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spectable male god RAW novel - Chapter (186)
#186. 경호 팀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날이 이어지자 재인은 다시 바빠졌다. 차기작인 tvM 제작 드라마 >블레싱>의 대본 리딩에도 참석해야 했고, 급하게 잡힌 다음 시즌 화보와 다다음 시즌 화보도 찍어야 했다.
“휴가라더니 되게 바쁘네.”
“전에도 한 번 그 얘기 한 거 같은데…….”
“그랬나?”
“어, 들은 기억 있어.”
“그런데 바쁜 게 사실이잖아.”
동생의 투정에 재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휴식기가 아닌 것처럼 바빠서 충분히 투덜거릴 만한 상황이었다.
휴식기 동안 드라마나 영화 같은 장기 촬영 건만 없을 뿐 전과 다름없는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었다. 광고나 화보, 인터뷰, 행사 등 꾸준히 얼굴을 비치고 있었다.
“이제 너희 팀도 본래 업무로 돌아가도 되지 않을까? 키퍼 팀도 있고, 회사에 얘기해서 경호 팀을 늘리면 경호는 충분할 것 같아.”
“아니. 가능하면 우리가 계속 맡아야지.”
“안 그래도 되는데.”
“길드장이 그걸 두고 보진 않을걸. 뭐 길드 사정상 다른 팀과 교대할 수는 있어. 그래도 경호를 아예 안 하지는 않을걸.”
길드장의 관심은 여전히 지대했다. 전에는 관심을 가지는 정도였다면 해저 던전에 같이 다녀온 뒤에는 직접 경호 상황을 챙기고 있었다. 그만큼 재인의 버프나 치유 스킬이 놀라웠기 때문이었다.
“부담스러워도 한동안은 참아.”
“어? 응.”
몸이 근질거린다며 길드 훈련장에 가서 늦게 돌아오는 일이 잦아졌기에 경호를 줄이는 일에 찬성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재현은 예상보다 더 단호하게 반대했다. 길드장을 들먹였지만, 꼭 다른 이유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씁! 이상한 녀석들을 주변에서 봤다는 제보도 있으니 어쩔 수 없지.’
재인의 짐작은 틀리지 않았다. 재현은 재인에게 말하지 못한 이유가 따로 있었다.
한 지역에 거대한 기업체가 들어서면 근처에 그 기업체에 다니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상권이 발달하는 것처럼 재인의 집 일대는 KH 길드원을 주 대상으로 하는 상권이 형성되어 있었다. 덕분에 일대의 정보가 자연스럽게 KH 길드로 모이는 구조였는데 얼마 전부터 이상한 사람들이 목격되고 있었다.
평범한 사람처럼 꾸미고 있었지만, 곳곳에 감각이 예민한 사람이 포진한 지역이다 보니 알 수 있었다. 그들이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옷으로 가리고 있다고 해도 극도로 발달된 신체를 다 가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마치 지도라도 만들려는 것처럼 지역을 샅샅이 훑는 것이 몇 번이나 목격되었다. 길드에선 그런 그들을 길드 근처에 생긴 제작 아이템 상점이나 비싼 재료 상점을 털려고 사전 탐방 같은 걸 한다고 의심하고 있었다.
그러나 재현은 그들이 노리는 게 상점이 아닌 것 같았다. 어쩐지 그들이 형을 해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는 것 같았다. 납치하든 스토킹하면서 몰래 촬영하든, 형한테 해가 되는 짓을 할 것 같았다.
“연말까지 봐서 별일 없으면 길드에 얘기할게. 솔직히 내 말이 먹힐지는 모르겠다. 형이 최근에 제공하는 성수 효과 엄청난 거 알지? 그것만으로도 보호할 가치는 충분해.”
“그 정도는 아닌데…….”
“형만 형 능력을 가볍게 보는 거야. 업무 협약 중인 병원들에서 형 성수 구하려고 얼마나 난린데. 길드에서 정산해 준 거 못 봤어?”
“봤지. 진짜 많더라.”
KH 길드에 넘기는 성물은 외부로 유출하지 않지만, 성수는 일정량을 판매하거나 병원, 키퍼 쪽에 넘기고 있었다.
그 판매 수익을 매달 정산 받는데 금액이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컸다. 아니, 솔직하게 말하면 배우로 일하면서 받는 수익보다 더 컸다.
“불편해도 좀만 참아.”
“불편한 건 아니야. 미안해서 그렇지.”
“전에도 얘기했잖아. 우리한테 미안해할 필요는 없어. 전부 길드에 이익이 되기 때문에 하는 일이니까.”
“……그래.”
남한테 폐를 끼치기 싫다는 형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조금 더 안전에 욕심을 내 줬으면 싶었다.
몇 년 전 신신당부했던 대로 보호용 아이템도 잘 착용하고 행선지도 꼬박꼬박 알려 주긴 해도 그걸로는 부족했다. 사건이 벌어졌을 때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누군가가 곁에 있어야 안심할 수 있었다.
* * *
“되게 안 걸리네. 숨겨 둔 게 많나?”
해성은 별다른 낌새를 보이지 않는 예언자와 떨거지들을 떠올리고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였다. 함정에 빠지려면 시간이 오래 걸릴 거라고 예상하긴 했어도 반응이 너무 느렸다. 기다리다 인내심이 바닥날 것 같았다.
‘상황이 이런데도 나보다 성질 더럽고 집요한 보스가 가만히 있단 말이지…….’
집중해서 자료를 살피는 김태오를 곁눈질했다.
김태오는 당장에라도 성질을 터뜨릴지도 모른다는 그의 불안을 비웃는 것처럼 태평한 반응이었다. 재인의 전속 계약서 조율 건을 처리하거나 변호사 사무실로 간간이 들어오는 의뢰를 처리하는 태도만 보면 마치 예언자 건은 잊은 것처럼 보였다. 그럴 리는 절대 없겠지만.
‘보스가 원한을 잊을 사람은 아닌데……. 됐다, 됐어. 별일 없으면 좋은 거지.’
예언자 일 외에도 할 일은 많았다. 변호사 사무실을 찾은 의뢰인에게 유리한 자료도 찾아야 했고, 점점 규모가 커지는 디바인 스타 카페도 관리해야 했다. 하지 않아서 그렇지 할 일은 산더미처럼 많았다.
“흐음! KH 길드의 보안 등급이 바뀌었나?”
본업이자 취미이고 용돈벌이인 해킹도 해야 할 일 중 하나였다. 특히 재인의 경호를 맡는 한 축인 KH 길드의 동향을 파악하는 것은 잊지 않고 매일 하는 업무였다.
‘이상하네. 갑자기 예비 경호 팀을 추가할 일이 뭐가 있지?’
재인 씨는 공식 스케줄에 올라 온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었다. 어제는 급하게 잡힌 F/W 시즌 화보를 찍었고, 오늘은 잡지사와 차기작인 >블레싱>의 홍보 인터뷰를 하러 다녀왔다. 휴식기 전에도 후에도 있던 인기 있는 배우가 할 법한 평범한 스케줄이었다.
재인의 일상에 눈에 띄는 변화가 없는데도 경호를 강화한 게 이상했다. 보안이 깐깐한 KH 길드 정보 팀 채팅방의 대화를 훔쳐봐도 무슨 상황인지 알 수 없었다.
“직접 봐야 알 것 같은데…….”
“해성?”
“…….”
“…….”
김태오는 이름을 불러도 대답하지 않고 생각에 잠긴 해성을 지그시 쳐다봤다. KH 길드의 보안 단계를 얘기하다 직접 봐야 할 것 같다는 말을 뱉고는 반응이 없었다. 당장 자신을 찾지 않는 걸 보면 큰일은 아닌 듯했다. 다만 넋을 놓고 멍한 모습이 거슬렸다.
-똑! 똑!
원래라면 테이블 위에 있는 물건을 던지거나 날카로운 기운을 쏘아 보냈겠지만, 김태오는 친절을 베풀기로 했다. 정신을 차리도록 다가가 테이블을 두드렸다.
“헉! 보스.”
“무슨 일이지?”
“어…….”
“?”
“재인 씨 경호가 강화됐어요. 외부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KH 보안 등급도 오른 거 같아요. 완전히 등급을 올린 건 아니고 등급 상승을 상정한 준비 단계 정도로요.”
해성의 설명을 들은 김태오의 눈썹이 산을 그렸다. 재인 주변에 무언가 알 수 없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는 소식이 못마땅했다.
“얼마 전부터 재인 씨 관련한 일은 KH 길드장이 직접 처리하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그런지 여기저기 뒤져 봐도 이유를 모르겠어요. 직접 가서 살펴보는 게 나을 것 같은데…….”
김태오는 해성이 끝까지 하지 않고 줄인 말이 무엇인지 바로 알아차렸다. 재인을 경호하는 사람들이 껄끄럽다는 뜻이었다.
“다가가진 말고 멀리서 지켜볼까요?”
“……일어나라.”
“네!”
해성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현장이 체질은 아니지만, 가끔은 현장으로 나가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보스. 근처에 지켜보기 딱 좋은 카페가 생겼거든요. 거기로 갈까요?”
“아아.”
“거기 복숭아 치즈케이크가 진짜 맛있대요.”
“…….”
* * *
재인은 스케줄을 따라오는 경호 팀을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며칠 전부터 경호 거리가 가까워진 것 같아서였다.
‘평소에는 재현이네 팀 때문에 멀찍이 떨어져서 따라오셨었는데. 무슨 일이지?’
재현이 속해 있고 사적인 자리에서도 자주 만나서 친한 박연화 팀과 다르게 키퍼에서 보내 준 경호 팀은 철저하게 원거리 경호를 해 왔었다. 키퍼에서 재인을 경호한다는 사실이 알려지지 않도록 상당히 조심해 왔는데 갑자기 거리를 좁혀 왔다.
“안 들어가고 뭐 해? 뭐 이상한 거 있어?”
“아니.”
“그래? 그럼 그만 보고 들어가자.”
“어. 가자, 하찬아.”
“컹!”
등 뒤를 막듯이 서서 안으로 들어가라고 등을 미는 동생에 재인의 생각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여기는 뭐 하러 온 거야? 무슨 촬영 있어?”
“내가 하는 건 아니고. 오늘 모션 캡처하거든. 견학해도 된다고 하셔서 보러 왔어.”
“모션 캡처?”
“응. 동물 역할.”
>블레싱>에서 재인은 영혼의 얘기를 듣고 소원을 들어주는 역할을 맡았다. 설정에 따르면 단순히 얘기를 들어 주는 것을 넘어 영혼의 기억 속으로 넘어가기도 하는데, 그런 영혼 중 호랑이의 영혼이 있었다.
‘호랑이 역할이라니 기대된다.’
스포일러라 간단한 설명만 하고 말을 아꼈지만, 그는 오늘 촬영을 굉장히 기대하고 있었다. 한국에 몇 명 없는, 아니 할리우드에도 몇 명 없는 동물 연기 전문 배우가 하는 촬영이어서였다.
“안녕하세요.”
“어서 와요, 재인 씨. 이쪽으로 오세요. 소개해 줄게요. 모션 디렉터 김태양 씨예요.”
“이재인이에요. 오늘 견학 허락해 주셔서 감사해요.”
“김태양입니다. 아닙니다. 관심 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독의 소개로 김태양과 인사하는 재인은 안타까운 심정이 드러나지 않게 조심했다. 동물, 몬스터, 크리쳐 연기에서는 따라올 사람이 없다는 사람인데도 저자세인 모습에 속이 쓰렸다.
국내 영화계에서 시각 특수 효과 분야에서 일하는 배우들의 처지가 나빠서 그런 것이겠지만, 버젓이 배우로 활동하는데도 전문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이 답답했다.
‘스턴트 배우랑 비슷한 인지도만 있었어도 특수 연기 전문 배우로 인정을 받을 수 있었을 텐데.’
같은 얼굴 없는 배우지만, 누구는 스턴트 배우로 전문성을 인정받는 반면에 동물이나 몬스터를 연기하는 김태양은 그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었다. 상당한 훈련과 연구가 필요한 역할을 소화해 내는데도 사람들에게 존재조차 알려지지 않는 일이 허다했다.
‘대단하다. 진짜 호랑이 같아.’
기본적인 걷는 동작, 포효하는 동작에 이어 바위를 오르고 앞발을 휘두르는 동작을 연기하는 김태양은 한 마리의 호랑이였다. 곳곳에 센서가 부착된 검은색 슈트를 입고 그린 스크린 앞에서 연기하는 중이라곤 생각되지 않을 만큼 위압적이고 거칠었다.
“컷! 잠깐 쉬고 합시다.”
한동안 이어지던 촬영이 멈췄다. 불편한 자세로 뛰고 구르고를 반복하는, 일반적인 연기보다 체력 소모가 훨씬 큰 연기라서 그런지 따로 분장을 손볼 필요 없는 데도 휴식 시간 조금 길었다.
“여기 수건이요. 음료수는 이거 좋아하신다고 들었는데 괜찮으세요?”
“헛! 감사합니다. 네, 좋아하는 겁니다.”
그린 스크린을 빠져나오는 김태양의 옆에 다가가 수건과 음료수를 건넸다. 혹시 잘못 들은 게 아닐까 싶어서 솔향이 진한 음료수 외에 여러 가지를 준비했는데 다행히 솔향 음료수가 취향이었다.
“보기보다 더 체력 소모가 큰 것 같아요.”
“사람과 체형이 다르기도 하고 무게 중심이나 무게감이 다른 부분까지 고려해서 표현해야 해서요.”
“그런 세세한 부분까지 표현하셔서 연기가 더 실감 났나 봐요.”
“하, 하하하. 감사합니다.”
“좋은 연기 보여 주셔서 제가 더 감사하죠.”
빈말이 아니었다. 김태양의 연기에서 노련함과 그 노련함을 쌓는 과정의 지난함을 읽은 재인의 말은 백 프로 진심이었다. 연기 수업을 받으면서 동물 연기도 여러 번 했었다. 호랑이, 독수리, 닭, 원숭이. 여러 동물을 연기했지만, 김태양처럼 잘 해낼 자신은 없었다.
“체력 부족하시면 얘기하세요. 디렉터님은 무상으로 회복시켜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순식간에 치유를 건 재인의 뒤에서 재현이 고개를 저었다. 당당한 호랑이를 연기하던 배우가 슬그머니 고개를 돌리는 게 말갛게 웃는 얼굴이 어지간히도 부담스러운 모양인데, 제 형은 그걸 모르는 것 같았다.
-스튜디오로 수상한 인물 접근 중.
재현이 점점 붉어지는 김태양의 얼굴을 보면서 재인을 곁으로 부를까 말까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이어 마이크를 통해 동료의 경고가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