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nowned Genius At My Arts High School RAW novel - Chapter (67)
67화. 신청(2)
중앙예고 1층 교장실.
“전국대회 핵심이 될 주요 인사들과 만날 자리가 생길 것 같습니다.”
좀 전, 작전이 뭐냐는 박 교장의 질문에 강 과장은 침묵을 지켰다.
아무래도 음악과, 무용과, 연영과 과장들이 깊숙한 내용을 함께 듣는 건 부담스럽다는 시그널을 보내면서.
눈치 빠른 박 교장은 대충 훈화와 잔소리를 마무리하며 각 과 과장을 돌려보냈고, 미술과 강 과장만 따로 교장실에 들였다.
그리고 만족스러운 작전의 개요를 들을 수 있었다.
“주요 인사들이라면, 후원사 쪽 말입니까? 아니면 문체부 쪽에?”
“심사위원 중 몇 분이 제 은사십니다.”
흥분하는 박 교장에게 은은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강 과장이 인맥을 꺼내 들었다.
“흠. 심사 쪽은 조심해야 할 텐데.”
박 교장이 미간을 찌푸렸다.
군침이 도는 소리였으나, 심사 과정에 함부로 개입해 대회를 망쳤다가는 수습 불가능한 상황까지 갈 수 있었다.
일등 한 번 해보려다가 학교 명성이 땅에 떨어질 수도, 아예 풍비박산이 날 수도 있으니, 박 교장은 신중한 태도로 강 과장의 의중을 확인했다.
“그건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부정청탁을 하려는 건 아니고, 힌트를 좀 얻으려는 것 뿐이니까요.”
강 과장이 씨익 웃었다.
그에게도 중앙예고 미술과 과장 자리는 소중한 것이었다. 박 교장이 본 대로, 가늘고 길게 가는 게 모토인 강 과장은 자기 주제와 분수를 잘 알았다.
도전과 모험은 옆에서 아무리 부추겨도 하지 않는 스타일. 그러나,
‘떠먹여 준다는 것까지 도리질할 이유야 없지.’
오는 사람까지 막을 생각은 없었다.
그야말로 식은 죽 먹기, 땅 짚고 헤엄치기가 아닌가.
강 과장은 며칠 전 자기를 부른 은사와의 대화를 떠올렸다.
황 화백.
국전 심사위원, 강림대 미술대학 학과장, 전(前) 독립예술가협회 협회장을 지낸 거물.
이력은 일일이 읊지 못할 정도로 넘쳤고, 세력은 감히 추정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득했다.
좀 더러워도 옆에서 사바사바, 비위를 잘 맞추면 떡고물이 뚝뚝 떨어져 구름떼 같은 추종자를 몰고다니는 인물.
그런 그가 강 과장을 따로 물러 넌지시 중앙예고에 쓸만한 재목이 있는지 물었다.
떡잎이 남다른 애가 있다면 자신이 물을 좀 주고 싶다면서. 그건 절호의 기회였다.
마침 그가 찾는 조건에 맞는 학생을 알고 있었고.
“마침 우리 과 학생 중에 전국대회와 성향이 아주 잘 맞을 학생이 있습니다. 전략만 잘 세우면 좋은 성과를 기대해도 될 겁니다.”
“흐음. 그래요. 어쨌든 그럼 나는 강 과장님만 믿겠습니다.”
“네. 하하.”
“어휴, 이번엔 좀 잘해봅시다. 만년 2등에서 벗어나 봐야지. 이사회 등쌀에 내 머리가 아주 숭덩숭덩 빠집니다.”
박 교장이 M자 탈모가 가속화된 이마 끝부분을 가리키며 껄껄 웃었다. 강 과장이 최선을 다하겠다며 그런 박 교장을 안심시켰다.
잠시 후.
“부르셨어요?”
중앙예고 미술과 실기동 학과장실.
곱상한 얼굴을 한 남학생이 노크를 하고 삐죽 얼굴을 들이밀었다.
“어, 들어와라. 민준아.”
강 과장이 활짝 웃으며 소파를 가리켰다.
“네…….”
쭈뼛쭈뼛, 눈치를 살피는 김민준.
강 과장이 냉장고에서 주스를 하나 꺼내 김민준에게 건네주었다.
“마셔.”
“아, 감사합니다. 선생님.”
“그래. 고민은 좀 해봤고?”
“아.”
주스를 마시려던 김민준이 다시 병을 내려놓으며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생각해보긴 했는데…… 정말 제가 할 수 있을까요?”
살짝 고개를 기울이며 짓는 자신 없는 표정. 얼핏 기대를 받는 게 부담스러운 듯 보였으나, 김민준은 순진하기만 한 학생이 아니었다.
예고 준비반에 있을 때만 해도 큰 존재감이 없던 아이.
뒤늦게 탄력을 받았으나 세현예고에 도전할 정도의 실력은 아니라 중앙예고에 원서를 넣었다. 입학 성적도 딱 중간 정도로 애매했고.
그런데, 지난여름부터 김민준은 알을 깨고 나온 새처럼 뭔가 달라졌다.
보통 사람들은 목표를 세우고 달릴 때, 아무리 시간을 들여도 성장이 이루어지지 않는 구간이 있다는 걸 경험으로 알게 된다.
노력이 통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좌절하고, 자신의 한계를 절감하고, 목표를 포기해버리기도 하는 정체 구간.
그건 인간이 대부분 계단식 성장을 이뤄가기 때문인데, 김민준은 달랐다. 적어도 지난여름부터 김민준은 한 번의 정체기 없이 무시무시한 성장을 이뤄내고 있었다.
어제가 다르고, 오늘이 달랐다.
그걸 주변도 알고, 누구보다 자신이 잘 알았다.
물론 그 성장엔 비밀이 있었다.
누군가 치열하게 고민한 시간과 깨달음을 불합리하게 삼키고 갈취한 것이었으니까. 그러니 깊이 들여다보면 찜찜할 일이었으나, 이 역시 재능의 영역이라 생각하면 편했다.
무엇보다 달콤한 인정과 칭찬 앞에선 아무래도 좋았다.
김민준은 자신을 둘러싼 경외의 시선이, 관심이 무척 즐거웠다.
되도록 오래오래 누리고 싶었고.
“하던 대로만 해. 하던 대로만.”
강 과장이 기특하단 얼굴로 김민준을 바라보았다.
재능이 발현된다는 게 이런 건가.
아직 뭐가 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적어도 입시에선 국내 최고 대학에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하는 게 당연시돼 보이는 학생이었다. 유망주, 꿈나무.
그리고 이번 전국대회에서 어쩌면 진가를 드러낼 수 있을 숨은 재목.
‘얼굴도 딱이야.’
강 과장이 가만히 턱을 쓸었다.
자신의 은사인 황 화백은 쓸만한 재목을 찾아달란 말에 몇 가지 조건을 덧붙였다.
스토리가 있을 것.
외모가 반반할 것.
아주 멍청하거나 아주 똑똑할 것.
김민준은 그 조건에도 딱 들어맞았다.
“널 혼자 야생에 내던지기야 하겠니. 대회에 나간다고만 하면 학교에서 전폭적인 지지를 해줄 거야.”
강 과장이 음료를 마시라는 손짓을 하며 흐뭇하게 김민준을 바라보았다.
“아무 걱정 말고 하던 대로, 네 그림만 잘 그리고 오면 돼.”
“하지만…… 대회 기간도 길어서요. 6개월이면, 중간에 시험도 몇 번 있을 거라…….”
“하하. 그게 걱정이었구나? 염려 마라. 불이익이 생기는 일은 없을 거다.”
“아, 정말요?”
장담하는 강 과장의 말에 김민준이 순진한 얼굴로 살포시 웃었다.
혹시 뜻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건가 싶어 강 과장이 말을 보탰다.
“대회 준비하느라 놓친 부분이 생기면 학교에서 알아서 메꿔줄 거야. 그것도 전폭적인 지지의 한 부분이라 생각하면 될 거고.”
시험 성적이 떨어진다 해도 결과표는 제대로 나올 테니 걱정할 필요 없다는 말. 부정행위라도 하려는 건가, 방법까지 물어볼 일은 아니었다. 피차 곤란할 대화가 될 수 있으니.
김민준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해요. 그럼 저는 선생님만 믿겠습니다.”
“그래, 민준아. 우리 잘해보자. 이거, 우리 학교에 정말 중요한 일이야. 좋은 기회고. 앞으로 네가 어떤 대학에 가고, 어떤 작가로 성장할지 이번 대회 결과에 따라 확 달라질 수 있어. 선생님 말,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네.”
김민준이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일주일 후.
전국대회 참가 신청서가 모두 마감되었다.
“뭐야, 너도 나가?”
“너도?”
“와, 대박. 우리 학교에서 몇 명이나 나가는 거야?”
세현예고 미술과 애들은 어딜 가든 전국대회 얘기뿐이었다.
어떻게 보면 테스트고 시험인데, 다수의 애들이 함께 참가한다는 게 기분 좋은 동력이 된 걸까.
수학여행이라도 떠나는 것처럼 다들 들떠 있었다.
“흠흠. 나도 나가기로 했어.”
그리고 이날 차윤희가 자신 역시 뒤늦게 참가신청서를 냈다고 수현과 박선화에게 고백했다.
“진짜?”
“어. 생각해보니까, 너뿐 아니라 미술과 절반은 대회에 정신 팔려있을 건데, 그 상황에서 신의 손 자리를 차지하는 게 무슨 의미인가 싶기도 하고.”
차윤희가 머쓱한 얼굴로 웃었다.
“또…… 종현 선배가, 한번 나가보라고 하더라고. 좋은 기회가 될 거라고.”
“아.”
“그랬군.”
아직 첫사랑에 흠뻑 빠져 있는 차윤희의 대답에 수현과 박선화는 짤막하게 답했으나,
“잘됐다.”
“그래. 같이 준비하면 재미도 있을 거고.”
곧 함께할 이벤트가 생겼다는 데에 기쁨을 느꼈다.
“자, 다들 주목.”
그리고 뜻밖의 변화가 있었다.
“지금부터 호명하는 사람들은 미술과 실기동 1층으로 내려간다.”
종례에 들어온 담임이 전국대회 참가자 명단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참가신청서를 낸 학생들을 따로 모이게 한다는 것.
“……한수현.”
“박준영.”
“고연희.”
“방기수.”
“박선화.”
“이주호.”
“최주희.”
수현과 박선화, 차윤희가 있는 1반에서도 참가자는 열다섯 명이나 됐다.
우르르. 동시에 일어난 애들이 수군거리며 미술과로 연결된 복도를 향했다.
그렇게 실기동 1층 로비에 모인 인원이 총 72명.
1학년과 3학년엔 참가자가 없으니, 전원 2학년이었고, 그건 미술과 138명 중 과반이 넘는 숫자였다.
“어마어마하네.”
신청서를 낸 애들도 이렇게 많이 몰릴 줄은 몰랐는지 다들 놀란 얼굴이었다.
“와, 이거 뭐. 전국대회가 아니라 교내대회라고 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러게. 세현예고 1등이면 전국대회도 1등이겠지. 우리끼리 경쟁 아닐까?”
“그럼 누가 1등이야? 또 한수현?”
“두고 봐야지. 전국대회는 기존 미술대회나 시험이랑은 방식이 다르다잖아.”
“흠. 그게 좀 희한하긴 하더라. 룰이 너무 복잡해.”
“그래도 뭐, 뽑히면 엄청 좋은 기회인 거니까.”
수군대는 애들의 목소리가 점점 커져 갈 때였다.
“아이고, 시끄럽다. 다들 지방방송 꺼!”
새로 부임한 미술과 과장 조재환이 활짝 웃으며 몇 명의 선생들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자, 오늘 모이라고 한 건 다들 알겠지만 전국대회에 관한 공지사항이 있어서다.”
공지사항?
수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과거 이 대회에 참가한 일은 없었지만 학교에서 따로 공지하거나 관리하는 일이 없었다는 정도는 기억하고 있었다.
‘그땐 개별적으로 준비해 나가게 했었는데…….’
그래서 더 막막하기도 했다. 다른 애들은 과외 선생을 붙여 특별 레슨에 대회의 주의사항들을 단단히 들겠지만, 자신은 참가비를 마련한다 해도 제대로 준비하기 어렵겠단 생각이었다.
‘어쩌면 그때보다 인원이 많아져서 그럴 수도 있겠지.’
수현이 1층 로비에 선 애들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오유나나 김하영 같은 부류의 애들은 없었지만, 나름 실력이 쟁쟁하고 작품 비용 걱정 같은 건 할 필요 없는 형편 좋은 애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런 애들 사이에서 붐이 일어 대회 참가 열풍이 분 거라면 학교에서도 나서야겠다는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거다.
그렇게 고개를 끄덕이는데, 선생들이 준비한 건 수현의 예상보다 크고 구체적이었던 모양이었다.
회화과 김윤수 선생과 디자인과 김여진 선생이 조 과장의 눈짓을 받고 앞으로 나왔다.
“자, 여기 두 선생님을 주목해라. 김윤수 선생님과 김여진 선생님도 한참 전, 전국대회에 출전한 경험이 있으시다.”
“와.”
“오…….”
뜻밖의 정보에 감탄하며 작게 박수를 보내는 아이들.
조 과장이 그런 애들에게 피식 웃어 보이고는 말을 이었다.
“두 선생님이 그때의 경험을 살려 전국대회 준비반을 운영해주실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