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n obsessed tyrant and a sleeping cat every night RAW novel - Chapter (1)
집착폭군과 잠드는 고양이가 되었다
데메테 대륙 전체를 집어삼킨 위대한 제국, 위페르.
이 거대한 제국엔 딱 하나, 존재해선 안 될 동물이 있다.
제국을 몰락시킬 거라 명시된 존재, 고양이.
신탁을 받은 제국은 즉시 그 씨를 말려버리고 근 500년간 끝없는 번영을 누려왔다.
그리고 여기.
앞발에 보송보송한 털을 단 채 서 있는 내가 있다. 고양이에 빙의한 채.
이제 난 누구의 눈에 띄건, 죽게 되는 거다.
“이게 뭐지.”
그러나 도망치기도 전에 황태자의 손에 가볍게 잡히고 말았다.
위페르의 완벽한 걸작이라 불리는 황태자,
킬리언 귄터 라인하르트에게.
***
킬리언은 잠들기를 포기하며 천천히 눈을 떴다.
안개처럼 부연 달빛 아래 무언가가 시야에 어렸다.
은은하게 발하는 은발이 물에 풀어 놓은 물감처럼 부드러워 보였다.
그는 수면 아래 잠긴 듯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 떴다.
동시에 그의 붉은 눈동자가 삽시간에 얼어붙었다.
낯선 여자의 뒷모습이었다.
저도 모르는 사이 제국의 운명을 쥐게 된, 레네트.
그녀를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으려는 황태자, 킬리언.
“그대 덕이라고 듣고 싶은 모양인데.”
“음, 아주 조금의 지분은 확실히 있는 것 같아요. 칭찬해 주세요.”
Chapter 1
제국의 망할 고양이에 빙의했습니다>
“황태자 전하를 보는 황제 폐하의 눈빛이 심상치 않으신 것 같죠? 오늘 본 황태자 전하의 외관이 황후 폐하의 미모를 쏙 빼닮아 있었잖아요. 제가 덩달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게, 혹여 무슨 일이 생기진 않을지 가슴이 조마조마했어요.”
저게 무슨 소리지?
눈을 떠 보니 잘 정돈된 정원에 흐드러지게 핀 붉은 장미들이 진한 향기를 내뿜고 있고, 포석된 길 위를 거니는 여인들이 보였다.
“쉿. 세상 어느 아비가 자식을 해하려 하겠나. 그저 워낙……. 폐하께선 이 위페르 제국을 짊어지고 나가야 할 계승자로 전하를 대하다 보니, 다른 이들보다 엄하게 대하려 하시는 거겠지…….”
물빛드레스를 입은 여인이 앞서 화두를 띄운 초록 드레스의 여인에게 주의를 주듯 대답하면서도 결국엔 자신이 없는지 말끝을 흐렸다.
위페르 제국? 방금 내가 들은 단어가 꼭 그렇게 들리는 것 같은데.
따스한 햇볕이 반듯한 정원을 내리쬐는 가운데, 양산 그늘 아래 귀족 부인들의 보드라운 실크 드레스 자락을 한 줌 비출 때마다 양산을 든 하녀들의 발걸음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보다 전하께서 요양을 하고 오셨다고 하기엔 안색이 좋아 보이지 않아 걱정이네.”
“전 그저 인상이 더 차가워지셨다 생각했는데. 아, 못 뵌 새에 키가 훌쩍 커지셨지요? 아까 오찬 룸에 들어오실 때 보니 웬만한 성인 남자보단 더 클 키였어요. 황후 폐하께서도 그 모습을 보셨으면 좋았을 텐데.”
“그렇지. 엘리제 황후 폐하께서 함께하셨다면 더 좋았을 테지.”
씁쓸하게 갈무리하며 걸어가는 귀부인들의 모습이 점점 멀어졌다.
‘엘리제 황후’라니. 에이, 설마.
나는 기묘한 기분에 휩싸여 천천히 눈을 감았다 떴다.
광활한 정원 너머, 거대한 위용을 과시하는 궁전이 하늘을 뒤덮을 것처럼 펼쳐져 있어 역시 생경했다.
꿈인가 싶어 감았다 뜬 시야엔 여전히 본 적 없는 풍경이 자리 잡은 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까 나를 친 트럭이 환생 트럭이었던 걸까.
하!
확 솟구친 아드레날린에 내적 환호가 불꽃처럼 머릿속에 터지고, 다가올 장밋빛 미래가 황홀하게 그려졌다.
드디어 내 인생도 빛을 맞이하는구나.
어떤 인물로 빙의하든 소설 속 미래를 알고 있으니 어떻게든 잘 살 수 있지 않은가.
죽기 전 내가 구해 준 아기 고양이가 내게 행운을 가져다준 거구나.
“먀아앙!”
그 순간, 내 목덜미가 잡히더니 공중에 몸이 붕 떠올랐다.
본능적으로 비명을 질러 보는데.
“미야아앙!”
응? 방금 뭐였지?
내 몸은 왜 이렇게 계속 떠오르는 거고?
“아앙……?”
다시 입을 벌려 보지만 이상했다.
이거 지금, 내 입에서 나간 소리 맞아?
목덜미를 놓으라는 의미로 팔다리를 버둥거려 보는데 엉덩이에 따뜻한 게 맞닿았다.
버둥거리던 다리도 바닥에 닿아 급히 안정을 되찾았다.
“…….”
아니, 바닥이 아니라. 사람의 손바닥 위에서……였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사람 손에 앉아 있는 거다. 온몸이 다!
“이게……. 뭐지.”
내가 묻고 싶은 말을, 눈앞의 사람도 똑같이 했다.
냉큼 고개를 들어 보니 눈부신 햇살을 등진 남자가 역광으로 어두운 그림자처럼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볕에 반사된 검은 머리칼이 날카롭게 반짝이고 재킷의 견장이 눈을 찌를 듯 화려했다.
슬며시 좁혀지는 상대의 미간이 눈에 들어오자 몸이 저절로 움츠러들었다.
나는 서둘러 대답을 하기 위해 목소리를 내보지만.
“애오…….”
이상한 울음소리만 튀어나올 뿐이었다.
지금 내가 뭐가 돼 있는 거야?
“…….”
새카만 흑발 아래 핏빛을 머금은 눈동자가 침묵을 유지한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적막해진 사방과 그보다 더 고요한 적안이 집요하고 면밀한 기색을 띠었다.
“설마.”
달싹이는 입술 새로 남자의 낮게 깔린 음성이 흘러나왔다.
불어든 바람처럼 사늘한 미소가 입꼬리에 희미하게 배어 있었다.
무료한 가운데 흥밋거리를 발견한 사람처럼, 일순 가늘어지는 눈매에 늑골 밑으로 한기가 밀려들었다.
“황태자 전하. 무슨 일이 있…….”
“없어.”
남자의 어깨 너머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리자, 그가 곧바로 대답하며 무심히 잘라 냈다.
황태자? 방금 그 정중한 목소리는 이 남자를 황태자라고 불렀다.
황태자라고 불린 남자가 고개만 살짝 비트는 시늉을 한 채 뒤를 돌아봤다.
“사냥은 다음으로 미루도록 하지.”
가까워지려던 몇몇의 발소리가 대번에 그쳤다.
“몸이 좋지 않아.”
거짓말!
그의 드넓은 어깨와 재킷 너머로도 느껴지는 단단한 체격으로 짐작건대, 전혀 아파 보이지 않았다.
“돌아가야겠다.”
내게 다시 시선을 내리깐 황태자의 붉은 눈빛이 느슨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오싹했다.
저만치에서 즉각 대답하며 방향을 돌리는지 말들이 투레질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위페르 제국. 엘리제 황후. 그리고 눈앞의 황태자.
「위페르 제국에 적안을 가진 핏줄은 황가가 유일했다.
그리고 그 황가에 엘리제 태후의 흑단 같은 머리칼을 이어받은 인간은, 이 위대한 제국의 황제, 킬리언 귄터 라인하르트 하나뿐이었다.」
여긴 분명 그 소설이 맞는데.
여기에 환생한 나는 어째서…….
뚜렷한 적안에 비친 건 애석하게도 보송보송한 털북숭이였다.
악녀라든지, 주인공이라든지. 하다못해 지나가는 엑스트라라도 될 법한 이 세계에서, 나는 사람으로 환생한 게 아니라…….
견딜 수 없는 불길함에 사로잡힌 나는 서서히 내 손을 내려다보았다.
하얗고 보송보송한 털이 내 손에, 이젠 손이라 부르기에 무색한 앞발을 뒤덮고 있었다.
입술이 바짝 마르고 목이 타들어 가는 기분에 본능적으로 혀로 입을 축여 보려는데, 털이 혀끝에 닿는 게 느껴졌다.
그러니까 내가 지금…….
고양이가 된 거네?
뒤통수를 거세게 가격당한 것처럼 머리가 순간 사고를 정지했다.
이 제국이 유일하게 몰살시켜 버린 동물이, 고양이였을 텐데?
불시에 몸이 오들오들 떨리고 눈시울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위페르 제국은 고양이를 발견하는 즉시 죽인다. 그게 철칙이다.
자석에 당겨지듯 스르륵 황태자를 올려다보자 그가 여전히 무감한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고양이군.”
흑, 그새 알아봤어.
고양이를 몰살시킨 뒤 몇백 년간 그림으로만 고양이를 배워 놓고선 이렇게 빨리 알아보는 건 반칙 아닙니까. 예?
* * *
원작 「어둠에 잠식된 영혼들」은 피폐 소설을 기피하는 나에게 친구가 막무가내로 권하는 바람에 마지못해 읽기 시작한 것이었다.
소설은 남주의 여주를 향한 집착과 광기를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어 활자로 읽는 동안엔 ‘세상에, 이게 말이 돼?’ 하다가, 결국엔 ‘어떡해! 흐윽, 난 몰라!’를 연발하며 하루빨리 주인공들이 이뤄지길 바라게 만들었다.
여기서 이야기의 주된 배경이 남주 킬리언 귄터 라인하르트가 황제로 군림한 국가이자, 데메테 대륙에서 가장 강성한 위대한 제국, 위페르.
이 거대한 제국은 개국한 지 얼마 안 돼 하나의 신탁을 받게 되는데 바로 저주받은 고양이들이 제국을 멸망시키리란 것이었다.
눈이 뒤집힌 제국민들이 제국 전역을 샅샅이 뒤져 고양이의 씨를 말리는 건 당연지사.
그 후 수백 년 동안, 이 제국엔 고양이의 ㄱ자도 찾아볼 수 없었고, 놀랍게도 고양이가 사라지고 나니 신탁의 해석대로 제국은 엄청난 번영과 평화를 누리며 역사를 이어 오게 되었다.
때문에 이 제국에서 고양이는 극악한 동물이었고 발견하는 즉시 죽여야 한다는 것으로 수백 년간 교육해 오고 있었다.
그런 세계에서 난 머지않아 위페르 제국의 주인이 될 황태자의 손에 잡혀 있는 것이다.
쏴아-
싱그러운 초록 잎새로 바람이 스치고 지나는 소리가 아득해지는 정신을 붙잡았다.
“…….”
어떻게 숨을 내쉬는지조차 까먹을 만큼 머리가 새하얗게 변해 갔지만, 황태자 킬리언은 꿈쩍도 하지 않고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온몸이 공포로 딱딱하게 굳어 눈물이 퐁퐁 쏟아져 나올 것 같은데- 애석하게도 고양이인지라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의 얼굴엔 일말의 동정이나 자비 따윈 느껴지지 않았다.
날 죽이겠지?
상대는 더구나 세상에 다시 없을 미친 폭군으로 묘사된 인물이었다.
고양이 때문에 제국이 망할 수도 있다는 신탁을 받았는데, 제국을 이어받게 될 황태자가 날 살려 둘 리가 있겠는가.
그래도 억울했다.
수백 년 전 제국에 악을 끼쳤다 한들 고양이들이 한 짓에 나는 동참한 적이 없었다.
거기다 난 고양이를 구하려다 트럭에 치여 죽은 건데.
이 정도면 이 환생이 그 고양이의 보은이 아니라 엿 먹어 봐라, 닝겐아! 캬캬! 뭐 이런 거 아니야?
나는 당장이라도 황태자의 손을 붙잡고 애원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었다.
전하, 이 안엔 인간이 있어요. 겉은 고양이지만, 의식은 인간인 여자가 있어요!
제가 미래를 알고 있습니다, 전하! 이 제국은 망해요! 그것도 아주 폭삭!
“꺙!”
질겁하여 허둥지둥 발을 움직이는데 발톱에 실크로 된 안감이 걸렸다.
황태자가 삽시간에 나를 그의 재킷 주머니에 넣은 것이었다.
서두를 것 없이 느긋한 걸음으로 걸어간 그가 마상에 올라타는 게 느껴졌다.
어딜 가는 거야?
작은 몸 밖으로 심장이 튀어 나갈 만큼 콩닥콩닥 뛰고 눈이 커질 대로 커졌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불현듯 깨달을 수 있는 건 딱 한 가지였다.
사람들 다 보는 정원 말고 다른 데에서 죽일 생각인가 봐…….
* * *
황태자가 나를 데려온 곳은 뜻밖에도 침실이었다.
그의 침실인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아무튼 침대와 소파, 테이블 등이 있으니 침실이었다.
“책에서 보던 것과는 꽤 다르군.”
테이블에 내려놓은 나를 물끄러미 지켜보던 킬리언이 운을 뗐다.
이 세계에서 사라진 지 오래인 고양이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게 돼 퍽 흥미로워하는 기색이었다.
본능적으로 호달달 떨리는 몸을 어찌할 바 모르고 잔뜩 웅크리는데, 느긋하게 테이블을 두드리던 킬리언의 손끝이 나를 등을 툭 건드렸다.
“뀨악.”
그대로 고꾸라져 코를 테이블에 박았지만 어쩌랴, 재빨리 몸을 일으켜 정자세(?)로 앉아 다시 몸을 떨었다.
머릿속에 고양이들을 무참히 살해한 사이코들에 관련된 뉴스가 만연한 가운데, 등받이에 깊게 기댄 채 앉아 있던 킬리언이 상체를 앞으로 숙여 나를 들여다봤다.
은은하게 감돌던 고급스러운 향기가 훅 느껴지고 어느새 킬리언의 얼굴이 바로 앞에 다가와 있었다.
신이 빚어낸 최상의 아름다움이 살아 존재한다면 이런 얼굴일까.
검은 머리칼 아래 수려한 눈썹과 길게 뻗은 눈매가 강한 인상을 만들고 그 안에 깃든 붉은 눈동자가 사뭇 우아하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조각해 놓은 듯 높게 솟은 콧대와 굳게 다문 입술이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를 뿜어내고 날렵한 턱선이 성인의 문턱에 선 소년의 풋풋함을 만들어 냈다.
그 순간, 킬리언의 검지가 내 입을 두드렸다.
벌려 보라는 뜻 같았다.
나는 무언가에 홀린 사람, 아니 고양이처럼 살짝 입을 열어 보았다.
“이빨이 아직 턱 밑으로 자라나 있지 않군.”
응? 이건 또 무슨 소리야.
고양이가 메머드도 아니고. 이빨이 왜 턱밑으로 자라나.
“발톱도 전혀 위협적이지 않고.”
이어 그가 손가락으로 내 말랑하고 핑크빛이 도는 발바닥을 잡아 들어 엄지로 문질러 펼쳤다.
“아직 새끼라 그런 건가.”
킬리언이 다시 눈길을 돌려 나와 눈을 마주쳤다.
“간악한 모습을 감추고 사람을 홀리는 재주가 있다더니.”
느른하고 선명한 붉은 눈동자가 나를 지그시 주시하더니 내 머리를 슬쩍 손끝으로 스쳤다.
“그럴 만했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