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trongest He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175
◈ 최후의 싸움
세상이 조용해졌다.
이곳에는 오직 둘만이 있는 기분이었다.
본래부터 그러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았다.
이것은 묘한 기시감이었다.
“우리의 오래된 친구가 죽었군.”
“…….”
천부가 말하는 것은 아마도 능운백.
거대한 기운 하나가 반짝임과 함께 사라졌다.
가슴에 쌓이는 건 아픔이었다.
‘그는 친구였다.’ 감정을 주먹에 실어서 질렀다.
땅이 물처럼 부서져서 층층이 밀려났다.
주변 공간이 가을의 낙엽처럼 찢어졌다.
하, 하고 짧게 웃는 천부가 발을 굴렀다.
거대한 판자가 세워지듯, 수 미터 깊이의 땅이 통째로 뒤집어졌다.
파도는 벽을 넘지 못하고 사라졌다.
“그가 바라는 건 너도 나도 아니었다. 그저 옛 그림자에 취해서 사는 망령에 불과했지. 그런 자의 죽음에 아쉬움 따위는 사치다.”
“검을 나누고, 술을 마시니 그것으로 족했다.”
“어리석은. 유치한 낭만 따위에 젖어서 네 본질을 잊어버리고 있구나.”
“내 본질이 무엇이더냐?”
“천상천하유아독존.”
천부가 공간을 뜯어서 흑색의 검을 뽑았다.
순간, 하늘이 양단되면서 검은색으로 나뉘었다.
그 궤적에 걸리는 것은 무엇이라도 파괴되었다.
구름도, 산도, 태양 빛도.
만물의 법칙보다 그의 검이 우선이었다.
“그건 더 이상 만상의 힘이 아니로군.”
“인간을 벗어나 신이 되기로 했다. 이 땅의 법칙 따위, 내가 뜯어고치면 그만이다.”
“얄팍한 속임수.”
“위대함을 부정하는군.”
“고통 없는 성장은 없다. 맞닥뜨리지 않으면 알지 못하는 것들이 존재한다. 네 힘은 그저 치기의 소산일 뿐.”
“……숨만 붙여주마!”
흑색의 검이 이번에는 세로로 떨어졌다.
태양 빛이 그 궤적에 가리어 어둠이 찾아왔다.
빛 한 점 들지 않는, 칠흑의 공간이었다.
몸을 짓누르는 건 그야말로 부정의 힘.
천마는 손을 움켜쥐며 이 부정을 밀어냈다.
우드드득.
어깨, 팔, 손.
그리고 허리와 다리로 이어지는 모든 신체.
부정을 부정한다는 모순을 견디지 못하고 즉시 부서지기 시작했다.
불사의 근원이 불처럼 일어나 몸을 태우나, 천부의 부정은 이조차 부정했다.
극지의 얼음처럼 몸이 식고 새카만 어둠에 사위를 감쌌다.
“네가 지닌 얄팍한 힘은 이미 내가 천 년도 전에 버린 것들이다. 천마신공 따위. 이제 와서 그런 나약한 힘으로 나와 겨루려는 것이냐!?”
“자신의 것이 부끄러워 외면하면 어찌 타인을 포용할까. 천마신공. 아니, 장삼신공이라고 불러줄까? 무엇보다 우리의 본질을 닮아있다.”
“궤변 따위!”
“궤변이 아니다. 수백, 수천 번의 죽음 속에서 우리를 일깨운 것은 다름 아닌 우리의 본질. 포기하지 않고 일어나 죽음과 맞서는……지독한 본능이다.”
천마가 부서지는 몸을 억지로 일으켰다.
팔이 갈라져 살점이 떨어지고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뼈가 드러나고 힘줄이 갈가리 찢기기도 했다.
죽음으로 걸어가는 지름길이었다.
하지만 죽음이라면 익숙하다.
그 너머를 보고 끝없이 걸었던 기억이 있으니까.
부서져 넝마가 된 손으로 천부의 부정을 쥐었다.
쾅―!!
폭발은 짧고 부서지는 건 매우 작았다.
천마의 오른팔.
피가 뚝뚝 떨어지는 어깨를 지혈하며, 천마가 천부를 바라봤다.
그 시선에 두려움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 알량한 깨달음 따위로 세상의 이치를 이길 수는 없다. 나 역시 이천 년 전에는 너와 같았다. 견디고 나아가면 세상이 받아줄 거라 여겼다. 하지만 세상은 너와 나 같은 규격 외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받아주지 않으니, 마음대로 주무르겠다?”
“그럴 만한 힘이 있으니까. 세상에 이치가 있다면, 우리 같은 존재가 태어난 이유도 있을 것이다. 무르고 약한 세계의 신이 되기 위해서.”
“철부지 같은 소리.”
“그 철부지가 신이 된다. 네가 막을 수 있을까?”
천마가 뜯겨나간 팔을 바라봤다.
완전히 ‘부정’된 팔은 천마신공으로도 회복되지 않았다.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힘도 3할은 뜯겨나갔다.
전력으로 비교하자면 천부는 자신의 수십 배는 족히 되었다.
아예 상대조차 되지 않는 격차였다.
문뜩,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다들 날 이런 눈으로 보았겠군.”
너무 강해서 범접할 수 없는 존재.
반대의 입장이 되어 보니, 그 마음이 너무 뚜렷하게 다가왔다.
두렵고, 막막하다.
가능하다면 도망가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천마는 되레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나는 천마. 하늘 아래 가장 강한 존재다.”
허장성세라도 좋다.
티끌만 한 마음이라도 모아서 싸울 뿐이다.
마도에 나약함 따위는 없다.
#
전투는 점차 격렬해져 갔다.
천부가 부리는 은의 무인들은 불사신이었다.
죽어도 되살아나서 덤벼왔다.
헐떡이는 숨소리만이 주변을 가득 메웠다.
“……하아. 하아.”
“조금만 더 힘내요, 기남 오라버니.”
“아직 멀쩡하다.”
“창끝이 내려가고 있어요.”
안기남이 이 악물고 창을 들어 올렸다.
고분의 무공을 바탕으로 만상의 기운을 천마에게 전달하고 있는 터라 피로도는 더 진했다.
굳이 비교하자면 모래주머니를 달고 뛰는 격.
피로의 누적이 평소보다 빨랐다.
“조심해요!”
순간, 거대한 폭음과 함께 파문이 사방으로 퍼졌다.
모래 먼지가 폭풍처럼 몰아쳤다.
창을 바닥에 찍어서 버텨보지만, 쉽지 않았다.
수 미터나 밀려난 뒤에야 겨우 중심을 잡을 수 있었다.
“태상문주님!!”
그 뒤에 보인 광경은 참혹한 것이었다.
한쪽 팔이 날아간 천마였다.
지금껏 이런 부상은 본 적이 없다.
이지아는 정신을 잃을 듯 날뛰고, 윤서나와 백일태의 다급한 목소리가 배경처럼 들려왔다.
순식간에 신교의 포진이 무너졌다.
“정신 차려!!”
그때였다.
하늘에서 섬광 하나가 떨어져, 은의 무사들을 쓸어버렸다.
바닥에 박힌 건 한서휘의 애검, 백룡이었다.
이내, 손잡이 위로 한서휘가 내려왔다.
발끝으로 검을 차 주변 적을 꿰뚫어 버리고는 안기남의 옆에 섰다.
“왜 이렇게 오래 걸렸냐!?”
“보통 적이 아니었으니까. 스승인, 무암도 죽었다.”
“젠장. 슬퍼하는 건 나중에 하자.”
안기남이 한서휘의 몸을 타고 빙글 돌았다.
창이 주변을 크게 돌아서 적들을 쓸었다.
굉음이 파도처럼 이어졌다.
그제야 당황하던 이지아 등도 침착을 되찾고 진을 본래의 모습으로 유지했다.
“고작 한쪽 팔일 뿐이다. 문주님을 믿어라!”
“……알아요! 태상문주님은 절대로 패배하지 않을 거야. 우리는 우리의 싸움을 한다!”
“진을 유지합시다! 자리를 지켜요!”
“아빠, 힘내!”
“크아앙!!”
해도와 누아까지.
모두가 사기를 끌어 올렸다.
지금 할 수 있는 건 눈앞의 적과 맞서는 것밖에 없었다.
“네 힘은 아직 유효하겠지?”
한 사람, 한서휘를 제외하면.
“저 정도 싸움에 장시간 끼어들 수는 없어. 기회는 한 번. 다른 노림수는 없다.”
“그런가. 그럼 우리가 기회를 만들겠다. 그 틈에 네 힘을 사용해.”
“기회를? 어떻게?”
“우리라고 놀고 있던 건 아니니까.”
안기남이 창을 들어 올렸다.
강력한 기운이 그 끝에 서려서 번쩍였다.
고분에서 받은 진기였다.
이지아, 윤서나, 노복 등 모든 이들이 동시에 힘을 사역했다.
힘과 힘이 고리를 이루며 진을 채웠다.
“그걸로는 부족할 거야. 우리도 도울게.”
“잠깐이라면 시선을 돌릴 수 있어.”
여기에 뒤늦게 나온 이매와 삼아도 힘을 합쳤다.
능력 면에서는 훨씬 나은 둘이었다.
진을 통해 구축한 만상지기를 자연스럽게 유도해서 거대한 화살을 만들었다.
두 번은 사용할 수 없는.
오직 한 발의 화살이었다.
“알겠지만, 실패하면 되는 없어.”
“알고 있다. 언제나처럼, 성공하고 돌아오지.”
“흥. 잘난 척은. 아직 화가 다 풀리지 않은 걸 기억해.”
“하하. 그건 술로 갚지.”
짧은 웃음을 남기며 한서휘가 화살 위에 탔다.
사방에서 적이 밀려오는 상황에서 기회는 두 번이 될 수 없다.
힘이 크게 진동하더니, 바람을 밀어내며 한 곳으로 쏘아져 나갔다.
하늘을 가로지르는 화살이었다.
#
힘의 차이는 명백했다.
애초에 천부는 천마보다 훨씬 강했다.
한쪽 팔이 날아간 상황에서야 비교가 되지 않았다.
다만, 한 가지 조건이 둘의 싸움을 팽팽하게 만들었다.
그건, 천부가 천마를 죽일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내가 죽으면 넌 영원히 불완전하게 남게 된다.”
“그게 천하제일 천마의 수단인가?”
“목숨을 걸고 부딪치니, 부끄러움은 없다.”
천마가 천부의 부정 앞으로 목을 내밀었다.
흠칫, 하며 천부가 힘을 추스르는 사이.
재빨리 힘을 응집해서 천부를 후려쳤다.
벼락같은 굉음과 함께 둘 사이가 멀어졌다.
일그러진 천부의 얼굴이 악귀 같았다.
“네놈을 잡아가면 남은 시간 동안 지옥이 그리울 정도로 고문을 해 주마.”
“죽는 한이 있어도 그건 선택지에 없다.”
“버러지 같은. 한때, 천하제일이었던 인간이 이렇게 추잡하게 구는 거냐!?”
“우리는 원래 추잡하게 살아남았다. 배가 고파 구걸하고, 힘을 원해서 노역을 살았다. 이제 와서 그것이 창피하다면 대체 너는 누구냐?”
“……천마!”
천부의 장력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분노에 몸을 맡긴 건지 이번에는 피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니었다.
다른 팔이라도 내어 주어야 하는 건가.
천마가 입술을 잘근 씹었다.
쾅―!!
그때였다.
어디선가 날아온 거대한 화살 하나가 힘의 파도와 정면에서 충돌했다.
단숨에 형태가 무너져 버렸지만, 방향을 틀어내는 것에는 성공했다.
비틀린 힘을 옆으로 미끄러지며 나아갔다.
“문주님!”
귀를 때리는 목소리는 한서휘의 것이었다.
천마는 그 순간에 무언가 철컥, 하고 맞아 돌아가는 느낌을 받았다.
망토를 두르듯 힘으로 공간을 잘랐다.
천부의 이어진 공간이 그 위를 스쳐 갔다.
남은 거리는 순식간에 한 걸음이 되었다.
“감히 죽지도 못한 망령의 힘 따위로 나와 겨루려 하다니!!”
천부 역시 한서휘를 알아보았다.
그의 노성은 힘이 되어 하늘에서 벼락이 되었다.
어마어마한 속도로 떨어지는 빛줄기는 피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었다.
“멈추지 마라!”
하지만 그 앞은 이미 천마의 소유였다.
그는 천부가 한서휘를 먼저 노릴 거라는 걸 예상 하고 있었다.
잘라서 두른 공간으로 벼락을 튕기고, 뒤이어 들어오는 부정은 왼팔로 막았다.
먼지처럼 왼팔이 가루가 되었지만, 틈은 만들었다.
한서휘가 구름을 밟으며 천마의 뒤로 날아갔다.
어느새 들린 건 그의 애검, 백룡.
“이것이 역천이다, 천부!”
푸욱. 역천의 힘이 실린 백룡은 천부의 힘을 가볍게 쑤시며 들어왔다.
만상은 세상의 반대급부를 속이는 속임수.
역천은 그것을 폭로하는 경찰과 같았다.
순식간에 뒤틀린 힘의 폭풍우가 천부의 몸 안에서 휘몰아쳤다.
반경 수백 미터의 공간이 점 단위로 압축.
어마어마한 고열과 냉기. 바람과 압력. 반대급부로 튀어나왔어야 할 모든 힘들이 폭발했다.
천부의 육체는 늘어났다, 줄어들었다가를 반복하다가 한순간에 푹 늘어졌다.
“―끄윽!”
하지만 끝은 아니었다.
까맣게 탄 얼굴로, 천부가 백룡을 움켜쥐었다.
끄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검면이 갈라졌다.
태산을 으깰 것 같은 힘이었다.
“내가 고작 이 정도에 무너질 것 같아!?”
“괴물! 이대로 죽어라!!”
“나는 신이다! 이 세상 모든 것보다 위에 군림할 남자란 말이다! 고작 네놈들의 얄팍한 힘 따위에 주저앉지 않는다!”
지독한 고집이었다.
아이 같은 투정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이 천부의 전부였다.
바동거림은 역천의 휘몰아침 속에서도 그에게 힘을 전달했다.
금이 가던 백룡이 일순간에 부서졌다.
깨어지는 파편에 한서휘의 얼굴에는 경악이 천부의 얼굴에는 득의가 서렸다.
“천부―!!!”
그 순간.
그의 머리 위 공간이 갈라지며 한 사람이 뛰쳐나왔다.
다름 아닌 능운백이었다.
그는 만 개의 검을 두르고 천부를 관통했다.
만 번의 베기가 육체를 난도질하고, 그 지독한 일념이 천부의 발버둥을 도륙했다.
붉은 피로 천부가 만개했다.
“커억! 네, 네놈이……!”
“지난 꿈을 이루지 못한다면, 술 한 잔 받은 친구를 위해 널 죽이겠다.”
“고작 그따위 유치함 때문에!”
“인생의 짧음은 계절의 꽃과 같고, 우리의 낙은 찰나의 낭만에 불과하다. 영원을 논하고 군림을 탐하는 너는 영원히 알 수 없겠지.”
“능운백!!!”
천부가 갈가리 찢긴 몸으로 발버둥 쳤다.
피가 검이 되어 사방으로 튀어나갔다.
능운백은 이를 피하지 않고 전신으로 받았다.
붉은색에 붉은색이 덧칠해졌다.
“네놈들. 네놈들은 어째서 모르는 거냐. 어차피 세상은 하찮은 법칙의 조립에 불과하다. 나와 같은 절대자가 그 위에 군림하는 것이 훨씬 낫다는 걸 어째서 모르냔 말이다!!”
“아이가 날붙이를 들고 날뛰면 어른은 말리기 마련이다.”
“천마!!”
저벅. 저벅.
피를 밟으며 다가오는 건 양팔을 잃은 천마였다.
그 역시 넝마가 된 몸에, 힘은 한 줌도 느껴지지 않았다.
“너무 긴 시간이었다. 이제 끝을 내자.”
“어쩔 생각이지? 어차피 네놈은 넝마에 불과하다. 역천은 소멸했고, 배신자도 힘을 잃었다. 날 막을 사람은 없다.”
“아니. 내게는 아직 하나의 힘이 더 남아 있다.”
천마가 천부 앞에 몸을 웅크렸다.
한 점 기운조차 남아 있지 않던 그의 몸 안에서 미증유의 힘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천부가 다급함에 몸을 움직이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그의 육체는 이미 능운백의 검으로 난도질 돼 있었기 때문이다.
“천마신공 십단공.”
무저갱.
자신에게서 시작한 과오를 끝내기에 이보다 더 적절한 무공은 없었다.
빛과 어둠이 빨려 들어오고.
세상이 점으로 소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