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ord of another world is well fed RAW novel - Chapter 169
얼마쯤 지났을까.
마침내 도미닉의 얼굴이 희열에 달아올랐다.
“앗, 뜨, 뜨!”
갓 만든 핫초콜릿을 후 후 불어 입 안 가득 머금었다가 목구멍으로 삼키자 뜨끈한 만족감이 온 몸에 퍼져들었다.
아낌없이 넣은 설탕과 약간의 산미를 더하기 위해 넣은 오렌지 제스트, 여기에 질 좋은 신선한 우유를 더한 핫초콜릿은 특유의 쌉싸래함과 달콤함이 어우러져 그야말로 천상의 맛에 비견될 정도였다.
‘과장이 아니지, 암.’
인간의 본능은 달콤함을 쫓는다.
돈만 있으면 설탕을 구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은 세상이라 삶에 여유가 있는 이들이라면 설탕이나 꿀로 만든 간식을 제법 즐기곤 했다.
하지만 단 맛에도 종류가 있는 법!
‘사탕보다는 초콜릿이 변주도 쉬워. 다양한 곳에 쓰일 수 있다는 거지. 돈 벌기엔 이만한 게 없어.’
핫 초콜릿, 생 초콜릿, 판 초콜릿에 초코 시럽을 만들 수도 있고 코코아 분말을 만들어 팔아먹는 것도 가능하다.
그 뿐인가. 에버그린을 넘어 남부 전역에 퍼진데다 슬슬 다른 지역에서도 자생적으로 하나 둘 씩 생기기 시작한 카페 메뉴에서도 초콜릿의 등장 전후는 완전히 다른 음료 구성이 가능할 것이며, 빵집과 디저트는 그야말로 혁명이 일어날 것이 분명했다.
오싹!
그 때, 도미닉의 팔뚝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아, 깜짝이야! 페롯 님?”
조리실 창문 너머로 눈을 반짝이고 있는 마법사, 페롯이 보였다.
요즘 남부 마탑으로 적을 옮긴 뒤 승승장구하고 있는 그녀.
부업으로 운영하는 디저트 가게도 입소문이 잘 난 덕에 수도에서 유명하다던 제빵사들도 아낌없이 초빙하여 에버그린의 간식 문화의 큰 손으로 통하는 중이었다.
“새로운 디저트를 개발하신다고 들었거든요.”
그런 그녀가 어디선가 초콜릿에 대한 소문을 벌써 입수한 것이다.
첫 만남부터 범상치 않았던 스위츠 마니아가 연신 침을 꿀떡 꿀떡 삼키며 도미닉이 먹다 남은 핫 초콜릿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스읍-! 색깔은 하나도 달아보이질 않지만···. 도미닉 님이 만드신 거라면 분명 최고겠죠?”
그래도 예전보다는 사회화가 제법 진행이 된 것인지 다짜고짜 훔쳐 먹지는 않는 페롯.
다짜고짜 마법으로 간식을 훔쳐가던 때와 비교하면 이쪽도 이안 못지 않게 성장하긴 한 모양이었다.
“드셔보실래요? 그렇지 않아도 시식을 부탁드리려고 했거든요.”
디저트 쪽이라면 오네뜨 양의 별점보다 역시 페롯의 인정이 낫다.
그녀가 푹 빠져 있다는 소문이 돌면 성공은 따 놓은 당상이나 마찬가지니까.
“우왓!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후룩-.
적당히 식어서 따뜻한 기운을 가지고 있는 핫 초콜릿을 순식간에 반 컵이나 해치운 페롯의 얼굴이 몽롱해졌다.
‘이게 뭐야?’
여태껏 느껴보지 못했던 고급스럽고 복잡미묘한 단 맛이 혀에 닿자 페롯은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느낌을 받았다.
‘생긴 건 꼭 사막에서 들여온 커피처럼 생겼는데···. 그러기엔 풍미가 분명 달라. ···아니지? 그래도 쓴 맛이 있기는 한데.’
그렇다면 이 찐득하고 중독성 강한 음료는 커피콩으로 만든 것인가?
아무래도 이상했다.
그녀의 경험으로 비추어 보았을 때, 진하게 내린 커피에다가 설탕과 우유를 때려 넣어도 이런 풍미는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혹시 커피 가루를 훨씬 더 진하게 내려야 하는 걸까?’
남은 반 컵을 마시는 것도 잊어버린 채 페롯은 팔짱을 끼고 제조 방법을 궁리하기 위해 머리를 썼지만 애초에 카카오 열매에 대해 모르니 답이 나올 리가 없었다.
“어때요?”
“···흐음.”
“페롯 님?”
“···아! 죄송해요! 어떻게 만드는지 생각을 좀 하느라고···.”
“그래서 답은 알겠어요?”
“글쎄요. 커피가 한창 유행을 타기 시작했을 무렵, 시럽이니 설탕이니 크림이니 하는 단 것들을 이것저것 넣어 만들어 먹어 본 적이 있어요. 하지만 이런 맛이 나진 않았거든요. 어떻게 한 거예요?”
“영업 비밀을 진짜로 알려줄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을 거고.”
“···아쉽네요.”
페롯의 말에 도미닉이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사실 초콜릿을 만드는 건 그리 어려운 과정이라고 볼 수는 없었다.
‘원재료를 찾고 가공에 대한 아이디어를 생각하는 게 어려울 뿐이지.’
어쩌면 사막에서 커피콩을 들여온 것이 신의 한 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커피를 때려 마시는 학생들과 행정관들 덕에 많은 시민들에게도 커피콩은 친숙했다. 처음엔 낯선 까만색이 거부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지만 지금은 까만 콩을 보고 고소함을 떠올리게 된 것이다.
그 전까지만 해도 제국인들에게 검은색의 마실 것은 몇 종류의 약재 달인 물 정도 외에는 거의 존재하는 것이 없었으니 페롯이 핫 초콜릿을 보고 커피에 무언가를 타서 만든 음료라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페롯 님도 이렇게 생각하는 거라면 다른 사람들도 분명 마찬가지일 테지.’
좋았어.
카카오 열매로 만든다는 건 일단 비밀로 두어야겠군.
도미닉의 머릿속에서 아웃랜드에 심을 작물의 구성과 종류가 다시 재구성되기 시작했다.
원래대로라면 초콜릿의 원료가 될 카카오나무나 잔뜩 심을 생각이었지만 원 재료를 숨길 수 있을 때까지 숨기려면 눈속임이 필요할 터.
동대륙 밀수 상인과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을 중심으로 아웃랜드에 카카오나무를 재배할 거란 소문은 이미 제법 퍼진 듯 했지만, 상관없다.
카카오나무와 초콜릿은 이름부터 다르니까.
‘기후 영향도 많이 받으니 심고 싶다고 아무데서나 기를 수도 없는 거고.’
이래서 땅주인이 최고라니까?
도미닉이 아웃랜드의 지도를 생각하며 히죽 웃음을 지었다.
아무래도 다음엔 사막의 건조기후에 땅을 좀 구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레시피는 알려드릴 수 없지만 나중에 대량 생산이 가능해 질 것 같으면 유통을 좀 부탁하려고요. 가능하겠죠?”
“정말인가요, 시장님? 물론이죠! 이건 누구라도 좋아할 거예요. 확신해요!”
“가공 단계에서 알게되는 비밀 엄수는?”
“신전과 마탑에서 맹세를 하래도 할게요.”
페롯이 결연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업도 사업이지만···.’
만약 이 혁명적인 음료의 유통망에 한 자리 차지하고 있으면,
‘넘치게 먹을 수 있다는 거잖아!’
벌써부터 행복한 상상에 몸을 부르르 떠는 페롯.
뒤로 빼돌릴 수 있을 양이 얼마나 될지 가늠하는 게 분명한 저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기는 게 아닐까 싶긴 하지만 그럼에도 이만한 적임자도 없었다.
“좋습니다. 곧 연락드리지요.”
페롯에게 미리 계약에 대한 언질을 해 놓은 뒤, 창고에서 동대륙 상인에게 받아 놓았던 카카오닙스의 남은 양을 가늠해 본 도미닉.
남은 것은 겨우 몇 포대에 불과했다.
애초에 동대륙 상인이 팔려고 가지고 온 것이 아니라 간식처럼 입이 심심할 때마다 꺼내 먹으려고 가져왔던 것이니 그리 양이 많질 않았던 것이다.
“빨리 교역에 성공해야 하는데···.”
선물이라고 쓰고 뇌물이라고 읽는, 교역의 물꼬를 트기 위해 뿌린 돈이 다 얼마이던가.
원래 환심을 사기 위해 돈을 쓸 때는 돈 몇 푼을 아까워하면 안 되는 법이다.
돈 지랄을 할 거면 화끈하게 해야지, 어설프게 이거 재고 저거 따지고 하다간 죽도 밥도 안 되는 거다.
‘이게 다 눈치를 챈다고. 아꼈는지, 아닌지.’
사람들이 아무것도 모르는 맹탕처럼 보여도 속으론 다 느끼는 법이거든.
아, 얘가 나한테 진심을 다하고 있구나. 노력하는구나.
아니면,
아, 얘가 적당히 하는 척이 하고 싶은 거구나, 뭐 이런 거.
그래서 도미닉은 화끈하게 선물을 준비했다.
여간해서는 열리지 않는 개인 금고까지 열어서.
나라 빗장 여는 것쯤은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일 정도로 쓸 생각이었다.
카림은 이야기했다.
고작 몇 가지 작물을 얻자고 이 정도의 황금을 뿌리는 게 맞느냐고.
그 말을 듣고 있던 몇몇 사람들은, ‘꼭 자기는 서대륙인이 아닌 것처럼 말씀하신다.’고 생각했지만 입 밖으로 생각을 내뱉는 눈치 없는 이는 없었다.
[문 꼭꼭 걸어 잠그고 교역은커녕 서대륙과 왕래도 없는 나라가 한 가득이라는데, 우리가 거기다 먼저 깃발 콱 꽂아놓으면 그거 나 누구 거?] [···우리 거?] [아니, 내 거. 이거 내 사비로 보내는 거야, 침 바르지 마.] [하하, 예. 물론입니다, 시장님.]카림은 도미닉이 저럴 때마다 참 솔직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버그린의 부흥을 위해, 하지만 잘될지 어떨지 확신이 들지 않으니 시의 재산이 아니라 자신의 재산을 사용하여 일을 도모하면서도 혹시라도 행정관들이 부담을 느낄까봐 저렇게 너스레를 떠시다니.
‘이런 주군이 세상 그 어디에 있단 말인가.’
아직 준남작에 불과한 작위이기는 하지만 조만간 훨씬 더 높은 자리로 날아가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 카림과 행정관들은 이미 자신들을 도미닉의 가신으로 여기는 중이었다.
***
“완성!”
이제 동대륙 상인에게서 얻은 카카오닙스도 다 썼다.
마지막에는 정말로 먹고 싶었던 초콜릿케이크를 만든 참이었다.
꾸덕한 초콜릿케이크에는 다른 케이크로는 결코 충족할 수 없는 배덕감이라는 게 있기 마련이니까.
벌컥-.
“오셨어요?”
“이제는 놀라지도 않는구먼. 허허.”
“제 조리실에 노크하고 다니는 건 라키 하나뿐이더라고요.”
익숙하게 하던 일을 마무리하면서 손님을 맞는 도미닉의 태도에 오히려 머쓱해진 건 노영주와 그의 뒤를 따르던 이안이었다.
“다 됐어요, 그 쪽에 앉으세요. 마침 다 됐으니까 맛은 좀 보셔야죠? 새로운 디저트에요.”
“요즘 매일같이 만든다는 그 커피 디저트?”
“누가 그래요, 이게 커피로 만든 거라고?”
“페롯 양이 온 사방에 소문을 내고 다니던데?”
일부러 헛소문을 좀 퍼뜨리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효과가 대단한 모양이었다.
에버그린 초창기 멤버답게 은근히 발이 넓은 그녀였다.
“그런데 말이다, 이런 걸 만들고 있을 때가 아니야.”
그런데 노영주의 목소리와 태도가 제법 엄숙했다.
이건 공적인 문제를 이야기하러 온 것이 분명하다.
도미닉도 얼른 손에 묻은 밀가루를 털어내고 노영주의 앞에 가서 섰다.
“무슨 일입니까?”
아무래도 벌려놓은 일들이 많으니 절로 공손해지는 태도였다.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게야?”
“저야 뭐 늘 잘 살아보겠다고 바둥대는 것 말고는···.”
“사고를 이렇게 쳐?”
“예?”
“지금 영주성이 발칵 뒤집혔어.”
“···?”
이상하다, 뭔지는 몰라도 심각한 문제라면 영감님이 와서 이럴 게 아니라 곧장 카림이 사색이 되어선 뛰어 왔을 텐데.
“우하하! 이 얼빠진 얼굴 좀 보게! 것 봐라, 이놈이 늘 당당해보여도 가슴 한편엔 양심에 찔리는 게 있으니 당황할 거라고 했지?”
“···졌습니다.”
“1골드.”
이안이 노영주의 손바닥 위로 반짝이는 금화 하나를 올려두었다.
‘뭐야, 설마 내기한 거야?’
장난에 당한 것을 깨달은 도미닉의 표정이 와락 구겨졌다.
“쯧-. 안 줘요. 나 혼자 다 먹어야지.”
“치사하게 먹는 걸로 그럼 안 돼. 다 늙은 노인네한테 먹는 낙 빼면 뭐가 남는다고. 떼잉-.”
“그 노인이 우리 에버그린에서 제일 세다는 얘기는 왜 빼세요?”
“우하하! 그건 너희들이 약해서 그런 거야.”
테이블을 치며 웃어대던 노영주가 눈물을 훔치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래도 지금 영주성이 난리가 난 건 사실이다. 준비해라, 곧 사람이 몰려 올 게야.”
“그건 무슨 말씀이세요?”
“왜, 네 놈이 동대륙에 어떤 나라 하나 빗장 풀어보겠다고 뇌물을 바리바리 싸 보냈다면서?”
“그랬죠.”
“아무래도 네가 동대륙의 나라들을 들쑤신 모양이다.”
“···예?”
“바닷길이 본격적으로 열릴지도 모르겠어.”
이게 뭔 소리야?
“우웩!”
노영주의 말뜻을 파악하려 애쓰는 도미닉의 뒤로 케이크를 한 입 가득 퍼 먹은 노영주의 얼굴이 충격에 굳었다.
“이 놈아! 왜 음식가지고 장난을 치는 거야!”
“아, 민트 안 좋아하세요?”
민트 초코는 근본인데?
맛알못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