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nowned Genius At My Arts High School RAW novel - Chapter (64)
64화. 반장선거
조합은 좀 어색했지만 나름 수현이 친구들과 즐거운 생일을 보내던 그 시각.
김하영은 지옥을 경험하고 있었다.
“이것들이 감히.”
2학년 1반 46명 중 한수현, 차윤희, 박선화, 그리고 자신을 제외한 42명 모두에게 초대장을 보냈던 김하영.
그런데 최측근인 장민영, 이주호가 가장 먼저 등을 돌리더니 이빨 빠진 옥수수처럼 불참을 통보하는 애들이 생겼다.
결국 초대에 응한 애들은 20명.
절반도 안 되는 애들이 참석한 파티는 썰렁할 수밖에 없었고, 김하영의 기분은 좋아질 수가 없었다.
‘그나마 사회자를 따로 부른 게 다행이었지.’
김하영이 깔깔대며 떠드는 애들을 싸늘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행사를 진행 시키고, 마니또를 하게 하고, 준비한 선물을 주고, 초대한 가수의 공연을 보게 하고.
김하영의 기분과 상관없이 파티는 그럭저럭 흘러가고 있었다.
“아직도 기분이 안 좋아?”
바로 그때, 최주희가 다가왔다.
“좋을 수가 있겠어?”
김하영이 신경질적으로 받아쳤다.
“나도 장민영이랑 이주호가 그럴 줄은 몰랐어.”
최주희가 입을 삐죽이며 뒷담화의 포문을 열었다.
“걔네 오유나한테 잔뜩 쫄아서 지레 겁먹은 거지?”
최주희가 슬쩍 김하영을 떠봤다.
아까 김하영이 교실을 박차고 나갔을 때, 장민영과 이주호가 곧바로 그 뒤를 따랐다.
생각 같아선 자신도 따라가고 싶었으나, 파티가 열릴 김하영의 집까지 누군가는 인솔을 맡아야 했고, 자신이 그 역할을 해야 한다는 걸 직감해 자리에 남았었다.
그런데, 장민영과 이주호가 돌아와 굳은 얼굴로 가방을 챙겨 나가버렸고, 눈치를 보던 애들이 술렁였다.
곧이어 김하영이 돌아왔는데 표정이 말이 아니었다.
장민영과 이주호를 쫓아 나갔던 애들이 뭔가를 쑥덕거렸고, 그러자 몇몇 애들이 눈치를 보더니 파티에 못 갈 것 같다고 초대장을 돌려주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최주희는 궁금해 죽을 지경이었다. 곧바로 집에 갔다면 애들에게 전화를 돌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수화기가 뜨거워질 때까지 캐물었을 텐데, 곧바로 김하영의 집에 끌려온 탓에 정보가 차단됐다.
‘일이 틀어진 거면 안 되는데.’
초조하기도 했다.
김하영이 떠밀긴 했으나, 최주희는 다음 주에 있을 반장선거에 나가기로 되어 있었다.
한수현 쪽에서 나올 후보와 맞붙을 경쟁 후보.
아니, 김하영이 뒤를 받쳐주니 당선이 유력한 후보가 자신이었다.
그런데, 만약 아까 일로 뭔가 일이 생긴 거라면 다음 주 반장선거에도 영향이 가는 게 아닐까?
최주희는 계산기를 두드리기 바빴다.
“몰라. 장민영, 이주호. 진짜 웃기네.”
그러나 김하영은 운동장에서 있었던 일들에 대해 한마디도 해주지 않았다.
짜증도 나고 떠올리기 싫은 치욕적인 사건이었다.
한수현과 그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그 꼴을 당하다니.
가슴에 뜨거운 용암이 솟구치는 듯, 분한 마음이 일었다.
“하, 뭐 시원한 거 없어?”
“어?”
“한잔 가져와 봐. 속 타서 미치겠네.”
김하영이 짜증을 부렸다.
파티에 온 애들 대부분이 평소라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수준의 애들이었다. 그나마 수준이 괜찮다 싶은 애들은 일찌감치 내뺐던 거다. 오유나와 자기 사이에 흐른 이상기류를 눈치채고.
‘어쨌든 반장선거부터 해결하고 수습을 해야겠어.’
오유나와 어떻게든 오해를 풀고, 자신에게 치욕을 안겨준 애들에게 차근차근 복수해야겠다고 김하영이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
월요일 아침, 2학년 1반 교실.
“안녕?”
“안녕!”
주말을 잘 보내고 온 애들이 반갑게 아침 인사를 나누었다.
“주말에 어땠어?”
“거기 다녀온 거지? 재밌었어?”
오늘의 화제는 둘로 정해져 있었다.
“와, 그날 김하영 집에 멘홀 멤버들 다 왔잖아. 가든에서 파티 열고, 공연도 했어.”
“진짜?”
“어, 사인도 받고, 선물도 받고. 김하영이 따로 준비한 선물 대박이었는데.”
“하. 그랬구나.”
하나는 김하영의 깜짝 파티였고,
“오늘이지?”
“어. 2교시에 하나?”
“누구 뽑을 거야?”
“너는?”
“야, 원래 이런 건 비밀로 해야 하는 거 아니냐?”
다른 주제는 오전에 있을 반장선거에 관한 것이었다.
“후보는 둘이려나?”
애들이 속닥거렸다. 물정 모르는 후보자가 뒤늦게 더 나타날 수도 있겠으나 이미 박진감 넘치는 양강구도가 형성돼 있었다.
김하영이 미는 최주희냐, 한수현 무리의 차윤희냐.
“최주희는 1학년 때도 반장했잖아. 어땠어?”
“그냥 뭐, 쏘쏘. 나쁘지도 않고, 특별하지도 않고.”
“하긴. 워낙 범생이 스타일이잖아.”
몇몇은 최주희가 김하영 등과 지나치게 어울리며, 잘린 최형욱 선생과도 모종의 비리를 저질렀다는 걸 알았지만, 출처가 확실하지 않은 소문이니 입조심을 했다.
덕분에 최주희의 이미지는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차윤희는?”
“걘 뭐, 성격 좋지.”
“맞아. 실기도 잘하고, 공부도 잘하고. 애가 되게 털털하잖아. 심지어 체육도 잘해.”
“하긴. 이번 조소과에서 제일 힘 좋은 애가 차윤희라며.”
“맞아. 그런 소리도 있더라. 나 차윤희 체력장 때 멀리던지기 하는 거 보고 기절했잖아. 남자애들보다 훨씬 잘하던데?”
차윤희의 평가도 나쁘지 않았다.
두루두루 애들과 친하게 지내는 인싸인 데다가 성실하고 소탈한 성격으로 왠지 호감이 가는 스타일이었던 거다.
“난 모르겠다. 누굴 뽑을지.”
“솔직히 파티 때 좀 친해지면 최주희를 뽑게 되는 거 아닌가 싶었는데, 그날 분위기가 그렇진 않았잖아?”
“맞아. 좀 뒤숭숭했지. 김하영이랑 최주희도 뭔가 어색하고. 맞다, 김하영, 오유나랑 뭐가 있었다며?”
“어, 그날 애들 갑자기 파티에 안 온 것도 오유나랑 김하영이 싸워서 그런 거라던데?”
“헐, 진짜야?”
“한수현이랑 애들 같이 우르르 나갔고, 김하영이 쫓아갔었잖아. 운동장에서 대판 싸웠대.”
“대박.”
“여튼 지금은 거리는 두는 게 좋겠더라. 몸 사려야지.”
“그래, 괜히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질 일 있어?”
소문과 정보를 종합하며 조합한 애들이 바쁘게 소곤거렸다.
운동장 싸움은 토요일 하굣길에 짧게 일어난 이벤트였으나, 주말이 지나도 식을 줄 모르는 핫이슈였다.
본래 김하영의 계획대로라면 토요일 파티에 대한 감상을 나눈 애들이 최주희 쪽으로 자연스럽게 표심을 드러내는 이야길 했어야 했다.
그러나 애들의 관심사는 어딘가 엉성했던 그 날의 파티가 아닌, 김하영과 오유나의 갈등에 꽂혀 있었고, 잘못하다간 강력한 태풍에 어이없이 휘말릴 수도 있겠단 생각에 중립 기어를 박자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러니 반장선거는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원점에서 공정하게 치러질 수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3교시 HR 시간.
“기호 1번 최주흽니다.”
“기호 2번 차윤희입니다.”
팽팽한 긴장 속에서 반장선거가 시작되었다.
***
“……둘째, 여러분의 의견에 항상 귀를 기울이고 소통하도록 노력하는 반장이 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셋째, 2학년의 가장 큰 행사인 수학여행 장소를 프랑스나 영국, 미국 중 한 군데로 갈 수 있도록 열심히 추진해보겠습니다. 이상입니다, 감사합니다.”
기호 1번 최주희의 공약은 하품이 날 지경이었다.
원래 고등학생 수준이 저 정도였나?
수현은 잠시 제 눈을 의심했으나 마찬가지로 심드렁한 애들의 표정을 보고 안심했다.
그냥 최주희가 기대 이하였던 거구나. 그렇다면, 승산이 있겠는데?
“안녕하세요. 차윤흽니다.”
잠시 후, 차윤희가 단상 앞으로 나섰다. 조금은 긴장한 얼굴. 그러나 아이들을 둘러보며 은은한 미소를 지어 보인 차윤희가 마침내 야심 찬 한마디를 던졌다.
“저는 두루뭉술한 공약 같은 건 걸지 않겠습니다. 겉핥기식의 소통도 하지 않겠습니다.”
감기려던 애들의 눈이 번쩍 떠지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20분 후.
“축하해.”
“오. 축하합니다!”
“축하한다!”
우르르 달려들어 축하 인사를 건네는 손들. 악수를 청하고 어깨를 두드리고, 등을 툭 치기도 했다.
“고마워. 어, 정말 고맙다. 앞으로 열심히 할게.”
활짝 웃으며 축하 인사를 받는 건 다름 아닌 차윤희였다.
43명 중 39표.
무려 90%의 아이들의 지지를 받아 차윤희가 반장이 되었다.
“대박.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개표가 끝난 후, 차윤희의 표정은 정말이지 볼만했다.
“차윤희.”
“차윤희.”
“차윤희.”
“차윤희.”
“……차윤희.”
“또…… 차윤희.”
개표하는 아이도, 표를 받아 다시 확인하는 아이도, 바를 정(正)자를 칠판에 기록하는 아이도 모두 놀란 얼굴이었다.
그럴 것 같긴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김하영과 최주희 본인을 빼면 딱 두 표의 이탈. 이만하면 완벽한 선거였다. 최주희와 김하영에겐 믿을 수 없는 결과겠지만.
어쨌거나 애들이 이렇게까지 차윤희에게 몰린 데엔 다 이유가 있었다.
“공약 꼭 지켜라.”
“두고 볼 거야.”
“맞아. 내 표를 헛되이 하지 말라고.”
격려와 함께 공약을 확인하는 아이들.
“응. 걱정 마. 오늘부터 시작할 테니까.”
차윤희가 준비해온 상자를 들어 보이더니 교실 뒷문 청소함 위에 올려두었다. 민원함이었다.
지난주.
“그런 게 효과가 있을까?”
반장선거를 앞두고 공약을 고민하는 차윤희에게 수현이 조언해준 게 바로 민원함이었다.
“있을 거야. 반응도 좋을 거고.”
학급 내 건의사항, 고민, 각종 요구들을 익명으로 제출하는 시스템.
이건 세현예고에 전에 없던 시스템이기도 했다. 그러다가 수현이 고3이 되었을 때 처음 생겨났고.
‘반응이 폭발적이었지.’
수현은 당시 민원함이 세현예고에 일으켰던 돌풍을 기억하고 있었다.
한시적으로 운영됐던 방송반의 민원함 서비스.
첫 시작은 인기 투표였다.
학년 내 최고 인기 학생을 뽑는 투표함을 설치했던 건데, 누군가 거기에 절절한 첫사랑을 고백하는 편지를 넣었던 거다.
방송반에선 그걸 전파로 내보냈고 반응은 뜨거웠다. 다음 날부터 투표함에는 각종 사연이 도착하기 시작했다.
평소에도 느꼈고, 말하고 싶었으나 체면, 사회적 위치, 친구와의 관계 때문에 꾹 참았던 말들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나중엔 꽁꽁 감추고 덮어야 하는 고발까지 튀어나오면서 학교 측이 부랴부랴 방송반의 민원함을 없애버려 짧은 추억으로 그쳤는데, 수현이 그 일을 떠올렸던 거다.
“고등학생쯤 되면 겉으론 드러내지 못하고 속앓이하는 말들이 꽤 많을 거야. 라디오 방송국에 사연을 보내는 것처럼, 편지를 보내주면 그걸 학급에서 공유하고 들어준다고 해봐. 다들 좋아할걸?”
처음엔 고개를 갸웃하던 차윤희도 이내 재밌을 것 같다며 공감했고, 그렇게 뚝딱 셋이서 예쁘고 튼튼한 민원함을 제작했다.
그리고 차윤희가 오늘 공약 발표 시간에 그 민원함을 들어 보이며, 샘플로 제작한 사연을 읽어주었다.
구체적인 예시를 통해 민원함의 쓸모를 알게 된 애들은 크게 호응하며 차윤희에게 아낌없이 표를 던졌던 거고.
물론, 차윤희의 상대였던 최주희의 매력도가 떨어졌던 것도 큰 도움이 되긴 했다.
어쨌거나, 차윤희는 원하던 대로 2학년 1반 1학기 반장이 됐다.
“축하해. 앞으로 잘 부탁한다, 반장.”
“와. 이게 진짜 통하네? 기분이 어떠십니까?”
수현과 박선화도 축하 인사를 건넸다.
“하 씨. 진짜 그지같네.”
김하영이 벌컥 짜증 내는 소리와 참패한 결과에 훌쩍이는 최주희의 울음소리가 저편에서 들려오긴 했으나, 굳이 아는 척할 일은 또 아니었다.
“야, 차윤희, 축하한다!”
그리고 드르륵.
복도 쪽 창문이 열리더니 제법 친해진 얼굴들이 교실 안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오유나를 비롯한 3반 애들이었다.
“이따가 점심이나 같이 먹자.”
“그래. 좋아.”
수현이 고개를 끄덕였고, 오유나가 오른손으로 오케이 사인을 만들어 보이며 찡긋, 윙크를 보냈다.
어째 순탄할 것 같지 않은 2학년이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