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n obsessed tyrant and a sleeping cat every night RAW novel - Chapter (17)
Chapter 17
“궁금해?”
킬리언이 태연한 얼굴로 물었다.
“먀.”
정말 궁금했다.
이 세계에 카메라가 있는 것도 아니고, 난 잠이 들 때 인간이 되니 날 확인할 방법은 킬리언에게 물어보는 것 말고는 없었다.
그는 짐짓 생각에 잠긴 사람처럼 나를 보다 손바닥에 아직 머문 내 앞발을 살짝 쥐었다.
가늘게 뜬 적안에 거만하고 우아한 빛이 어렸다.
흐음, 말해 줄까 말까.
가늘게 뜬 눈이 그렇게 고심하는 것 같았다.
“……일단 넌 남자야.”
뭐?
“먀앙?”
깜짝 놀라 팔딱 일어섰다.
“깨어나 있을 땐 안 그런데 잠들 땐 남자가 되더라고.”
설명을 덧붙이며 그가 무표정한 얼굴로 날 내려다봤다.
말문이 막히고 입이 떡 벌어졌다.
그게 말이 되느냐 묻고 싶지만, 책 속에 들어와 고양이로 빙의한 이 시점에서 더 이상 내게 말이 안 될 일이 뭐가 있겠나 싶었다.
나는 재빨리 그의 손바닥에 글씨를 썼다.
‘그럼 왜 슈미즈를 입혀? 그건 여자가 입는 거잖아.’
잠시 입을 다문 채 손바닥을 보던 킬리언이 담담하게 대꾸했다.
“그게 더 입기 쉽고. 길이도 기니까.”
“!”
“웬만하면 다 가려야 되겠더라고.”
“!”
나는 바람에 밀려나듯 힘없이 털썩 주저앉았다.
뒤통수를 세게 맞은 것처럼 머릿속이 윙 울렸다.
다 가리려고. 입기도 쉬우니까.
그러네……. 슈미즈는 발목 아래까지 내려올 만큼 길고, 목 아래 전신이 다 가려지는 거잖아.
“아옭.”
그래, 이제야 이해가 된다.
처음 잠든 날, 킬리언이 나를 발견하자마자 그렇게 위협적으로 군 건, 다 그런 이유가 있어서 그랬던 거다.
누가 생판 모르는 사람의 벌거벗을 몸을 난데없이 자기 침대에서 보고 싶겠는가.
놀랐겠네. 놀라서 화가 날 만했겠어. 응. 그래, 맞아.
“뀱…….”
남자든 여자든, 성별은 하나로 쭉 이어졌으면 좋았을 텐데.
이런 형벌이라면…….
죽였네. 진짜 죽인 거네…….
고양이들이 그렇게 큰 잘못을 저질렀으니까 이런 저주에나 걸리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낮엔 암놈, 밤엔 남자라니.
상상하기도 힘든 내 모습을 그리며, 나는 울컥 치민 억울함을 꾸욱 눌렀다.
“이제 자야지?”
뭐? 울먹거리는 나와 상관없이 킬리언이 차분하게 말하며 나를 베개 근처에 내려놓았다.
너 같으면 잠이 오겠어, 지금?
“자.”
킬리언은 무감한 얼굴로 내가 잘 수 있도록 억지로 눕혀 놓은 후 이불을 덮어 주는 친절까지 친히 발휘했다.
“눈 감고.”
기어이 내 눈자위까지 손으로 덮어 눈꺼풀을 닫게 만들었다.
그가 자연스럽게 소파로 향하는 소리가 들리자 문득 이래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먀먀!”
지금까지 내가 알몸으로 잠드느라 킬리언이 여태껏 소파에서 잤겠지만, 이렇게 알게 된 이상 내가 소파에서 자는 게 이치에 맞지 않는가.
도저히 정신을 차릴 수 없는 상황일지라도 내게는 염치랄 게 있었다.
“와아아앙!”
“뭐?”
“므아므아!”
나를 돌아보는 킬리언에게 우선 소파 쪽을 가리키고, 빠르게 폴짝 뛰어 내가 그곳에 가는 시늉을 보였다.
“피유우우.”
그러곤 킬리언을 가리킨 한 후 침대 베개로 돌아와 눕는 시늉을 했다.
“냐아냐아. 미야아?”
이렇게 자라고. 알아들었어?
내가 소리 내자 그가 기묘한 광경을 맞닥뜨린 사람처럼 한쪽 눈썹을 휘어 올렸다.
천천히 감았다 뜬 눈에 드러난 붉은 눈동자가 나를 오랫동안 주시하더니 이내 무뚝뚝하게 돌아섰다.
“거기서 자.”
알아들어서 거절하는 거야, 못 알아듣고 귀찮아서 저러는 거야?
“아옭룽우아아!”
나는 소파에 가는 킬리언을 지켜보다 답답해져 앞발로 침대를 연거푸 두드렸지만 그는 이쪽을 보지 않았다.
칫, 모르겠다. 배를 까고 벌러덩 누워 버릴까 보다.
내가 달려가 입으로 물고 당긴다고 해서 그 큰 킬리언의 체격이 순순히 따라와 줄 리도 없고.
나는 눈을 감고 있는 킬리언을 일별한 후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진짜 사람 불편하게 말이야.
버젓이 주인이 저기에 있는데도 침대를 차지하고 있는 게 몹시 신경 쓰였다.
“……이름.”
하는 수 없이 머리를 내밀고 잠을 잘 자세를 잡는데 킬리언의 무심한 목소리가 들렸다.
“지어 줄까.”
이름? 귀가 쫑긋하고 고개가 절로 스르륵 일어났다.
그러고 보니 난 내 이름조차 알지 못했고, 또 필요성조차 깨닫지 못했었다.
“미야.”
지어 주면 나야 고마운 일이지만…….
고양이와 남자, 그 사이 어딘가에 있을 이름을 짓는 일이 어디 쉽겠는가.
거기다 사람이 된다 하니 이 몸엔 원래 이름이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기억이 없으니까, 음…….
소파에 누운 킬리언이 나를 보기 위해 고개를 살짝 비틀어 이쪽을 올려다봤다.
“싫다는 건가.”
“므아므아.”
“괜찮다고.”
“미야.”
“그래.”
설핏 희미한 실소를 내뱉는 킬리언이 천장을 향해 누워 잘 자세를 잡는 게 보였다.
방금 뭐지? 꼭 대화를 나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유 모를 뿌듯함에 휩싸였다가 이런 일로 기뻐하는 내 모습에 자괴감이 들어 몸을 낮췄다.
모든 상념을 발끝으로 밀어내듯 긴 한숨을 내쉬자 몸에 남아 있던 긴장이 밀려났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하루가 저물고 있었다.
* * *
킬리언은 잠든 소녀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일단 넌 남자야.’
왜 그런 말을 했지.
킬리언은 슬며시 눈살을 찌푸리며 턱을 굈다.
하지 않아도 될 말이었는데, 놀란 탓에 입이 벌어진 고양이를 보니 심사가 더욱 꼬이고 말았다.
탁-
킬리언이 천천히 눈길을 내려 책상 위에 놓인 노트와 펜을 집었다.
커다란 소파를 지나 램프의 조도를 낮추고 다시 느릿하게 걸어갔다.
다른 한 손엔 의자를 든 채였다.
그녀는 정말로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 걸까.
고양이는 그렇다고 대답했지만 완전히 믿을 순 없었다.
존재 자체가 신비한 고양이이니, 언제고 그의 눈앞에서 흔적 없이 사라져 버릴지도 몰랐다.
킬리언은 의자에 앉아 노트를 들었다.
“이걸 왜 하는지는 모르지만.”
그의 펜이 그의 어조만큼이나 무성의하게 슥슥 노트 위를 오갔다.
작은 아량일 뿐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얼굴을 볼 수 있는데, 그조차 하지 못하는 고양이에게 주는 작은 선물 정도 말이다.
“…….”
몇 번이고 확인하듯 노트 너머로 보게 된 소녀의 얼굴이 어느새 시야에 깊숙이 들어왔다.
모든 게 연하게 느껴졌다.
물빛 같은 연한 머리칼도, 창백한 피부도, 고요한 숨결도.
환한 낮에도, 깊은 밤에도, 그녀는 이것에 모두 자연스레 스몄다.
한여름 녹음이 우거진 숲의 어딘가에 잠들어 있을 법하고, 한겨울 소리 없이 쌓인 눈이 덮인 성안 침실에 잠들어도 어울릴 여자였다.
희한한 일이었다.
찌익.
선이 강하게 이어지면 곧장 종이를 찢어 내 버렸다.
다섯 장쯤 버렸을까.
이쯤 되면 소녀의 얼굴에 익숙해져 비슷한 이미지라도 담아낼 수 있는 게 옳았다.
하지만 그릴수록 어려웠다.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었다.
“……트.”
불쑥, 이름 하나가 그의 입술 새를 비집고 흘러나왔다.
킬리언의 붉은 눈동자가 소녀의 얼굴에 머물렀다.
그리고 서서히 깨달았다.
소녀가 눈을 뜨지 않아서라고.
그래서, 어떤 얼굴인지 정확히 인지하기가 어려운 거라고.
눈을 뜨면 어떤 모습일까.
순식간에 불꽃을 일으킨 의문은 그의 뇌리에 자리 잡아 떠나지 않았다.
자신과 눈을 마주칠 소녀의 얼굴이 도저히 상상되지 않았다.
인간인 채로 깨어난 얼굴이 궁금했다.
킬리언은 다시 노트에 눈길을 떨어뜨렸다.
잠든 소녀의 얼굴을 완성하고 있었지만, 여전히 생각은 하나에 사로잡혀 있었다.
* * *
“잘 있을 수 있지.”
킬리언이 잘게 썬 스테이크 조각들을 내 접시에 놓으며 말했다.
나는 그가 썰어 준 송아지 고기를 물끄러미 보다 천천히 입에 넣었다.
그래, 열심히 먹자. 먹고 힘을 내야, 사람이 될 방법도 찾지.
우선 남자든 여자든, 사람이 된다는 희망이 생겼으니 절망에 빠져 있어선 안 된다.
깨어 있을 때만이라도 사람으로 변하면 킬리언을 돕는 것도 더 수월해질 테고, 제국과 고양이가 어떻게 얽힌 것인지 알아내기도 편해질 거다.
나는 심기일전을 하며 킬리언을 향해 힘차게 대답했다.
“먀아!”
킬리언의 고요한 시선이 잠시 내게 머물렀다.
“잘 있을 수 있다고.”
“먕!”
“혼자. 잘.”
“미양!”
내가 고개를 연거푸 끄덕이며 큰 소리로 대답할 때마다 킬리언의 눈매가 묘하게 길어지는 것 같았지만,
“다행이군.”
그는 곧 여상하게 말하며 내 앞에 물을 따라 줬다.
목 끝까지 단정하게 채운 하얀 크라바트와 정교하게 수 놓인 짙은 회색 재킷을 걸치고 우아하게 앉아 있는 킬리언은 오늘 더욱 철두철미하고 범접하기 어려워 보였다.
오늘도 황태자의 잘생김은 끝이 없구나.
나는 그의 안색을 유심히 들여다보다 의아해져 절로 고개가 갸우뚱 움직였다.
그의 낯빛엔 어떠한 후유증도, 그늘도 감지되지 않았다.
오히려 혈색이 더 좋아 보일 지경이었다.
혹시 내가 모르는 엄청난 회복력을 가지고 있나?
내심 그가 통증을 참고 있는 게 아닌지 걱정했는데 저 모습을 보니 그것도 아닌 듯싶었다.
원작에서 킬리언이 이유 모를 고열이나 환영에 시달릴 때마다 기젤라 부인이 귀신같이 알고 나타나 도와줬다고 했는데.
뒤집어 말하면 기젤라 부인은 킬리언에게 매일 약을 소량 투입해 중독시키고, 정량보다 많은 흑마법약으로 고통을 주며 그를 나약하게 만든 것인데, 지금 킬리언의 반응으로 보자면 그 나약해진 시기가 오지 않은 것 같았다.
황제가 되기 전 킬리언이 이미 기젤라 부인의 도움을 수차례 받아야, 킬리언이 즉위한 후에도 그녀가 권력을 유지하는 게 현실적으로 말이 될 텐데.
짧은 시간 안에 정량 이상의 흑마법약을 자주 먹게 하면 얻어 내고자 하는 상황이 만들어지기는커녕, 사람이 죽게 되는 걸 아는 기젤라 부인이 그 방법은 두 달에 한 번 썼고.
지금은 아마도, 바른 듀흐센 저택의 제비꽃과 양귀비가 활짝 피어 있었으니 5월쯤.
원작에서 19살부터 정량 이상을 먹이기 시작했다는 것으로 보아 이번 소풍을 포함해 이미 두세 번은 먹었을 수 있었다.
이쯤 되면 고통스러워해야 기젤라 부인이 선뜻 도움이랍시고 다른 약들을 건넬 테고, 서서히 마음이 열리는 게 시기적으로 맞을 것 같은데.
아니면 두 달 뒤가 기젤라 부인이 도움을 받기 시작한 시기가 되는 건가?
“다녀오면 산책 가자.”
킬리언이 내 머리를 엄지로 쓰다듬은 뒤 의자에서 일어났다.
심심하면 책을 읽으라며 여러 권의 책도 가져다줬다.
대체 저렇게 멋지게 입고 누굴 만나러 가는 걸까.
탁탁탁-
그 순간 둔탁한 마찰음이 들렸다.
“!”
소리가 난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 보니 크고 새하얀 무언가 널따란 날개를 느리게 펄럭이며 공중에 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