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n obsessed tyrant and a sleeping cat every night RAW novel - Chapter (71)
Chapter 71
“네?”
“아, 무도회가 있는 주간에는 종종 외국 손님들도 오시곤 해서 여쭤본 거랍니다. 위페르는 1년이 채 되지 않은 아이의 드레스나 혹은 따로 입어야 할 옷들은 전부 집에서 만든답니다. 아이를 가진 어머니의 손으로 말이죠.”
주인의 설명에 나는 화들짝 놀라 말문이 막혔다.
아뿔싸. 전생의 아기용품점처럼 선물할 걸 사면 된다고 안일하게 생각하고 말았다.
전생에서도 어머니가 아이의 배냇저고리를 직접 만든다는 이야기는 얼핏 들었지만, 이 세계에선 모든 옷을 직접 만들 거란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한 것이다.
“……그렇다면 아이에게 선물할 만한 건 없겠네요.”
“음, 레이디께서 그렇게 울상을 지으시니, 원. 제 마음이 편치 않군요. 보통 아이의 드레스를 사러 오신 분은 본 적 없지만, 드레스에 들어갈 원단들을 선물하는 경우는 간혹 있는 일입니다.”
“보여 주실 수 있나요?”
주인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아이가 입을 수 있는 부드러운 원단들을 꺼내 보여 줬다.
나는 몇 가지 원단을 골라 마차에 실은 후 양장점 주인을 돌아봤다.
“혹시 딸랑이 같은 건 어디에 안 팔겠죠?”
“아이를 낳을 어머니라면 이미 준비해 뒀을 겁니다.”
“아아, 그렇겠네요.”
내 정신 좀 봐. 아이나 임신에 대해 아는 바가 있어야 뭘 선물하기라도 하지.
내 무지함을 탓하는 사이 마차는 아담한 디저트 가게 앞에 멈춰 섰다.
나는 그곳에서 두꺼운 캐러멜 아이싱이 발라진 케이크와 말렌카, 솜사탕 같은 색색의 마카롱, 크림이 잔뜩 올라간 컵케이크를 상자에 담아 계산했다.
“하아……. 이 돈을 언제 황태자 전하께 갚을 수 있을지.”
나는 마차에 실린 값비싼 원단들과 알록달록한 디저트가 담긴 커다란 상자를 보며 이 모든 돈의 주인이 킬리언임을 상기했다.
킬리언은 돈에 관해 조금도 신경 쓰지 말라고 했지만 어떻게 신경을 안 쓰겠나.
마차가 다시 출발하고 나는 쿠션에 등을 기댄 채 창밖을 바라봤다.
“내 돈도 아니고, 남의 주머니에서 나온 돈인데.”
거기다 황제의 견제를 받는 황태자이니 나나 보통의 제국민보단 많겠지만, 귀족들에 비하자면 뭐 얼마나 돈이 있을까 싶기도 했다.
“휴, 아이그니스 님. 부디 이 돈들을 다 갚을 수 있게 해 주세요. 네?”
나는 위페르의 상징인 불의 신 아이그니스를 부르며 두 손을 모아 기도한 후 눈을 떴다.
얼마 후 창밖에, 사이프러스 가지가 넓게 뻗은 아담하고 하얀 저택이 눈에 들어왔다.
창문마다 등나무가 흐드러지게 피어 내린 저택은 마치 연보라, 핑크, 푸른빛에 둘러싸인 거대한 정원처럼 보이는 건물이었다.
마차의 속도가 점점 줄어들었다.
어제 무도회에서 캐번디시 부인의 집을 알아내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녀가 크라우드 타운에서도 비싼 남쪽 방향, 가장 명당에 위치한 자리에 등나무가 예쁘게 핀 하얀 저택에 사는 게 부럽다며 다른 귀부인이 툴툴대는 걸 들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저곳이 캐번디시 백작의 집이란 걸 알아차렸다.
마침 캐번디시 부인이 마차에 오르기 위해 정원 울타리를 벗어나고 있던 참이었다.
“안녕하세요, 캐번디시 백작 부인! 아직 출발하기 전이시군요.”
마차가 멈추자 나는 창문을 다급히 열고, 애써 침착하게 미소 지으며 캐번디시 부인에게 인사를 건넸다.
“브륀힐트 공녀?”
캐번디시 부인은 넓은 챙의 밀짚모자를 쓰고 그 위로 둘러진 리본을 턱 아래에 묶고 있어 시야가 좁아진 듯했다. 그래서 나를 미처 발견하지 못했다가, 내 목소리를 듣고 그제야 고개를 돌려 나와 눈을 마주쳤다.
캐번디시 부인이 탈 마차엔 캐번디시 가의 문장이 멋들어진 위상을 드러내며 마차 문에 새겨져 있었다.
원작에서 저 문장을 본 기젤라 부인의 부하들이 마차를 단박에 밀어 버렸다고 했다.
두근두근 뛰는 가슴을 꾹 누른 채 나는 흥분한 기색을 감추려 마른침을 삼켰다.
“어긴 어쩐 일로…….”
“레네트라고 편하게 불러 주세요. 마침 전해 드리고 싶은 게 있었는데 늦지 않아 다행이네요.”
내가 베르나르의 부축을 받으며 마차에서 내려 그녀에게 다가가자, 파란 팬지처럼 새파란 실크에 크림색 레이스를 두른 드레스를 입은 캐번디시 부인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어제 오랜만에 따님을 만나러 가는 길이라 하셔서, 소소하지만 선물을 전해 드리고 싶어서요.”
“아니, 어쩌다 그런 생각을…….”
“어제 사람들 앞에서 당황한 저를 다독이고 챙겨 주셨잖아요.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었어요.”
내 대답에 캐번디시 부인이 어제 무도회에서 있던 일을 상기하는지 가만히 입을 다무는 게 보였다.
가면을 벗으라고 요구한 기젤라 부인에게 거절 의사를 밝히고 난 후 사방이 고요해지는 건 삽시간이었다.
그때 캐번디시 부인이 나서며 나를 감싸는 말을 꺼냈다.
‘황실 가면무도회에선 누구도 타의에 의해 가면에 대한 권리를 포기할 수 없습니다. 안 그런가요?’
캐번디시 부인의 말에 모두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며 슬슬 자리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기젤라 부인의 얼굴이 시뻘게지고 있었지만, 캐번디시 부인은 꼿꼿한 자세로 돌아서서 나를 데리고 테이블로 데려가 주스로 목을 축이게 했다.
“아……. 그걸 크게 느끼다니, 이를 어쩌나.”
캐번디시 부인은 그녀가 한 말에 내가 크게 감동해 선물을 가져온 것이라 여기며 조금은 부담스럽다는 듯 미소 지었다.
“이러지 않아도 되는데요, 브륀힐트 공녀.”
“레네트요.”
“그래요, 레네트 공녀.”
“절대 부담 갖진 마세요. 이건 그냥 제 마음이에요.”
나는 혹여나 그녀가 단호하게 거부할까 싶어 서둘러 디저트 상자를 보였다.
베르나르를 비롯하여 하인으로 분한 바른의 제자들도 원단을 꺼내 차례로 섰다.
“세상에…….”
캐번디시 부인이 선물들을 보며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나는 이틈을 파고들어 무리한 부탁인 줄 알지만 민망함을 무릅쓴다는 듯 해맑은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부인. 저도 마침 리트번에 가야 할 일이 있어서 그런데, 동행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보시다시피 제 사용인들도 데인버그에서 함께 온 이들이라 수도를 벗어난 곳에 대해선 길을 잘 알지 못한답니다. 전 오늘 꼭 리트번에 가야 하고요.”
“리트번에요? 아……. 그런…….”
“부탁드려도 될까요? 제 마차로 함께 가시면 더 좋구요.”
캐번디시 부인이 고민할 틈을 주지 않기 위해 다시 한 번 더 간곡하게 되물었다.
그녀는 섣불리 거절을 하지 못한 채 나를 난감하게 바라보다 하늘 한가운데에 뜬 해를 가는 눈으로 올려다봤다.
부인은 밀짚모자를 쓰고 있었지만, 난 햇볕을 가릴 만한 게 없는 상태였다.
“음……. 여긴 길 위이니, 일단 제 마차에 타서 이야기를 다시 하는 게 좋겠군요.”
내가 햇볕에 타고 있는 게 신경 쓰였는지 캐번디시 부인이 주변을 지나가는 사람들을 일별한 후 내게 그녀의 마차에 오르도록 했다.
나는 그녀의 마차 안 실크로 덮인 의자에 앉아 맞은편에 앉는 그녀를 쳐다봤다.
“리트번까지는 따로 하녀를 대동하지 않으시는군요?”
“마부 한 명만 같이 다니는 편입니다.”
“아…….”
바른 자세로 앉아 우아하게 손을 모으는 그녀의 장갑이 희고 아름다웠다.
엘리제 황후를 가까이 모시는 시녀답게 캐번디시 부인은 기품이 넘치고 감정을 절제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만일 공녀와 제가 함께 가게 된다면 공녀의 마차가 아닌 제 마차로 가야 할 텐데. 불편하지 않겠어요?”
그녀가 창문 너머의 사람들을 바라보다 내게 눈길을 돌리며 물었다.
아……. 부인이 내 마차에 바로 타는 걸 거절할지도 모른다고 예상은 했지만, 역시인지라 나는 슬그머니 디저트 상자를 내려다보았다.
“그럼요, 캐번디시 부인.”
어제 캐번디시 부인이 나를 감싸 주고 난 후, 다른 귀부인들이 캐번디시 부인에게 친근하게 대했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황실 가면무도회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기젤라 부인에게 자리를 내어 준 엘리제 황후의 측근이 바로 캐번디시 부인이었다.
모시는 이의 권력이 눈에 띄게 줄어들어서인지 캐번디시를 대하는 귀부인들의 태도도 심드렁하거나 무관심에 가까워 보였다.
그녀는 백작과 함께 다니다 백작이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 한 발 물러서 꼿꼿이 등을 세운 채 서 있었다.
캐번디시 부인은 질문엔 성실히 대답해 주는 편이었지만, 조심스러워하는 행동을 보였고, 자신이 해야 할 말은 분명히 하지만 더 많은 말을 보태는 사람은 아니었다.
함부로 남의 마차로 옮겨 탈 것 같지도 않아 보인다 느낀 내 우려도 정확히 들어맞았다.
뭐, 별수 있으랴. 망나니짓을 해서라도 마차를 옮겨 타게 하는 수밖에.
“부인. 이 디저트는 리트번까지 가는 길이 심심하지 않도록 제가 간식으로 준비한 거예요.”
“둘이 먹기 위해 이렇게 많이 샀다고요?”
“당연하죠.”
“하지만 다섯이 먹어도 넘칠 양이에요, 레네트 공녀.”
“오! 제 이름을 친근하게 불러 주셨네요?”
내가 기쁜 얼굴로 대답하자 캐번디시 부인의 눈이 살짝 커지는 게 보였다.
그녀는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그린 채 나를 바라봤다.
“그건 너무 많아요.”
“하지만 이건 정말 맛있는 디저트라구요. 이것 보세요. 어?”
그 순간 내 손에서 빠져나간 디저트 상자가 쏟아지고 두꺼운 크림이 잔뜩 올라간 컵케이크들이 의자 위로 떨어졌다.
질퍽한 크림이 바닥에 척 떨어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떡해!”
오래됐지만 깔끔하게 관리된 의자도 디저트들로 범벅이 됐다.
흐윽, 죄송해요, 캐번디시 부인.
캐번디시 가문의 문장이 새겨진 마차가 아닌 제 마차로 옮겨 타기 위해선 이 방법밖에 없었어요.
나는 당황한 사람처럼 눈이 휘둥그레진 캐번디시 부인을 바라봤다.
“이 일을…… 어쩌죠?”
“아니, 어떻게, 이걸, 어쩌, 어쩌다…….”
너무 기막힌 나머지 말조차 제대로 잇지 못하는 캐번디시 부인을 보며, 나는 손을 모아 싹싹 빌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었지만 빨리빨리 다음 계획을 실행해야만 했다.
“부인. 정말 죄송해요.”
“레네트 공녀. 설마 지금 방금 밟은 게 마카롱인가요?”
“꺄, 정말 죄송해요.”
나는 당황하여 몸을 가만히 둘 수 없는 사람처럼 사방에 마카롱과 진득한 꿀이 겹겹이 들어간 말렌카, 레이어 케이크 등을 구두로 으깼다.
이제 이곳은 도저히 사람이 앉아 갈 수 없는 곳이 되었다.
“우, 움직이지 말아요. 공녀.”
“캐번디시 부인. 이를 어쩌죠? 제가 다 보상하겠습니다. 정말 죄송해요.”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니 사과는 그만하세요. 공녀의 드레스도 엉망이군요.”
“전 괜찮아요. 잘 보이지도 않는걸요.”
내 대답이 황당했는지 그녀가 나를 한 번 쳐다보고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 마차를 타고 갈 수 없다는 걸 인지한 듯한 망연한 얼굴이었다.
나는 재빨리 입을 열었다.
“캐번디시 부인. 죄송하지만 이 마차로는 이동이 어려울 것 같아요. 내키지 않으시더라도 제 마차로 가시는 게 어떻겠어요? 따님도 무척 기다리고 계실 거예요.”
“집에 있는 다른 마차를 타고 가면 됩니다.”
“아, 그렇네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열린 창문에 손을 흔들었다.
부티크에서 나올 때 베르나르에게 혹시나 내가 손을 마구 흔들면 잠시만 캐번디시 가의 마차들이 움직이지 못하게 해 달라 부탁했기 때문이었다.
마력을 쓰는 건 위험한 일이지만, 아주 잠깐 쓰는 건 감지될 확률이 낮으니 해 볼 만했다.
“남은 마차들이 모두 정비가 필요한 것으로 보입니다, 마님.”
정원을 가로질러 다녀온 마부가 다가와 말했다.
나는 이때다 싶어 빠르게 제안했다.
“만일 제 마차를 타고 가는 게, 함께 갈 제 사용인들이 못 미더워 그러시는 거라면. 어, 그래요. 이건 어떠세요? 부인의 마부만 데리고 가는 걸로요. 제 사람들은 함께 가지 않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