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Instruction Manual RAW novel - Chapter (1785)
회귀자 사용설명서 1785화
중원무림빙의(190)
현성이가 울면서 웃고 있는 모습이 시야에 비쳐왔다.
그간 저도 모르는 사이에 육체와 정신이 마모되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내가 괜한 주책을 부리고 있는 건지,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나올 것 같은 느낌이었다.
“…….”
“…….”
하지만 다행히, 눈에 맺혀 있는 눈물이 떨어지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울면 지는 거자너…….’
“…….”
‘그리고…… 쪽…… 쪽팔리자너…….’
“…….”
‘괜히 부끄럽자너…….’
그간 타협의 여지가 없는 것처럼 행동했던 주제에 갑자기 김현성의 얼굴을 보고 그리운 마음에 왈칵 한다는 생각이 들자, 뭔가 스스로가 부끄럽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빙의했던 김현성을 꽤 많이 죽였다는 걸 생각해 보면 갑자기 감상적이 되는 것도 웃기는 상황이었다.
눈물의 재회를 하기에는 아직 여러 가지로 정리가 되지 않은 부분이 많이 남아 있다.
확률은 지극히 낮았지만, 막말로 김현성이 모용화연을 죽이기 위해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었던 것일 수도 있다.
‘얘…… 얘도…… 지 나름대로 나랑 척을 세웠으니까.’
12차원 관련해서는 확실하게 대척점에 있었다는 것을 떠올려 보면 더욱더 그랬다.
‘그런 건 아니지? 그래…… 그럴 리가 없지?’
아주 살짝 불안했던 것도 잠시.
김현성에게 적의 따위는 없다는 걸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조금 중도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 같은 느낌이라 말하는 것이 옳을까.
생각해 보면 27회 차의 김현성은 꽤 중도적인 입장을 취한 것 같았다. 상황을 살피기만 할 뿐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았고, 터질 것처럼 보였지만 결국 터지지 않았다.
약 10회 차부터 20회 차까지는 이 정도가 아니었을 것이다. 예상하기로는 그때가 이기영의 영혼이 마모되기로는 절정에 있었던 시기였던지라 더욱더 강경책을 펼치지 않았을까.
모용화연이 진군사 외에는 아무도 믿지 말라고 쪽지를 남긴 것이 바로 증거다. 모르긴 몰라도 서로 감정 상할 일도 조금은 있었을 거라고 본다.
김현성은 감히 나를 죽이지는 못했겠지만 뭐…… 혹시 모른다. 다시 한번 배때지를 찔렸을 수도 있다.
나는 이전 회차를 전부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고, 마찬가지로 김현성도 기억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기쁜 마음을 쉬이 티를 낼 수 없는 상황이랄까.
적절하지 않은 예이기는 했지만 지금의 상황을 굳이 비유하자면…….
오랫동안 함께했던 부부가 날을 세우며 싸우고 각방을 쓰다 마주친 것 같은 상황에 비유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심지어 한 일주일, 아니, 한 달 정도 마주치지 않은 상황이라고 생각하면 더욱더 머릿속에 더 잘 들어온다.
꼴도 보기 싫어서 상대방이 일어나기 전에 후다닥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거나 방에서 나오지도 않고, 혼자 있을 때는 이혼 서류를 만지작거리기도 하고, 확 집을 나가 버릴까 고민했던 타이밍…… 어찌저찌하다 결국 우연히 주방에서 마주쳐 버린 상황인 것이다.
뭐라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기는 했지만 서로의 얼굴을 본 순간 속에 쌓아두었던 화가 스르륵 녹은 것 같은 느낌.
딱 그런 느낌이었다.
‘근, 근데 그걸 그대로 표현하고 티 내는 건 또 다른 문제니까.’
그래, 아무리 화가 스르르 녹았다고 한들, 갑작스레 사이좋은 부부로 태세를 전환하기는 쉽지 않다.
이제는 뭐 때문에 싸웠는지 잘 기억도 나지 않았지만 뭔가 떨어져 지낸 시간이 많다 보니 쉬이 말을 걸기가 어려울 것이다.
서로를 어색하게 바라보다가 괜스레 눈물이 떨어질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가 잘 지냈냐는 대화를 나누고 조금씩 둘 사이에 있었던 장벽을 깨부수고 함께 저녁 식사를 나누고 화해하는 것이 국룰.
지금의 김현성과 내가 딱 그랬다.
앞서 말한 그 적절한 예와 달랐던 것은 김현성이 조금 더 빠르게 항복했다는 것일까.
‘생각보다 빠르게 제자리 찾겠는데?’
아무래도 자존심을 챙기기에는 작금의 상황이 너무 감동적이게 느껴지는 모양이다.
‘내가 이긴 거자너.’
질질 짜고 있는 것을 보면 확실히 이기영의 승리였다.
‘내가 이겼자너.’
애초에 얘가 여기에서 이렇게 나를 돌봐주고 있다는 것 자체가 내가 이겼다는 걸 알려주는 지표다.
당장 모용화연을 죽이거나 따로 조치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내 고집이 이겼다는 방증이었다.
당연히 김현성이 원했던 것이 모용화연을 정상으로 되돌리는 것이라는 걸 깨닫는다.
다른 사람도 아닌 김현성이다. 내 영혼이 갈기갈기 찢어져서 사방으로 흩뿌려져 있다는 것을 짐작하고 있었을 테니 걱정이 될 수밖에…….
거기에 본인 손으로 그걸 수습하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예상했던 것처럼 아마 진청과의 거래가 있었을 것이다.
‘와…… 생각해 보니까 소름 끼치네. 진짜로 진군사한테 이기영을 좀 죽여달라고 사주한 거야? 그러고선 시바 여기서 아무렇지도 않게 눈물쇼나 펼치고 있는 거고?’
아무렴 제발 기영 씨 좀 죽여달라고 이야기했을까. 아마…… 뭐 애써 에둘러서 청탁 아닌 청탁을 했겠지. 김현성이 부탁한 게 아닐 수도 있고…….
진실은 저 너머에 있기는 했지만 일단 현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김현성이 항복을 외쳤다는 것이었다.
향후에 어떨지는 조금 더 이야기를 해봐야 하는 것과는 별개로 당장 나를 대륙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갖은 수를 쓰지 않은 것을 보면 말이다.
어쩌면 이것도 진군사와 김현성의 계약 내용 중에 하나였을지도 모른다.
진청은 이기영을 본래대로 되돌리고, 김현성은 이기영에게 협력한다.
같은 내용인가?.
‘아니…… 협력하는 게 맞기는 한 건가?’
나를 보고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모습만 보여주고 있을 뿐, 뭐 다른 말을 해오지 않고 있다.
계속해서 이런 포지션을 취하고 있는 것도 조금 웃긴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에 일단은 슬쩍 상체를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브로허그 같은 거라도 일단 해야겠네.’
슬쩍 포옹을 시도하자 뚝딱이는 김현성의 모습이 보인다.
어떻게 해야 할지 조금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에 새삼스레 지금의 몸이 모용화연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심지어 모용화연은 이런 숙맥이 느끼기에는 뇌쇄적인 느낌의 이미지였던지라 더 당황하고 있는 것 같았다.
물론 김현성은 확실하게 나를 이기영으로 인식하고 있었지만 역시나 껍데기가 인간 여성이었으니 신경이 쓰이는 걸까.
뭐, 이해가 가기야 한다. 영혼을 나눈 이해자가 갑자기 시바 한 섹시 하는 유부녀가 되어 나타났으니 당황할 수밖에.
뭔가 포옹하는데 가슴이 닿지 않도록 조심하고 있는 것부터가 웃기다.
애초에 불가능한 영역인데도 불구하고 놈이 몸을 뒤로 빼고 있으니 결국 어정쩡하고 애매모호한 모양새가 되어버린다.
감동적인 재회와는 거리가 조금 있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잘…… 지내셨죠?”
“…….”
“…….”
“네. 기영 씨도…… 잘 지내셨습니까?”
“…….”
‘아오…… 어색해. 시바.’
“…….”
‘아. 시바 어색해.’
“…….”
‘일단 사과하는 척이라도 한번 해볼까?’
“…….”
사과한다는 것이 아니라 사과하는 척이었다. 나는 사과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잘못한 게 없었으니까. 하지만 확실히 사과를 받기 위해서는 조금 미안하다는 액션을 취해야 했다.
“저. 현성 씨…… 그러니까…….”
“…….”
“저…….”
“…….”
“그…… 그러니까…….”
“…….”
‘뭐야? 왜 아무 말 안 해?’
“그러니까…….”
슬쩍 눈치를 주자 역시나 말을 이어온다.
“아니. 말씀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기영 씨.”
“…….”
“모두…… 제 잘못입니다.”
‘그렇지? 역시 모두 네 잘못이지? 그럼…… 다음으로는 정확히 뭘 잘못했는지 말해줄 수 있어?’
“…….”
“…….”
그다음을 말해보라는 듯이 빤히 김현성을 바라보자. 다시 한번 김현성이 입을 열어온다.
“제가…… 기영 씨의…… 심정을…… 잘 헤아리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지? 네가 내 마음을 몰라주기는 했지? 네가 못 이해한 거지?’
“죄송합니다.”
“…….”
“전부…… 제가 잘못했던 것 같습니다.”
“아, 아니에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요.”
“…….”
“현성 씨 심정도…… 그리고 대륙에 있는 다른 사람들이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도…… 전부 이해할 수 있어요. 아마 평소의 저였다면 조금 더 이성적으로…… 많은 상황을 고려하고 움직였겠지만, 그렇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어요. 전부…… 변명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변명 아니야. 걍 위로해 주라고 하는 소리야.’
“아닙니다. 기영 씨 잘못이 아닙니다.”
눈치 빠른 김현성이 시기적절하게 멘트를 던져온다. 독차를 먹고 가슴에 검을 수십 번 찔린 것치고는 무척 따뜻한 말투였다.
‘하기사 네가 배때지 찌른 게 더 아프기는 했어. 나는 인도적이었어.’
이기영이 한 짓은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었다.
김현성의 납작 엎드린 태도에 조금 기분이 좋아진 것은 당연지사.
주거니 받거니 해줄까 싶었기 때문에 김현성이 듣기 좋은 말도 해주는 것이 옳다는 판단이 선다.
“…….”
“지금 이 자리에서 모든 걸 다 설명드릴 수는 없겠죠. 하지만…… 모든 것들이 명확해지고 있는 기분이 들어요. 제가 그간 무엇을 잊고 있었는지, 말이에요.”
“…….”
“저를 생각해 주셔서 감사해요. 현성 씨.”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길게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아마 알고 있을 거라고 본다. 아니, 당연히 느껴지고 있을 것이다.
김현성을 비롯한 대륙의 가족들에 대해서 떠올리고 있는 나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얼마나 녀석을 그리워했고, 얼마나 지금의 순간을 기다려 왔는지, 또 얼마나 지금 김현성이 나와 함께 있어주는 것을 고마워하고 있는지 알고 있을 게 뻔했다. 김현성의 표정만 봐도 알 수 있다.
‘안심하고 있자너.’
“…….”
‘꿀도 떨어지고 있자너.’
혹시나 이기영이 다시금 자신에게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그런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내가 생각해도 재미있는 상황이었다. 나 역시 김현성이 내게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면 어떻게 하나 걱정했었는데, 김현성은 나보다 더 배는 걱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날을 세우기는커녕 이기영과 이성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음에 기뻐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덕분인지 하고 싶은 말들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애써 참고 있는 것 같은 느낌.
이런저런 잔소리가 들려오지 않는 이유였다.
“…….”
“…….”
하지만 할 말은 있는지 신중히 입을 떼는 모양새, 당연히 녀석의 입이 열리게 둘 리 만무했다.
“저…… 기영 씨…….”
“같이 가요.”
“네?”
“아니. 데려다주세요.”
“…….”
“부탁이에요.”
“…….”
“저는 천이를 봐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