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spectable male god RAW novel - Chapter (94)
#94. 반가운 손님
시스템 메시지에 재인이 놀란 사이 차태신의 반응으로 진정 스킬의 효과를 짐작한 두 사람이 눈을 빛냈다. 반짝반짝, 초롱초롱. 박원영과 박도겸의 눈빛을 표현하는 말로 저 말이 딱이었다.
“크흠! 재인 씨 두 분이 기다리십니다.”
“아! 미안해요. 금방 스킬 걸어 줄게요.”
신관 임명이라는 상상도 못 해 본 메시지는 잠시 미뤄 두기로 했다. 그보다는 기대에 차서 저를 보는 두 사람에게 진정 스킬을 먼저 걸어 주어야 했다.
[박원영이 신앙을 증명했습니다.] [박도겸이 신앙을 증명했습니다.]진정 스킬을 받은 두 사람의 반응 역시 차태신과 비슷했다. 몇 분 만에 사라진 통증에 할 말을 잊고 몸 상태를 살피기 바빴다.
재인의 반응 역시 마찬가지였다. 또다시 나타난 신앙을 증명했다는 메시지와 하급 신관 임명 메시지에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잠시 잊었다.
‘신앙을 증명했다니. 뭘 어떻게 증명했다는 거지?’
신앙의 증명이라는 건 팬이 스타를 믿는 정도로 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팬 카페의 간부가 될 만큼 열심히 활동했다고 해서 증명되는 것도 아닐 것이고.
종교 활동이라고는 크리스마스에 친구 초대로 교회에 가 본 게 전부인 재인은 신앙을 증명했다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급 신관 임명은…….’
얼굴이 활짝 핀 세 명을 보니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할 것 같았다. 아무 효과도 없는 그저 이름뿐인 직책이라면 해프닝으로 여기고 넘길 수 있었다.
그러나 시스템에 나온 설명에 따르면 신관이라는 건 단순한 직책이 아니었다. 신관이 되면 세 사람은 실제로 도움이 되는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예를 들면 몸속을 헤집는 날카로운 기운을 신성력으로 바꾸는 일 같은.
“기운을 진정시키긴 했지만, 효과가 얼마나 지속될지는 모르겠어요. 영구적인 효과는 아닐 거예요.”
“하루, 아니, 몇 시간이라도 좋아요. 감사합니다.”
“감, 감사합니다.”
“하, 하하. 감사 인사를 받으려고 말을 꺼낸 건 아니고요. 연락처를 줄게요. 진정 스킬 효과가 끝나면 연락하세요. 무리해서 참지 말고요. 촬영 중이라서 연락 못 받을 수도 있으니까, 매니저님 번호도 받아 가세요.”
재인은 그래도 괜찮냐는 눈빛을 최상호에게 보냈다. 가능하면 직접 연락을 받길 바라지만, 촬영장에 있을 때는 연락을 받는 게 쉽지 않았다.
일단 촬영에 들어가면 핸드폰을 최상호에게 맡기거나 가방에 넣어 놓기 일쑤라서 메시지 확인도 제때 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몇 번 그런 일을 겪은 동생 재현은 급한 일이 있을 때는 아예 매니저한테 먼저 연락했다.
“그, 그래도 돼요?”
“네. 편하게 연락하세요.”
“네!”
정말로 연락해도 되냐고 묻는 세 사람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 * *
“흠. 흠. 매니저님 신화 팬 카페는 어떻게 된 거예요?”
“예?”
“서포트 규모에 놀라기도 했고 세 사람의 상태가 심각해서 못 물어보고 있었는데요. 신화 팬 카페가 반가운 상대는 아니었잖아요.”
“아! 그건…….”
신화의 간부 세 명을 돌려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 점심때부터 내내 궁금해하던 걸 물어볼 시간이 겨우 생겼다.
‘빌런이라고, 범죄자라고 키퍼한테 신고한다고 했었는데.’
클로버 엔터에 침입하고 재인의 비공개 사진과 영상이 담긴 파일을 훔쳐 갔었다. 다시 그 파일을 이용해서 생일 이벤트를 한답시고 전광판이 설치된 수많은 빌딩에 침입했었다.
“저도 신고한 이후의 진행 상황은 전달받은 게 없습니다. 그 건은 김 실장님께서 직접 맡으셨었는데 한참 지난 후에 신고 자체를 없던 일로 처리했다는 얘기만 들었습니다.”
“없던 일로 하셨다고요?”
“예. 그렇게 들었습니다. 이유를 듣진 못했습니다.”
“그렇군요.”
“정 궁금하시면 김태오 변호사님을 한 번 만나 보십시오. 그 사건의 마무리를 김태오 변호사님이 맡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최상호의 입에서 나온 뜻밖의 이름에 재인의 눈이 동그래졌다. 김태오 변호사라니. 그 이름이 왜 신화 팬 카페 이벤트 사건을 얘기하는 중에 튀어나온단 말인가.
‘변호사님이 간부들을 변호해 준 건가?’
비슷했다. 정답에 근접한 생각을 떠올렸지만, 재인은 이내 고개를 젓고 말았다. 아무리 김태오의 능력이 좋더라도 무리였다. 수많은 피해자가 존재하는 사건이었다. 신화 간부들이 어떤 처벌도 받지 않고, 지금까지 신화라는 이름을 계속 사용하는 상황은 이해하기 힘들었다.
‘모르겠다. 변호사님한테 물어봐도 알려 주진 않을 것 같고.’
김태오가 자신에게 무한히 호의적이라도 의뢰 내용을 알려 주진 않을 것 같았다. 그게 당연했고.
‘됐다. 이유는 몰라도 이미 마무리된 일이니, 앞으로는 그런 짓을 못 하게 하면 되겠지.’
신화 팬 카페 간부들의 클로버 엔터 침입이나 전광판 무단 점유 건이 어떤 처벌도 없이 넘어간 이유는 기실 재인도 알고 있었다. 한동안 사회면을 뜨겁게 달구던 사건이라 재인도 최상호도 잘 알고 있었다. 다만 그 사건과 신화 팬 카페를 연결 짓지 못할 뿐이었다.
미래 각성 능력 개발 학원. 영신교 비밀 연구소에서 운영하던 학원의 탈을 쓴 불법 실험 시설의 피해자 명단에 신화 팬 카페 간부들의 이름이 있었다.
십수 년의 감금과 세뇌, 비인도적인 실험의 피해자인 그들의 신분을 되찾고 피해 보상을 받는 일에 김태오가 나섰다. 그 과정에서 김 실장을 만났고 클로버 엔터 침입 사건의 신고를 취소하기에 이르렀다.
“세 사람한테 연락 오면 저한테 바로 알려 주세요.”
“예. 그러겠습니다.”
찜찜하긴 했지만, 이미 끝난 일이었다. 앞으로는 팬으로 대하면 충분할 것이다.
* * *
저녁을 먹고 한참 동안 얘기를 나누다 돌아온 탓에 집에 도착하자 잘 시간이었다.
“하암. 공원 한 바퀴만 돌고 오자.”
“컹.”
하품이 나오고 눈꺼풀도 무거웠지만, 재인은 기어코 하찬의 몸에 하네스를 채우고 밖으로 나왔다. 전날 본 남매가 신경 쓰여서였다. 공원에서 밥을 먹던 낡은 패딩 차림의 두 사람이 공원에 있을 것 같아서였다.
‘오늘도 새벽에는 영하로 떨어진다고 하던데.’
남매가 집이든 어디든 잘 곳을 찾아갔으면 싶었다. 만에 하나 공원에 그대로 있으면 집에는 들일 수 없으니 찜질방에라도 보낼 생각이었다.
“컹컹.”
“쉿! 하찬아 밤이야. 짖지 마.”
“컹.”
“대답도 안 해도 되는데…….”
늦은 시간이긴 해도 공원에 사람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운동복 차림으로 산책 코스를 도는 사람도 있었고, 그처럼 강아지를 데리고 나온 사람도 있었다.
‘안 보이네. 집으로 돌아갔나?’
그 사람들 안에 편의점에서 본 남매는 없었다. 혹시 사람들이 없는 곳에 숨어 있나 싶어서 꼼꼼하게 살피면서 공원을 돌았지만 찾지 못했다.
“하찬아, 돌아가자.”
“컹.”
한낮의 열기가 가신 차가운 밤공기에 코끝이 시렸다. 재인은 마지막으로 공원을 크게 돌아본 뒤 떼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집으로 돌렸다. 그처럼 남매가 집으로 돌아갔길 바랐다.
* * *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CD와 책, 다분히 여성스러운 꽃무늬 이불, 말라 죽은 화분과 찌그러진 캔이 잔뜩 쌓인 테이블. 생활감 가득한 방의 유일한 소파 위에 재인이 앉아 있었다.
-파각, 파각.
한 손으론 접은 다리를 끌어안고, 남은 한 손으론 빈 맥주 캔을 구깃거렸다. 끊임없이 거슬리는 소음을 내고 있었지만, 깨닫지 못한 듯 멍한 얼굴로 너저분한 테이블만 보고 있었다.
-달칵!
재인이 시간과 자신을 죽이고 있는 공간 안으로 한 사람이 들어섰다. 여주인공 효진으로 분한 강여진이었다.
“안 씻니? 세상 무너졌어? 계속 그러고 있을 거야?”
“…….”
“매일 괜찮다고만 하길래 당하고 사는 게 취미인 줄 알았는데, 화도 낼 줄 알았구나.”
“……당하고 사는 게 좋은 사람이 어딨어요.”
“싫어도 싫다고 안 하길래 그런 줄 알았지.”
빈 봉투를 펼쳐 맥주 캔을 담으면서 강여진이 담담하게 말했다. 탓하는 것도 아니고 위로하는 것도 아닌, 그저 있는 사실을 말하듯 감정의 고조 없이 말을 뱉었다.
“고마워요.”
“…….”
“거지 같은 제 얘기 다 듣고도 똑같이 대해 줘서요.”
“거지 같긴 하더라. 기껏 기회 포기하면서 지켜 준 사람을 또 이용하는 놈이나, 그걸 알고도 당하고 있는 너나.”
“하, 하하. 미안해요.”
지난밤 취해서 늘어놓은 얘기들을 듣고도 변함없는 태도의 상대가 고마웠다.
-컷! 우연아 거기서 좀 더 가볍게 웃어 봐. 고마워요, 할 때 효진이 쪽 보면서.
김고운 감독의 지시에 재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 김고운 감독은 그에게 이런저런 지시를 많이 했다. 한동안은 힘든 일이 있어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는 오뚜기 같은 캐릭터를 요구하더니, 이번에는 달관자 같은 느낌을 요구했다.
‘원래도 의욕적이셨는데, 요즘엔 한층 더해지신 것 같아.’
다양해진 감독님의 요구에 맞추기 위해 연습량이 늘긴 했지만, 그게 또 나쁘진 않았다. 캐릭터가 전보다 더 입체적으로 바뀐데다 볼륨감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자, 다시 갑시다.
김고운 감독의 의욕적인 목소리가 현장에 울려 퍼졌다.
과거 사건에 발목 잡혀 힘겹게 따낸 배역을 빼앗긴 재인이 여자 주인공 효진과 시간을 보내는 장면의 촬영이 끝났다. 세트에서 빠져나오는 재인의 뒤로 많은 숫자의 스태프들이 움직였다.
다음 장면이 효진이 이사하려고 짐을 싸는 장면이라 세트 안의 소품을 상당히 많이 바꿔야 했다. 정비 시간을 넉넉히 받은 재인이 분장실로 들어가려던 때였다. 촬영 세트가 설치된 스튜디오 안으로 예상 밖의 손님이 찾아왔다.
“어?”
“김선홍 배우이시군요. 옆의 아이가…….”
중년 배우 김선홍이 어린이 캠프에서 사라졌던 아이를 데리고 촬영장을 방문했다. 간식 상자를 한가득 챙겨서, 얼굴에는 함박웃음을 건 채로.
“선생님!”
“아! 아, 안녕.”
반가운 손님이긴 했지만, 재인은 딱히 아는 척할 생각이 없었다. 실종된 아이를 찾는 데 그가 도왔다는 사실은 알려지지 않았다. KH 길드에서 기사가 나가는 걸 막기도 했고, 재인 본인도 밝혀지는 걸 원하지 않아서였다.
‘그렇다고 반가워서 달려온 아이를 매몰차게 내칠 순 없잖아.’
제 키의 반이나 될까 말까 한 아이가 와서 안기는 걸 거절할 순 없었다.
“수영이 밥 많이 먹고, 엄마 아빠 말 잘 들었어요.”
“그랬어? 그래서 그런가? 키가 조금 큰 것 같은데?”
“진짜요?”
“응. 수영이 키 컸어. 요만큼.”
“이히히.”
엄지와 검지를 약간 띄워 아이 눈앞에 드리웠다. 아이는 손가락을 1센티도 안 되게 살짝 벌렸을 뿐인데도 좋아서 방방 떴다.
“선생님, 수영이랑 도넛 먹어요.”
“도넛?”
“네. 딸기 맛있어요. 크림이랑 딸기랑 있어요.”
“그래? 그럼 아빠한테 같이 갈까?”
“응! 네.”
던전 속 연못에서 구한 사람들은 재인이 전부 치료했다. 연못 안에 오랫동안 있어서 상태가 위중한 사람이 상당히 많아서 치료가 시급했다.
14명이나 되는 사람에 가축과 반려동물도 있었지만, 왕관과 지팡이를 착용한 재인에게 그 정도 숫자는 문제 되지 않았다. 치유를 퍼부어 순식간에 전원을 회복시켰다.
“수영이 아픈 곳은 없지?”
“없어요.”
“다행이네.”
아이에게 물어서 정상이라는 걸 알았지만, 재인은 치유를 한 번 더 걸어 주었다. 입가에 묻은 생크림을 닦아 주면서 가볍게 정화 스킬도 걸었다.
“재인 씨…….”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중년 배우가 감독과 스태프들에게 재인의 동생이 아이를 구해 줬다고, KH 길드 소속 스트라이커들이 휴가를 나왔다가 구해 줬다고 기사에 실린 내용 그대로 설명하고 있었다.
물론 재인의 성격이나 동생인 재현과 같은 팀원들의 성향을 잘 아는 최상호에게 통하진 않았다. 최상호는 KH 길드 소속 스트라이커라고만 나왔던 기사의 주인공이 재현과 팀원이라는 걸 알게 된 순간 자연히 재인을 떠올렸다.
“전에 재인 씨랑 동생이랑 촬영장에 같이 오지 않았어?”
“왔었어. 놀이 공원에도 왔었잖아.”
“이야! 이런 인연이 다 있네. 그 동생이 김선홍 씨 아이를 구하다니.”
“그러게. 인연이 또 그렇게 이어지네.”
김선홍이 사 온 도넛과 커피를 든 스태프 사이에서 재인과 재현이 화제로 올랐다. 둘의 이름 외에 KH 길드, 스트라이커, 뉴스, 휴가 같은 단어가 순식간에 스튜디오를 장악했다. 그런 단어들이 퍼져 나간 것에 비례해 호의적인 시선이 재인에게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