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n obsessed tyrant and a sleeping cat every night RAW novel - Chapter (50)
Chapter 50
“그걸 알아내야 해.”
킬리언이 대꾸하며 저택을 돌아봤다.
울창하게 뻗은 나뭇가지와 덩굴로 저택은 이제 거의 보이지 않았다.
저 안엔 레네트가 지내는 방도 있었다.
“서고엔 개인 한 사람이 다 뒤져 볼 수 있을 만큼의 적은 양의 책이 존재하는 게 아니야. 거기다 제국에서 금지한 책을 열람하게 될 경우 흔적이 남게 되지.”
“마력이라면 흔적을 남기지 않게 할 겁니다.”
황실에서 마법을 기피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제국은 황실의 통제하에 모든 것을 둬야만 하는데 마법은 늘 그것을 빗겨 갈 때가 있었던 것이다.
때문에 마법관리부는 황가의 피를 이어받은 자만이 들어갈 수 있는 서고엔 엄격히 출입이 금지돼 있었다.
“레네트는 기젤라 부인에게 마력이 없을 확률이 높다고 했지.”
“기젤라 부인에게 마력이 없다면 그것이 담긴 도구가 필요할 겁니다.”
바른이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걸 감지할 수 있는 장치가 있나.”
“집 안에 있는 건 들고 다닐 수 있는 정도의 크기가 아닙니다.”
“눈에 띄지 않는 게 필요해.”
“준비하겠습니다.”
바른의 말에 킬리언이 고개를 끄덕이며 마차에 올랐다.
이윽고 마차가 바른의 저택에서 멀어져 갔다.
* * *
“그게 대체 어디 있다는 거야?”
기젤라 부인은 손끝으로 책들을 주르륵 스치고 지나며 사리문 이로 중얼거렸다.
이 많은 책 중 ‘그’가 원하는 것을 어떻게 찾는단 말인가?
“이깟 반지들로 어떻게 찾으라고. 아! 알았어요, 알았다고요.”
일제히 작아진 반지들이 그녀의 손가락을 끊어 낼 것처럼 악력을 가하자 기젤라 부인이 신경질적으로 말하며 이를 빠득 갈았다.
그녀는 이 반지가 자신을 족쇄처럼 옭아매고 있다고 생각했다.
어디 반지뿐이랴.
“짜증 나.”
그녀는 반지를 의식하며 나직이 중얼거리곤 다시 책들이 가득 든 선반에 손을 뻗었다.
서고를 담당하는 사서들에게 물어서 골라낼 수 있겠다면야 좋겠지만, 어디 그게 물어볼 수 있는 말인가.
또한 말한다 한들 그깟 사서들이 그걸 감지할 리도 없었다.
기젤라 부인은 문득 도서관 조명을 받아 기괴하게 반짝이는 반지를 내려다봤다.
아무리 봐도 꺼림칙한 것이었다.
당연하지 않은가. 열 개의 보석엔 모두 한 인간의 피가 들어가 있다고 했다.
“파비앙 넬라스…….”
그녀의 빨간 입술 사이로 수백 년 전 죽어 잊힌 사제의 이름이 흘러나왔다.
그의 피가 담겨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반지는 파비앙 넬라스가 남긴 흔적을 반드시 찾아낼 것이라 했다.
“파비앙, 넬라스. 그게 대체 누군데? 아! 알았다고.”
반지가 그녀를 재촉하는 듯 한 번 더 아귀를 확 열었다 닫자 그녀가 고통으로 신음하며 자신의 손을 저도 모르게 탁탁 내리쳤다.
반지들을 노려보는 기젤라의 눈동자가 신경질적으로 번뜩였다.
‘네가 알 거 없어.’
그가 그녀에게 늘 말하는 식인 것처럼 반지 역시 자신에게 궁금해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반지는 파비앙 넬라스가 남긴 것에 반응할 것이라 했지만, 기젤라 부인은 그가 누구인지조차 몰랐다.
정확히 말하자면 수백 년 전 이미 죽어 사라진 사제라는 것은 알지만, 그의 피가 지금 이 시대에 왜 필요한지, 그가 대체 누구였기에 이토록 피까지 보관하며 가져왔는지는 몰랐다.
기젤라 부인은 다시 손을 뻗어 누가 보는 것도 아닌데 주변을 살핀 후 다시 책들을 스쳤다.
불과 몇 미터 떨어지지 않은 곳에 파비앙 넬라스가 남긴 초록색 기도문이 존재하고 있었다.
“백작 부인.”
그때, 뒤에서 그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황제 폐하께서 찾으신다는 전언이 들어왔습니다.”
저 멀리에서 들려오는 사서의 목소리에 기젤라 부인이 멈칫하며 돌아봤다.
아직도 둘러봐야 할 곳이 한둘이 아니었지만, 황제가 찾는 일은 그녀가 우선적으로 처리해야 할 일이었다.
“오호호, 전하께서도 참. 잠시라도 떨어져 있지 않기를 바라시는구나.”
기젤라 부인은 자신이 얼마나 황제와 가까운 사이인지를 과시하듯 큰 소리로 대답하고는 책에서 손을 떼어 냈다.
그래, 여기서 찾는 게 얼마나 대단한 것일지 모르나 어디 위페르의 중심, 아돌프 황제만 할까.
기젤라 부인은 발레리나 같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지체 없이 서고를 빠져나갔다.
* * *
“다 됐다.”
이리나는 거울에 비친 나와 눈을 마주치며 반쯤 묶은 머리카락을 늘어뜨렸다.
거울을 통해 봤던 나는 대체적으로 이리나와 비슷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미묘하게 차이점도 있었다. 가령 내 눈은 청록색이지만 가운데에 호박빛이 살짝 어려 있다든지, 이리나보다 조금 더 길어 보이는 눈매라든지, 또 좀 더 붉고 도톰한 입술이라든지 말이다.
이리나는 한없이 부드러워 보이는 인상인데 나는 조금 그런 것과 먼 것도 같아 내심 섭섭했다.
“이 위페르 제국에서 너보다 예쁜 아이는 없을 거야. 내가 장담해.”
다시 보아도 생경한 내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는데 이리나가 내게 다정히 속삭이자 나는 냉큼 고개를 휘저으며 대답했다.
“엄마. 그런 이야긴 어디 가서 큰 소리로 하시면 안 돼요.”
“왜? 누가 뭐라고 할까 봐? 특히 사누아 넬라스가?”
이리나가 은근히 장난기 섞인 음색을 띠고 묻자 나는 나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킬리언이 떠나고 사흘이 지났다.
그동안 아침 식사는 모두 모여 함께하게 됐는데, 그때마다 사누아가 나에게 툴툴거리며 말을 건넸고, 이리나는 늘 즐겁게 우릴 보고 있었다.
킬리언은 성에 도착하자 단 한 장의 편지를 보내왔다.
편지라기보단 단순한 메모에 가까운 것이긴 했지만 말이다.
평소의 그의 성격으로 미루어 보아 이런 편지가 오리란 걸 전혀 예상치 못한 건 아니지만, 정말 단 두 줄의 편지를 받을 줄은 몰랐다.
킬리언의 성격이 어떤지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
잘 도착했는지 알려 줘야 한다는 말을 찰떡같이 지키면서 딱히 하고 싶은 말은 없었던 모양이었다.
“흐음.”
나는 정갈하고 고급스러운 그의 필체가 담긴 편지를 올려다봤다.
이리나가 거울에 붙여 놓은 것이었다.
“엄마, 저걸 좀 떼면 어떨까요?”
“왜에?”
그녀가 의아한 얼굴로 묻자 나는 조금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그냥, 저기 계속 보이는 게…….”
눈에 자꾸 들어와서 거슬려요. 신경 쓰이고.
“혹시 싸웠어?”
그러나 대번에 걱정스런 안색으로 묻는 이리나의 태도에 나는 얼른 고개를 저었다.
그녀가 이러는 데에는 자신이 1년 후에 내 곁에 없다는 것 때문인 것 같아 나 역시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나는 딱히 보호자가 필요한 성격은 아니지만 이리나는 나를 한없이 어리고 약한 딸이라 느끼는지라, 황태자의 보호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음, 아닌데. 난 혼자서도 뭐든 잘하는데.
“싸운 건 아니지만 이렇게 붙여 놓고 있으면 나중에 전하가 보시고 부담스러워하실까 봐. 집착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을까요? 네?”
내가 그의 편지를 가리키며 코끝을 찡긋거리자 이리나가 화들짝 놀라 일리가 있다며 거울에서 편지를 떼어 냈다.
휴, 다행이다. 이제 더이상 이 방에 들어올 때마다 킬리언에 대한 생각에 사로잡히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그는 이제 곧 여주를 만나게 될 텐데, 괜히 내가 생각해서 무엇 하겠는가.
그리고 이리나에겐 차차 그녀가 걱정할 만큼 내가 약한 게 아니라는 걸 보여 주면 그녀의 노파심이 덜어질 것이다.
나는 이리나와 함께 지내며 모녀간의 시간을 다시 보내고 있었다.
내가 어디에서도 기억한 적 없고 겪어 본 적 없는 따뜻하고 몽글몽글한 시간을 말이다.
그녀는 매일 아침 내 머리를 묶어 주었고, 약초를 배우는 시간을 보내고 나면 다시 돌아와 함께 산책을 나섰다.
물론 모든 시간이 마냥 물 흐르듯 흘러갔던 건 아니었다.
바른이 내게 있는 힘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이리나에게도 물어볼 필요가 있지 않느냐 했던 탓이었다.
‘내게 그런 일은 일어난 적이 없어, 비비…… 아니지. 이제 바뀐 이름에 익숙해지도록 노력할게. 내가 알기론 내게 그런 능력은 없는 것 같아, 레네트.’
이리나는 다친 주변인들이 자신으로 인해 자연적으로 치유된 적을 본 적은 없다고 했다. 악몽에 대한 것은 더더욱 전무한 일이라 했다.
기회가 없었다는 것이다.
하긴, 당연한 일이지 않은가. 그녀는 잠이 들면 고양이로 변했고, 고양이로 변한 모습을 누구에게 보이며 그를 대신해 악몽을 꾸거나 하는 일을 했겠느냔 말이다.
‘흑마법이라니! 레네트 넌 괜찮아 진 게 확실한 거니? 네가 위험해지는 일을 전하께서 하신 거라고?’
다만 해 놓고 보니 괜한 말을 했다 싶기도 했다.
이리나의 근심을 더욱 무겁게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이리나는 내 상태를 몇 번이나 확인하기 위해 내 방에 들르곤 했다.
나는 그녀가 걱정해 주는 게 무척이나 고맙기도 하고, 한편으론 이게 바로 자식을 걱정하는 어머니의 잔소리란 건가 싶어 내심 신기하면서도 때로는 그냥 조용히 있고 싶기도 했다.
‘왜 자식들이 부모의 잔소리를 피해 방문을 닫고 들어가는지 알겠어.’
나는 분명 어젠 해리드가 바른과 대화한 후 제 방문을 닫고 들어가는 것을 똑똑히 보기도 했었다.
방에서 나온 우리는 식당에 가기 위해 벽을 따라 만들어진 계단을 내려갔다.
곳곳에 걸린 듀흐센 가의 역사와 그 안의 일상이 담긴 은색 테두리 액자가 계단 위 벽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식당에 도착하자 바른이 예사의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우리에게 인사했다.
“좋은 아침이에요, 백작님. 안녕, 해리드. 사누아.”
나는 식당에 먼저 와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인사하며 의자를 빼내 앉았다.
“오, 오늘도 옥수수 수프네요?”
남들은 딱히 좋아하지 않는 옥수수 수프를 환영하는 것에 모두-특히 해리드가 그랬다-가 신기해했지만 며칠 되니 다들 익숙해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문제는 끼니마다 이 옥수수 수프가 나온다는 것이다.
이 수프는 내가 전생에 먹었던 시중에 쉽게 구할 수 있던 모 회사의 수프와도 맛이 거의 같았는데, 여기서 만나 무척이나 반가웠다. 그렇다고 매 끼니를 부탁한 건 아니었는데.
“잘 먹겠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나서 이 수프를 매 끼니 먹고 싶을 만큼 좋아하는 건 아니라고 말해야겠다 결심하며 나는 유리잔에 담긴 주스를 조금 마셨다.
따뜻하게 구워 나온 빵을 한 조각 떼어 내는데 문득 킬리언은 아침을 먹었을까를 떠올렸다.
기젤라 부인의 음식을 그가 감지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전하. 제일 맛있게 보이는 걸 피하세요. 아니면 나가서 사 드시면 안 될까요?!]내가 그에게 쓴 편지에 적은 것인데, 킬리언이 잘 받아들여 줬을지는 의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