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ark Knight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212)
결전
* * *
루드비히는 목검으로 흑기사를 능숙히 상대했다.
이 앙상한 스켈레톤의 검술은 하늘에 닿았다는 표현에 어울렸다.
저 거대한 덩치의 흑기사가 뼈다귀 하나 제압하지 못하는 건 꽤나 우스꽝스러운 광경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공격이 몇 번이고 가로막히자, 흑기사는 분노했다.
“그어어!”
흑기사는 검을 놓았다. 검술로는 상대가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
대신 자기가 유리한 부분을 밀고 나갔다.
힘과 체격.
루드비히는 저돌적인 돌진을 보고 방어 자세를 하다가 돌연. 자세를 풀어버렸다.
그는 멍하니 서서 흑기사를 보았다.
이윽고.
흑기사의 손이 스켈레톤의 두개골을 부서트려 그 혼과 생기를 먹어 치웠다.
당연히 스켈레톤에게서 얻을 수 있는 양은 극히 적다.
도리어 갈증만 돋구었다.
흑기사는 성을 내며 뼈다귀를 발로 밟아 으스러트린 뒤, 짐승처럼 손과 발을 움직여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달려들었다.
“크윽! 제발 정신 좀 차리세요!”
에스델이 이를 악물고 방어벽을 전개했다.
흑기사는 방어벽을 미친 듯이 두드리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빛의 방어벽에 닿을 때마다 흑기사의 주먹도 재가 되어 녹아내렸지만, 그는 그런 것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다.
콰작!
이윽고, 방어벽이 부서졌다.
프라우가 에스델을 지키기 위해 달려들었지만, 흑기사가 어깨로 힘껏 들이받아 그대로 날려 보냈다.
“컥!”
프라우는 갈비뼈가 부러지는 감각을 느꼈다. 전투가 불가능할 정도의 부상.
군단장 베른바르트와 황실 기사단 역시 달려들었지만 같은 꼴을 맞이했다.
드디어 데일을 상대로 한 방어선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지금껏 어찌어찌 균형을 유지해왔지만, 균형은 깨졌다.
데일이 아군을 죽이지 않고, 아군이 데일을 죽이지 않는.
그 승리 공식이 점점 불가능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는 누군가 죽을 수밖에 없다.
동료들은 그리 느꼈다.
그리고 흑기사는 기계적이고 무감정하게 에스델에게 걸어갔다.
자신에게 가장 위협적인, 밤의 숙적인 빛의 사제에게로.
하켄이 그런 에스델의 앞에 섰다.
두려움을 드러낸 얼굴로, 간절히 말했다.
“경! 데일 경! 정신 차려요! 접니다 하켄! 여기는 사제 양반이고, 저기는 공주님! 다 아는 얼굴이잖아요! 지금은 훼까닥 했어도 그 안에 원래 모습이 있는 거 압니다! 같이 예전처럼 모험도 하고, 밥도 먹고, 돈도 벌고 해야지요. 예? 그러니…… 제발 좀 정신 차리세요!”
그러는 흑기사는 전진한다.
양손에 무기를 든 채, 동료를 죽이기 위해.
하켄은 최후를 직감했다.
* * *
데일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악마들을 보며 자세를 잡았다.
늘 애용하던 마검은 이곳에 없지만, 그래도 싸워야 한다.
“캬아아아!”
적들이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시작은 하시나라는 이름의 악마 하수인이다.
녀석이 문어처럼 몸을 부풀려 데일을 깔아뭉개려 했다.
데일이 번개처럼 주먹을 앞으로 뻗었다.
강력한 충격에 하시나의 부푼 몸이 공처럼 튕겨나갔다.
데일은 쉬지 않고 다음에 다가오던 아르구르의 머리를 쥐고 박살을 냈다.
거대한 괴조는 머리가 부서지든 말든 데일을 짓뭉개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
데일은 아르구르의 몸을 저 멀리 던져버렸다.
두르핀이 몸을 둥글게 말아 맹렬히 굴러왔다.
탕!
땅을 박차 크게 뛰어오른 데일은, 그대로 두르핀의 몸을 다리로 내리찍었다.
두르핀의 몸이 그대로 바닥에 파묻혔다.
데일은 가뿐히 자리에 내려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겨우 이 정도인가? 패배자들?”
그래. 이들은 전부 데일에게 패배한 적들의 찌꺼기일 뿐.
이미 꺾어본 상대이기에 어렵지 않다.
문제는 그 숫자.
적들의 숫자가 너무 많다.
게다가 데일이 아무리 적들을 처치해도, 그 숫자가 줄어들지 않다.
지금도 보라.
분명 머리를 뭉개놓았을 아르구르가 다시 거대한 날개를 펼치며 달려들고 있었다.
“너는 이곳에서 나가지 못한다! 우리와 영원히 놀아보자꾸나!”
데일은 날아오는 아르구르와 부딪혀 바닥을 크게 뒹굴었다.
그는 괴조의 몸통에 주먹을 박아넣으며 생각했다.
‘좋지 않은데.’
데일이 여기서 투닥거리는 동안.
지금도 현실에서는 싸움이 한창일 것이다.
데일은 황혼이 무슨 의도로 자신을 이런 꼴로 만들었는지 알았다.
황혼은 자신이 동료를 죽이길 원한다.
왜인지는 모른다.
황혼은 자신이 동료와 함께하는걸. 그리고 인간의 마음을 유지하는 걸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
황혼은 데일의 신념을 파괴하길 원했다.
‘지금쯤 내가 날뛰고 있을 거다.’
동료들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차라리 자신을 죽이려 한다면 상황은 낫다.
하지만 그러지 않을 것이다.
동료들은 데일을 죽이지 않고 제압하려 할 것이다.
어리석게도.
너무 늦기 전에 돌아가야 한다.
데일은 주먹을 쥐고 싸웠다.
싸우고, 싸우고, 또 싸웠다.
정말 필사적으로 싸웠다.
하지만 적은 끊임없이 나타났다.
벗어나려 할수록 더욱 맹렬히 달려들었다.
저들은 데일을 절대 이곳에서 벗어나게 할 생각이 없었다.
이윽고, 악마들이 몰려들어 데일을 짓뭉갰다.
악마와 위에 악마가 올라타 그 무게를 더했다.
데일은 거센 압력에 옴짝달싹 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용력이 강해도 한계는 있는 법이니.
데일은 자신을 짓누르는 무게를 느끼며 생각했다.
‘그래. 어쩌면 이것 역시 업보일수도.’
다른 자의 혼을 취해 힘을 기른다는 건, 데일의 혼에 그들의 혼이 섞인다는 것.
힘을 키우기 위해 악마의 혼을 받아들인 대가를 치를 시간이 왔을 뿐일지도 모른다.
“…….”
그렇게 악마들에게 깔려 옴싹달싹 못하던 데일은 돌연, 눈썹을 찌푸렸다.
대체 어디서 튀어나온 것일까.
눈앞에서 웬 스켈레톤이 자신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너는?”
루드비히는 데일을 무심히 쳐다보더니, 목검을 가슴까지 끌어당겼다가, 힘껏 내질렀다.
루드비히가 늘 반복하던 동작 중 세 번째.
찌르기였다.
루드비히가 말했다.
“삼백만 번.”
삼백만 번 찌르기 연습을 하라는 소리였다.
데일은 어이없는 심정으로 말했다.
“무슨 지금 삼백만번을…… 그보다 여긴 어떻게 들어온 거야.”
“삼백만 번.”
“그러니 지금으로선 무리라고.”
루드비히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는 무언가를 골몰히 고민하더니, 데일에게 천천히 다가와 그 앙상한 손바닥을 이마에 갖다 댔다.
“무슨 짓을…….”
이윽고. 루드비히의 몸이 입자로 흩어지더니 이내 데일의 이마 속으로 빨려 들어왔다.
그와 동시에 루드비히의 모든 기억과 그가 쌓아온 모든 기술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검술의 극의.
비운의 천재 검사가 마침내 완성해낸 검의 끝.
그는 검을 완성하였으되, 이 검술을 감당하기에 뼈다귀 몸은 너무 나약했으니, 그 대신 검을 휘둘러줄 이를 찾아냈다.
그게 데일이다.
데일은 황홀한 감각에 멍하니 앞을 주시했다.
스켈레톤은 이제 온데간데없다.
루드비히가 이곳에 있었다는 흔적은 덩그러니 남은 목검 한 자루뿐.
데일은 홀린 듯이 목검을 쥐었다.
그 단단하고 묵직한 감촉을 잠시 느꼈다.
검을 쥐자 솟아나는 건 용기.
데일은 자신을 짓누르는 악마들에게 목검을 가볍게 휘둘렀다.
사아악!
보이지 않는 칼날에라도 베인 듯. 악마들의 몸이 반으로 베였다.
기사단장과 아일라가 보여주었던 그 기술.
데일은 신기한 기분으로 목검을 내려다보다, 이내 손에 힘을 주었다.
“이제 나갈 시간이야.”
데일은 가볍게 가볍게 검을 휘둘렀다.
미친 듯이 달려들던 악마가 연신 베여나갔다.
데일은 보육원의 입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분명 저기가 출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노옴! 절대 나가게 놔두지 않겠다!”
“너는 평생 우리와 함께할 것이다!”
“대가를 치러라! 치르란 말이다!”
악마들은 갑작스러운 데일의 변화에 가만있지 않았다.
그 숫자가 거의 무한에 가깝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아무리 베고 베어도 그 자리에 다른 악마가 들어찼다.
“윽.”
적의 파도에 데일은 휩쓸릴 것 같았다.
안 된다.
혼자서는 저들을 뚫고 헤쳐 나갈 수가 없다.
악마 두르핀이 굴러왔다.
그의 몸이 새빨갛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저번처럼 자폭을 해, 데일에게 큰 타격을 줄 생각이었다.
이대로는 위험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뒤로 물러나는 것도 놈들이 원하는 일이다.
데일이 판단을 내리지 못해 갈등하던 그때였다.
쩌적!
데일의 앞에 강한 냉기가 불더니 그대로 두르핀을 얼려버렸다.
한기를 풀풀 흘리는 흑기사가 데일의 옆으로 걸어와 마주 섰다.
“돕겠다.”
“……케인?”
선배 흑기사인 케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옆에 또 다른 기사가 함께 섰다.
“마음에는 안 들지만, 기사단을 위해서라면. 이번만 돕겠다 언데드.”
“크리스틴.”
크리스틴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저벅저벅 앞서나갔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계속 벌어지자, 데일은 머리를 긁적였다.
그런 데일의 어깨에 케인이 손을 올렸다.
“사람의 마음에는 선한 늑대와 악한 늑대가 다투고 있지. 그중에서 이기는 쪽은…….”
데일이 반사적으로 답했다.
“먹이를 주는 쪽.”
케인이 미소 지었다.
데일은 놀랐다.
흑기사가 이리 따뜻한 표정을 짓는 건 놀라운 일이었다.
“가자.”
세 기사가 악마들을 뚫고 달렸다.
데일은 쉼 없이 땅을 박차며 언제나 조부가 강조했던 조언을 떠올렸다.
세상에는 개새끼들이 넘쳐나지만, 너만은 사람의 도리를 따라야 한다는 말.
선한 행동이든 악한 행동이든 언젠가는 반드시 되돌아온다는 장담.
그리고. 데일은 보았다.
자신이 해온 모든 일이 되돌아오는 것을.
지금껏 그가 발버둥치고, 때로는 누군가에게 미련하다며 비웃음 받으며 지키려 했던 것들이 되돌아온다.
“……헛되지 않았던 건가.”
출구에 가까워질수록 적의 저항은 거세진다.
하지만 크리스틴과 케인의 필사적인 노력 덕분에 데일은 계속해서 나아갈 수 있었다.
그리고 데일은 또 하나의 도움을 느꼈다.
저 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악마를 막아주는 존재가 하나 있었다.
언젠가 한 번 보았던 사내.
얼굴 없는 기사, 아렌.
이제야 데일은 알 수 있다.
여태껏 그가 자신의 마음 속에서 많은 도움이 되어왔다는 것을.
악마들의 틈에서 손을 흔드는 게 보인다.
잘 부탁한다. 분명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좋아. 이제 이 앞으로 가면 돼.”
“고맙다.”
“뭘. 내가 입은 은혜에 비하면 이 정도야.”
기어코 출구까지 길을 뚫은 케인이 말했다.
데일은 출구에 몸을 밀어 넣기 전,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보육원. 조부와 아이들. 그가 행복했고, 사랑했던 모든 것들이 그를 배웅하고 있었다.
이제 이 출구를 나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매일 밤 꿈이란 이유로 추억 속에 잠겼던 건 결국에는 현실도피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행복하던 그 시절로 돌아가야 한다는 갈망. 가족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강박.
하지만 이제 데일을 얽매는 건 아무것도 없다.
이제 과거를 되새김질하는 게 아닌, 아닌 미래를 보기로 결심했으니까.
조부와 눈이 마주쳤다.
조부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건 진짜 조부가 아니다. 데일의 기억이 만들어내었을 환상.
하지만 뭐 어떤가.
데일도 마주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출구를 향해 몸을 밀어넣었다.
“가지마아아!!”
“이리와!”
마지막까지 끈덕지게 따라오던 악마들이 데일을 붙잡으려 했지만, 이미 데일은 이 꿈의 공간에서 사라진 뒤였다.
* * *
황혼은 연신 미소를 지우지 않고 모든 과정을 지켜보았다.
과연 어떻게 될까.
데일이 모든 동료들을 죽일 것인가.
동료들이 데일을 결국 죽일 것인가.
데일이 죽는다면 그 영혼을 거두면 되고, 데일이 죽인다면 다시 정신을 일깨워 그 표정을 보리라.
어느 쪽이든 황혼에게는 이 모든 게 너무나 즐거운 연극일 뿐이었다.
“아. 이제 마무리에 접어드는군.”
이 즐거운 연극도 드디어 하이라이트다.
결국. 데일이 자신의 손으로 모든 걸 끝내려 하고 있다.
하켄이 힘겹게 버티고 있지만 그뿐.
누가 보아도 저 용병은 한계에 다다랐다.
그리고, 데일이 검을 번쩍 들었다.
“좋아. 마지막이야. 그대로 머리를 베!”
검이 빛을 반사해 주황빛으로 물들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데일은 검을 내리치지 않았다.
도리어 투구 속에서 일렁이던 안광이 점점 가라앉았다.
데일은 검을 툭 내려놓고, 눈앞의 하켄에게 말했다.
“고생 많았다. 하켄.”
“……예? 설마?”
누군가는 놀라고, 누군가는 기뻐하며, 황혼은 인상을 구겼다.
마침내 데일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