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n obsessed tyrant and a sleeping cat every night RAW novel - Chapter (25)
Chapter 25
나는 황가의 서고로 향하는 킬리언의 재킷 안주머니에 몸을 웅크린 채 아까 들은 충격을 떠올렸다.
‘네가 죽고 난 후 과거로 되돌아와 있었어. 그리고 넌 사라져 있었지.’
이리나는 억지로 회상해 내려 애쓰는 사람처럼 더듬더듬 과거를 이어 갔다.
‘분명 네가 어떻게 죽게 된 건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황태자 전하의 서재에서 너를 만난 순간 그 기억이 사라지고 말았어. 그랬던 것 같아.’
‘그때의 장면이……. 네가 죽었던 것만은 생생하게 느껴지는데, 그 장면부터, 그날과 가까운 날까지 점점 지워지고 있어. 내가 현재 기억할 수 있는 건 네가 죽었다는 그 끔찍한 감정과, 킬리언 황태자께서 황제가 되어 제국을 통치하고 계셨다는 것…… 그리고 기젤라 백작 부인이 형벌을…… 받았다는 거야.’
‘어쩌면 꿈일지도 모른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하지만…… 널 잃었던 것만은 선명해.’
정말 꿈이었을까.
이곳의 미래인 원작에서 킬리언은 위페르를 통치하는 황태자였다.
기젤라 부인이 형벌을 받았다는 것 역시 원작에 나와 있는 바였다.
그녀가 본 미래는 어쩌면 예지몽이 아닌 그녀가 경험한 일일 것 같았다.
이리나는 내게 황태자에게 우리를 서고에 데려가도록 설득해 줄 수 있는지 물었다.
우리의 진실이 그곳에 있는 건 밝혀도 괜찮지만, 우리가 과거에 돌아왔다는 이야기는 하지 말아 달라고 하며.
서고에 정말 발을 들이기 전까진, 어떤 식으로든 미래가 바뀌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미래가 바뀌려는 순간, 또다시 그녀의 기억이 희미해질 테니까.
나는 이리나의 말을 상기하고 또 상기했다.
원래의 비비안이 죽었다.
그리고 시점은 과거로 돌아왔다.
비비안이 아닌 내가 이 몸에 빙의한 채.
“새벽까지 수고가 많군.”
“……전하!”
인사를 건네는 킬리언의 등장에 황실 서고 당직자들이 벌떡 일어나 서둘러 책상을 돌아 달려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황실 도서관의 잠금장치가 풀어지고, 묵직한 양 문이 열리는 소리가 이어졌다.
“아.”
안으로 들어가려던 킬리언이 문득 걸음을 멈추고 방향을 돌렸다.
그의 재킷 안에서 가만히 숨을 죽이고 있는 나는 킬리언이 당직자들에게 무언가를 내려놓는 게 느껴졌다.
“당직을 서는 게 보통 쉬운 일은 아니지.”
“이, 이렇게 귀한 걸 저희에게 주시다니.”
“편히 들도록 해.”
상사가 무심하면서도 다정하게 부하직원들을 챙기듯 그가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얇은 황금으로 장식된 디저트들이 담긴 간식 상자를 받은 서고 당직자들이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들의 감사 인사를 들으며 킬리언이 유유히 안으로 들어가자 도서관 복도에서 상자를 여느라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전해졌다.
“이제 됐으려나.”
도서관의 전경을 물끄러미 보던 킬리언이 재킷 밖으로 고개를 내민 나를 꺼내며 말했다.
“먕!”
쥐 죽은 듯 조용해진 복도에 귀를 기울인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자, 그가 닫았던 문을 열어젖혔다.
제각기 의자에 물에 젖은 솜처럼 축 늘어져 잠든 당직자 세 명이 보였다.
“바른.”
킬리언의 음성에 바른과 해리드가 홀연히 곁에 모습을 드러내며 검은 망토를 벗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전하.”
그들은 킬리언에게 깍듯이 인사한 후 바른은 당직자들의 책상에 붙어 있는 까만 마석에 손을 뻗었다.
“혹시 모르니 여기 연락구가 잠시 작동되지 않게 만들겠습니다.”
황실 서고에 부적절한 이가 나타나면 바로 근위대병을 호출할 수 있는 마법구였다.
만에 하나 당직자들이 깨어나면 연락구를 이용해 근위대병을 부를 테니 이를 막기 위한 것 같았다.
“시작하겠습니다.”
당직자들의 의자 아래 마법진 세 개를 만든 해리드가 말하며 손을 뻗었다.
“전하께서 이들에게 하사하신 간식은 수면제가 몸에 남지 않는 대신 그만큼 경미하여 빨리 깨어날 수 있으므로, 일단 더 길게 잠들 수 있도록 이들의 꿈을 지속시켜 놓겠습니다.”
빛줄기가 희미하게 새어 나와 그들의 몸을 감쌌다.
“여기에서 일어날 법한 일을 주제로 같은 꿈을 꾸게 했습니다. 한 가지의 주제를 놓고 셋이 대화한 것처럼 말이죠.”
마법은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순 없으나 원래 존재하는 것에서 다른 형질이나 형태로 바꾸는 것이라 했다.
그들이 잠들게 만들어 놓으면 해리드는 그 꿈을 조작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마력이 새어 나가지 않게 했으나 안에서 어떤 일이 초래될지 모르니 빠르게 끝내는 게 급선무입니다.”
재빨리 결계를 완성한 바른이 주의를 줬다.
때마침 도서관이 위치한 5층의 복도 맨 끝에 있는 도구함에 몸을 숨기고 있던 이리나가 시간에 맞춰 달려왔다.
“…….”
해리드는 바른에게 설명을 들었는지 이리나를 보며 놀란 표정을 짓지는 않았으나 내심 궁금해하는 얼굴이었다.
둘이 모녀라 알고 있는데 어째서 이리나는 인간의 모습이고 나는 고양이의 모습인가, 하는 눈빛이랄까.
“그럼 시작하지.”
킬리언이 앞서 서고에 발을 들이자 나머지 바른과 해리드, 이리나가 차례로 안에 들어왔다.
동시에 제한된 인원에게만 개방된 비밀스럽고 서늘한 공기가 확 우리를 덮쳤다.
도서관에 발을 들이자마자 듀흐센 부자와 이리나의 입에서 차례로 신음과도 같은 감탄이 새어 나오는 게 보였다.
물론 가장 긴장한 표정을 짓고 있는 건 이리나였다.
이리나와 듀흐센 부자 모두 황가의 서고는 처음 맞닥뜨리는 것이었다.
곳곳에 밴 새벽의 찬 공기와 도서관 특유의 진한 나무 냄새가 폐 깊숙이 스며들었다.
“어려운 청을 들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전하.”
이리나가 벅찬 얼굴로 밤하늘의 은하수처럼 셀 수 없이 많은 책을 올려다보더니 킬리언에게 고개 숙여 인사를 건넸다.
그녀는 이곳에 들어온 지금도 믿을 수 없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황태자께서 다치게 되는 일이 생기는 건 아니겠죠.’
내가 그녀에게 묻자 이리나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
‘신께 맹세컨대 우리는 속죄하는 동안 누구도 해할 수 없는 존재라 하였어. 정말이란다, 비비안.’
나는 이리나의 대답을 떠올리며 킬리언을 올려다봤다.
‘혹시 피해가 생길 것 같으면 언제든 나를 놓고 가.’
우리를 서재에 데리고 가 줄 것을 부탁하며 내가 킬리언의 손바닥에 쓴 당부였다.
“저희 또한 영광입니다.”
광활하게 펼쳐진 도서관 전경을 바라보던 바른이 정중한 어조로 킬리언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때 바른의 곁에서 이리나를 보던 해리드가 내게 시선을 던졌다.
아무리 봐도 안 닮았는데.
나와 이리나를 번갈아 보는 해리드의 시선이 그렇게 뜻하고 있었다.
“추워?”
킬리언이 재킷 위로 몸을 내민 나를 손으로 감싸며 말했다.
털이 있긴 하지만 워낙 작은 몸이라 작은 온도 변화에도 체온이 쉽게 오르락내리락했다.
“먀앙.”
나는 자연스레 킬리언의 손에 몸을 바짝 붙이고 그의 손가락을 앞발로 감싸 안았다.
킬리언의 눈매가 살짝 느른히 휘어지는가 싶더니 내 등을 엄지로 문질렀다.
킬리언에게 도서관에 함께 데려와 줄 수 있냐고 부탁했지만, 이토록 쉽게 허락해 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바른과 해리드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천고부터 바닥까지 이어진 폭이 좁고 높이가 거대한 프랑스식 창문에 묶인 긴 암막커튼들이 하나씩 닫히기 시작했다.
“이곳에 저주에 관련돼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문서가 따로 보관돼 있었다면, 표면적으로 알아볼 수 없게 만들어 놨을 확률이 높을 것이다.”
바른과 해리드가 돌아오자, 킬리언이 본론을 꺼냈다.
“확인하겠습니다.”
바른이 이질적인 기운을 감지하려는지 깊게 눈을 감았다.
이리나는 황가의 서고에 우리에 관한 비밀이 있다고 했으나 그녀 역시 그게 무엇인지 아는 바는 없어 초조해 보였다.
그녀는 자신이 사라지기 전 어떻게든 나의 낮과 밤을 되돌려 놓고 싶은 것 같았다.
나 역시 듀흐센 부자가 무엇이라도 찾아 주길 바라며 숨을 죽였다.
이윽고 오랫동안 눈을 감고 숨을 내쉬던 바른이 천천히 눈꺼풀을 올렸다.
“이곳엔 그 어떤 다른 기운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온 정신을 집중한 바른의 눈동자가 오색으로 빛나다 서서히 원래의 벽안으로 되돌아왔다.
그럼 무수히 많은 이 책들을 다 살펴봐야 한단 말인가.
다 확인해 보려면 몇 달, 혹은 몇 년이 걸릴지 예상할 수 없었다.
“기운이 느껴질 리 없지. 느꼈다면 마법관리부에서 진작 찾아내지 않았겠나?”
킬리언의 말에 책을 둘러보던 해리드가 잠시 당황하여 눈을 크게 떴다.
“역으로 찾아내. 그대들의 마력이 통하지 않는 곳이 분명 있을 테니.”
그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바른이 번쩍 정신이 든 표정을 지었다.
지금까지 마법사들이 고양이가 존재하고 있다는 기운을 찾아내지 못한 것은 신의 가호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만일 마법사가 느낄 수 없는, 신의 가호가 깃든 단서가 황가의 도서관 어딘가에 숨겨져 있는 것이라면, 마력이 통하는 건 불가능했다.
나와 이리나가 마력을 튕겨 냈던 것처럼 말이다.
쾅!
바른과 해리드가 곧바로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의 크기의 써클을 공중에 구현해 냈다.
날카로운 빛줄기를 뿜어내는 거대한 네 개의 써클이 빙글빙글 돌며 커다란 원판을 만들자 갑자기 소름이 오소소 돋아났다.
쿠궁!
거친 심호흡과 함께 듀흐센 부자가 동시에 힘을 가하자 굉음과 함께 네 방향의 써클 중 한 써클이 산산조각 나며 사라졌다.
북쪽이다!
북편의 써클이 사라진 것을 본 모두가 그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앞서가는 바른과 해리드가 이번엔 그 근처에 써클 여러 개를 띄웠다.
쾅콰광!
떠오른 써클들 중 2시 방향의 써클이 분해됐다.
포말을 일으킨 빛 가루가 공중에 아스라이 흩어지자 더욱 선명한 한기가 온몸을 훑었다.
두 사람이 더욱 세분화된 써클을 띄우자 그것을 단박에 튕겨 내는 게 나타났다.
부서진 써클을 향해 모두의 내달리는 속도가 점점 더 빨라졌다.
쾅!
개중 또 하나의 써클이 불꽃처럼 사라지고 바른이 빨려 들어갈 것처럼 달려가 그 방향을 향해 빛을 쐈다.
홍해가 갈라지듯 도서관의 어둠이 양쪽으로 멀어지고 수백 년의 역사 속에 이 안에 잠들어 있던 책들이 확 드러났다가 어둠 속에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형언할 수 없는 긴장감이 목 끝까지 찰랑이며 우리 모두를 휘감았다.
말 한마디라도 꺼냈다간 이 모든 게 무너질까 두려워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쿵쿠궁!
바른과 해리드가 써클을 튕겨 낸 방향을 향해 또 다른 써클들을 띄우자 하나가 엄청난 굉음과 함께 산화되듯 흩어졌다.
그것은 이전과 비교되지 않을 만큼 우레와 같은 위력이었다.
책들 가운데 무언가가 강하게 마력을 거부하는 존재가 있는 게 분명했다.
놀란 것도 잠시, 바른이 무서운 기세로 기회를 놓칠세라 한 방향에 빛을 쏘아 올렸다.
산란하는 빛 무덤 가운데 유일하게 무너지지 않고 버텼던 한 책꽂이 안에서 우르르 책이 쏟아졌다.
마침내 책 한 권이 유독 꼿꼿이 그 자리를 지키며 우리를 맞이했다.
마치 그 책 하나가 제가 있는 책꽂이 전체를 지탱하듯, 우뚝 서 있었다.
동시에 바른의 눈동자가 소름 끼치게 번뜩이는 게 보였다.
“저거다!”
바른의 말에 해리드가 정신없이 달려가 책을 빼냈다.
나는 킬리언의 명령에 따라 이 광활한 도서관 전체를 망가뜨리면서까지 기어이 책 한 권을 찾아낸 바른을 말문이 막힌 채 바라봤다.
오로지 주인을 위해 강력한 마법을 쓸 수 있고, 그것을 발휘하다 보면 자신을 잃게 되는 경우도 온다던 그 말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이 많은 책 가운데 마력이 통하지 않는 신의 가호를 찾기 위해 그는 전력을 동원한 것이다.
나는 써클이 띄워지는 동안 무수히 많은 책을 폭포수처럼 쏟아 내며 넘어진 책꽂이들을 돌아봤다.
“여기 있습니다!”
해리드가 가져온 책은 오래된 양피지로 만들어져 두께가 얇게 묶이고 낡은 것 이외에 특별할 게 눈에 띄지 않는 책이었다.
「위대한 제국, 위페르를 위한 기도문」
“여기에 진실이 있다고…….”
킬리언이 나를 일별한 후 표지를 넘기자 제국을 찬탄하고 미래의 번영을 기원하는 평범한 기도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르지 않는 대지의 영원한 양식과,
평안의 광풍으로 우리를 보살펴 주소서…….」
이어지는 내용도 같았다.
잠자코 깊은숨을 내쉬던 킬리언이 이리나에게 눈길을 돌렸다.
“이게 맞나.”
이리나는 그녀도 확신할 수 없는지 불분명한 표정을 지어 보이곤 그에게서 책을 건네받았다.
긴장한 이리나가 기도문을 열어 보았지만 책은 여전한 기도문일 뿐 비밀처럼 여겨지는 건 없었다.
“다시 찾아야 할까요.”
해리드가 짐짓 상심한 얼굴로 말하며 바짝 마른 입술을 혀로 훑었다.
“잠시만요.”
곰곰이 책 표지를 보던 이리나가 돌연 굳은 낯으로 킬리언을 올려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