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n obsessed tyrant and a sleeping cat every night RAW novel - Chapter (72)
Chapter 72
내가 리트번의 타운에 가 볼 일이 있다고 말하자, 캐번디시 부인은 마부에게 드리체로 가라 명했다.
부인이 딸의 집에 들어간 후 나는 마부가 이끄는 대로 드리체 타운에 도착해 심드렁한 얼굴로 드레스의 장식품이나, 실크로 만든 슈즈 등을 구경하고 아이스크림 가게로 향했다.
오후의 햇볕이 사람을 늘어지게 만드는지 모두가 한가로운 얼굴로 테라스에 놓인 테이블에 자리를 잡아 아이스크림이나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저, 공녀님. 제가 점심을 부실하게 먹어 조금 시장하여 그러한데, 잠시 자리를 비워도 되겠습니까?”
내가 아이스크림을 사 빈 테이블에 자리를 잡자 마부가 조심스레 물었다.
“그럼요. 다녀오세요.”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는 나를 본 마부가 짐짓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금방 오겠습니다.”
스푼을 입에 문 채 방긋방긋 웃는 나를 한 번 더 쳐다본 마부가 급히 돌아섰다.
작업복 형태의 갈색 프록코트를 입은 그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걷는 것을 지켜보던 나는 그가 모퉁이를 돌려는 찰나 잽싸게 일어나 테라스를 벗어났다.
“가장 의심스러운 사람이란 말이야.”
마차 안에서 캐번디시 부인과 대화를 나누며 나는 그녀가 평소에도 하녀를 대동하지 않는지를 물었다. 그런 일은 드물기 때문이었다.
‘늘 마부만 데리고 다닙니다. 구태여 많은 이들을 대동하는 건,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를 일이 많아지게 되더군요.’
‘그러고 보니 아까 마차에 오르기 전에도 사용인들이 보이지 않았던 것 같네요.’
‘이동을 할 땐 그러는 편입니다.’
‘……마부를 굉장히 신임하시겠네요.’
‘오래 일을 했으니, 이제는 그럴 만하죠.’
기젤라 부인은 캐번디시 부인이 딸의 집에 간다는 걸 누구에게 전해 들었을까.
캐번디시 부인은 딸의 집에 며칠 머물며 볼 생각은 없다고 했다. 다시 황후 폐하를 모시러 속히 돌아가야 한다는 게 그녀의 입장이었다.
그건 캐번디시 부인이 좀처럼 자리를 비우는 인물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그녀와 대화를 하다 보니 어제처럼 황후의 심부름으로 큰 행사에 나가는 일이 아니면, 자신의 근무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도 했다.
캐번디시 부인이 황후의 곁에 물리적으로 가까이 있는 한, 기젤라 부인은 그녀를 죽일 틈을 찾지 못했을 것이다.
황후의 곁에서 쉽게 떠나지 않는 캐번디시 부인을 죽이기 위해 호시탐탐 틈을 노려 왔을 기젤라 부인에게, 오늘처럼 그녀가 딸을 만나러 가는 이런 일은 언제 다시 올지 모를 기회였을 것이다.
‘하지만 마차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어.’
리트번으로 가는 해안로는 폭이 넓게 포석된 길이라 절벽이 가깝게 느껴지지는 않는 곳이었다.
마차가 바뀐 탓에 해안로 어디에선가 잠복해 있던 기젤라 부인의 사람들은 헛수고를 했을 듯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내 마음은 캐번디시 부인이 무사한 것을 보고도 영 꺼림칙하기만 했다.
캐번디시 부인의 행선지를 기젤라 부인에게 전할 누군가가 그녀의 주변에 있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어디로 가는 걸까?”
마부는 배가 고파 요기를 한다고 말했던 것과 달리 웬 상점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나는 멀찌감치 선 채 고개를 내밀고 상점의 간판을 읽었다.
“……슈만의 비둘기?”
업종을 알 수 없는 간판에 의아하여 서 있는데, 얼마 후 마부와 남자가 문을 열고 나왔다.
낯선 남자는 웬 비둘기를 손에 들고 있었는데 눈을 가늘게 뜨고 보니 비둘기 발목에 편지가 묶여 있었다.
“지금 보내면 되는 거요? 황성의 장미정원이 확실한 거요?”
“그렇소.”
황실의 장미정원? 마부가 고개를 끄덕이자 남자가 비둘기 한 마리를 높이 밀어 올렸다.
힘차게 날갯짓을 시작한 비둘기가 허공 위로 날아올라 어디론가 향했다.
나는 아연한 얼굴로 마부를 바라보다 새를 올려다봤다.
비둘기는 그냥 새가 아닌 전령인 것이다.
* * *
“부인. 장미정원에 온 소식입니다.”
애나로즈 부인이 두 손으로 얇게 말린 편지를 전했다.
애나로즈 부인의 두 손 중 붕대가 감긴 손을 무덤덤하게 일별한 기젤라 부인이 편지를 빠르게 낚아채 펼쳤다.
저쪽에서도 얼마나 빠르게 갈겨쓴 것인지 내용이 간략했다.
“하?”
캐번디시 부인의 마차에 작은 일이 생겨 마차를 바꿔 타고 가게 되었다는 것.
부인이 바꿔 타게 된 마차는 이번엔 하얀색이라는 것.
기젤라 부인은 촛불에 편지를 태우며 이를 사리물었다.
“멍청하긴. 세상에 하얀 마차가 얼마나 많은데.”
캐번디시 부인의 마부는 해안로에 가게 될 즈음이 한밤중일 것이라 짧게 적어 놓았다.
그리고 자신은 약속대로 반드시 구해 주고, 캐번디시 부인이 죽었는지 꼭 확인해야 한다고도 당부해 놓았다.
제 주인을 배신했으나 그 비밀이 밝혀지길 바라지 않는 마음일 터였다.
“어쩐지…….”
그렇지 않아도 캐번디시 부인이 죽었다는 소식이 없어 초조하게 손톱을 깨물고 있는 중이었다.
“애나로즈 부인, 바센 해안로에 그대로 잠복해 있다가 밤에 하얀 마차가 나타나면 두 번 볼 것 없이 밀어 버리라 그래. 마차가 바뀌었다고 전하고. 그 마부의 이름이 뭐랬지?”
“에드 스위니입니다.”
“그 인간의 초상화도 보내 놔.”
“그 말씀은…….”
“같이 밀어 버리라 그래.”
기젤라 부인의 말에 애나로즈 부인이 멈칫하며 그녀를 바라봤다.
머리를 매만진 기젤라 부인이 우아하게 찻잔을 들어 올리고 애나로즈 부인을 올려다봤다.
“뭐 해?”
퍼뜩 정신을 차린 애나로즈 부인이 티팟을 들어 차를 따랐다.
기젤라 부인은 발목이 뻐근한지 발끝까지 쭈욱 펴며 소파 등받이에 편안하게 기댔다.
“오늘 안에 사고가 일어나지 않으면 언제 또 캐번디시 부인이 자리를 비울지 몰라. 실수는 없어야 해.”
“……알겠습니다. 그럼 오늘 새벽에 마부의 집에 아들의 학비를 보내 놓으면 될까요?”
“응? 무슨 소리야?”
기젤라 부인은 해맑은 얼굴로 활짝 웃으며 쏘서에 찻잔을 내려놓았다.
“아비가 죽으면 아들에게 학교가 무슨 상관이야.”
“!”
“아들은 제가 학교에 들어갈 수 있는지조차 몰랐을 텐데.”
주춤 속눈썹이 떨리는 애나로즈 부인이 싱긋 웃고 있는 기젤라 부인을 멍하니 바라봤다.
기젤라 부인은 흐드러지게 피는 꽃처럼 아름답게 미소 지으며 소파에 늘어지듯 머리를 뒤로 젖혔다.
“하아, 이만 퇴근하고 내일 아침에 바네사 앤클레어나 데려와.”
* * *
딸의 배웅을 받으며 저택을 나서는 캐번디시 부인을 보자마자 나는 마차에서 내렸다.
“제 딸 메리 로렌츠입니다. 이분이 레네트 브륀힐트 공녀님이시란다.”
“안녕하세요, 공녀님. 브륀힐트 공녀님이 황실 가면무도회에 참석했다는 소식은 들었답니다. 아직 몸조리 중이라 가지 못해 아쉬웠는데 이렇게 뵙게 되네요.”
캐번디시 부인을 닮은 메리가 인사를 건네자 나도 화답하며 반갑게 인사했다.
“반가워요, 메리. 어머니와 더 오래 시간을 보내고 싶으실 텐데, 아쉽겠어요.”
“네, 정말요. 어머니. 꼭 오늘 가셔야 해요? 공녀님과 함께 묵고 가시면 좋을 텐데.”
메리가 못내 아쉬워하는 얼굴로 캐번디시 부인을 바라봤다.
캐번디시 부인이 메리를 꽈악 껴안으며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마음만은 늘 너와 함께할 거란다. 조만간 시간을 내 찾아올게. 그동안 몸조리 잘하고. 응?”
눈시울이 붉어진 캐번디시 부인이 딸을 어르듯 안은 채 등을 다독거렸다.
“그럼 이만 가 보마.”
“좀 더 있다 가시지. 너무 오랜만이잖아요.”
“편지할게.”
캐번디시 부인이 에둘러 거절하며 마차에 향했다.
나는 부인이 계단에 오르도록 부축한 후 내게 손을 내미는 마부를 바라봤다.
아까 그가 황실에 편지를 부쳤으니 어쩌면 그 편지를 받았을지 모를 기젤라 부인이 계획이 틀어졌음을 알게 됐을 것 같았다.
지금 출발하면 밤이 깊어 해안로를 달리는 게 위험하고, 누가 이 마차를 공격해도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설마 돌아가는 길에 공격하라 보내 놓은 건 아니겠지 싶지만 마부의 의중에 대한 확인은 필요했다.
“아앗!”
그의 손을 잡으며 계단을 오르는 척하다 발목이 삔 것처럼 앓는 소리를 내며 주저앉았다.
“다쳤어요?”
“아야, 아야…….”
나는 마부의 당황한 안색을 힐긋 올려다본 후 다시 발목을 붙잡았다.
그때 내가 다친 것을 뒤에서 본 메리가 이때다 싶어 소리 냈다.
“공녀께서 다쳤는데 오늘 움직이는 건 무리가 아닐까요? 어머니와 함께 밤만 보내고 출발하세요. 집에서 치료를 좀 해야지요.”
“공녀 괜찮아요? 메리, 오늘 돌아가야 해. 휴, 찜질할 만한 걸 가져다주겠나, 집사? ”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제가 찜질할 걸 받아 오겠습니다. 레네트 공녀님께선 마차를 타실 테니, 더 이상 발목을 쓸 일도 없을 겁니다.”
마부가 캐번디시 부인의 말에 백 번 동의하듯 유난스럽게 거들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오늘 반드시 출발해야만 한다는 강한 의지가 느껴졌다.
별수 없이 찜질할 거리를 받아 마차에 탄 나는 마부석으로 난 창문을 열었다.
“저기, 내가 잠시 드레스를 갈아입어야겠어요. 크림이며, 아까 넘어질 때 묻은 흙이며 엉망이거든요. 잠깐 커튼을 닫아 놓을 테니 함부로 열지 말아 주세요.”
“네네, 알겠습니다.”
어쩐지 조급해 보이는 마부가 서둘러 채찍을 휘두르는 것을 본 나는 창문을 굳게 닫고 커튼도 꼭꼭 닫았다.
마차는 몸이 기우뚱할 만큼 빠른 속도로 출발했고, 눈 깜짝할 새에 리트번을 벗어났다.
“아니, 에드가 왜 이렇게 빨리 달리지? 속도를 줄이라 해야겠어요.”
너무 빠른 속도에 깜짝 놀란 캐번디시 부인이 마차 벽을 짚은 채 마부석으로 난 창문을 열려고 하자 나는 그녀를 저지했다.
“아니에요!”
“왜 그러세요, 공녀?”
“잠시만요.”
나는 유리창 너머 휙휙 지나는 풍경에 집중하려 애썼다.
딱딱하게 포석된 길을 달리는 중이라 이대로 뛰어내렸다간 우리 둘 다 크게 다칠 건 자명한 일이었다.
나는 아까 리트번에 오던 길에 봐 왔던 길가를 돌이켰다.
수풀이 우거진 곳을 지나 자작나무 숲이 이어져 있었고, 숲 다음엔 집이 몇 채 안 되는 작은 마을 ‘헤르세유’, 그리고 리트번에 도착했었다.
아까 아이스크림 가게 점원에게 돈을 치르고 자정에 헤르세유 입구에 마차를 불러 달라 했으니 지금쯤 마차가 와 있을 것이다.
킬리언에게 전서까지 보낼 수 있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마부가 너무 빨리 돌아오고 말았다.
“아!”
저 멀리 헤르세유의 불빛이 아른거리며 빠르게 지나가자 나는 마음이 더욱 다급해졌다.
“조금만요.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시면 돼요.”
마침내 내가 기다리던 너르게 펼쳐진 경사진 들판이 모습을 드러냈다.
“캐번디시 부인.”
내가 마른침을 삼키며 부인을 부르자, 여전히 마차 속도에 못 이겨 벽을 짚고 있던 부인이 의아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나는 그녀의 눈을 응시한 채 조심스레 부인의 손을 잡았다.
“절 믿으세요?”
“아뇨……?”
단박에 대답한 그녀가 무슨 소리냐는 듯 날 쳐다봤다.
하긴, 뭐, 당연했다.
어제 처음 본 나를 믿는다는 건 무리지, 음.
“그래도 어쩔 수 없어요. 우린 뛰어내릴 거예요. 지금, 이 마차에서.”
“네?”
캐번디시 부인이 무슨 소리냐는 듯 나를 빤히 쳐다봤다.
이윽고 내 표정이 장난이 아니라는 걸 알아챈 그녀가 사색이 된 채 소리쳤다.
“뭐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