬에 매달린 사내가 읊조렸다.
“실로 가련하다. 좀도둑아. 너는 주사위를 굴리면서 정작 놀이의 본질을 깨우치지 못했더냐?”
라노가 날 선 투로 대꾸했다.
“씨발, 네가 뭘 안다고 떠들어···! 어쭙잖게 신이 되겠답시고 깝치다가 성화나 꺼트린 꼴불견 새끼가.”
사내가 퍼뜨리는 압박감 속에서 라노는 간신히 손가락을 치켜들었다.
“내가 보기엔 너네들 전부 같잖아! 깨우친 적, 뭐라도 된 것처럼 구는데, 결국 너흰 사회에서 낙오하고, 게임에나 매달렸던 패배자 새끼들이라고! 진짜 세상은 밖에 있어! 이 컨셉충 등신들아!”
음, 이건 좀 아픈데. 뜬금없는 스플뎀에 토드는 쓴웃음을 흘렸다.
사내를 삿대질한 암살자가 거칠게 헐떡였다.
“내가 주사위 놀이의 본질을 모른다고? 지랄. 적어도 주사위의 수는 정해진 조합 안에 있지, 규칙 밖에 있는 숫자는 논하지 않아!”
라노를 굽어보던 사내의 눈동자가 일렁였다.
“나는 줄곧 너를 지켜봤다. 네 생애는 부정과 저항으로 얼룩져 있었지. 그게 너를 여기까지 이끄는 원동력이 되었을진 몰라도···”
그의 머리 위로 둥근 광배가 흐릿하게 사글거린다. 군데군데 끊어지고, 어슴푸레한 빛이었다.
“정념에만 사로잡혀선 결코 그다음으론 넘어가지 못한다. 사고가 편협한 틀에 갇혀있지. 적어도 네가 순종하기만 했던 패배자들에 비하면 진일보했지만.”
그래 봤자 너 역시 좀 더 나은 패배자에 지나지 않는다. 사내의 말에 깔린 저의를 알아들은 라노는 부들부들 떨었다.
“이, 이··· 애ㅁ···”
얜 자꾸만 악담을 퍼부어봤자 제 살 깎아 먹기에 불과하다는 걸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다.
아니, 어쩌면 아직도 동일한 존재라는 걸 받아들이지 못하는 무의식의 발원일지도.
황급히 라노를 물러 세운 토드가 입을 열었다.
“말씀하시는 바에서 조금 의아한 구석이 있군요. 순응하신 분들이라 함은, 저희 말고 다른 분들을 가리키시는 것 같습니다?”
사내가 음산하게 웃었다.
“너는 이미 만나보지 않았던가. 사령술사.”
깜빡이던 후광이 흐트러진 찰나, 토드는 잔광이 드리운 그늘 너머를 목격했다.
성전사의 업은 불길한 빛을 띠고 있었다.
“이 세상에 안주하기만 했던 부류의 말로가 어땠는진.”
잔상들이 스쳐 지나간다. 그중 늙고 지쳤던 노인의 형상이 떠올랐다가 가라앉는다.
토드는 낮게 속삭였다.
“말로···라는 표현은 부적절하군요.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은 제각기 다른 법입니다. 같은 영혼이라도 처한 환경이나 만나는 이들에 따라 얼마든지 이야기의 방향이 달라질 수 있는 법이죠.”
“겁쟁이들에 불과하다.”
사령술사의 눈썹이 미묘하게 휘었다.
“적어도 그는 자신이 지키려 했던 가치를 위해 희생했습니다. 오드람은 제국과 스칼바냐르의 공존을 원했죠. 에다리크는 그 덕분에 존속할 수 있었고요.”
사내가 어깨를 들썩였다. 덩달아 쇠사슬들이 찰랑거리며 불온한 소음을 자아낸다.
“그래서 네 손으로 직접 그놈의 숨통까지 끊어줬나? 장례식이라기엔 다소 야만적이군.”
“우리에게 생득의 결정권은 주어지지 않았으나, 적어도 자신의 이야기를 마무리 지을 권리는 존중되어야만 합니다.”
토드는 사내를 힐난했다.
“당신은 그런 방식으로 샨을 살해해선 안 됐어요. 안톤.”
황금색 눈동자가 휘어진다.
“이 땅에 거니는 화신들이 제가 캐릭터들을 플레이하면서 견지했던 규칙을 준수했다면, 분명 샨이 당신에게 적대적이진 않았을 텐데···”
“그 요승은 세상의 섭리에 끌려다닐 뿐이다. 짐승과 비석 따위를 숭배하는 영매와 마찬가지로.”
그의 눈에 서린 광채가 기이한 빛으로 일렁일 때마다 암살자가 허덕였다.
토드는 마력을 끌어올려 라노에게 덧댔다. 덕분에 살 타는 냄새가 치밀었지만, 신경 쓰일 정도는 아니었다.
“안주하는 놈들은 종래에 판을 뒤집진 못하지. 이 땅의 자원을 소모하는 짐 덩어리들에 지나지 않는다. 그럴 바엔 밑거름으로 삼는 것이 온당하다.”
라노는 진작 99레벨을 달성했지만, 그 이상을 돌파하진 못했다. 그에 비하면 안톤은 한참 규격을 넘어선 101. 단순히 그가 이 땅의 선구자로서 오랜 세월을 살아오면서 받은 특혜라기엔 오드람 역시 한계를 넘진 못했다.
이들과 안톤을 구분 짓는 유력한 사유는 한가지.
플레이어블 캐릭터의 살해 여부.
당초에 멀티방의 목적이 협력에 있다고 생각한 토드완 정반대의 판단이었다.
“···당신 홀로 이 모든 걸 해결하실 수 있으리라 생각하십니까?”
안톤이 오만하게 웃었다.
“왜 안될 거라 생각하나.”
“정녕 협력이 아닌, 경쟁이 목적이었다면 구태여 구태여 자신의 도플갱어들을 초대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원작을 플레이하던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까.”
“나는 곧 너다.”
황금색 눈동자가 토드를 꿰뚫어 보듯 응시했다.
“네 모든 행동 원리와 사유는 예측 가능한 범주 내에 종속되어 있지. 기왕 가축들을 풀어놓을 거면 한결 통제가 원활한 변인으로 국한하는 게 효율적이잖나.”
“대강 당신의 관점은 알겠습니다. 그럼 콘라트를 비롯해 세속 제후들을 부추겨, 이 땅에 분란을 초래하는 게 당신의 의도란 말입니까?”
토드의 눈이 가늘어졌다.
“당신은 성전사로서 의무를 져버렸어요. 안톤.”
“아니.”
사내가 고개를 기울였다.
“이 세상은 죽어가고 있다.”
파편화된 광배는 이따금 섬뜩할 정도의 명광을 흩뿌렸다.
“정확히는 이 땅을 지탱하던 숭고한 가치들이 빛을 잃고 황혼 녘 너머로 저물고 있지.”
눈자위를 부라린 안톤이 중얼거렸다.
“내가 언제 이 땅에 떨어진 줄 아나? 사령술사? 이젠 기억조차 나지 않는 과거의 일이다. 나는 이 땅에 신화와 전설이 살아 숨 쉬던 때를 생생히 기억한다.”
그의 어조가 격해질수록, 광배가 선명하게 이글거렸다. 덩달아 베일처럼 드리운 그림자도 짙게 늘어졌다.
안톤은 토드가 보아온 존재 중 가장 심대한 업을 품고 있었다. 비록 어린 용이라곤 하나, 아즈트룽엔보다도 누적된 심도가 깊었다.
‘라노가 대략 30년, 오드람이 80년 정도였나··· 안톤의 경과는.’
과거 토드가 수습생이었던 시절, 스승님은 노화가 신들의 축복이라고 말씀하셨다.
덧없이 살다가 지는 하루살이 같은 인생이 뭐가 축복이냐고 반문했었지만, 이젠 이해할 수 있었다.
“너만은 날 이해할 테지. 토드. 우린 이 세상을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고선 견딜 수 없는 곳이지. 평생을 동경해왔으니 말이야.”
“······.”
성전사는 가장 먼저 플레이한 캐릭터였지만, 너무 빨리 빌드를 완성시키는 바람에 이후 캐릭터들에 비하면 수월하게 만렙을 달성할 수 있었다. 흥미가 그리 오래가진 못했다.
그래서 플레이 타임만 놓고 보면 가장 짧다.
“당초에 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불완전성을 덜어내는 것이, 내 사명이라고 생각했었다. 사람들의 안위를 위협하는 마수들을 해치우고, 미혹된 언어로 속삭이는 놈들의 싹을 말렸지.”
모니터 역시 상(像)이 투영된 거울의 반대편.
얼핏 비슷하나, 거꾸로 맺혀 있다.
현실에는 없는 것들이 실존하는 이 세상의 이치와 닮아 있었다.
돌이켜보면 가장 오래 플레이한 클래스는 암살자다. 그녀는 자신과 향유한 시간대가 가까웠다. 합리가 맞물려 있다.
“세상이 안전해질수록, 사람들은 신을 찾지 않게 되었다. 완전해진다는 건 내 착각이었지. 그때야 비로소 난 깨달았다.”
그는 확신에 찬 눈빛으로 속삭였다.
“이 세상의 불완전함마저 구주께서 안배하셨음을! 모든 건 그분이 세운 질서를 회복하기 위한 과업이니라.”
라노가 싸늘하게 중얼거렸다.
“미친놈. 염병하네.”
“기젤라는 당신이 승천 의식에 실패하였다고 했습니다. 그것도 이 땅을 되돌리기 위한 과업이었는지요?”
“가여운 기젤. 그 아이는 아무것도 모른다. 안타깝게도 태생부터가 이 땅에 얽매인 피조물이니 어쩔 수 없지. 장막 너머의 섭리를 넘볼 수 있는 건 오롯이 신들의 대전사들에게만 주어진 권리니라.”
안톤이 미소를 흘렸다.
“정말 의식이 실패했다고 생각하는가.”
입술을 씨근거린 라노가 대꾸했다.
“지금 네 꼬라지랑 말하는 뽄새만 보면 누구나 개 처 망했다고 생각할걸.”
“끄흐, 위대한 태양은 많은 얼굴을 가지고 계시지. 본래 동이 트기 전의 어둠이 가장 어두운 법.”
“아, 그러셔? 그토록 위대한 아버지라고 떠받드는 주제, 인간들 먹고살 형편이 나아지니까 바로 유기당하는 잡귀신 따위가 뭐하러 필요하대?”
라노의 비아냥에 안톤은 나직이 속삭였다.
“솔마르는 인간의 아버지가 아닌, 자식이기 때문이다.”
그 대목에서 토드가 짧게 감탄했다.
“오호.”
라노는 눈썹을 일그러트리며 으르렁댔다.
“뭐? 이건 또 뭔 참신한 개소리람. 하여간 저거 봐! 저새낀 온갖 폼은 다 잡으면서, 순 앞뒤가 안 맞는 궤변만 늘어놓는···”
“내가 그분을 아버지라 불렀던가?”
안톤의 눈빛이 라노를 향했다. 기묘한 광소에 비아냥대던 라노의 혀가 멎었다.
“관념에 불과했던 존재들은 직관으로 인식되었을 때 비로소 실재한다.”
“지, 지랄. 니힐다르, 그 광대 새끼는 교세랑 상관없이 잘만 돌아다닌다고.”
암살자와 뒷골목의 협잡꾼들이 우러러보는 수호신을 들먹이자 안톤이 웃었다.
“신화는 인간의 이해를 수반하지 않노라.”
신화는 인간들이 이해할 수 없는 통찰과 비밀을 담은 기록이다. 미지를 두려워하는 건 곧 생물체의 본성. 불가해함은 공포와 동시에 권위를 내포하고 있다.
“도리어 이해받지 못할수록, 더 강대한 존재이시다.”
그리하여 신들은 이 땅에서 멀어졌다.
동시에 토드의 의식도 아득해졌다.
딸랑.
낭랑한 소리에 상념의 늪에 잠겨있던 정신이 깨어났다. 자신을 일깨우는 부름에 사령술사가 입을 열었다.
“언제까지고 모든 게 영원할 순 없습니다. 안톤. 죽음은 필연적이지요.”
황금색 눈동자가 꿈틀거렸다.
불쾌감.
그나마 그에게서 얼마 남지 않은 인간성의 편린이 엿보였다.
“이 땅에서 신화와 전설들이 퇴색된다 하더라도, 이야기가 끝나는 게 아닙니다. 비록 옛것들이 모두 죽는다 하더라도, 그 잔해로부터 새싹들을 틔우고 존속할 겁니다. 순환의 자연스러운 흐름이지요.”
“···그게, 자연스럽다고?”
토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한때 우리의 세상이 그랬던 것처럼. 이곳 역시도.”
대번에 쇠사슬들이 거칠게 요동쳤다.
“그건 절대 용납할 수 없다! 이 세상은 신에 대한 추앙과 찬미가 있었기에 연명해온 것이다!”
“당신의 행동은 순리를 거스르려는 아이의 아집과 다를 바 없습니다. 떠나보내야만 하는 잔재를 억지로 붙들어봤자, 그것만큼이나 추한 짓거리도 없어요.”
팍!
사슬에 새겨져 있던 수호성인의 이름에 불티가 튀겼다. 하나둘씩, 그의 발치에 새겨져 있던 경전의 글귀들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빠직, 빠직.
가늘게 맺힌 전격이 점점 사내를 옥죄이던 못을 뽑아낸다.
“이 땅은 당신만을 위한 테마파크가 아닙니다. 여기서 오롯이 흘러가는 대로 살아가기에 비로소 생의 족적에 의미가 있는 것이지요.”
토드가 빙긋 웃었다.
“아무래도 당신과 협력은 어렵겠네요.”
절그렁.
육중한 사슬이 떨어지자 엎드려 있던 수도원장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즉각 안톤을 마주한 노인이 눈알을 헤집었다.
“아, 아아···!!”
눈앞에 광궤가 있었다. 애써 흘러내리는 판막을 주워 담으려던 노인은 순식간에 잿더미로 전락했다.
“제가 캐릭터를 잘못 키웠어요. 여태껏 들인 시간과 정성이 아깝긴 하지만, 조만간 삭제해야겠습니다.”
토드의 선언에 사내가 주먹을 쥐었다.
“···네 알량한 교단이 아직도 살아남은 까닭을 모르겠나? 이 땅에서 네크로맨서들을 완전히 절멸시킨 건 나다. 네 족속이 지하에서 명맥이나마 유지할 수 있었던 건, 내 안배가 미쳤기 때문이거늘.”
실소를 흘린 사령술사는 나직이 속삭였다.
“어머니 오르카사께선 장막을 자아내는 분이시라. 그분은 제 자식들을 밤의 그늘에 숨기신다.”
숨결조차 익어버릴 듯한 열기 속에서 라노가 숨도 못 쉬고 허덕이는 가운데, 토드는 태연히 그를 마주했다.
“태양은 언젠가 죽지만, 죽음을 죽일 순 없지. 정말 네가 보험용으로 우리를 살려둔 걸까? 안톤?”
“구주께선 전능하시다. 가증스러운 이교도야.”
사령술사가 어깨를 으쓱였다.
“아, 그렇다면 솔마르는 고아겠군.”
순간 사슬에 얽매인 육신이 휘청였다.
“······?”
“명색이 자길 낳은 부모들이 그 모양이니. 제대로 된 가정 교육조차 받지 못하는데 이게 부모 없는 자식이 아니라면 뭘까.”
대주교들이 거품 물고 쓰러질 신성 모독이다.
허공을 향해 뻗은 안톤의 손아귀에 빛으로 만들어진 철퇴가 잡혔다.
가뜩이나 창백한 몰골의 라노가 힘겹게 중얼거렸다.
“야, 야··· 저새끼, 눈깔 돌아갔는데. 여기서 어떻게 빠져나가려고?”
“라노, 목걸이 단단히 쥐고 있어.”
이 상황에서도 여유로운 미소를 짓고 있는 모습에 질릴 지경이었다.
“아직 주사위 굴릴 힘은 남아있지?”
섬광의 격류가 쇄도한다.
광휘가 주변의 어둠을 몰아내기 직전, 흡혈귀의 신형이 잽싸게 한 줌 남은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열선이 사방을 덮쳤다.
사슬을 끊어내고 바닥에 내려앉은 안톤은 곧장 의식을 헤아렸다.
‘놈···!’
성결 수치가 상승하지 않았다.
연신 분통을 터뜨리던 안톤은 어깨를 비틀곤 순식간에 신성을 펼쳐 상승했다.
콰앙!!
이미 지하의 소동을 감지한 성전사와 사제들이 예배당에 몰려 있었다.
돌연 바닥을 부수고 솟구치는 섬광에 모두가 동요하던 찰나.
펄럭···.
흐릿하게 휘날리는 백색 양익에 일제히 고개를 조아렸다.
안톤이 성전사단을 향해 고했다.
“성전을 선포하겠다. 수도회의 모든 심문관을 소집하고, 교단 산하의 교구들에 서신을 발송하여 성전 기사단을 소환토록···”
그러자 허옇게 질린 얼굴의 주교가 속삭였다.
“서, 성하. 참으로 망측한 일이오나, 조금 전 교단 중앙 공의회에서 파문 명령을 선고했나이다.”
안톤은 와락 인상을 구겼다.
“공의회에서? 감히 누가?”
떨리는 손으로 서신을 집어 든 주교의 입술이 보랏빛이었다.
“서, 서부 대교구의 대표자, 시도우 대주교. 동부 대교구에선 카셀미어 주교후, 증인으로 참관한 거룩한 복녀, 수녀원장 기젤라···”
저명한 교회 인사들의 이름이 줄줄 나오자, 안톤은 냅다 서신을 뺏어 들었다.
“···이를 제국 카이저 막시밀리안 2세가 승인했다 합니다.”
파문 대상은 이단 행위를 방조한 불경자, 안토니오를 포함한 놋그릇수도회 전원.
이에 따라 성전사 안토니오에 대한 교구장 직위를 해제하고, 그에게 행해진 세례성사와 성체성사를 원천 취소하며, 시성 자격을 박탈···
화륵.
안톤의 손아귀에 붙들려있던 서신이 조각조각 떨어졌다.
“이 망할 새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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