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n obsessed tyrant and a sleeping cat every night RAW novel - Chapter (88)
Chapter 88
반지다!
이리저리 만져 봐도 반지가 틀림없었다.
고개를 숙여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기젤라 부인이 반대편에 앉아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일단 발견하지 못한 척해야겠다.
원작에서 바네사에겐 브로치로 도둑 누명을 씌워 머리를 반쯤 뽑아 놓더니 지금의 나에겐 반지를 넣어 놓을 줄이야.
아니 그렇게 예쁜 얼굴로 왜 만날 이런 나쁜 짓만 골라서 하는 거예요, 예?!
“데인버그에서 지내다 여기에 오니 어때요. 힘든 점은 없나요?”
원작의 루비 브로치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크고 비싼 알이 느껴지는 것 같은데, 이 정도면 머리채를 잡는 것만으로는 끝내지 않겠다는 심산일까?
머리채를 잡다 못해 내 뺨을 후려치는 기젤라 부인의 모습이 상상돼 나도 모르게 그녀의 손을 바라봤다.
“공녀……?”
“네?”
기젤라 부인의 친근한 어조에 나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바짝 마른 입술을 혀로 훑었다.
“어…… 방금 뭐라고 하셨죠? 초콜릿이 맛있어서 넋을 놓고 말았어요.”
“궁전에 머물며 어려운 점이 없나 물었어요.”
“네, 저는…….”
지금 이 반지를 꺼내 놓으면 저 여자는 분명 사근사근하게 웃으며 어물쩍 넘어갈 것이다. 그리고 이 방에 있는 나를 어떻게든 엮어 곤경에 빠뜨리려 할 것이다.
모르는 걸 당하는 것보다야 아는 걸 피하는 게 낫지.
나는 찻잔을 들어 올리곤 최대한 웃으며 말을 이으려 노력했다.
“……궁전이 낯설긴 하지만 잠깐 보더라도 신기한 게 많아 즐거워요. 발이 다 나으면 성을 더 많이 구경 다니려구요.”
“그렇군요. 이곳이 데인버그와는 많이 다른가요?”
“음, 아무래도, 그렇죠.”
“브륀힐트 공작께선 이곳에 전혀 올 생각이 없으시고요?”
아까부터 왜 이렇게 추궁하는 것처럼 느껴지지?
나는 차를 마시는 시늉을 하며 잠시 대답을 유보했다.
“……글쎄요. 제가 아버지의 심중까지 파악하기는 어려워요.”
기젤라 부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똑바로 응시한 채 초콜릿을 입에 넣어 천천히 삼켰다.
그녀의 눈빛이 새삼 매섭게 빛난다고 느끼는데, 기젤라 부인이 손을 들어 잠시 귀걸이를 매만졌다.
“아까 구경하고 싶다고 했죠? 폐하의 손님인데다, 전하의 특별한 지인이니, 나 역시 환영해 드려야죠. 좀 돌아보겠어요?”
반지를 내 주머니에 몰래 넣어 놓고, 이번엔 방을 돌아다니라고?
내가 이 방을 돌아다니다 반지를 발견해 빼돌렸다는 빤한 스토리가 머릿속에 동시에 그려졌다.
하지만 내겐 그녀의 흑마법약이나 해독제 행방을 찾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아니던가?
“그럼 잠시 구경하겠습니다.”
나는 기젤라 부인을 따라 일어서며 방긋 웃어 보였다.
세상에. 이렇게 큰 드레스룸은 난생처음 본다.
떡 벌어지는 입을 억지로 다무느라 혼이 날 지경이었다.
황제의 총애를 받는 수석 정부답게 기젤라 부인이 소유한 드레스와 보석은 한눈에 파악하기 어려울 만큼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옷장마다 화려한 다이아몬드, 사파이어, 진주가 박힌 드레스가 그득하게 걸려 있는 데에다, 유리 장식장 안엔 눈부신 보석이 즐비했다.
또 드레스룸 한가운데에 엔틱한 디자인의 거대한 삼면경이 설치돼 있고, 벽면엔 기다란 화장대가 배치돼 있었다.
남몰래 킁킁거려 보니, 흑마법약은 저기 옷장에 어딘가에 있는 것 같았다.
“공녀도 드레스에 관심이 많겠죠? 듣자 하니 공녀의 마차에 드레스가 든 트렁크가 꽤나 많았다던데.”
“아…… 하하, 네.”
내 드레스들은 전부 킬리언이 선물해 준 것들이지만, 지금 여기에서 굳이 부정할 필요는 없으니까.
나는 드레스에 관심이 많은 사람처럼 고개를 끄덕이며 여러 개의 옷장에 걸린 드레스들을 보는 시늉을 했다.
이 옷장들 중 흑마법약을 어디에 숨겼지? 해독제도 그 옆에 있으면 좋을 텐데.
“어머나, 내 정신 좀 봐.”
한참 동안 기젤라 부인의 눈을 의식해 옷장들을 지나쳐 보석도 차근차근 구경하는데, 갑자기 기젤라 부인이 이마를 짚으며 난감한 기색을 내비쳤다.
“지시할 게 있었는데 깜빡했지 뭐예요. 천천히 보고 있어요. 금방 돌아올 테니까.”
“네? 저도 그럼 방으로 돌아…….”
“금방이면 돼요. 궁내부에 관한 일인데, 말한다는 걸 깜빡했어. 여기 있어요. 좀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요.”
기젤라 부인은 내 양어깨를 다독이며 다정하게 웃어 준 후 티룸에 연결된 문을 통해 나갔다.
아니 이렇게 날 혼자 여기에 두고 가면…….
“허어, 이건 원작이랑 너무 똑같잖아요오.”
사람은 정말 쉽게 변하지 않나 보구나. 한 길로만 쭈욱 가시네.
나는 닫힌 문을 바라보다 재빨리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와아……!”
꺼내 보니 한눈에 보아도 가격이 엄청날 것 같은 반지가 손에 딸려 나왔다.
거대한 핑크 다이아몬드에 작은 투명한 다이아몬드가 촘촘히 둘러싸고 있고, 링에는 나의 캐서린에게, 라는 달콤한 메시지가 각인돼 있었다.
누가 보아도, 어디로 보아도 기젤라 부인의 것이었으며, 내 주머니에서 나왔다면 거대한 보석에 눈이 멀어 훔쳤을 거라 여겨질 법한 진귀한 물건이었다.
“허어……! 무서운 여자.”
나는 반지를 어디에 놓아둬야 하나 주변을 휘휘 둘러봤다.
“저 거울 밑이 좋겠어.”
나는 삼면경 밑, 그늘진 데에 반지를 내려놓고 후다닥 일어섰다.
“자, 이제 할 일을 해야지.”
흑마법약과 해독제를 찾는 거다.
나는 드레스를 탁탁 털며 옷장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다른 주머니에 뭘 또 넣진 않았겠지?”
혹시 모르니 다른 한 손으론 주머니도 무사한지 살피면서.
“어?”
다음 옷장 드레스들 사이에 이리저리 고개를 내미는 찰나 밑에서 희미한 냄새가 감지됐다.
냄새를 따라 옷장 밑을 보기 위해 몸을 숙이다, 문득 내 모습이 마약 탐지하는 사냥개와 뭐가 다를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냄새를 따라 행거 아래 서랍 칸을 잡아당겼다.
“찾……았다……!?”
뭐야. 이렇게 허무하게 서랍 칸에 보관하고 있었다고?
흑마법약 가루는 내 상상을 벗어나 기가 막힐 만큼 아름답게 반짝이는 가루의 형태였다.
소분된 영롱한 빛깔의 가루들은 모슬린 천에 작은 보자기처럼 둘러싸여 마치 티백처럼 정갈하게 놓여 있었다.
“어떻게 이렇게 허술하게……. 잠깐만……. 이리나가 위페르의 돈 많은 귀족들은 옷장에 산호를 둔다고 했었는데……?”
그러고 보니 킬리언이 내게 드레스들을 선물해 줄 때 붉은색 산호를 함께 보냈었고, 용도를 몰라 의아해하는 나에게 이리나가 설명해 준 기억이 떠올랐다.
보석 중엔 산호가 습기가 차지 않도록 습도를 조절하는 유일한 것이라는 거다.
나는 설마 하는 생각에 사로잡혀 다른 옷장들의 서랍도 모두 열어보았다.
“하!”
서랍에는 모두 입자가 굵은 가루로 만들어진 산호 가루가 모슬린 천에 담겨 있었는데, 흑마법약과 똑같은 색을 띠고 있었다.
마치 하얀색 산호를 갈아 놓은 것 같은 형태였다.
다른 귀족들은 산호를 통째로 넣는다 들었지만, 기젤라 부인은 흑마법약을 산호처럼 위장하기 위해 모두 가루로 만드는 법을 택했던 모양이었다.
이렇게 한다면 사용인들이 청소를 하더라도 당연히 이 흑마법약이 산호 가루인 줄 알고 지나쳤을 것이다.
“그럼 해독제는?”
그건 어디에 있는 거지?
기젤라 부인이 언제 돌아올지 몰라 시간이 없어 입이 바짝 말랐다.
거세게 심장이 뛰는 바람에 발을 동동 구르며 주변을 둘러보며 감지해 보려 하지만, 해독제를 찾을 길이 쉬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도 일단 바른이 해독제를 연구하기 위해선 이 가루가 먼저 확보돼야 한다고 했으니까.
“이거라도 챙기자.”
나는 모슬린 자루 하나를 집어 들고 다른 서랍에서 산호 가루 자루를 가져다 빈자리를 채워 놓은 후 서랍들을 모두 닫았다.
“……그런데 이걸 어떻게 들고 나가?”
반지 도둑으로 몰릴 참인데, 옷에 숨겨 가는 건 들킬 확률이 높았다.
작은 주머니 크기의 자루를 든 채 자리에서 일어나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마음이 급하다 보니 이젠 목이 타들어 가는 기분이 들었다.
“하아, 이걸 어떻게 해? 응?”
내가 다시 여길 들어와서 가져갈 수 있을까?
내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내가 보는 데에서 여길 샅샅이 뒤져 달라 요구해야 하니까, 여기 어디엔가 놓아두면…….
아니다, 사용인들이 이 방을 뒤지게 할 때 내가 들어와 관여하면 오히려 역풍을 맞을 것이다.
“그렇다고 저 문밖 티룸에 놓고 갈 수도 없고……. 헉!”
고민하며 종종걸음으로 돌아다니는데, 갑자기 섬뜩한 기운이 온몸에 찬물처럼 끼얹어졌다.
아까 내가 티룸에서 침실 방향부터 드레스룸이 있는 곳까지 빙 돌 때 어렴풋이 느꼈던 그 스산함이었다!
이 자리는 보석……함들이 있을 뿐인데?
뒤를 돌아보니 천장까지 이어진 개방된 서랍장에 보석함들이 빠짐없이 꽂혀 있었다.
이상하게 눈에 띄는 보석함에 손을 뻗는 찰나,
“흐아악……!”
끔찍하게 기분 나쁜 불길함이 내 입을 틀어막고 뼈가 우그러지듯 허리가 꺾였다.
“우, 왜 이래?”
가까스로 몸을 세워 눈에 띄는 보석함에 손을 대기 위해 다시 팔을 뻗지만…….
“으윽.”
몸이 먼저 반응하듯 심장이 미친 듯이 동요하고, 머리가 압박받는 것처럼 지끈지끈 아프기 시작해 가슴이 꽉 옥죄였다.
나도 모르게 가슴을 움켜쥐고 숨을 쉬기 위해 저절로 입을 크게 벌렸지만 소용은 없었다.
차갑게 식은 손끝이 저릿하고 발이 쉬이 떨어지지 않아 마치 무거운 바윗덩이를 발목에 묶어 놓은 것만 같았다.
흑마법약을 마주한다고 해도 이런 적은 없었는데?
“흐으으윽.”
나는 다시 허리를 간신히 들고 엉금엉금 기어오르듯 서랍장 하나하나를 짚으며 몸을 세웠다.
방금 눈에 띄었던 보석함이 놓인 선반에 손을 올리기 무섭게 다시 한번 나를 밀어내는 무지막지한 힘이 느껴졌다.
“아으으으.”
범상치 않은 보석함인 게 분명하다는 생각에 지독한 두통과 함께 냅다 손을 뻗는 순간 탁, 하고 내 손에 달걀모양의 보석함이 걸렸다.
나는 그것을 잡아 내려 눈앞에 마주했다.
붉은색 원목에 금이 세공돼 있고, 크리스털이 촘촘히 박힌 보석함이었다.
지독한 통증이 느껴져 이 물건을 당장 내팽개치고 싶었지만 이런 일은 쉽게 일어날 수 없는 일이기에 이를 악물었다.
여기까지 온 이상, 확인할 수 있는 건 뭐든 해야 하지 않겠는가.
마침내 기어이 보석함의 아귀를 벌리자 걷잡을 수 없는 냉기가 덮쳐 왔다.
몸이 덜덜 떨리는 와중에 겨우 고개를 들어 보석함 안에 든 것을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