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nowned Genius At My Arts High School RAW novel - Chapter (63)
63화. 오유나
“떡볶이 예술이다아! 와아, 이거 진짜 맛이 엄청 강렬한데? 자극적이야. 맵고.”
잠시 후 세현예고 앞 분식집.
간단히 점심을 먹고 갈 거란 말에 신난다며 따라 들어온 오유나가 정말 놀랐단 표정으로 떡볶이 맛을 평가했다.
“나, 이렇게 매운 떡볶이는 처음 먹어 봐.”
“아, 그랬어?”
오유나의 격한 반응에 수현이 작게 웃었다.
세현예고에 처음 들어왔을 때, 상당수 애들이 버스나 지하철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한 경험이 없다거나, 음식을 철저히 가리는 경향을 보여 놀랐던 기억이 새삼 떠올랐던 거다.
‘이런 애들이 많았지. 떡볶이라 해도 소고기며 고급 재료를 잔뜩 넣은 궁중식 떡볶이면 모를까, 분식집 떡볶이는 안 먹어 본 애들이 대다수였어. 흠, 그러고 보면 윤희나 선화가 털털한 편인 거야.’
예전엔 살아온 환경이 다른 애들에게 거리를 느끼고 벽을 세웠는데, 지금은 느슨해진 기분이었다.
이 맛있는 걸 열여덟이 되어서야 처음 먹는다니, 부잣집에서 산다는 게 마냥 좋은 건 아니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많이 먹어.”
수현이 오유나 앞으로 삶은 달걀을 하나 밀어주었다.
“와, 이거 나 주는 거야?”
“이런 떡볶이 처음 먹어 본다며. 우린 여러 번 먹었거든.”
수현의 호의에 오유나가 생글생글 웃었다.
“고마워, 수현아. 너 맘이 아주 넓은 친구구나?”
오유나가 소스에 미끄러지는 달걀을 낑낑대며 자르는 걸 보던 수현이 떡볶이 하나를 포크에 콕 찍으며 말했다.
“그리고, 다 먹고 나면 그만 돌아가.”
“어?”
“벽화 그리기 만만한 일이 아니거든. 설마, 정말 할 생각은 아니었지?”
물끄러미 자신을 바라보며 묻는 수현에게 오유나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핫. 얘 좀 봐.”
깔깔 웃던 오유나가 달걀을 오물오물 씹으며 중얼거렸다.
“되게 신기한 애네.”
자신이 조금만 관심을 보여도 몇 배에 달하는 호의가 돌아오는 게 보통이었다. 싫은 내색을 할 필요도 없었다. 대부분은 기분을 드러내기도 전에 자신에게 맞춰 눈치껏 행동했으니까.
그러니 유나는 세상이 쉬웠다.
가끔 김하영처럼 분수를 모르는 애들을 눌러주는 것 말곤 크게 할 일도 없었다. 이번 일도 김하영이 파티니 뭐니, 미술과를 휘어잡으려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나섰던 거고.
‘생각했던 거랑은 다르네?’
오유나가 고개를 갸웃했다.
김하영에게 교육이 필요해 판을 벌이긴 했으나, 마음 한구석엔 찜찜함이 있었다.
장기 말로 사용해야 하는 한수현이란 애가 내 연기를 진짜 호감으로 받아들여 귀찮게 굴기라도 하면 어쩌지, 하는 찜찜함이.
그런데, 얜 뭐지?
남들은 잡지 못해 안달인 내 손을 먼저 뿌리친다고?
내가 이렇게 와줬는데, 나한테 가라고 한다고?
오유나는 신선하고 새로운 경험을 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조금만 더 지켜볼까?’
오히려 호기심이 동했다.
“나, 벽화 관심 있다는 말, 진심이었는데?”
오유나가 오기를 부리며 싱긋 웃었다.
“설마, 나랑 내 친구들이 민폐가 될까 봐 그러는 거야?”
“그건 아니야. 정원동 벽화 면적이 생각보다 넓어서 도와줄 손이 많으면 나쁠 건 없거든.”
담백한 수현의 반응에 오유나가 당황했다.
“그, 그럼 문제없잖아. 나랑 친구들도 가서 도울게.”
“그럴래?”
“어. 물론이지.”
“좋아. 그럼 가자. 이제 가야 할 시간이야.”
제대로 된 의사를 확인한 수현이 더 권하거나 말리는 일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박선화와 차윤희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고, 오유나와 그의 친구들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그 뒤를 따랐다.
***
두 시간 후, 정원동 도서관 앞 담벼락.
“세현예고 애들이라고 다 잘 그리는 건 아닌가 봐?”
길게 이어진 벽에 붙어 열심히 스케치하는 애들을 보며 스티브가 끌끌 혀를 찼다.
“더 크게 말해.”
수현이 바쁘게 페인트 붓을 움직이며 무표정한 얼굴로 답했다.
“어?”
“아예 저 끝까지 다 들리게 더 큰 소리로 말하라고.”
“아? 내 목소리가 컸어?”
“그래. 말 좀 조심하라고, 스티브야. 다들 저렇게 열심히 그리는데 이게 무슨 힘 빠지는 소리야.”
“아니, 수현아. 내가 괜히 이러는 게 아니잖아. 저길 좀 보라니까? 쟤들 그려놓은 것 좀 봐. 어?”
핀잔을 주는 수현의 말에 스티브가 억울하단 얼굴로 쾅쾅 가슴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그걸 본 수현이 피식 웃었다.
“봤어.”
“어?”
“나도 다 보고 있다고.”
“와, 근데 그냥 둔다고? 아무 말도 없이? 수현, 너희 학교 혹시 기부금 입학 있어?”
“기부금?”
“쟤들 기본적인 형태 감각도 없잖아. 뭘 그려야 할지 모르겠다고 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하는 건데. 내가 참고하라고 준 사진이 저거였나, 혹시 뭘 잘못 준 건가, 좀 전에 다시 확인하고 왔다니까? 하, 암만 봐도 제대로 학교에 들어갔을 애들이 아니야. 말해봐. 쟤들 기부금 입학이지? 맞지?”
스티브가 확신에 찬 얼굴로 고개를 흔들었다.
“난 몰라. 그리고, 좀 못 그리면 어때. 성의가 갸륵하잖아. 황금 같은 주말에 봉사활동이라니.”
수현이 코를 찡그리며 벽에 바짝 얼굴을 대고 그림을 그리는 애들을 보며 말했다.
대견하긴 했으나, 스티브의 말대로 그림 실력이 좀 엉망이긴 했다.
하지만 돈을 받고 그리는 작품이 아니고, 취지는 어떨지 모르겠으나 이 순간만큼은 제대로 몰입해 그리고 있으니 그걸로 됐다 싶었다.
냉기를 뿜어내던 아까와는 달리 제법 고등학생 같은 얼굴들을 하고 있는 것도 보기 좋았고.
“일단은 두자. 다들 빠져든 것 같으니까.”
“하아. 그래. 예술의 세계라는 게 굉장히 넓고 또 관대하잖아? 혹시 모르지. 누군가는 또 저런 그림을 좋아할지도.”
스티브도 어깨를 으쓱 들어 올리더니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가 그림에 집중했다.
한편, 건너편 담벼락 상황.
‘이거 뭐지?’
치이익- 스프레이를 뿌리고.
슥슥- 커다란 페인트 붓으로 벽을 채워가는 아이들.
그리고 어쩌다 보니 거기에 섞여 저도 모르게 붓을 움직이던 오유나가 화들짝 놀랐다.
‘생각보다 괜찮은데?’
학교에서 그리던 빤한 그림과는 느낌이 달랐다.
비싼 종이와 물감, 그리고 평가하는 시선들. 분위기에 눌리기 싫어 휙- 그려내고 말았던 그림이랑은 천지 차이. 무엇보다 꽤 재밌었다.
‘벽이 무척 딱딱해.’
당연한 사실이 신기했다.
‘붓이 눌리는 느낌이 달라. 흡수하는 정도도 종이와 다르고. 각도가 고정돼 있어서 자세는 불편한데, 오히려 몸을 굽히고 펴면서 그리는 게 역동적으로 느껴져. 캔버스의 크기 같은 것도 없이 그냥 그려지는 대로 자유롭게. 이거 좀 멋진데?’
오유나가 심호흡했다.
적당한 학과 성적에 의심받지 않을 정도의 그림 실력, 그리고 집안의 압력이 더해져 수월하게 들어온 세현예고.
그래서였을까?
내내 흥미가 없었다.
너무 쉽게 손에 쥐어지니 매력이 느껴지지 않았다는 게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오유나는 학교생활이 지루했다.
너무, 너무, 너무, 많이.
그래서 놀았다.
고등학교 1학년은 그야말로 펑펑 놀고 노는 것의 연속이었다.
신나게, 재미있게. 억지로라도 시간을 보내다 보면 어른이 될 테니 조금만 참자, 스스로를 다독이면서.
다행인 건 아직까진 큰 구멍이 없다는 점이었다.
어릴 때부터 조기교육이니 영재교육이니 하는 걸 지겹게 받아온 데다가 머리가 좋아 학과 성적은 문제 될 게 없었다.
시험 전날 후루룩 범위만 훑어봐도 상위권을 차지할 수 있었다.
문제는 실기였는데, 그것도 크게 개의치 않았다.
솔직히 입시 미술이라는 건 어느 정도 정해진 틀 안에서 공식처럼 외우는 거라, 그대로 찍어내기만 해도 쉽게 A를 딸 수 있을 테니까.
그러니 성적순으로 반을 나눈다 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비록 몸은 3반에 의탁하고 있으나, 언제든 맘만 먹으면 1반 상위권에도 충분히 오를 수 있을 거란 자신이 있었던 거다.
그랬는데, 그래서 대충대충 대하던 그림이었는데, 오늘은 왜 이러는 거지?
유나는 뜨거운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그것도 처음 보는 담벼락 앞에서.
아무 걱정 없는 어린아이가 손바닥에 잔뜩 물감을 묻히고 신이 나서 여기저기 도장을 찍고 다니는 것처럼, 유나는 거침없이 즐겁게 담벼락을 채워나가고 있었다.
“와, 재밌다. 이거 엄청 재밌어.”
결국엔 이런 말을 입 밖으로 내뱉기까지 했다.
“꽤 괜찮아 보이는데?”
자신의 그림에 감탄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일종의 착각.
“햐.”
오유나는 순간 몰입이 지나쳐 감정 과잉 상태에 빠져 있었다.
그러니 엄청난 걸 그려냈다는 느낌을 받았을 뿐, 감정이 사그라지는 즉시 결과물을 객관적으로 인지하고 부끄러움을 느끼게 될 가능성이 농후했다.
하지만, 그러면 좀 어떤가.
그림이라는 게 먼저 그리는 사람이 즐거워야지.
잘 그리는 건 그다음의 문제고.
어쩌면 오늘 오유나가 느낀 감정은 이후에 그릴 그림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될 테고, 그걸로 오유나의 태도가 바뀔지도 모르겠다고, 그거면 된 거라고 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뭐…… 행복해 보이긴 하네.”
스티브도 반쯤은 포기했단 얼굴로 오유나의 그림을 보며 피식 미소 지었다.
***
“오늘 즐거웠어.”
“응. 나도.”
“진짜로.”
“어, 우리도.”
“다음에 또 같이 놀래?”
날이 저물고 있었다.
벽화를 다 그리고 애들과 저녁도 함께 먹었다. 그러고 나니 제법 친해진 느낌이 들었다.
오유나는 페인트가 잔뜩 묻은 옷과 손을 내려다보며 연신 신기한 얼굴을 했다.
“아, 맞다. 그리고 생일 축하해. 수현아.”
오유나가 한 번 더 축하를 건넸다.
“음. 솔직히 네가 왜 갑자기 내 생일에 관심을 뒀는지는 모르겠지만, 오늘 반가웠어.”
수현이 미소 짓자 오유나가 입을 뻐끔거리더니 그냥 헤헤 웃어버렸다.
“맞아. 의도가 좀 불순하긴 했지. 근데 오늘 재밌었던 건 진심이야. 그리고 생일 축하도 진심.”
“응. 고마워. 생일 축하도, 같이 벽화 봉사해준 것도.”
“어.”
끼이익-.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눌까 싶었는데, 오유나네 집에서 보낸 흰색 고급 대형 세단이 음식점 앞에 멈춰 섰다.
“어? 나 먼저 가봐야겠다. 오늘 진짜 즐거웠어. 그리고 다음에 또 놀자는 거 빈말 아니야.”
오유나가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그래. 조심히 들어가.”
“잘 가, 유나야.”
“잘 가라.”
애들의 배웅을 받고 음식점을 나서던 오유나가 문을 나서기 전, 몸을 한 번 더 휙 돌리더니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그리고, 너희 걱정하지 마.”
“어?”
“오늘 김하영네 파티, 사실 다음 주 반장선거랑도 관련 있는 거지?”
오유나의 말에 수현과 박선화, 차윤희의 눈이 동그래졌다.
이 역시 의심하던 바였으나 해결책을 따로 강구하고 있었다.
그런데, 강 건너 3반의 오유나가 그걸 언급할 줄은 몰랐다.
“글쎄. 하하.”
후보로 나선 박선화가 머리를 긁적이자 오유나가 살짝 고개를 흔들었다.
“솔직히 내가 나서서 몇 마디만 하면 가볍게 정리될 문제긴 한데, 그런 방식은 너희가 원할 것 같지 않고.”
오유나는 어느새 아까 학교에서 보였던 차분하고 냉정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근데 그냥 두자니 불편해서 말이야. 일단은 공정한 선거가 되는지 지켜보고, 필요하면 내가 증언을 해줄게.”
“증언?”
수현의 물음에 오유나가 활짝 웃었다.
“어, 내가 여기저기 사람을 좀 심어놨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