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ord of another world is well fed RAW novel - Chapter 170
민트 초코의 아름다움을 모르는 불쌍한 영감님에겐 미리 만들어서 보관해 둔 딸기를 잔뜩 올린 초코케이크를 한 조각 크게 썰어주었다.
“그래, 이런 것도 만들 수 있는 놈이 왜 저딴 걸 만들어?”
“두고 보시라니까요. 저게 마니아들은 얼마나 좋아하는 건데요. 그런데 그게 무슨 소리에요? 바닷길이 열린다니?”
“말 그대로다. 동대륙의 여러 나라에서 교역을 하고자 배를 보냈다는 연락이 왔다는구나.”
“연락이 왔다는 건···. 설마 벌써 중앙해를 건넜다는 겁니까?”
“그래. 그 쪽에서도 빠르게 나선 모양이야.”
동대륙과 서대륙 사이에 존재하는 바다, 중앙해.
그 중앙해의 가운데에는 마나의 흐름을 막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선이 있다고 했다.
마법 통신이 대륙을 건너지 못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동대륙에서 서대륙으로 소식을 전하고 싶다면 반드시 이 중앙해에 존재하는 선을 지나야 했고, 이는 대륙이 서로 긴밀하게 소통하지 못하고 독자적으로 발달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이었다.
“듣자하니 네가 그들의 나라에게 요구한 것이 그리 대단치 않은 것이라지?”
“정확히는 요구라기 보단 거래를 해보는 게 어떠냐고 권유를 한 거지요.”
“두 가지가 다른가?”
“요구를 하는 자는 목이 뻣뻣하기 마련이나 권유를 하러 간 사람은 스스로를 낮추니 같을 수가 없지 않겠습니까?”
“아직 세습 작위에는 오르지 못했으나 네 놈도 어엿한 제국의 준 남작이다. 제국의 귀족이 동대륙의 이름 없는 작은 나라에게 자청하여 고개를 숙일 필요가 무엇이 있겠는가?”
노영주는 도미닉이 동대륙과의 교류를 위해 보냈다는 뇌물이 아직도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뇌물을 받았으면 받았지 줘 본 적 없는 자리에서 평생을 살아온 사람이니 충분히 이해가 되기도 했다.
‘하여간 꿀 팔자시라니까.’
남들에게 아쉬운 소리 한 번 안 해도 되는 삶이라니.
부럽구만.
“더 큰 이익을 얻기 위해서라면 상대 얼굴에 금칠 좀 해 주는 게 뭐 대수랍니까?”
“하나···.”
“그 덕에 지금 스스로 빗장을 풀고 교역을 하겠다며 배를 보낸다고 하니 남는 장사를 한 셈이지요.”
“말은 잘하는구나. 내 들으니, 백작은 손님을 맞이하고 인사치레나 할 뿐일 생각인 듯 하다. 그러니 실무는 모두 네 몫이야.”
“얼른 준비해야겠네요.”
“세상이 너무 빨리 바뀌니 정신이 하나도 없어. 내 죽기 전에 남부가 바닷길을 열 것이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지 못했는데 말이다. 이제 바다를 이용하지 못하는 자는 살아남기가 어려운 시대가 오겠어.”
노영주의 혼잣말에 도미닉의 머릿속에 한 가지 단어가 스치고 지나갔다.
‘대항해시대···!’
지금까지 동대륙과 서대륙 사이에 교역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도자기와 비단, 향신료 등의 사치품을 교역하기 위해 상인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바다를 건넜다. 대표적인 것이 사막의 대상들이 아니던가.
‘하지만 중앙해를 넘는 것은 일부 상단과 나라에 국한된 일이었을 뿐이지.’
바다는 몇몇 세력들만의 놀이터일 뿐이었다.
다른 이들은 감히 여기에 낄 생각도 하지 않았다.
대양을 가로지르며 엄청난 이문을 남기는 상단들이 존재했지만 그들이 가져 온 교역품들은 매우 한정된 국가의 최상위층이나 사용하는 물품들에 불과했고, 자주 볼 수 없는 물건들이니 신기해 할 뿐 관심이 크지 않았던 것이다.
‘도자기만 해도 그랬고.’
동대륙에서 건너 온 신비로운 푸른 빛깔의 청자는 고위 귀족들이나 사용하는 것들이었다.
동대륙의 다기 세트를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같은 무게의 금보다 비싼 동양의 찻잎이 필요했다.
그 뿐인가?
차를 마시는 예법인 다도를 알려줄 동대륙 출신의 예절 선생과 차를 즐기기 위한 분위기를 내 줄 동대륙 스타일의 다실도 찻잔과 한 세트로 보아야 했다.
만약 이런 것들이 갖춰져 있지 않고 다기 세트만 겨우 구해서 흉내를 낸다면 사교계에선 비웃음거리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러니 우리 에버그린 산 도자기가 히트를 친 거지. 이곳의 식문화와 일치하는 형태니까.’
하지만 도미닉과 스톤해머가 손을 잡고 만든 에버그린 산 본차이나 도자기는 달랐다.
처음부터 서대륙의 차 문화에 맞는 다기 세트로 구성하거나 식탁 예절에 맞는 식기 세트로 구성을 했던 것이다.
동대륙의 다기세트의 구성을 한 번 보라.
기본이 되는 찻잔과 주전자는 당연하고 개완, 차거름망, 차엽관, 공도배, 배탁, 다우, 숙우, 문향배, 다루, 다침, 차망···.
기껏 천금을 주고 구입한 청자 찻잔 세트도 시간과 공을 들여 배우지 않으면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도 제대로 알 수 없는 것이 동대륙의 자기 세트였다.
원래 최상류층이 사용하는 물건들은 해당 문화권에서 가장 복잡하고 어려운 방식이 따라 붙기 마련이니까.
이에 비해 에버그린 산 찻잔 세트는 어떤가.
티포트와 컵, 컵받침, 컵 뚜껑, 크림통과 설탕통, 디저트 용 접시, 포크와 스푼까지.
사용법이 직관적이고 어렵지 않으니 누구라도 구비만 해 놓으면 홍차와 허브티를 디저트와 함께 즐길 수 있으니 이 얼마나 간편한가!
‘일종의 명품의 보편화 전략이라고, 이게.’
처음부터 의도했던 것은 아니지만 마치 원래 그런 속 뜻이 있었던 것처럼 뻔뻔하게 가슴을 쭉 펴는 도미닉이었다.
“이번에 네가 보낸 뇌물들을 보고 돈 냄새를 맡은 게야.”
“···예상대로군요.”
“···진짜 이걸 예상했다고?”
“···에.”
노영주는 대답이 좀 애매하다고 여겼지만 어쨌든 결과가 좋으니 넘어가기로 했다.
실제로 예상을 했든 아니든 동대륙의 여러 나라에서는 도미닉의 뇌물이 한창 이슈가 되는 중이었다.
***
“이 도자기는 가볍고 단단하고 잘 깨지지 않는군요.”
“듣기로 이보다 약간 낮은 품질의 그릇 세트는 그리 비싸지 않은 모양이더이다. 최고 장인이 직접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의 제자들이 만든다고 하던데, 생산량도 상당하다더군요.”
동대륙의 귀족들이 왕비가 연 연회에서 낯선 도자기 세트를 이리저리 돌려보며 서로 품평을 했다.
“이 정도의 경지에 오른 장인이라면 제자를 고르는 눈도 깐깐하기 그지없을 텐데 생산량이 그리 많겠습니까?”
“정확한 것은 알 수 없으나 지금은 제국인이 된 옛 왕국민 상인이 이르기를, 그 생산량이 마치 수백의 장인들의 것과 맞먹는다고 하니 대단하기는 한 모양입니다.”
분업의 효과이기도 하고 그만큼 품질은 제법 떨어져서 고위 귀족들은 찾지 않는 물건이었으나 어쨌든 서대륙에서 평범하게 돈 많은 평민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은 것이니 딱히 거짓말은 아닌 셈이다.
“이런 것이 어찌 다기에 국한될꼬.”
그 때, 여인들의 수장인 왕비가 연회장으로 들어왔다.
그녀의 뒤로 도미닉이 바친 뇌물들이 시녀의 손에 들려 줄줄이 광채를 뽐냈다.
“헉!”
“이게 다···?”
낯선 세공품들에 몽롱하게 눈이 풀리는 여인들.
“대단하지 않은가?”
“과연 그러하옵니다, 왕비 마마.”
“이런 것들은 본 적이 없사옵니다!”
왕비의 연회에 모인 여인들은 왕국에서 제법 지위가 높은 부인들이었다.
‘그녀들마저 한 눈에 사로잡았으니 내 눈이 틀린 것이 아니구나.’
왕비는 속으로 흐뭇함을 느꼈다.
“헌데 이 중 몇 가지는 완성도가 조금 떨어지는 듯 보여···.”
“백천영무관의 부인이 안목이 높다 하더니 역시 괜한 소문이 아니었나 보오.”
“과찬이시옵니다, 왕비 마마.”
칭찬을 늘어놓는 부인들 사이에서 드디어 옥석을 가릴 줄 아는 이가 생기자 왕비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부인의 생각은 어떠한가?”
“오히려 좋지 않사옵니까?”
“품질이 떨어지는 것이 오히려 좋다?”
“무릇 상품과 최상품은 질에서 큰 차이가 있지 않사옵니다. 완벽에 미치지 못하는 상품이나 그보다 조금 더 떨어지는 중급품은 왕비마마를 위시한 여기 계신 문무백관 부인들께는 어울리지 않는 상품일지 모르나 오히려 더 많은 이들이 곁에 두고 쓸 만 한 물건이 아니겠사옵니까.”
“과연 그러하다.”
왕비가 손부채로 연신 의자 손잡이를 두드리며 기뻐했다.
“우리 왕국이 지금껏 외세와의 교역을 하지 않고 나라의 문을 걸어 잠근 것은 우리의 물산이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두려워했음이다. 안타까운 일이나 우리가 그들에게 내 줄 것이 별로 없으니 결국 교역을 시작하면 부가 빠져나가는 일이 될 테지 않겠는가.”
“망극하옵니다, 마마!”
“내 부인들에게 그런 소리를 듣자고 꺼낸 이야기가 아니야.”
왕비의 말에 다시 영무관의 부인이 얼른 앞으로 나섰다.
“서쪽의 에버그린에서 바친 물건들의 상태로 보아하니 고귀한 피를 이으신 분들이 쓰실만한 최상등품은 물론이고, 조금만 무리를 한다면 평민들도 쓸 수 있는 것들도 있어보였사옵니다. 이 말은 곧 우리 왕국이 가진 중등품이나 일부 상등품도 충분히 교역이 가능하다는 뜻이 아니겠사옵니까?”
“역시 내 속 뜻을 읽어주는 이는 영무관의 부인뿐이로구나.”
도미닉이 뇌물의 구색을 맞추기 위해 보냈던 중상등품의 물건들에서 가능성을 본 동대륙인들.
‘게다가 서대륙의 제국도 아니고 그저 일개 항구도시와 교역이라면···. 손해보단 이문이 더 많을 것이야!’
국가 간의 교류가 아니라는 점도 동대륙의 여러 소국들이 에버그린과의 교역에 관심을 보인 이유였다.
국가 간의 교류였다면 이문이 탐이 나더라도 함부로 시작을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단순히 수지타산만 확인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외교와 주변국의 동향, 정세 파악 등 신경 쓸 일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저 한 도시와의 교역이라면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다. 시작을 해 보고 여의치 않으면 그저 중단하면 그 뿐!’
언제든 마음에 들지 않으면 교류를 끊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그들로 하여금 위험을 무릅쓰게 했다.
과연 그 중단이 생각한 것처럼 쉬울 지는 까 봐야 알겠지만.
***
“통역 필요하신 분? 동대륙어에 능통합니다!”
“특산품 전문 가이드가 여기 있습니다! 교역품을 찾는 상인 분들을 모십니다!”
“공방 전문 중개사입니다! 아직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장인들과 연결해드립니다!”
동대륙 특유의 거대한 판옥선이 마침내 에버그린의 항구에 닿았다.
정치를 위해 동대륙 귀족들은 곧장 싱클레어 백작가의 성으로 출발했지만 연줄을 총 동원하여 최초로 서대륙에 닿은 상인들은 배에서 내리자마자 마주한 상황에 눈을 끔뻑거리며 서로를 쳐다볼 뿐이었다.
“별 사람들이 다 있구만.”
“아무래도 이 도시가 교역의 중심이 될 곳이라더니 정말인가봅니다.”
“소개를 좀 부탁을 할까?”
“아닙니다, 제가 모시겠습니다.”
“아, 그대가 도와준다면 더 바랄 것이 없지!”
카카오닙스를 가져와 도미닉의 눈에 띄었던 구 밀수상인이 고국의 상인들에게 푸근한 미소와 함께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공방이나 공식 교역소를 살피는 것도 좋지만 창업지원청에 들러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창업지원청?”
“예. 에버그린 시장이 만든 곳으로 기발한 상품들이 끊임없이 나오는 곳입니다. 안목이 좋은 분들이시니 좋은 상품을 골라내실 수 있을 겁니다.”
“허허, 상인의 안목까지 걸렸다면야 안 가볼 수 있나? 한 번 가 보세!”
상인들이 모두 속으론 군침을 삼키지만 겉으론 드러내지 않은 채 뒤따랐다.
‘일단 도착하면 바로 창업지원청으로 데려오랬지?’
물론 이는 모두 도미닉으로부터 미리 전달을 받은 내용이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도착하면 곧바로 교역소나 경매소가 아니라 여기부터 추천하라던 시장의 말.
“여기입니다.”
이윽고 지원청의 문이 열렸다.
“귀한 분들을 뵙습니다.”
그 곳엔 도미닉이 활짝 웃으며 서있었다.
‘백작성에 있을 회의에 가셔야 하는 것 아닌가···?’
밀수상인은 왜 시장이 여기에서 자신들을 맞이하는지를 알 수 없어 순간 당황했지만 곧바로 얼굴색을 바꾸고 친밀하게 굴기 시작했다.
유력자와의 친분을 과시하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었으니까.
“시장님, 여기는 제 고국에서 상단을 이끄는 분들이십니다.”
“오, 반갑습니다!”
“이리 직접 환대를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소개를 받은 상인들은 모두 제 나라에선 힘깨나 있는 자들이었다.
일개 도시 하나를 이끄는 귀족 정도에게 먼저 고개를 숙이는 게 얼마만인지 기억도 잘 나지 않을 정도였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한 잔씩 드시면서 구경을 좀 하시지요. 우리 에버그린의 인재들이 만든 발명품들이 가득하니 제가 직접 소개를 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하!”
도미닉이 너스레를 떨자 뒤에 선 창업청 직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손잡이가 달린 차가운 유리잔에 담긴 음료를 건넸다.
“날씨가 더우니 차가운 음료로 준비했습니다.”
꺼림칙한 거무죽죽한 색깔의 음료에 상인들은 조금 당황했지만 권하는 것을 거절하는 건 예의가 아니니 눈 딱 감고 한 모금을 넘기는데,
“······!”
“대체 이건 무엇입니까?”
“이런 맛은 처음 봅니다. 이건 서대륙의 차인가요?”
차가운 음료를 한 입 넘긴 상인들의 눈이 번쩍 떠졌다.
‘예스!’
반응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재료가 무엇인지 눈치를 채지 못한 듯 했다.
원산지 사람도 재료를 몰라본다면?
‘아무래도 가격을 더 올려야겠네.’
후려쳐야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