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spectable male god RAW novel - Chapter (85)
#85. 완벽한 파트너 촬영 시작
어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평범한 인상의 중년 배우를 재인이 알아본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회귀하기 얼마 전 TV에서 방영한 한 프로그램을 눈여겨봤었기 때문이었다.
그 프로그램은 돌연 TV에서 사라진 연예인의 근황에 관해 방송했는데, 중견 배우는 그 프로그램의 출연자 중 가장 안타까운 사연의 주인공이었다.
‘그때는 그냥 불쌍하다고만 생각하고 말았지.’
해당 프로그램에는 재인도 아는 사람들이 많이 나왔다. 이름은 기억하지 못해도 참고 영상을 보면 ‘아! 저 사람이었어?’ 할 정도의 사람들이 있었다.
출연자 중엔 한 시대의 유행을 이끌었던 가수도 있었고, 시청률 40%에 육박하는 대박 드라마의 출연 배우도 있었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된 가수, 사업에 실패해 일용직을 전전하는 배우 등. 과거의 인기와 무관하게 평범하게 사는 사람들이 나왔었다.
수많은 출연자 중에서 중년 배우를 재인이 기억하는 이유는 그 배우만이 본인의 선택이 아닌, 타의에 의해 불행해진 사람이라서였다.
‘여기는 원래 세상과 다르니까. 실제로 실종 사건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고, 사건이 벌어져도 사이코메트리나 추적 능력을 각성한 초능력자가 많으니 금방 해결되겠지.’
라고 생각해도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재인은 나중에 기회가 되면 아이의 지문을 사전 등록하거나 GPS 기능이 되는 액세서리를 착용시키라고 권하자 다짐했다.
“컹.”
“그래, 이런 거.”
하찬의 GPS 부착 하네스에 손을 얹은 재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클로버 엔터의 직원 박상미는 하룻밤 지나면 조회 수의 자릿수가 변해 있는 영상에 환히 웃었다. 비록 개인적인 욕망에서 비롯된 기획이었지만, 이렇게 눈에 띄는 결과가 나오니 적잖이 만족스러웠다.
‘예상이 맞았어. 잠도 잘 오고 너무 좋다. 나중에 영상 쌓이면 다 모아서 100분짜리로 만들어야지.’
재인이 동화책을 읽어 준다는 기획은 중간에 완전히 성격이 바뀔 뻔했다. 회의에서 배우이니 직업에 걸맞게 유명한 연극 대본의 독백 영상 같은 걸 올리자는 의견이 지지를 받아서였다.
박상미는 개인적인 욕망과 재인에게 어울리는 콘텐츠 사이에서 한참이나 고민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역시나 동화가 여러모로 낫다는 것이었다.
“어휴. 진짜 회의록 파괴해 버리고 싶다.”
동화 콘텐츠를 밀면서 했던 발언들이 담긴 회의록을 찾아서 하드를 날려 버리고 싶었다. 아무리 수면이 부족해서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해도 쪽팔렸다.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수면제라도 먹고 푹 잔 뒤에 회의에 참석하고 싶었다.
‘독백 영상은 한 명이 보지만, 동화 영상은 원 플러스 원이라고요. 아기 엄마랑 아기랑 같이 본단 말이에요. 미래의 잠재 고객을 양성할 수 있는데, 당연히 동화 영상을 찍으셔야죠!’
‘이 배우님 영어도 잘하시잖아요. 우리만 보기엔 너무 아깝잖아요. 영어 영상 제작해서 전 세계 팬 서비스하죠. 헬멧 쓴 펭귄 따위 우리 이 배우님 상대가 아닙니다. 초통령의 자리를 뺏어 와요.’
‘연기 영상은 성공 여부가 불투명해도 동화 영상은 성공이 확실해요. 혹시 들어 보신 적 없으세요? 애들은 낯을 가리는 게 아니라 낯짝을 가린다는 말? 이 배우님 낯짝이 어디 그냥 낯짝이에요? 전 세계를 혼자서 씹, 읍읍.’
-쿵! 쿵! 쿵!
낯짝. 수치스럽고 원망스러운 단어를 다시 떠올린 박상미가 머리를 책상에 여러 번 박았다. 그렇다고 회의의 기억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으나,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창문 열고 뛰어내릴 것 같았다.
‘다른 사람들이 흑역사, 흑역사 할 때 가만있을 걸. 아니, 뭘 그런 거 가지고 그러냐는 말이라도 하지 말걸. 진짜 쪽팔려서 못 살겠다.’
소속 아티스트, 그것도 수려하기로는 한국 제일인 재인한테 낯짝이라니! 부장님과 팀장님의 눈에서 레이저가 쏘아져도 할 말이 없었다. 다시 생각해 봐도 입을 막아 준 동료 직원이 진심으로 고마웠다.
“그나저나 신기하네. 이쪽 버전 영상 조회 수가 높을 거라고는 예상 못 했는데.”
재인의 동화책 읽어 주기 영상은 두 가지 버전이 있었다. 동화책 삽화에 내레이션을 입힌 버전과 재인이 침대맡에 앉거나 소파에 앉아서 책을 들고 읽어 주는 버전.
영상 콘텐츠 주제가 아이들이 좋아하는 동화라서 클로버 엔터에서는 삽화 버전의 조회 수가 더 잘 나올 거로 예상했었다. 그러나 결과는 반대였다. 재인이 출연해서 동화책을 읽어 주는 버전의 조회 수가 몇 배나 많았다.
‘역시 애들 눈이 정확하구나.’
영상 조회 수뿐 아니라 ‘좋아요’와 댓글도 재인이 직접 출연한 영상 쪽에 더 많이 달려 있었다.
-매일 자기 전에 틀어 놓고 자요. 나긋나긋한 목소리 너무 좋아요.
-우리 아이 잘 때 매일 틀어 줘요. 잠투정도 안 하고 얌전히 보다 자는 게 얼마나 신기한지. 감사합니다. 혹시 오리 대장 오로라 영상 만들어 주실 수 없나요? 우리 아이가 제일 좋아하는 책인데요.
-와! 목소리 대박! 눈 호강. 귀 호강. 잠깐 이불 좀 펼게요.
-한 구절 한 구절 들을 때마다 너무 좋아서 심장이 아파요.
-이거 자기 전에 동화 읽어 주는 그런 건가요? 와… 이걸…어떻게
-혹시 조금 긴 영상을 만들 계획은 없으신가요? 10분짜리가 짧다는 건 아니고요. 두세 시간 정도 되는 걸로.
-내용에 몰입이 잘되고 듣기 편해요. 너무 좋아요. 다른 이야기도 많이 만들어 주세요.
-목소리 진짜 좋다. 글 읽어 주는 프로그램이 이 목소리였으면 좋겠다.
그렇지, 그렇지. 댓글을 읽는 박상미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주인공은 재인이었지만, 자신도 기획에 한 손을 보탰다. 그래서 그런지 영상에 달린 댓글이 자신을 칭찬하는 것 같아 뿌듯했다. 흑역사 정도는 이런 댓글의 힘으로 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 * *
재인은 자신과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돌린 중년 배우에 입맛을 다셨다. 기회를 봐서 아이에 관해 물어보려고 했는데, 오늘도 안 될 것 같았다.
벌써 3차 대본 리딩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재인은 다른 출연진과 가벼운 인사만 나눴을 뿐으로 대화다운 대화는 나누지 못했다. 가까이 다가갈라치면 슬금슬금 피하는 배우들 때문이었다.
‘계속 이러면 안 될 것 같은데…….’
주연은 처음이라서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몰랐다. 그래도 확실한 건 이 이상 동료 배우들과 거리가 벌어지게 둬선 안 된다는 것이었다. 촬영장 분위기를 유쾌하게 유지하던 이주환처럼은 아니더라도, 주연으로서 존재감을 뚜렷하게 드러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재인 씨.”
“네, 선배님.”
“그 동화책 읽어 주는 영상 말이야. 다음 영상은 언제 올라와?”
“제 미튜브 채널이요?”
“응. 우리 조카가 물어봐 달라네.”
재인이 어떻게 해야 동료 배우와의 사이를 바꿀 수 있을까 고민할 때였다. 또 다른 주연인 강여진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시간을 정해 둔 건 아니고요. 일단은 한 달에 두어 개 정도 올릴 계획이에요.”
“그래? 다음 영상은 뭐야? 아니, 혹시 오리 대장 오로라로 영상 찍을 생각 없어?”
“오리 대장 오로라요?”
“응. 그게 요새 아이들한텐 인기가 많거든. 우리 조카도 매일 그것만 읽어 달래.”
영상에서 읽어 주는 동화는 보통 기획 팀에서 추천해 주는 동화 목록에서 골랐다. 그림이 예쁘고 길이가 적당한 내용의 동화책 목록을 받으면, 재인이 읽어 보고 고르는 방식이었다. 그 목록에서 강여진이 말하는 오리 대장 오로라를 본 것도 같았다.
“한 번 확인해 볼게요. 추천 동화책 목록에서 본 것 같아요.”
“그래?”
“네, 당장은 촬영해 둔 영상이 몇 개 있어서요. 오리 대장은 촬영해도 아마 다음 달 말에나 올라갈 거예요.”
“오케이, 다음 달. 알았어.”
오리 대장 오로라의 영상을 촬영하겠다는 확답을 받은 강여진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앞으로 한 달은 더 기다려야 했지만, 영상이 올라오는 걸로 만족한 모습이었다.
“용건 끝났으니까. 난 좀 떨어질게. 부담스럽다.”
“네?”
“미안한데, 우리 거리 좀 지키자. 솔직히 네 곁에 서는 게 아주 편하진 않거든.”
“그게 무슨…….”
“어휴, 진짜. 옆에 붙어 있으면 머리 크기 비교된단 말이야.”
강여진은 자기는 얼굴은 작지만, 머리가 크다며 떨어지라고 장난스레 타박했다. 재인과 붙어 있으면 비교된다면서 거리를 유지해 달라고 웃으며 당부했다.
“다른 사람들도 그럴걸? 네가 지나치게 잘생겨서 가까이서 보기 부담스러우니까.”
“…….”
“농담이고. 사람들이 거리 두는 거에 너무 신경 쓰지 마. 지금이나 저러지, 촬영 들어가면 바빠서 수군거릴 시간도 없을걸. 하여간에 유치해. 다 큰 어른들이 뭐 하는 짓인지.”
“아!”
“고민 그만하고 들어가. 오리 대장 오로라는 꼭 촬영하고. 그럼, 다음 주에 보자.”
“네, 들어가세요.”
동료 배우와 어울리지 못하고 겉도는 재인이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었다. 강여진은 부러 친근하게 얘기를 나눈 뒤 돌아갔다.
재인은 강여진의 당부대로 편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어차피 촬영이 시작되면 텃세를 부리거나 신경전을 벌일 여유가 없었다. 빡빡한 스케줄대로 촬영하는 것도 벅차서 신경을 쓰고 싶어도 쓸 수 없었다.
* * *
>완벽한 파트너> 촬영 첫날, 아침 일찍 촬영장에 도착한 재인은 미안한 표정으로 개인 스태프들에게 음료수를 돌렸다.
“콜 타임이 너무 빠르죠? 미안해요.”
“됐어. 네가 미안할 게 뭐 있어.”
“신우 실장님 언제 시간 좀 내주세요. 같이 매장 가서 의류 상품권 사용해요.”
“JW에서 선물 들어온 거?”
“네, 스타일리스트 팀 다 같이 봄옷 한 벌씩 골라요.”
“알았어, 시간 내 볼게. 신경 써 줘서 고마워.”
재인의 콜 타임은 주연 배우답지 않게 매우 이른 시간으로 잡혀 있었다. 상대적으로 분장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강여진과 아직 고등학생인 다른 배우를 배려한 덕분이었다.
재인은 자신이 아침 첫 신을 맡겠다고 했을 때 최상호가 반대할 거로 예상했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그보다 더 적극적으로 나서서 촬영 시간을 조율했다. 이른 아침과 늦은 저녁 가리지 않고 촬영하기 힘든 시간대를 받아 왔다.
‘사실 제가 먼저 말씀드릴 생각이었습니다. 후반에 >황태자비 스캔들>과 시간이 겹치지 않습니까. 여유가 있을 때 이렇게 해 두면 나중에 촬영 시간을 조율해야 할 때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습니다.’
미리미리 궂은 일을 자처해서 다른 사람한테 빚을 지워 두자는 말이었다.
재인이 나서서 힘든 촬영 시간대를 맡자, 남은 콜 타임 조율이 수월해졌다. 그래서인지 대본 리딩 현장에서 봤을 때보다 그를 보는 사람들의 눈빛이 친절했다. 목적이 있는 배려이긴 했지만, 제법 효과가 괜찮았다.
“이 고운 머리를 개털로 만든다고 생각하니 속이 다 쓰리네.”
“네?”
“금발 말이야. 회상 신에서 금발 염색하기로 했잖아. 푸석푸석하게, 제대로 관리 못 받은 것처럼 보이게 해 달라고.”
“아!”
아침 첫 신을 맡은 이후로도 최상호는 시간이 날 때마다 조감독과 미팅을 잡았다. 촬영 초기 체력이 많이 남아 있을 때 힘든 촬영을 미리 해 두고 싶다는 재인의 의견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최상호와 조감독이 여러 차례 미팅한 결과 아이돌 활동 신과 놀이 공원에서 벌칙 게임을 수행하는 신, 군대 예능에 게스트로 나가서 고생하는 신 등의 촬영 일정이 당겨졌다.
“전 그 장면은 빨리 해치웠으면 싶어요.”
“왜?”
“동작 잊을까 봐요. 겨우겨우 외웠는데, 늦춰져서 잊으면 화날 것 같아요.”
“하하하. 그것도 그렇다.”
김신우는 팬들이 그 장면을 엄청나게 기대한다는 말은 꺼내지 않았다. 대신 부담스럽다고 울상인 재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