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ord of another world is well fed RAW novel - Chapter 168
쇄국 정책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게 전생의 조상님들, 그중에서도 흥성 대원군일 게다.
‘그런데 말이야. 나라 빗장을 여는 게 반드시 이득일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면, 조상님들이 그래도 쇄국을 고집했을까?’
설마, 그럴 리가.
급변하는 정세가 됐든 야욕 넘치는 주변국이 되었든, 이도 저도 아니라면 스스로가 외부에 대해 아는 정보가 너무 적었든.
외부 세력과 교류하는 것의 이점을 정확히 알 수 없는 데다가 이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모른다면, 많은 이들이 그저 문을 꽁꽁 걸어 잠그는 선택을 한 것도 이해가 가능한 영역의 문제였다.
왜, 서서히 끓는 물에 개구리를 담그면 튀어 나가지 않고 그대로 끓는 물에 익어서 죽고 만다는 이야기도 있지 않은가.
쇄국은 이와 같은 일이다.
당장은 내 뒷다리가 익고 있음을 눈치채기 어려우니, ‘현상 유지를 하는 게 얼마나 다행이냐.’ 따위의 말을 하며 서서히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것이다.
‘그러니 가르쳐 줘야지.’
도미닉은 개항하면 얻을 수 있는 이득을 그들에게 제대로 설명한다면 스스로 문을 열 것이라는 걸 믿어 의심치 않았다.
“무력을 사용하면 더 빠를 게다.”
“노영주님!”
오랜만에 조리실에 틀어박혀 요리를 하고 있는데, 노크도 없이 문이 벌컥 열리고 노영주와 그를 보좌하는 이안이 들어왔다.
“이야기 들었다. 네놈답지 않은 선택을 했더구나.”
“저 같지 않은 게 뭔데요?”
아차.
순간 아침 드라마 주인공 같은 대사를 뱉고 말았다.
‘어휴, 내가 이따위 말을 할 줄이야.’
낯간지러워서, 원.
하지만 민망해하는 도미닉과는 달리 노영주는 여전히 의아하다는 표정을 숨길 생각이 없어 보였다.
“욕심 많은 네놈 성정에 협박을 하든 사기를 치든 해서 그 나라의 자물쇠를 풀려고 들 줄 알았더니, 제법 온화한 선택을 하지 않았느냐. 특사를 보내 정중히 계약을 제안하다니. 허허, 별일이야.”
“그게 뭐 그렇게 별일까지야 되는 일입니까?”
“제국의 10대 상단주들이라면 결코 네놈 같이 일을 하진 않았을 거다.”
“그러니 그놈들이 욕을 먹는 것 아닙니까. 노영주님께서는 제가 욕을 먹었으면 하는 겁니까?”
“또 무슨 말을 그렇게 해. 떼잉.”
도미닉의 너스레에 분위기가 순식간에 풀어졌다.
“말해 보아라. 꿍꿍이가 있지?”
“없습니다.”
“다른 사람은 다 속여도 나는 못 속인다.”
“진짜 없다니까요, 그런 거.”
“···그럼 정말로 얼굴 한번 본 적도 없는 외국인들을 위해 네놈이 얻을 수 있었던 이익의 상당수를 포기했단 거라고? 그걸 믿으라고?”
“믿으셔야죠. 그게 진실인데.”
노영주의 말이 맞다.
여기 제국에서야 워낙에 잘난 사람이 많다 보니 도미닉은 그저 지방 촌구석 도시의 시장에 불과했지만, 왕국이라고 부르기에도 조그만 나라에 가면 국빈까지는 못 되어도 제법 유력 인사 정도의 대접은 받을 수 있는 위치였다.
그러니 동대륙에 위치한 이름도 제대로 알 수 없는 그 작은 나라 정도라면 충분히 쌈 싸 먹을 수 있을 텐데.
‘근데 참 그게 쉽지가 않아.’
전생에 수탈당한 역사를 가진 민족의 후예라 그런가, 그런 방식은 영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건 역시나 이득의 문제였다.
“억지로 문을 열고 강제로 교류를 시작한다면 그게 어디 이득이겠습니까?”
“응?”
“저는 그곳에서 단순히 원하는 작물을 공급받기만 할 생각이 없어요.”
아, 돈 주고 사 왔으면 당연히 돈 받고 팔기도 해야 될 거 아냐?
이것이야말로 선순환 아니겠는가.
‘그러기 위해서 이미지가 얼마나 중요한 건데.’
가뜩이나 제국의 10대 상단들이 하도 이 나라, 저 나라에 똥물을 퍼부어 놔서 새로 거래를 틀려고 할 때 우리 쪽 상인들이 늘 달고 사는 말이 있다.
[저흰 그곳과 다릅니다! 거긴 북쪽, 우린 남쪽. 거긴 귀족파, 우린 중도라고요!]엄청난 자본과 제국의 대귀족들이라는 귀족파의 일원들을 등에 업은 10대 상단은 원가 후려치기, 재고 밀어내기 등등 할 수 있는 갑질이란 갑질은 모조리 하고 있었고, 이는 그대로 ‘필요하니 지금이야 손을 잡지만 대체할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저놈들이랑 영원히 안녕이다!’라며 이를 가는 적들을 너무나 많이 만드는 원인이 되었다.
에버그린에서 생산되는 물건들은 대체로 사치재나 기호품들이었다.
‘욕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쓰는 물건들이 아니라는 거거든.’
소비자들이 에버그린에 갖는 호감의 크기만큼 에버그린산 물건들의 가치는 더욱 높아지는 것이다.
경영이나 마케팅에 대해서 제대로 배운 적 없는 도미닉이었지만 지난 35년간의 자본주의 사회 경험으로, 이곳 사람들과는 시장과 소비에 대한 시야 자체가 달랐기에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물건을 사는 것은 물론이고 앞으로 팔 것을 생각해서 예의 있게 문을 열어 보겠다?”
“예.”
“아직 마음이 어리구나. 세상일이 그렇게 아름답게만 돌아가는 건 아니다.”
노영주는 일부 도미닉의 말에 공감하면서도 그가 생각보다 무르다고 여기고 걱정했다.
“세상살이는 말이다, 마음만으로는 잘 움직이지 않는 법이더구나.”
“······? 당연히 성의를 보여야죠?”
“응?”
“여기가 뭐 동화책 세상도 아니고 어떻게 마음만 갖고 해결됩니까? 성의 표시가 있어야 일단 말을 들어 줄 생각이라도 날 것 아닙니까.”
‘아, 자본주의는 뇌물 아니냐고.’
당연히 아니다.
하지만 도미닉은 당당했다.
원래 잘 모르면 부끄러운 게 없는 법이다.
***
“서쪽의 제국에서 사절이 왔다더니, 변절자였구나.”
동대륙에서도 변두리에 위치한 작은 왕국.
정글과 밀림이 가득한 땅에 덥고 습한 데다 특별한 자원이 나는 것이 아니며 교통도 좋지 않아 부유하지 않은 나라였다.
그러나 제아무리 가난한 나라라고 해도 지배층의 부는 별개의 문제다.
“왕이시여!”
밀수를 업으로 삼으며 평생을 살아왔던 상인이 얼른 옛 고국의 왕 앞에 납작 엎드렸다.
황금과 비단으로 화려하게 치장한 왕과 왕비는 상아로 조각한 옥좌에 앉아 싸늘한 눈빛으로 상인을 내려다보는 중이었다.
“깃발을 바꿔 단 네놈의 목을 치지 않은 이유는 그저 타국과의 불화를 삼가자는 것뿐이었다. 그러니 세 치 혀를 놀리지 말고 삼 일 뒤, 이 땅에서 나가라.”
“왕이시여! 미천한 소인이 감히 나고 자란 땅을 떠나 국적을 바꾼 것은 결국 고국에 이 한 몸 거름이 되고자 했음이니 굽이 살피소서!”
서슬 퍼런 왕의 축객령에도 상인은 제 할 말을 다 했다.
‘이거, 성공만 하면 우리 가문 삼 대가 먹고산다!’
부를 위해 목을 내놓고 밀수를 하던 상인이니 이 정도에 기가 죽을 수는 없는 법이다.
“뚫린 입이라고 말은 잘하는구나. 아국에 거름이 되고자 한다? 그러니 문을 열고 교역을 하자? 흥! 웃기는구나!”
“전하. 이자의 혀가 참으로 맹랑하지 않습니까. 서쪽의 제국은 큰 나라입니다. 그런 곳이 우리의 빗장을 열고자 하는 데에는 모두 꿍꿍이가 있을 것이니 속지 마시옵소서.”
왕비마저도 간언을 하며 쇄국을 풀어서는 안 된다고 왕에게 속삭였다.
“왕비 마마, 그렇지 않사옵니다.”
“뭐라?”
“저는 서쪽 제국과 통교를 하심을 권하는 것이 아니옵니다.”
변절자의 말에 대전 안 신료들의 귀가 쫑긋거렸다.
“제국은 큰 나라입니다. 하지만 소신이 통교하고자 하는 것은 제국 전체가 아닌 제국 남부에 위치한 대영주, 싱클레어 가문의 세력인 에버그린이라는 도시이옵니다.”
“무엄하도다! 고작해야 도시와의 교역을 위해 감히 본국에 문을 열라 말하는 것이냐!”
왕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자존심이 상한 것이다.
아무리 작은 나라라고 하더라도 한 지역의 대영주도 아닌, 고작해야 대영주 산하의 도시 하나와 교역을 하자고 왕과 왕비, 대소신료들이 모두 모였다니!
왕비가 먼저 화를 내었을 뿐, 왕좌 위에 앉은 왕의 얼굴도 딱딱하게 굳은 것이 보였다.
상인이 얼른 일꾼들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미리 뇌물을 받은 내관이 타이밍을 맞춰 대전의 문을 열었고, 서대륙의 복식을 갖춰 입은 이들이 줄을 지어 대전 안으로 들어왔다.
모두 안톤 상회의 상인들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빈손으로 오지 않았다.
서대륙에서 한창 유행하는 화려하고 풍성한 디자인의 드레스.
진주와 산호, 루비 등 각종 보석으로 만든 장신구 세트.
드워프가 만든 한정판 다기 세트.
사막에서 나는 귀한 향신료.
서대륙 대형 몬스터의 뼈와 가죽으로 만든 무기와 갑주.
진귀한 동물들.
황금과 순은으로 만든 조각품.
색깔 유리로 만든 대형 샹들리에.
에버그린에서 최근 가장 인기 많은 화가의 그림.
남부 마탑에서 만든 각종 마도구들.
에버그린 영상 회사에서 제작한 예능 영상구.
질 좋은 커피와 각종 찻잎.
엘프가 정성 들여 키운 엘프목으로 만든 가구까지.
“히끅!”
그 화려하고 영롱한 자태에 화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던 왕비가 저도 모르게 딸꾹질을 했다.
한 나라의 왕비로 살면서도 감히 본 적 없는 물건들에 깜짝 놀란 것이다.
“에버그린은 작은 도시이옵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나는 물산도 작은 것은 아니지요. 이는 모두 그쪽의 시장이 왕과 왕비님에게 보내는 정성의 일부입니다.”
“···적어도 예의는 아는 자로구나.”
“물론이옵니다, 전하. 에버그린의 시장은 전하의 심기를 어지럽히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였사옵니다.”
“그런가.”
왕도 흥분으로 얼굴이 붉어졌다.
하지만 왕비보다는 냉철한 자였다.
“다만, 이리도 부족함 없는 물자들이 나는 땅이니 더더욱 교역은 할 수가 없다. 본국의 왕으로 서글프기는 하나, 내가 그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을 아무리 올려 보아도 저울의 균형이 맞지 않으니 통교는 불가함이 아닌가.”
물건들이 무척이나 탐이 났지만 나라의 명운과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쉽구나.’
왕도 사람이니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어쩌겠는가.
“전하, 에버그린은 작은 도시입니다.”
“왜 그대는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인가.”
“이 모든 물건들의 원료가 그곳에서 난 것이 아니라는 뜻이옵니다.”
“···자세히 설명하라.”
상인이 빙긋 웃었다.
드디어 본격적으로 거래 이야기를 나눌 때였다.
“에버그린은 그저 여러 곳의 물산들을 모으고 개량하여 약간의 이문을 붙여 파는 곳으로, 원료의 공급처를 늘리기 위해 언제나 힘을 쓰는 곳입니다. 그래야만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다 여기는 자들이니 말입니다.”
“원료를 구해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 이문을 붙여 판다?”
“예.”
“그들이 우리에게 원하는 원료가 있다는 것인가?”
“맞습니다. 정글과 밀림에서만 자생하는 작물들이지요.”
“고작해야 작물로 이런 황금보다 귀한 것들을 만드는 자들과의 교역 추를 맞출 수 있을 거라 보는가?”
“에버그린의 시장이 말하기를···.”
***
“초콜릿은 신이에요~!”
조리실에서 콧노래를 부르며 초콜릿을 만드는 도미닉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카카오빈을 잘 볶은 뒤,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마침내 만들어 낸 카카오 매스.
오늘 드디어 이 카카오 매스로 핫초콜릿을 만들어 온천에서 한잔 쭉 들이켤 작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