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layer who hides his past RAW novel - Chapter 565
◈ 565화. 우물 안의 존재 (3)
바르바토스는 생각했다.
상황이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객관안으로도 꿰뚫어보지 못했던 변수.
‘마법사의 탑’이 원인이었다.
과거, 바르바토스는 평가했었다. 보잘것없는 악마에게 휘둘리는 주제에 진리의 상징이요, 아르카나 대륙의 상아탑 자처하는 마탑의 모습이 참으로 우습다고.
그중에서도 압권은 마법사들의 오만함이었다. 고작 마력을 다룰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선민의식으로 똘똘 뭉쳐서는 다른 개미를 깔보는 꼴이 가관이었단 말이다.
그렇기에 마탑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러한 마탑이라면 권능을 사용하지 않고서도 충분히 들쑤셔 놓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과거와 다르다.’
마탑 마법사들에게서 과거의 모습이 내비치지 않았다.
자신의 객관안을 속일 순 없을 터.
그렇다면…….
시건방졌던 마법사들이 진정으로 변화했단 뜻이란 말인가?
‘아니, 그런 건 일찍이 알고 있었다.’
말했듯 이들을 지켜보아왔다.
덕분에 인지하고 있었다.
악마와 맞서며 마탑의 버러지들도 변화했노라는 사실을.
설령 깨닫지 못했을지라도.
파이몬과 맞서던 이들의 각오에서 목격하지 않았던가?
‘제 목숨을 던질 정도로 변화했다는 걸.’
그렇다면 지금.
나는 무엇에 경악하고 있는 것인가.
그에 답하듯 시건방진 사내가 입을 연다.
“다음 방으로 가도 좋다.”
벤쉬 윌리엄.
파이몬이 노렸던 섬, 제주도에서 상처를 입은 것이리라. 마력조차 끌어올릴 수 없는 육체에서 어떻게 저런 자존심이 나오는지. 이유 따윈 궁금하지 않았다.
진정으로 궁금한 건 오직 하나.
‘통과라니 어째서?’
벤쉬의 질문에 바르바토스는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그야 정곡을 찔렸기 때문이었다. 벤쉬는 교묘한 대답을 그냥 넘어가지 않고 물어뜯었으니까.
집요한 걸 넘어서 유치할 정도로.
바르바토스는 충동에 휩싸였다.
‘이쯤에서 죽일까.’
설령 이곳이 마탑이라고 한들. 자신은 십좌였다. 마력조차 사용하지 못하는 마법사 하나를 처리하는 건 수고조차 들이지 않아도 되었다는 뜻.
한데, 주먹을 움켜쥐는 순간.
“감격해서 머뭇거리는 건가? 아니면 원치 않나?”
통과라는 결과가 떨어졌다.
“그럴 리가요. 그 자비에 감사를 표하겠습니다.”
바르바토스가 말하곤 자리에서 일어나 다음 방으로 향했다.
굳이 객관안이 아니더라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벤쉬 윌리엄.
저 사내가 자비를 베푼 순간부터.
주도권이 마탑으로 넘어갔다는 사실을.
척.
문고리를 잡은 바르바토스의 눈이 가늘어졌다.
‘꼬리를 내릴 줄 아는 건 나뿐인 줄 알았는데.’
마탑.
어쩌면.
이들은 자신의 예상보다도 훨씬 영리한 집단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큰 의미는 없었다.
말했듯 흐름이 어떻게 흘러가든.
그 결과가 어떻든.
‘유감스럽게도 나는 잃을 게 없으니 말이야.’
바르바토스의 낯빛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약함을 연기하는.
십좌들조차도 상종하기 싫어하는 모양새로.
바르바토스가 그렇게 문을 열었다.
‘내겐 네가 있으니까, 샤르멘.’
다시금 허리를 숙였다.
“이 바르바토스, 마탑의 선임께 인사드리겠습니다.”
*
정식으로 마탑의 승인을 받고, 적합한 절차를 거쳐 크리스탈 홀에 출입한 유일한 매스컴 VBC의 투데이 아르카나 연출팀. 하지만 총괄 카메라 감독, 윤종진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선배, 이거 언제까지 빈 강단만 찍고 있어야 하는 거래요? 애초에 편성은 괜찮은 거 맞아요? 저희 이거만 믿고 뒷 시간 편성 전부 미뤄놨잖아요?”
현용석이 콧방귀를 뀌었다.
“펑크 좀 내면 뭐 어때서? 어차피 내가 끌어올린 시청률이고, 내가 끌어모은 광고주들이야. 떠나도 우리한테 뭐라고 할 수 있는 놈들 아무도 없어.”
“아니, 그 말씀은 진짜 든든한데요.”
윤종진이 슥 눈치를 살피고 다시 속닥거린다.
“애초에 사전검증을 통과할 수나 있을까요?”
절차를 거쳐 마탑에 출입했다면서 아까부터 누구의 눈치를 살피는 거냐고 묻는다면. 다름 아닌 같은 청중석에서 자신들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마탑의 마법사들이었다.
윤종진이 조금 더 목소릴 낮추고 말을 잇는다.
“아니이이, 선배……! 저기 숙련 마법사들이 하는 말 들었잖아요? 토파즈 홀에서 진행한다는 사전검증, 그거 통과하는 사람이 마탑에서도 많지 않다고요.”
들려오는 악명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특히 호열 씨한테 걸리면 아주 그냥 눈물을 쏟고 나올 수밖에 없다고 하잖아요! 왜, 어떤 숙련 마법사는 사전검증에서 된통 깨진 다음에 며칠 동안 식음을 전폐했다고……!”
아직도 전해야 할 일화가 많았거늘.
현용석이 영 관심이 없자 윤종진은 한숨을 삼켰다.
핵심만 간단하게 전하는 게 최선 같았다.
“그. 러. 니. 까. 십좌인 바르바토스가 검증을 제대로 통과할 수나 있겠느냐고요! 심지어 숙련 마법사들 이야기로 봐선 모든 선임 마법사가 사전검증에 총출동한 것 같던데…….”
“너 못 믿어?”
“믿어요? 누굴요? 설마, 선배를요?”
윤종진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당연히 못 믿지!
현용석을 믿었다가 어떤 고생에 시달렸는지 떠올리면.
저절로 미간이 찌푸려지는 게 당연했다.
물론, 현용석에게도 양심은 있었다.
“미쳤어? 나 방송국 놈이야.”
“그럼요! 그것도 누구보다 악랄하신 방송국 놈이죠!”
“그런 나 말고, 이호열을 믿느냐는 말이야.”
“……이호열요? 갑자기?”
현용석은 여전히 텅 빈 모니터만을 바라봤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이호열. 호열 씨는 언제나 자기가 내뱉은 말에 책임을 져왔어. 종진아, 너는 그 말의 무게가 가벼웠다고 생각하는 거냐?”
“굳이 따지자면 절대 가볍지 않았겠죠.”
왜, 모두가 패배를 예상했던 레이드를 보란 듯이 성공한다든가.
엄청난 피해가 예측됐던 상황을 비현실적으로 극복한다든가.
온갖 말도 안 되는 일을 실현해 냈던 이호열이었다.
현용석이 지그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거에 비하면 이건 지극히 사소한 약속이잖아?”
고작해야 크리스탈 홀에 바르바토스를 세우는 것뿐이었으니까. 그 녀석이 백문백답에 응할 수 있도록 사전검증을 통과시키는 것뿐이었으니까.
현용석은 장담할 수 있었다.
“만약, 통과시키지 않을 생각이셨다면 호열 씨는 우리를 크리스탈 홀에 대기시키지 않으셨을 거야. 아니, 애초에 촬영 허가를 내어주지도 않으셨겠지.”
윤종진이 별안간 머리를 긁적였다.
“……진짜 입만 사신 거 아시죠, 선배?”
“그래? 그렇게 생각한단 말이지?”
“그럴 수밖에 없죠!”
애초에 우린 이호열에 관해서 제대로 아는 게 없는데……!!
하지만 무엇보다 확실한 증거가 있었으니.
그건 바로 자신들보다도.
호열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마탑 마법사들의 태도였다.
현용석이 입을 연다.
“알고 있어? 마법사들, 단 한 명도 홀을 떠나지 않았어.”
“……!”
“모두가 얌전히 때를 기다리고 있는 거야.”
윤종진은 그제야 깨달았다.
어느샌가 속닥거리던 자신의 목소리가 지나치게 커졌다는 사실을. 문득, 뒤통수에서 느껴지는 찌릿함에 고개를 돌리니 숙련 마법사 하나가 자신을 노려다 보고 있는 게 아닌가?
“그래요, 선배 말이 다 맞는다고 쳐요.”
이쯤 되면 믿음을 넘어선 신앙이 아닐까?
얼마 전, 사람들이 떠들어댔던 가설이 떠오른다. 왜, 만신전의 신들보다 이호열을 향한 신앙심이 더 커서 압도적으로 승리할 수 있었다던…….
“아무리 그래도 호멘은 좀 오글거리는데…….”
윤종진이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
속된 말로 ‘신성모독’을 하던 순간이었다.
대충 걸치고 있던 헤드폰으로 다급한 무전이 파고들었다.
-가, 감독님 옵니다!!
“엉? 온다고? 누가?”
-누구긴 누구겠어요!!
어휴, 반사적으로 한숨부터 나온다.
“야, 너 아까도 그렇게 호들갑 떨었더니 제시 하인네스였잖아? 촬영이 장난이야? 자식아, 아무리 제시 하인네스를 실물로 처음 보는 거라고 해도…….”
-그게 아니라 바르바토스요!!
“바르바토스도 마찬……. 뭐?! 바, 바르바토스?!!”
이윽고, 크리스탈 홀이 술렁거리기 시작한다.
“……말도 안 돼.”
윤종진의 뒤통수를 뚫어지라 쳐다본 숙련 마법사, 클레 오디아.
그녀가 자신도 모르게 읊조렸다.
절대로 통과할 수 없으리라 여겼다.
클레 역시, 토파즈 홀의 사전검증을 경험해 봤으니까.
심지어 이번 사전검증은 특별했다. 무려 스물의 선임 마법사들의 검증을 차례로 통과한 뒤, 이 수석님의 검증까지 통과해야 하는 극악의 난이도였단 말이다.
클레가 애써 이해심을 발휘했다.
‘……선임 마법사님들은 그러실 수 있어.’
그러나 마지막, 이 수석님께서 악마를 크리스탈 홀에 세우시겠다 허락하셨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다시금 떠올려보는 사전검증의 무서움.
‘토파즈 홀에선 거짓을 말할 수 없어.’
물론, 진실을 교묘하게 빗겨나가는 답을 한다면 가능하다. 실제로 몇몇 숙련 마법사들은 그런 방식으로 사전검증을 통과하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이 수석님이 마탑에 발을 들이신 이후.
누구도 그러한 요령으로 사전검증을 통과하지는 못했다.
그렇다면…….
클레의 동공이 흔들렸다.
‘그 말들이…….’
바르바토스가 내뱉던 가증스러운 말들.
-“기쁘게 화답하죠. 인간과 악마의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모든 악마라고 다 같은 악마는 아닙니다. 그렇다면 착한 악마냐고요? 애초에 선과 악의 기준이 무엇입니까? 알려주신다면 답변하겠습니다.”
-“저는 언제든 평화를 위해 희생할 수 있습니다. 제가 죽어서 당신들의 세계에 평화가 찾아올 수 있다면, 진정으로 그렇게 생각한다면 저를 죽이셔도 좋습니다.”
‘전부 사실이었다고?’
당연한 반응이었다.
어째서 당연하냐고 할 수 있냐고 묻는다면.
흔들리고 있는 건 비단 클레만이 아니었으니까.
플레이어들이 크게 술렁거렸다.
“그래, 말에서 뭔가 진심이 느껴졌다니까?”
“목숨을 걸겠다는 게 진짜라고?”
“왜, 악마도 악마 나름이라잖아.”
성전 연합군 소속 플레이어도 예외는 아니었다.
“……막말로 이용하면 되는 거 아닐까요?”
“그러게. 다른 악마라면 몰라도 십좌니까. 마계에 관해서 알고 있는 것도 많을 수밖에 없을 테고. 사정을 들어보니까 바르바토스도 이해관계 때문에 협력하고 싶어 하는 게 이해가 돼.”
“등골만 빨고 버리면……. 아니, 그럼 긍지가 없나?”
잠자코 있던 레오니가 비아냥거렸다.
“아주 그냥 성인군자들 납셨네.”
레오니는 간과하지 않았다.
바르바토스.
녀석이 현실에 진입하는 순간 떠올랐던 메시지를.
[바르바토스의 영향력이 기이의 땅, 서울에 영향을 끼칩니다. 모든 분야에 관한 이해력이 대폭 상승합니다.]이제 와서 느끼는 건데, 그건 버프를 가장한 상태이상과 다를 바 없었다. 왜, 지금도 머릿속은 바르바토스의 처지를 이해하려고 하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레오니는 흔들리지 않았다.
‘아니, 아직이야.’
모든 건 추측에 불과했다. 바르바토스가 크리스탈 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으니까. 그러니까 레오니는 매서운 눈빛으로 크리스탈 홀의 문을 노려봤다.
그때였다.
쿠구궁.
웅장한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린 건.
“……!”
바르바토스가 모습을 드러낸 건.
레오니를 포함.
크리스탈 홀에 모인 모두의 얼굴에 변화가 일었다.
그것도 파도가 요동치듯 격하게.
심지어는 호열을 믿었기에.
바르바토스가 반드시 모습을 드러내리라고 믿고 있던.
현용석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말을 더듬었다.
“조, 종진아. 내가 제대로 보고 있는 거 맞냐?”
그럴 수밖에 없었다.
“바, 바르바토스. 그 여유 넘치던 녀석이 어째서 죽상이 돼서는 ‘개 목줄’을 차고 있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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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죄하는 루시퍼의 사슬] [등급 : 전설] [제한 : Lv.1000, 악마 사냥꾼] [효과 : 악마족을 ‘억압’한다.] [설명 : 타천사를 억압할 때 사용되었다는 악크샨의 유물이다. 그 진위를 확인할 수는 없으나 외관으로 보았을 땐 누구도 진위를 의심할 수 없을 정도로 비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