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spectable male god RAW novel - Chapter (110)
#110. 촬영장의 복지
재인은 >완벽한 파트너> 촬영장으로 돌아온 뒤 표정이 편해졌다. 빠듯한 시간에 스타일리스트 팀원의 붓질이 거칠었지만, 그런 순간도 꽤 흡족했다.
‘어휴. 황태자비 스캔들에 비하면 이쪽은 천국이야.’
후반부 촬영이라서 배우, 스태프 구분할 것 없이 피로가 쌓이고 체력이 부족한 상태였다. 그래도 이쪽이 훨씬 편했다. 몇 달 동안 같이 촬영하면서 호흡을 맞춰 와서 그런지 말도 행동도 거침없었다.
시도해 보고 싶은 연기가 있거나 좋은 아이디어가 생기면 김고운 감독이나 상대 배우와 의논해서 시도해 볼 수 있었다. 배우들이 본인의 캐릭터에 익숙해진 상태라 촬영에 속도가 붙은 덕분이었다.
“재인 씨.”
“네, 감독님.”
“저기, 그, 미안한데 혹시 우리 팀 막내한테 치유 한 번만 걸어 주면 안 될까? 애가 감기 기운이 있는지 영 힘을 못 쓰네.”
“걸어 드릴게요. 어느 분이에요?”
“저기, 갈색 줄무늬 반팔 티 입은 애. 에잉. 어쩌다 개도 안 걸린다는 오뉴월 감기에 걸려서는.”
세트에 들어선 재인을 촬영 감독이 찾았다. 팀원에게 치유를 걸어 달라는 요청을 하기 위해서였다.
재인은 촬영 감독의 요청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어차피 치유사라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었고, 스킬을 걸어 주는 정도로 촬영이 원활하게 이어진다면 거절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성형 안 하셨죠?”
“네.”
“사실 하셨어도 상관없어요.”
“알아요. 재인 씨 치유는 부작용 없다고 들었어요. 고맙습니다.”
“뭘요.”
치유를 받은 뒤 고맙다고 고개를 꾸벅 숙이는 스태프에게 부드럽게 웃어 주었다. 치유 한 번에 몸이 좋아졌는지 동료들에게 돌아가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날이 갈수록 치유 효과가 좋아지는 것 같아.’
인기가 많아질수록 공헌도는 무서울 정도로 쌓였다. 신성력도 마찬가지 대체 어떤 매커니즘으로 늘어나는 건지 모르나 마구 써도 괜찮을 정도로 쌓였다. 덕분에 처음 각성했을 때와 다르게 공헌도나 신성력을 마음껏 사용했다.
“저, 재인 씨?”
“아! 이리 오세요. 치유 걸어 드릴게요.”
“이거 드세요.”
“잘 먹을게요.”
눈치를 보다 음료수를 들고 찾아온 스태프에게도 치유를 걸어 주었다. 꽤 익숙한 태도로 촬영 시작 전까지 간간이 찾는 스태프들을 돌봐 주었다.
재인의 치유에 성형을 되돌리는 부작용은 없다는 얘기는 유명했다. 촬영장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밖에서 떠들 정도로 촬영 스케줄이 녹록하진 않아서 그런 얘기는 아직 촬영장 밖을 벗어나진 않았다.
“자, 배우들 준비해 주세요. 리허설 빨리 마치고 바로 촬영 들어갑시다.”
“네.”
>완벽한 파트너> 촬영장은 오늘도 배우, 스태프들이 서로 도우며 원활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 * *
>황태자비 스캔들> 스태프들은 황인아 감독과 몇 번 손발을 맞춘 적 있는 베테랑들이었다. 갑자기 촬영 순서가 바뀌었을 때 당황하지 않고 재빠르게 세트 설정을 교체하던 모습을 보면 알 수 있었다.
반면 배우들은.
‘배우가 문제야. 나도 배우니 제 얼굴에 침 뱉기지만, 다들 참 철이 없어.’
누구는 의욕이 너무 넘쳤고 누구는 연예인 병이 심각했다. 혹은 지금처럼 알 수 없는 속내를 품고 접근하거나 했다.
“오늘 촬영 잘 부탁드려요.”
“예. 촬영 잘 부탁드립니다.”
분장실로 향하는 복도에서 일부러 기다린 것처럼 마주친 김민기가 그랬다.
>황태자비 스캔들>에는 주인공인 장윤하 외에도 아이돌 출신 배우가 있었다. 재인에게 인사를 건네는 김민기 역시 아이돌 출신이었다.
대군 선을 연기하는 김민기는 >완벽한 파트너>에서 재인이 연기하는 우연 정도로 망한 아이돌은 아니었지만, 아무리 좋게 평가해도 2군 이상은 아닌 아이돌 그룹의 센터였다.
작은 얼굴에 뚜렷한 이목구비는 괜히 센터가 아니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였다. 연기 실력도 썩 괜찮아서 연출진과 스태프들에게 은근히 환영받는 사람이었지만.
“크르릉!”
“쉬이! 하찬아, 괜찮아. 착하지.”
재인의 신성력이 따끔따끔한 경고를 보내고, 마주칠 때마다 하찬이 노골적으로 적의를 드러낼 만큼 거슬렸다.
‘좋은 목적으로 다가오는 건 아닌 것 같아.’
재인과 몇 년째 같이 촬영장에 다니면서 분위기를 익힌 하찬은 아주 큰 일이 아닌 이상은 잘 짖지 않았다. 특히 재인이 스튜디오에 나와 있을 때는 간식도 조르지 않을 만큼 매너가 좋았다. 그런 하찬이 김민기만큼은 대놓고 경계했다.
“꼬리라도 흔들지 말던가, 요 녀석아.”
“컹.”
“들어가자.”
상대를 경계는 하지만 위협은 되지 않는지 금세 재인에게 시선을 돌리곤 했어도 경계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씁. 되게 뻣뻣하게 구네.”
재인과 하찬이 분장실로 들어간 뒤 김민기는 얼굴에서 표정을 지웠다. 이유가 있어서 다가가는 중이지만, 그다지 쉽지 않았다. 재인은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상냥하다는 소문과 다르게 남에게 곁을 잘 내주지 않았다.
옆을 지키는 고양인지 개인지 하는 반려 몬스터도 마찬가지. 자신만 보면 이빨을 드러내고 위협 섞인 울음소리를 내는 통에 인사 외의 말을 건네지 못했다.
“민기야. 어땠어? 얘기 좀 했어?”
“형. 조용히 해.”
눈치 없는 사람. 김민기는 대기실로 들어가자마자 말을 거는 매니저에 인상을 찌푸렸다. 개별 대기실이긴 해도 주변에 사람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스타일리스트 팀원들도 있고, 촬영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스태프도 수시로 다녔다.
‘작가님은 왜 이재인한테 관심을 주는 거야. 잘생긴 거 빼고는 평범한데.’
차기작 미팅을 가지는 동안 작가의 관심 대상은 그가 아니었다. 같이 출연하는 재인에게 있었다. 재인이 대기 시간 동안 뭘 하는지, 무슨 음료수를 마시고 누구와 어떤 말을 하는지 같은, 아주 사소한 것들에 관심이 지대했다.
‘황태자비 스캔들 이후 연말까지 스케줄을 잡지 않는다니. 인기 배우라 이건가.’
한창 주가가 높아지는 중인 재인이었다. 만약 자신이었다면 휴가는 무슨, 연말까지 쉬지 않고 일했을 것이다.
‘그런다고 이재인만큼 뜬다는 보장은 없지만.’
데뷔 전에도 데뷔 후에도 한시도 쉬지 않고 노력했어도 어떤 보상도 받지 못했다. 오히려 눈 딱 감고 나갔던 자리에서 몇 년 동안 만져 보지도 못한 팁을 받았었다.
‘아이돌 따위 진작 때려치웠어야 했어.’
연습생 기간과 아이돌 생활 기간을 합친 것보다 계약 끝나고 나서 일 년 일하면서 받은 돈이 훨씬 많았다. 더러운 꼴을 많이 보긴 했어도 그곳에서 일하면서 만난 사람들 덕분에 배우로 전향할 수 있었다.
“형은 그쪽 매니저랑 친해졌어?”
“아니. 바늘도 안 들어가게 생겼어. 얼마나 깐깐한지 공개된 정보 외에는 한마디도 안 하더라.”
“작품 얘기고 뭐고 친해지는 게 먼저인데, 쓰읍! 짜증.”
“짜증 부리지 말고. 너 사람 꾀는 거 잘하잖아. 이번에는 상대가 남자라 어려운가?”
남자라서 어려운 게 아니라 분위기가 문제였다. 뭘 아는 것처럼 은근히 거리를 두고 경계해서 말도 못 붙여 봤는데 꼬시긴 뭘 꼬신다는 말인가.
“그건 아니야.”
“그럼 잘 좀 해 봐. 솔직히 우리 회사는 그런 작품 잡을 능력 같은 거 없다.”
“알아.”
“이참에 나도 독립해서 대표 명함 한번 파 보자. 나도 다시 접근해 볼 테니까, 너도 신경 좀 써 봐.”
“알았어.”
김민기는 그다지 자신 없었지만 알겠다고 대답했다. 매니저의 말대로 그가 소속된 회사에는 A급 인기 작가의 작품에 그를 꽂아 줄 능력이 없었다. 몇 년 더 조연으로 인지도를 쌓고 실력을 증명한 뒤라면 모를까, 아직은 무리였다.
‘어차피 지원 같지도 않은 지원만 해 주는데, 남아 있을 이유도 없지.’
재인과 친해져서 작가와 만나게 하는 것만으로 유명 작가의 작품에 출연할 수 있었다. 그것도 조연이 아닌 네 명의 주연 중 한 명으로.
-띠링!
[민기야, 우리 재인 씨 오늘은 무슨 옷 입고 오셨니? 피곤해 보이진 않으셨어? 얼른 우리 작품에 모셔서 편하게 해 드려야 하는데.]아침저녁 시간을 가리지 않고 보내는 작가의 메시지를 확인한 김민기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형. 간식이라도 한 번 돌려. 인증 사진 올리게.”
“어, 알았어.”
친해지는 건 천천히 하고 일단 작가의 조바심을 달랠 만한 건수가 필요했다.
* * *
“쯧쯧! 어떻게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냐.”
재인은 김신우가 혀를 차면서 하는 소리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주억였다. 그러다 퍼뜩 정신을 차리고 자세를 바로 했다.
‘조심해야지. 누가 볼라.’
무의식중에 상대를 골칫거리로 생각하고 있었나 보다. 김신우의 핀잔에 반사적으로 반응하고 말았다. 물론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보면 그가 그런 반응을 보인다고 해도 아무도 흉을 보지 않을 테지만 조심하는 게 좋았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거기 분장 담당자 데려와 봐. 이게 이 장면에 어울리는 꼬라지야?”
“꼬, 꼬라지라뇨. 감독님! 어떻게 그렇게 말씀하실 수 있어요?”
“그럼 너는 어떻게 그 얼굴로 나올 수 있어요? 지금 화보 찍으러 왔어? 입술을 쥐 잡아먹은 것처럼 시뻘겋게 칠하고 자는 사람이 어딨어?”
“첫날밤 장면도 그냥 찍었잖아요. 오늘도 어차피 손도 안 대고 서로 등 돌리고 자는 장면인데 이게 어때서요.”
“이게 어때서요? 지금 그 꼬락서니로 나타나서 이게 어때서요? 이해력이 달려? 아니면 원래 머리가 돌머리야? 이게 무슨 장면인지 파악 안 돼? 분장 담당자 어딨냐니까!”
오늘 찍는 장면은 황태자 부부가 처가에서, 예은의 본가에서 하룻밤 자는 장면이었다. 황궁에서 결혼 후에 보낸 첫날밤과 다르게 이번에는 화려한 활옷이 아닌 평범한 홈 웨어를 입어야 했다.
협찬 상품인 귀여운 캐릭터 홈 웨어를 입는 것까지는 괜찮았다. 문제는 장윤하가 풀 메이크업 상태로 등장했다는 점이었다. 기다란 속눈썹을 붙이고 색조 화장까지 곱게 한 상태로. 누가 봐도 잠자리에 들 모습이 아니었다.
“실장님. 지금 이게 이 장면이랑 어울린다고 보세요?”
“죄송해요, 감독님.”
“매니저님은 왜 가만히 있었어요? 분명히 오늘 촬영하는 장면에 관해서 미리 얘기했잖아요. 왜 저 꼬라지로 내 앞에 나타나게 뒀냐고요.”
“꼬라지라뇨, 감독님. 말씀이 심하십니다.”
“심한 건 댁네 배우 얼굴이고요.”
“감독님!”
“뭐! 내가 틀린 말 했어? 지금 저 얼굴 때문에 몇 분이나 지났는지 알아? 당장 지워! 아니면 화면에서 지워 줄까?”
스타일리스트 팀 실장, 매니저와 나름 차분하게 대화를 시작한 황인아 감독이었지만, 그런 상황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몇 분 지나지 않아 용이 불길을 뿜듯 호통을 쳤다.
‘저런 억지가 통할 거로 생각한 건 아니겠지?’
재인의 눈에 들어온 장윤하는 지금 벌어지는 모든 소란이 자신과는 관계없는 일인 양 무심했다. 매니저의 등 뒤에서 안절부절못하는 스타일리스트를 옆에 끼고 선 그녀는 자못 심드렁한 태도였다.
“감독님! 감독님 진정하세요. 바로 수정하고 오겠습니다.”
“됐어. 쟤는 목소리만 출연하라고 해. 아니다, 그냥 가라. 나중에 따로 녹음할 테니까 그냥 가. 여기서 화 돋우지 말고 가.”
“죄송해요, 감독님. 지금 분장실로 바로 갈게요.”
“됐어. 걱정하지 마. 원래 그런 장면인 것처럼 아주 깔끔하게 지워 줄 테니까.”
“5분! 5분만 주세요. 금방 지우고 올게요.”
4년. 이미 배우로 4년이나 활동한 사람이 대체 왜 이런 어처구니없는 행동을 하는 걸까. 망가지는 장면도 아니고 그저 민얼굴처럼 보이도록 연하게 화장하면 되는 상황인데 왜 저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재인이 이유를 고민하는 사이 황인아 감독은 장윤하의 매니저를 갈구고 있었다. 화면에서 빼 버리겠다는 말까지 서슴없이 해 댔다. 그 기세가 얼마나 흉흉했는지 오늘 촬영에서 진짜로 장윤하를 빼 버릴 것 같았다.
“감독님 소파 위치 조금만 바꿔 주세요. 이쪽에 사람이 앉아 있는 것처럼 보이게요.”
“오케이. 예은이 시선으로 보는 것처럼 찍자는 거지?”
“네. 예은이 눈에 가족들과 어울리는 환이 들어…….”
“감독님! 저희 지금 들어가요! 5분만 기다려 주세요.”
거실처럼 꾸며진 세트를 바꿀 것처럼 황인아 감독이 지시를 내리려는 순간이었다. 매니저가 장윤하의 등을 떠밀며 분장실 방향으로 움직였다. 5분이면 된다고 큰 소리로 외치면서.
“어휴! 어디서 저런 화상이 나타나서. 유치원 애들 데리고 찍는 게 더 편하겠다.”
“그래도 잘 풀렸잖아요. 고생하셨어요, 감독님.”
“이게 무슨 날벼락인지. 배우들이 다 재인 씨만 했으면 좋겠어요.”
“하, 하하. 저 같은 사람만 있으면 재미없지 않을까요?”
“촬영 현장 복지에선 따를 곳이 없겠지만, 역시 그렇겠지요?”
“…….”
재인은 얼굴을 뚫어져라 보면서 하는 황인아 감독의 질문에 대답할 말이 없었다.
“아하하하. 고마워요, 재인 씨. 덕분에 화 다 풀렸어요. 촬영 준비해요.”
“예.”
“그래도 재인 씨 얼굴이 복지라는 말은 진심이에요.”
“…….”
재인은 저를 놀리는 황인아 감독에게 눈을 흘기다 웃어 버렸다. 무사히 촬영을 시작하게 되었으니 놀리는 말 정도는 관대히 넘기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