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n obsessed tyrant and a sleeping cat every night RAW novel - Chapter (28)
Chapter 28
넬라스 가문의 마지막 후손을 찾았다는 소식이었다.
그날 밤, 킬리언과 내가 탄 마차가 구불구불한 길에 접어들었다.
부슬부슬 내리는 빗물에 점령당한 잿빛의 석회석 도시가 숨을 죽인 채 우리를 맞이하는 것 같았다.
포석을 한 지 오래인 땅은 움푹 패거나 갈라진 탓에 마차가 덜컹거려 몸을 똑바로 가누는 게 어려웠다. 속이 금방 울렁거렸다.
“큰일이군.”
킬리언은 나를 그의 무릎에 앉히고 내 속을 진정시키듯 등허리를 반복해 쓸어내리며 내 떨림이 잠잠해지는지 오랫동안 살폈다.
“몸이 작아 더 쉽게 멀미를 하는 것 같은데.”
그가 나를 보며 착잡한 어조로 말했다.
이리나가 궁전을 떠난 후 킬리언은 나를 혼자 두지 않았다.
수업이 있는 날엔 미리 데려가 눈에 띄지 않을 만한 곳에 쉴 자리를 마련해 놀게 하고, 되도록 바깥에 나가 바람을 쐬게 했다.
그녀가 없어 내가 헛헛해할까 염려하는 것 같았다.
“먀아.”
내가 대답하자 그가 다시 나를 잠자코 무릎에 둔 채 창밖을 바라봤다.
이리나는 듀흐센 백작저의 별채에 묵고 있다고 했다.
궁전을 떠난 건 확실히 그녀에게 잘된 선택처럼 보였다.
그녀가 떠난 후로 킬리언의 서재는 하녀들이 돌아가며 청소하게 했다.
물론 기젤라 부인의 첩자가 있을지 모르니, 킬리언은 서재에 그 어떤 단서가 될 만한 것도 남기지 않았다.
“전하. 도착했습니다.”
마부가 마차를 세우자 시종들이 커다란 마차를 빙 둘러 다가왔다.
킬리언은 내 상태가 괜찮은 건지 확인하며 재킷 안에 넣은 후 마차에서 내렸다.
“오셨습니까, 전하.”
바른과 해리드의 목소리가 그를 맞이했다.
마부들을 비롯한 시종과 하인들에게 기다리라 명한 킬리언이 바른 부자와 함께 길을 나섰다.
“여깁니다.”
해리드의 목소리를 끝으로 목재로 만들어진 문에서 기름칠이 덜 된 소리가 끼익 새어 나왔다.
여기가 어디지?
끊임없이 피워 대는 담배와 술, 땀 냄새가 한데 섞여 킬리언의 재킷 안에서 귀를 쫑긋거리고 있던 내 코를 쿡 찔러 왔다.
술집인 것 같았다.
“열여섯이라 하지 않았나.”
킬리언이 바른에게 물었다.
열여섯인데 이런 술 냄새가 진동하는 곳에 있다고?
“그렇습니다, 전하.”
“그런데 이런 곳에 있다니.”
내가 묻고 싶은 말을 킬리언도 바른에게 건넸다.
“넬라스 가문의 전원이 객사하거나 병들어 죽었습니다. 대부분 가난으로 고통받아 그렇게 됐다고 하더군요. 살아남은 아이는 사누아 넬라스. 저기에 보이는 남자, 한 명뿐입니다.”
유례없이 강한 신력을 지닌 사제들을 배출해 낸 가문으로 만인의 존경을 받던 넬라스 가문은 새로운 위페르 제국이 건국된 후에도 가문을 유지할 수 있던 몇 없는 유서 깊은 가문이라 했다.
그러나 어찌 된 영문인지 그토록 강성했던 넬라스 가문은 하루아침에 그 명성을 잃고 지난 500여 년간 지독한 멸시로 내몰리고 말았다.
열여섯 아이 하나를 제외한 다른 모든 넬라스 가문의 자손들이 모두 비참한 죽음을 맞이할 만큼, 넬라스 가문의 영광은 곤두박질쳐 사라졌다.
긴 시간 동안 넬라스 가문이 스러졌다는 설명을 들으며, 나는 모종의 이유로 씨가 마르게 된 고양이의 처지와 그들이 다를 바 없이 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썩 꺼져라, 이 거렁뱅이야!”
그 순간, 발에 감기듯 걷어차이는 둔탁한 소리에 털이 쭈뼛 섰다.
“와하하하!”
왁자지껄하게 터진 사람들의 비릿한 웃음소리가 삽시간에 귓가에 섬뜩하게 밀려왔다.
“이제 10켈링 줘!”
앳되지만 악에 받친 남자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실내를 울렸다.
설마 저 울분 섞인 목소리가 사누아 넬라스의 것일까?
“뭐 이 새끼야? 고작 저딴 걸 들고 와 놓고 무슨 10켈링?”
약을 잔뜩 올려 주겠다는 심산인 건지 중년 남자가 윽박지르며 고함을 내질렀다.
“여기에 물을 길어 오면 10켈링을 준다 했잖아!”
“아무리 봐도 이 양동이는 아까 내가 말한 양동이가 아니란 말이지!”
“무슨 소리야! 이 양동이가 맞다고! 설마 내가 내 양동이도 못 알아보겠어?”
“이 어린 놈의 새끼가 감히 누구 앞에서 소리를 바락바락 질러 대?”
뭔가 쾅 하고 부딪치는 굉음이 들렸다.
“왜 부숴! 왜!”
“그래, 부쉈다. 부쉈으면 어쩔래, 어!”
남자가 다시 물건을 집어 들어 몇 번이고 내던지자 술집에 앉아 있던 모두가 환호를 하며 그를 부추겼다.
한 사람을 우스갯거리로 몰아넣는 비열한 야유가 분명했다.
“자, 이 양동이로 한 번 더 물을 떠 와. 응? 그러면 10켈링을 주마. 아니, 11켈링!”
“네가 망가뜨렸잖아. 네가 다 망가뜨렸다고!”
“뭐? 네가? 이 새끼가!”
끄응, 하는 소리와 함께 묵직한 살덩이를 일으키는 중년 남자의 신음이 들려왔다.
“그래, 너같이 건방진 새끼들한텐 매가 답이야. 어디 한 번 뒈지게 맞아 봐라.”
쿵쿵 다가가는 남자의 발소리에 심장이 꽉 죄어 오는 공포가 찾아왔다.
“어딜 도망가려고. 어어, 거기 서야지. 먼지 나게 맞고도 네가 웃어야 내가 즐거워지지 않겠냐. 그럼 그렇게 원하던 10켈링도 주지!”
중년 남자는 남들에게 다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떠들어 대며 느물거렸다.
곧이어 아이에게 걸어가는 건지 연거푸 물건이 망가뜨리며 걸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도망 다니는 발소리와 육중한 발소리가 불길하게 뒤섞여 울렸다.
사람들의 조롱 섞인 웃음소리가 더욱 정신 나간 사람들의 것처럼 술집을 가득 메우는 순간, 킬리언이 어디론가 걸어가는 게 느껴졌다.
“쾅!”
얼마 지나지 않아 전과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의 무서운 굉음이 울려 퍼졌다.
무슨 일인가 정신을 차리려는 찰나,
“으어어.”
아까 들은 능글맞던 중년 남자의 고통스러운 신음이 들려왔다.
호흡을 제대로 내쉴 수 없는 것인지 목이 타들어 가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웃어, 이 새끼야.”
킬리언의 낮게 내리깔린 음성이 들끓듯 남자에게 속삭였다.
한 손으로 사내의 목을 움켜쥔 채 들어 올리는 것인지, 그의 팔이 자연히 위로 움직이고 있었다.
“내 기분이 좋아진다면.”
그의 어조는 평소처럼 더할 나위 없이 차분했으나, 중년 남자를 벽으로 밀어붙여 그대로 허공에 들어 올리는 손에는 자비랄 게 느껴지지 않았다.
습하고 지저분한 공기를 긁는 기이한 쇳소리가 남자에게서 이어졌다.
“100켈링을 주지.”
말미에 우아하게 욕지거리를 내뱉은 킬리언이 냉랭히 조소했다.
“웃어.”
쾅!
킬리언의 손이 다시 한번 남자를 거칠게 벽에 몰아붙였다.
벽에 걸린 물건들이 후두둑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우레처럼 울리던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뚝 그친 지 오래였다.
“허어억…….”
“별론데.”
태연한 킬리언의 음성에 중년 남자가 다급히 그의 팔을 때리는 게 들렸다.
탁탁탁!
자신을 놓아 달라는 절박한 매달림이 실려 있었다.
“기분도 전혀 나아지질 않고.”
발버둥 치는 중년 남자의 발이 킬리언의 다리를 쳐 댔지만 킬리언은 꿈쩍도 하지 않고 더욱 남자를 허공에 높이 들어 올렸다.
탁탁탁탁!
제발 내려 달라는 중년 남자의 손길이 빨라지고 버둥거리는 소리도 더욱 거세졌다.
그럴수록 남자의 목을 조르는 악력에 힘이 실리고 있었다.
“흐어어……억!”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 같은 고통에 찬 신음이 귓가를 찔러 왔다.
“고작 10켈링에 사람을 때려도 되는 것이라면.”
“크허억……!”
“100켈링에는 네 놈의 목을 부러뜨려도, 되겠다 싶은데……. 그대의 생각은 어떻지?”
“커헉!”
“잘 안 들려.”
“크……윽.”
“똑바로 말해야지.”
잇새로 갈리는 분노를 내뱉으며 대꾸한 킬리언에게서 서슬 퍼런 광기가 느껴졌다.
겁에 질린 중년 남자가 이번엔 킬리언의 팔을 붙잡고 마구잡이로 할퀴기 시작했다.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남자의 움직임이 거세질수록 킬리언이 더욱 고요해지고 있었다.
“허……어억.”
“…….”
“흐으으으.”
“놓아주길 바라나? 응?”
킬리언이 비릿하게 웃으며 중년 남자를 더 벽에 밀어붙였다.
고통에 몸부림치며 반항하는 남자는 킬리언의 거센 행동에 점점 힘이 빠지는 것 같았다.
남자의 킬리언의 팔을 때리는 소리가 서서히 잦아들기 시작한 것이다.
“흐윽, 윽.”
킬리언의 팔을 붙잡고 절박하게 소리 내는 사내의 신음은 이제는 거의 울음에 가까웠다.
“이제야 볼 만한 얼굴이 됐군.”
쿵!
킬리언이 남자의 몸을 가볍게 떨어내자, 육중한 몸이 바닥에 주저앉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아악!”
그러나 곧바로 킬리언이 구두가 남자의 어딘가를 지그시 짓밟는 것인지 사내에게서 울부짖는 소리가 이어졌다.
“다시 한번 사람을 때린다면.”
그 순간 뼈마디가 뚝 끊기는 소리가 들렸다.
“그땐 땅에 떨어진 네 머리부터 찾게 해 주지.”
* * *
킬리언은 넬라스 가문의 마지막 후손인 사누아 넬라스를 데리고 근처 숙소에 갔다.
그러곤 허기에 시달리는 그에게 음식부터 시켜 줬다.
킬리언의 안주머니에 웅크려 있는 나에게도 맛있는 음식 냄새가 솔솔 흘러들어왔다.
“천천히 먹어.”
킬리언이 한숨 섞인 낮은 음성으로 말했으나 상대방은 아랑곳하지 않는 것 같았다.
허겁지겁 후루룩 들이켜고, 입 안에 음식을 마구잡이로 욱여넣어 씹은 뒤, 다시 손으로 집어넣는 소리가 방을 가득 채웠다.
그렇게 몇십 분이 흐른 것 같았다.
“준비됐습니다.”
배가 불렀는지 먹는 소리가 사그라지자 잠자코 기다리고 있던 해리드가 킬리언에게 조용히 말했다.
만약 일이 잘못된다면 해리드는 이곳에서의 기억을 사누아에게서 지우는 일을 맡게 될 것이다.
“사누아 넬라스.”
바른이 잠잠히 사누아를 불렀다.
“사누아 넬…….”
“누가 사누아 넬라스야? 재수 없게 그 이름 부르지 마. 난 잭이거든!”
바른이 이름을 재차 부르는 것에 화가 난 건지 사누아 넬라스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잭? 어디서 들어 본 이름인데.
워낙 흔한 이름이라 익숙하게 들릴 수도 있어 나는 잠자코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잭은 네가 지은 이름인 거냐?”
해리드가 짐짓 거리를 두는 떨떠름한 어조로 물었다.
“그렇다. 어쩔래.”
비딱하게 대답한 사누아의 반응에 해리드가 ‘아버지, 이자는 한참 교육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라고 어이없어하며 바른에게 속삭였다.
마법사이긴 하나 백작의 아들로 기품있게 자란 해리드이니 막 자란 사누아와 겸상하는 이 자리가 썩 내키진 않을 것 같았다.
“혹시 밤낮이 바뀐 아이를 알고 있느냐?”
바른이 다시 질문을 던졌다.
“밤낮이 바뀐 아이? 그거 밤에 잠 안 자고 돌아다니는 아이를 말하는 거야? 옛날에 나도 그런 말 많이 듣긴 했…….”
“누가 입에 음식을 문 채로 말하라 널 가르쳤지? 네 입에서 지금 온갖 더러운 게 다 튀는 게 지금 네 눈엔 안 보이나?”
“어쩌라고!”
바른에게 껄렁하게 말하는 사누아를 보다 못한 해리드가 언성을 높이며 끼어들자 사누아가 덩달아 소리쳤다.
“해리드, 그만하거라. 사누아 넬…….”
“잭이라고!”
“흠흠.”
해리드를 저지하며 사누아를 부르려던 바른은 사누아가 발끈하며 대꾸하자, 헛기침을 하며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그래, 잭. 혹 물려받은 물건이 있거나 돌아가신 부모님께서 들려주신 이야기가 있다면 말해 줄 수 있겠느냐.”
“얼마 줄 건데?”
대뜸 대가를 요구하는 사누아의 반응에 바른이 말문이 막혔는지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나한테서 찾는 게 있는 거잖아. 그렇지? 얼마 줄 건데.”
“널 구해 준 분께 어찌 감히!”
“사냥꾼은 대가 없이 거래하지 않는다. 그게 철칙이랬어.”
사냥꾼? 사제의 후손이라던 사누아가 어린 나이에 사냥꾼이 됐다는 건가.
꼬챙이처럼 비쩍 마른 저 아이가 대체 어떻게 사냥을 한다는 건지.
동물을 사냥하려다 외려 공격받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러나 해리드의 말을 받아치는 사누아의 말이 문득 마음에 걸렸다.
사냥꾼의 철칙…….
희미하게 무언가 떠오르려 하는 것처럼 머릿속이 웅웅거렸지만 쉽게 매치되지 않았다.
“얼마를 원하지?”
그 순간, 킬리언이 담담히 물으며 의자에 기대앉았다.
“줄 테니 말해 봐.”
“진짜……?”
이전과 달리 킬리언에게 되묻는 사누아의 목소리엔 긴장감이 배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