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n obsessed tyrant and a sleeping cat every night RAW novel - Chapter (55)
Chapter 55
반사적으로 나를 끌어안아 주는 단단한 팔이 등 뒤로 느껴졌다.
“제가 방금 뭘 찾았는지 아세요?”
깊고 청량한 그의 체향이 풀 내음과 섞여 상쾌하다 느끼며 그를 올려다보자, 나를 뒤늦게 바닥에 내려놓아 주는 그와 눈이 마주쳤다.
내 행동에 놀란 듯 그의 붉은 눈동자가 살짝 얼어 있는 것 같았다.
무어라 말을 꺼내지 않은 채 입을 굳게 다물고 나를 내려다보는 그의 시선에 나는 아차 싶어, 얼른 한 발짝 물러섰다.
“아, 죄송해요! 저 때문에 놀라셨죠. 방금 너무 기뻐서. 일부러 놀라게 해 드리려고 한 건 아니고……. ”
킬리언이 더욱 조용한 눈길로 나를 지켜보는 게 느껴지자 나는 왜인지 횡설수설 말이 많아졌다.
그때, 그가 문득 고개를 숙인 채 눈자위를 덮었다.
“왜 그러세요? 어디가 안 좋으세요?”
어디가 어지럽거나 뭔가를 빠뜨리고 온 건가 싶어 나는 냉큼 그를 들여다봤다.
“설마 흑마법약을 드신 건……!”
“아니야, 그런 거. 그건 아니고…….”
“그럼 뭔데요? 네?”
고개를 더욱 내밀어 그를 들여다보자 그가 눈자위를 덮은 손을 떼어 냈다.
언뜻 귀가 붉어진 것도 같았지만, 그가 몸을 바로 세우고 숨을 깊게 들이켜는 통에 정말 몸에 이상이 생긴 게 아닌가 싶어 걱정됐다.
“후……. 낭패네.”
허탈하게 웃어넘긴 킬리언이 손을 들어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뭐지? 갑자기 왜 이렇게 다정하게 굴어 주나 싶어 그를 올려다보는데 킬리언이 피식 웃었다.
“그래서? 뭘 찾아내신 건데. 레네트?”
잠든 이리나를 깨울지 몰라 목소리를 잔뜩 낮추는 날 보던 킬리언이 온실의 깊숙한 곳으로 나를 이끌었다.
폴리아타나 부족에 대해 연결 지을 수 있는 두 권의 책이 그의 팔에 끼워져 있고, 한 손으론 나를 잡고 있었다.
그의 손에 잡혀 보폭을 쫓아 발을 옮기다 보니 그는 키가 크고 다리가 굉장히 길다는 걸 새삼 깨달아 숨이 헉헉 찼다.
부지런히 따라가 내가 멈춰 선 곳은 우거진 나무 사이에 놓인 원형 테이블이었다.
내가 앤 할머니를 만나 들었던 말을 설명하는 동안 킬리언은 내 눈을 조금도 피하지 않고 계속해서 보고 있었다.
그는 남의 눈을 거리낌 없이 응시하는 데에 익숙한 사람이었다.
덕분에 말을 잇다가도 종종 나는 말문이 막힐 때가 있어, 조금 시선을 떨어뜨리거나 레이스 소매나 리본을 보는 시늉을 하며 이야기의 흐름을 놓치지 않으려 노력했다.
까딱하면 나른하고 무심한 빛이 어린 저 완벽한 외모에 압도돼 뭘 말하려고 했는지 머릿속이 하얘지곤 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설명을 마친 후 내가 찾아놓은 대목들을 대조하여 킬리언에게 펼쳐 보였다.
“이것 보세요.”
내 말에 킬리언이 무표정한 눈빛을 띤 채 책을 내려다봤다. 나는 기대하는 얼굴로 의자에 앉아 그가 내용을 확인하길 기다리며 숨을 죽였다.
그러다 불현듯 지금이 아침이라는 게 상기돼 눈길을 들었다.
“새벽에 마차를 타고 오신 거예요?”
“응.”
“왜요? 무슨 일 있으셨어요?”
“건강한지, 그것만 좀 알려 달라며.”
묵묵히 대답하던 그가 알 수 없는 미소를 그린 얼굴로 나와 마주쳤다.
단지 그것 때문에 여길 왔다고?
“정말로 그것 때문에 오셨다구요……?”
나는 그의 대답이 진심인지 믿을 수 없어 눈을 깜빡이며 쳐다보는데, 킬리언은 언제나 그러하듯 속을 알 수 없는 눈빛을 띤 채 느긋하게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편지에 화를 내던데.”
“설마요?”
“답장을 줘야 재미있는 이야기를 알려 주겠다고 협박도 하고.”
“협박이라뇨! 걱정인 거죠.”
내가 빠르게 부정하며 결백을 호소하자 그가 비스듬히 턱을 괸 채 나를 유심히 들여다봤다.
찬찬히 나를 뜯어보는 덤덤한 시선이 눈에서 코로, 코에서 입으로 내려가는 게 보였다.
“진짠데……요.”
나는 입술에 닿은 그의 눈길이 느껴지자 곧바로 다시 한번 억울함을 호소했다.
입술에 닿은 그의 시선이 의식돼 입을 꾹 다물고 마른침을 삼켰는데, 그마저도 어색하게 보일까 싶어 나도 모르게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곧 다시 눈을 마주쳐 온 킬리언이 어렴풋한 웃음을 띠었다.
“알아.”
그가 자연스레 손을 뻗어 내 머리칼을 귓바퀴 뒤로 넘겨 정돈해 준 후 턱을 괴던 것을 멈추고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그래서 왔어. 굳이, 이 시간에.”
진득하게 닿았다가 느릿하게 떨어지는 그의 손길이 피부에 묘한 긴장감을 남기는 것 같아 나는 얼른 기분을 환기시켰다.
쓸데없이 지나치게 잘생긴 얼굴이 이렇게 가까이 다가와 웃고, 친절하게 머리까지 넘겨 주면 불필요한 여운을 곱씹게 하니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안 됐다.
킬리언은 내가 찾은 책들을 한 번 더 내려다본 후 입을 열었다.
“벨리르 나무를 조사해 볼 필요가 있겠어.”
아, 그렇지. 벨리르 나무! 나는 하마터면 잊어버릴 뻔한 진짜 화젯거리를 상기하며 냉큼 벨리르 나무에 집중했다.
“정말요?”
“응. 이리나가 선대를 통해 전해 온 기억들이 모두 신탁에 대한 단서가 되고 있으니까.”
킬리언이 책 속에 나온 벨리르 나무의 그림을 손끝으로 조용히 두드리며 생각에 잠긴 표정을 지었다.
“위페르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나무예요? 여기 보니 늪지대나 습지처럼 습한 곳에서 자란다고 나와 있더라구요.”
“남부엔 습지가 많은 편이야. 네라드리젠이란 지역도 명칭은 바뀌긴 했지만 지금은 남부에 속해 있고.”
“그럼 그 부근의 벨리르 나무를 찾아보면 어떨까요?”
“거길 중심으로 나머지 벨리르 나무가 서식할 만한 곳도 모두 조사하도록 해야겠지.”
킬리언의 명료한 대꾸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싱긋 웃어 보였다.
어서 모두가 함께하는 아침 식사 시간이 시작되면 좋겠다. 특히나 이리나가 기뻐할 텐데.
“잘했어, 레네트.”
“헤헤. 그럼 이제 일어나서 갈까요?”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책을 들려고 하자 그의 손이 나를 다시 잡아 앉게 했다.
“그렇더라도 앞으로 밤을 새우는 건 하지 마.”
의아해하는 찰나 킬리언이 나를 응시하며 담담히 말했다.
“지금은 그대의 상태에 대해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어. 그러니 무리하는 행동은 삼가는 게 좋아.”
“무리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요즘은 잠도 잘 자고 아무렇지도 않아요. 그때 잠깐만 그런 것 같아요.”
“확신할 수 없잖아.”
킬리언이 사뭇 단호하게 대답하자, 나는 무어라 해야 할지 난감해 입을 다물었다.
그의 말처럼 확인할 방법이 없겠지만, 그가 걱정할 만큼 몸이 안 좋은 건 아니었다. 아니다, 오히려 그냥 평소와 같이 좋아진 상태였다.
“불만이 많은 얼굴인데.”
증명할 길 없어 답답하다고 생각하는 찰나 킬리언이 내 입술을 톡 건드렸다.
나도 모르는 새에 입을 삐죽 내밀고 있었나 보다.
나는 얼른 헛기침을 하며 표정을 다잡고 그를 슬쩍 쳐다봤다.
“밤을 새우는 건 저도 좋아하는 편이 아니에요. 그렇게 말씀하신 전하께선 좀 주무셨어요?”
“…….”
킬리언이 돌연 대답하기를 멈추자 나는 그를 얄밉게 쳐다봤다.
“것 봐. 잠은 아마 전하께서 더 안 주무실걸요?”
“일어날까.”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책을 들고 가자 나는 그를 쫓아 종종종 걸어갔다.
“왜 안 주무세요? 눈이 충혈된 걸 보니 요즘도 푹 못 주무신 것 같은데. 잠 좀 주무시는 게 어떠세요, 전하? 네?”
* * *
“차 드세요.”
모두와 함께 아침 식사를 하기엔 아직 이른 시간이라 우리는 이리나를 그녀의 침실로 옮기게 한 후 내 방에 돌아와 앉아 있었다.
킬리언이 차를 한 모금 마신 후 벽난로를 바라봤다.
사용인들이 아침에 땔나무를 넣어 지펴 놓은 모닥불이 타닥타닥 타오르고 있었다.
“춥겠는데.”
“따뜻해지고 있어서 괜찮아요. 차 드세요.”
나는 찻잔을 든 채 어깨를 으쓱여 보이곤 음흉한 계획을 꾹 담은 채 그가 차를 마시길 지켜봤다.
하늘을 찌를 듯 자라난 전나무가 창에 무척이나 가까워서인지 바람이 불 때면 유리창을 톡톡 두드려 대 침실에 드리워진 적막을 종종 소리로 채웠다.
“여기서 생활하는 건 어때.”
킬리언이 마신 차를 내려놓고 물었다.
“아주 좋아요. 다들 편하게 잘 대해 주시거든요. 잠도 잘 자고 밥도 잘 먹고…….”
나는 그의 찻잔에 얼마나 차가 남았는지 확인하며 엉거주춤 대답했다.
오, 다 마셨다……!
“불편한 건.”
“저언혀! 단 한 가지도 없어요. 완전 좋아요!”
내가 생글생글 웃으며 씩씩하게 대답하자 그의 붉은 눈이 나를 곰곰이 쳐다봤다.
“그렇군.”
킬리언이 속을 알 수 없는 표정을 띤 채 입을 열었다,
“그렇더라도 성엔 데려갈 거야. 이곳이 그대에게 편한 곳이라 해도.”
이윽고 들려온 말에 나는 멈칫했다.
당연한 소릴 왜 하시는 거지?
나는 그의 무표정한 얼굴을 바라보다 의아해 입이 벌어졌다.
설마 내가 한 말이 바른의 집에서 살고 싶다는 말처럼 들렸을까? 다른 데에 정신이 팔려 대답이 좀 과장되게 나간 걸지도 몰랐다.
“당연히 돌아가야죠. 거기 아님 제가 어딜 가요?”
내가 재빨리 원래의 뜻을 피력하기 위해 대답하자 고요히 나를 지켜보던 킬리언의 눈빛이 주춤 내려앉았다.
“그곳에 돌아가기 위해 공부도 하는 중이잖아요?”
히유, 하마터면 뜻을 잘못 전달할 뻔했네! 나는 냉큼 말을 잇곤 그의 잔을 슬쩍 내려다봤다.
킬리언이 떠나고 바른이 내게 수면에 도움이 되는 차를 줬는데 어찌나 푹 잤던지 자고 일어났을 때 너무 개운했던 기억이 있었다.
나는 그것과 같은 차를 해리드에게 부탁했고, 킬리언이 그것을 마시게 했다.
바른의 말에 따르면 그가 보기에 킬리언은 그가 잠이 들 때 내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정확히 알아내기 전까진 거의 수면을 취하지 않을 생각인 것 같다고 했다.
킬리언 본인은 분명 요즘 별다른 문제 없이 잠들 수 있었지만 그에게 남아 있을지 모를 흑마법약이 지금껏 나를 갉아먹어 온 것이라 판단한 것이다.
“그런데 정말 그렇게 계속 안 주무실 거예요? 잠깐이라도 눈을 붙이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됐어.”
킬리언이 대답하며 나갈 테니 좀 자도록 하라며 내게 덧붙였다.
내가 저 차를 마셨을 땐 포근한 기운이 퍼져 금방 나른해졌는데, 그는 어쩐지 멀쩡해 보여 이대로 가게 될까 봐 초조해졌다.
“피곤하지 않으세요?”
“별로.”
킬리언이 일어서려 하자 나는 달리 방법이 없어 뭔가를 발견한 사람처럼 대뜸 침대를 쳐다봤다.
내 연기가 잘 통해야 할 텐데.
나는 입술이 바짝 마르는 기분이 들었지만 긴장을 풀기 위해 깊게 숨을 들이켰다.
“어? 저게 뭘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