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n obsessed tyrant and a sleeping cat every night RAW novel - Chapter (116)
Chapter 115
울창한 숲에 둘러싸인 평평한 평지 위에 높은 캐노피가 설치됐다.
아돌프 황제가 참석하지 않는 오늘의 사냥은 황태자의 측근들로 이뤄진 사냥이라 말할 수 있었다.
의자에 앉아 테이블에 차려지는 음식을 묵묵히 내려다보던 알키오가 고개를 들어 킬리언을 바라봤다.
생각에 잠긴 듯 숲을 바라보던 그가 불현듯 희미한 미소를 머금는 게 보였다.
벌써 몇 번째지? 무슨 좋은 일이 있으셨나.
오늘 새벽, 사냥을 나서던 때부터 킬리언의 입가에 이따금 묘한 미소가 번지곤 했다.
결혼을 하면 사람이 달라진다더니 그 말이 진짜인가 싶었다.
도통 속내를 알 수 없던 킬리언의 무표정한 얼굴에 저런 귀한 미소가 나타나니 말이다.
“기분이 좋아 보이십니다.”
알키오의 말에 킬리언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의자에 등을 깊게 기댔다.
“그런 편이지.”
그는 간단히 대꾸하며 앞에 놓인 막 짜낸 레몬즙을 물에 희석시킨 차가운 레몬수를 마셨다.
그의 시야에 바른이 저편에서 브륀힐트 공작과 담소를 나누고 있는 장면이 들어왔다.
레네트가 증폭시킬 수 있는 힘의 범위에 대해 들은 바른은 가스파르와 하젤을 따로 만나 볼 것이라 했다.
다만 킬리언의 명령대로 그들의 능력치가 레네트의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은 그와 주종관계를 맺은 바른과 해리드를 제외한 누구에게도 발설해선 안 되기에 마법사들 몇을 추려 시험을 보는 형식으로 진행하며 하젤과 가스파르를 대상에 넣을 계획이었다.
어머니는 레네트의 힘을 명확히 꿰뚫어 정의 내렸다.
어머니는 어떻게 알게 된 것이며 어디까지 예상한 것일까.
단순히 신성력을 지녔기에 레네트를 보고 그 정체를 알아차렸다 하기에는 인과관계가 성립되지 않았다.
데인버그의 하나뿐인 공녀로 알려져 있는 레네트를 따로 불러낸 점, 그리고 그녀의 힘을 인지시킨 점, 그리고 이 모든 일을 킬리언에게 함구하고 싶어 했던 점.
모든 게 의문이었다.
“…….”
킬리언은 물끄러미 손에 쥔 크리스털 잔을 내려다보았다.
어머니를 만나 보지 않는 한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어머니가 자신을 피하고 있다는 건 진작부터 느끼던 바였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버지 아돌프의 난폭한 성정을 미리 알아차리고 킬리언의 약점이 되지 않기 위해 일찌감치 성을 떠난 어머니였다.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그를 지켜 온 어머니에게 그에게 밝힐 수 없는 이유가 생긴 게 분명했다.
그나마 레네트와 어머니가 부정적인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어머니를 만나고 온 레네트가 말갛게 웃어 주며 재잘재잘 말을 늘어놓는 순간 그의 가슴 한편에 억누르고 있던 걱정이 순식간에 사소해져 깃털처럼 날아가 버렸다.
‘좋아해요.’
대신에 다른 말이, 그녀의 고백이, 가슴을 꽉 채웠다.
온 힘을 다해 끌어안고 싶은 마음을 지그시 누른 채 태연한 척 마주하고 있었지만, 실은 여유랄 게 남아 있지 않은 상태였다.
레네트는 알기나 할까.
그런 말간 표정을 짓고 초승달 같은 눈웃음을 지을 때면 그의 늑골 밑이 뻐근해질 만큼 때로는 견디기 어려워진다는 것을.
‘아니요, 아직…….’
오늘 새벽, 비몽사몽한 채로 그의 셔츠를 쥐고 있던 레네트의 손길이 문득 오감으로 되살아났다.
‘그냥, 배웅이요.’
그의 가슴에 머리를 기댄 채 나직이 말하던 레네트가 사랑스러워 그대로 부서져라 껴안고 싶었지만 치솟는 감정을 억누르고 가만히 안고만 있어야 했다.
가늘고 긴 목과 여린 어깨도, 한 줌이나 될까 싶은 허리도, 모든 게 조심스럽게 대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이게 하는 레네트였다.
“흐음…….”
분명 바른과 브륀힐트 공작이 대화하는 것을 보고 다른 생각을 했던 것 같은데.
결국엔 레네트에 대한 생각으로 귀결되고 말았다.
후반전 사냥을 마치고 성에 돌아온 킬리언은 습관처럼 레네트부터 찾았지만 그녀가 보이지 않았다.
가문비나무 숲에도 온실에도 그녀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가스파르는 바른의 호출을 받은 탓에 자리를 비운 상태였고, 데인은 방금 사냥에서 돌아온 브륀힐트 공작과 잠시 차를 마시도록 배려해 줬는데, 데인 역시 레네트와 하젤이 어디에 갔는지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분명히 침실에 계실 거라고, 저더러 숙소에 돌아가 한 시간 정도 쉬고 있으라 하셨습니다.’
데인의 대답을 들은 킬리언은 레네트가 갈 만한 곳을 떠올리며 혹시나 놓친 게 있나 싶어 왔던 길을 되짚기 시작했다.
“대체 어딜…….”
하젤과 함께 어디를 가긴 한 것 같은데, 도무지 갈 만한 곳이 예상되지 않았다.
차라리 높은 곳에서 보자 싶어 본성에 돌아와 홀을 가로지르는 찰나 무언가 낯익은 게 눈에 들어왔다.
회색 드레스에 하얀 에이프런을 걸친 갈색 머리 여자가 무게가 거의 없는 사람처럼 대리석 바닥에 가뿐히 발을 디디며 폴짝폴짝 뛰어가고 있었다.
“읏차!”
계단을 향해 돌진하는 모양새를 지켜보던 킬리언이 실소를 내뱉으며 한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제 딴엔 열심히 남들의 눈을 피해 달려가는 것 같은데, 다른 이들은 몰라도 그의 눈을 속일 수는 없었다.
사냥감을 노리는 맹수처럼 단숨에 다가가 레네트의 어깨를 잡았다.
“……힉!”
소스라치게 놀라 파들 떠는 그녀가 홱 고개를 들어 올리자 싱그러운 청록색 눈동자와 눈길이 부딪쳤다.
“어?”
그와 마주쳐 더욱 놀란 레네트가 작은 탄성을 터뜨렸다.
자신을 잡은 이의 정체가 그라는 사실에 안도한 것인지 잔뜩 굳어 있던 그녀가 살짝 내려가는 게 느껴졌다.
“이, 일찍 돌아오셨네요? 전하?”
그녀가 반색하며 웃어 보였지만 난처해하는 기색이 반짝이는 눈망울에 깃들어 있었다.
생각보다 일찍 돌아온 게 문제였나.
최대한 서둘러 사냥을 마치도록 하고 돌아온 건데…….
“어딜 다녀오는 길인데.”
킬리언은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이며 그녀에게 부드럽게 캐물었다.
괜한 긴장감을 조성해 그에게서 무언가를 더 깊숙이 숨기려 들면 곤란해 보인 미소였다.
“아……. 그게……. 일단 올라가서 이야기하시면 안 될까요?”
우물쭈물 대답하려던 그녀가 그의 재킷을 잡아당기며 빠르게 속삭였다.
또 무슨 일을 벌이고 온 걸까.
겁이 많은 것 같으면서도 늘 상상도 못 할 사건을 벌이고 오는 그녀인지라, 벌써부터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래, 올라가,”
갑자기 하녀로 변장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지만 남들이 봐선 안 될 게 분명한 일이긴 했었다.
가십을 좋아하는 자들에게 쓸데없는 화제를 던져 줄 수도 있었고, 꼬리를 물어 흉흉한 추측까지 나돌게 될 테니 이쯤에서 방에 돌아가게 하는 게 옳았다.
하나, 칙칙한 하녀 옷을 입고도 이렇게 예쁘게 보일 일인가…….
이 엉성한 가발은 대체 어디에서 나온 건지.
보닛을 썼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가짜인 게 금방 티가 났을 것이다.
그럼에도 저 자신조차도 이해되지 않을 만큼 예뻐 보인다는 게 기가 찼다.
“어떻게 바로 알아보셨어요?”
그녀의 침실로 들어선 순간 레네트가 문을 닫고 그를 홱 돌아보며 물었다.
킬리언은 그녀의 질문 자체가 어처구니없다고 여기며 한쪽 눈썹을 휘어 올렸다.
“설마 안 들킬 거라 생각한 거야?”
“아무도 모르던데요?”
“지나간 자들이 없던 거겠지.”
“어…… 지나가는 사람이 없긴 했어요.”
그녀가 마지못해 고개를 주억거리며 대답하자 킬리언이 미간을 좁힌 채 레네트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렇게 하고 어딜 다녀온 건데.”
“…….”
섣불리 대답하기 어려운 건지 그녀가 가만히 고개를 들어 그를 올려다보자, 킬리언은 어쩐지 가슴이 답답해져 오는 것을 느끼며 산소를 폐에 욱여넣듯 흉곽을 크게 부풀려 숨을 내쉬었다.
“애나로즈 부인이요.”
뜻밖에 흘러나온 이름에 그의 눈빛이 잠시 가라앉았다.
남자가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기어이 감옥으로 내려가 죄수를 만나고 온 것에 화를 내야 할지.
“감옥에 다녀왔다는 건가? 그렇게 하고?”
“그래야 제가 거기에 갔다는 걸 아무도 모를 것 같아서요.”
“……변장을 했으니 안 들킬 거다?”
“네.”
“하…….”
어떤 변장을 하든 눈에 띈다는 걸 모르는 모양이다.
킬리언은 번잡해진 눈빛으로 레네트를 바라보다 그녀의 손을 잡아 의자에 앉힌 후 자신도 맞은편에 앉았다.
“거길 왜 굳이 아무도 모르게 다녀와야 하는데.”
“기젤라 부인이 제가 다녀간 걸 알게 되면 또 다른 회유책을 쓸 것 같아서요. 애나로즈 부인이 자백하게 하고 싶은데, 다른 회유를 시작하면 흔들릴 수도 있잖아요.”
“어떻게 자백하게 하려고.”
“……상처가 낫는 연고를 챙겨다 줬어요. 애나로즈 부인이 손을 다쳤었거든요.”
“…….”
의외의 대답에 그의 동공이 잠자코 커졌다 원래대로 돌아갔다.
“다른 행동을 보여 준 건 아니에요. 그냥……. 지금이라도 돌이키지 않으면 앞으로도 계속해서 기젤라 부인의 곁에서 수족으로 살아야 할 거라고 했어요. 스스로 자신의 삶을 선택하라고요.”
참으로 레네트다운 설득이었다.
자신이었다면 달느 방식으로, 입을 열지 않고는 못 배길 정도의 잔인한 방식으로 해결했을 텐데.
애나로즈 부인이 입을 다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살려 둔 데에는 레네트야 모르겠지만, 그녀의 공이 컸다. 아니 전부였다.
지금 상황에서 애나로즈 부인을 고문하여 입을 열게 했다간 황실에서 지내는 레네트의 귀에 들어가지 않을 리 없으니까.
최대한 나쁜 건 들려주고 싶지 않은 게 그의 사심이었다.
그답지 않게 일을 더디게 처리한 이유는 레네트인데, 레네트는 그사이 애나로즈 부인에게 스스로의 삶을 선택할 기회를 줬다니.
“……그 여자가 그런 말을 들을 거라 생각하는 건가?”
“그러길 바라고 있어요.”
애석하지만 허튼 생각일 거라고 말해 주고 싶었지만, 하녀로까지 변장하여 다녀온 그녀의 노고가 마음에 걸려 입을 굳게 다무는 쪽을 택했다.
그는 사람에 대해 별 기대가 없지만, 그래, 레네트가 원한다면. 조금 더 시간을 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그 여자가 바뀔 리야 없겠지만, 오로지 레네트의 노력이 가상해서.
“미리 말해 주지 그랬어.”
“그럼 못 가게 하실 것 같아서.”
하? 킬리언의 입술 새로 실소가 터져 나왔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레네트에게 참혹한 지하 감옥의 풍경을 보여 주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으니까.
딱히 부정할 수 없는 말이라 킬리언은 가만히 쓴웃음을 지어야만 했다.
“그 말도 일리가 있네. 후, 옷 갈아입고 서재에 갈 준비하고 있어. 씻고 올 테니.”
킬리언은 말을 마친 후 무심히 팔을 뻗었다.
눈이 커지는 레네트를 응시한 채 그의 손이 가볍게 그녀가 쓴 가발 위 보닛을 빼내 테이블 위에 떨어뜨렸다.
“씻으러…… 가세요?”
“응.”
레네트가 묻자 킬리언이 의자에서 일어나며 흔연히 대답했다.
“아……. 씻으러 가실 거구나. 전하. 그런데 목은 안 마르세요?”
“괜찮아, 생각 없…….”
“전 목이 좀 말라요. 너무 긴장했나 봐요.”
그때 알아차려야 했다.
그녀가 토끼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을 때, 그 청록색 눈이 이상할 정도로 반짝거렸을 때, 쪼르르 달려가 콘솔 위에 놓인 물주전자와 컵이 든 트레이를 통째로 가져오려 했을 때.
그를 보는 그녀의 시선이 의미가 무엇인지 알아차려야 했었다.
“레네트, 내가 들 테니까 그대로 있…….”
“꺅!”
아슬아슬하게 걸어오나 싶더니 아니나 다를까 그의 앞에 다다르기도 전에 발을 헛디뎌 물주전자가 트레이에서 펄쩍 튀어 오르듯 그의 앞으로 떨어졌다.
촤악, 하고 쏟아진 물이 그의 복부부터 빠르게 적시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