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ark Knight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26)
형제단
* * *
데일은 여관 1층에서 나탈리를 기다렸다. 나탈리는 밤 내내 돌아오지 않았다.
그녀가 돌아온 건 아침이었다.
이른 아침.
데일은 코를 자극하는 피 냄새에 여관의 문을 열었다. 그곳에 나탈리가 누워 있었다. 마치 잠든 것처럼.
“…….”
숨은 쉬지 않았다. 몸은 싸늘하다.
얼굴을 젖혀 보니 표정은 고통으로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함께 나온 카일라가 그 모습에 입을 틀어막았다.
“세, 세상에…….”
이건 데일을 향한 노골적이면서도 잔인한 경고였다.
피 보기 싫으면 더 들쑤시고 다니지 말라는 경고.
데일은 말없이 나탈리를 내려다 보았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발랄한 미소를 짓던.
겁이 많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용감히 찾으러 다니던 여인을. 속은 현숙하지만, 겉모습은 영락없이 아이 같던 노움을 내려다보았다.
아이.
그래, 데일에게 레온과 나탈리는 언제나 아이였다.
그 아이가 싸늘하게 되돌아왔다. 데일처럼 심장이 뛰지 않는다.
누구에게든 넘지 말아야 할 선은 있다. 놈들은 그 선을 넘었다.
“…….”
데일은 문득, 나탈리가 한쪽 주먹을 꼭 쥐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데일은 조심스레 나탈리의 주먹을 폈다.
그 안에 있는 건 깃펜이다.
나탈리는 데일이 깃펜을 부러트려, 공부를 못한다는 얘기를 엿들은 모양이다.
그래서 그녀 나름의 보답을 하고자 이렇게…….
데일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카일라가 조심스레 이름을 불렀다.
“데일 경?”
“카일라. 나탈리를 교단에 데려가줄 수 있겠나? 돈을 줄 테니 필요하다면 도와줄 사람을 불러라.”
카일라는 억지로 밝게 말했다.
“괘, 괜찮아요! 제가 잘 데려다줄게요.”
“부탁한다.”
“그. 데일 경도 함께 가시면…….”
“나는 해야 할 일이 있다. 미안하다.”
카일라는 굳었다.
지금 미안하다고 말한 것인가?
이 기사의 입에서 사과의 말이 나오는 건 흔한 일이 아니다.
데일이 평소와 다르다는 걸 느낀 카일라는 뭐라 다 말을 붙이려 했다. 하지만 결국 데일을 붙잡지 못했다.
“……몸 조심하세요.”
할 수 있는 건 안전을 기원하는 말뿐. 고개를 끄덕인 데일은 성큼성큼 걸어나갔다.
데일은 전신의 감각을 일깨웠다. 능력의 강화로 감각이 예민해진 참이다.
데일은 바닥에 남은 미약한 피 냄새를 감지해냈다.
놈들은 대담하게도 성 밖에서 이곳까지 시체를 끌고 들어왔다.
대체 성문은 어떻게 통과한 걸까. 경비병을 매수하기라도 한 걸까?
상관없다. 데일은 그저 흔적이 끊기지 않았음에 감사할 뿐이다.
이 흔적을 찾아가면 결국에는 놈들에게 닿을 테니.
데일은 서문을 나가 구불구불한 골목에 발을 들였다.
이 지역은 사방에서 피, 오물, 쓰레기 냄새 따위가 난다. 시궁창이라는 단어가 이보다 더 잘 어울릴 수 없는 지역.
다행히 그런 곳을 오래 헤맬 필요는 없었다.
“이봐. 기사 나으리. 그 정도 경고했으면 알아서 몸을 사리셔야지.”
골목 골목에서 험상궂은 연놈들이 튀어나와 데일을 넓게 포위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데일은 일부러 포위하게 내버려 두었다.
데일은 사슬 갑옷과 투구를 꼼꼼히 차려입은 사내를 쳐다보았다. 뒷골목 건달치고는 무장 상태가 훌륭했다.
데일이 물었다.
“너희들이 나탈리를 죽였나.”
“나탈리? 아. 그 노움 말하는 건가?”
사내가 피식 웃더니, 침을 퉤 뱉으며 말했다.
“그러게 적당히 하셨어야지. 왜 내 사업을 방해하고 죄 없는 우리 애들을 쥐어 패고 그랬어.”
“너희 애?”
“설마 기억 안 나는 거야? 취한 노새 여관에서 크게 한바탕 했다며.”
데일은 기억을 더듬다, 그제야 상대의 정체를 짐작했다.
“지미……. 지미 패거리?”
“그래. 지미 패거리의 지미가 바로 나다.”
“도적 길드의 똘마니였군.”
“흐흐. 똘마니라는 표현은 좀 그렇군. 사업 동료라고 해주지 않겠어?”
지미가 재수 없게 웃었다. 그러자
다른 패거리도 따라 웃었다. 웃지 않는 놈들도 있었는데, 놈들은 검은 뱀 형제단의 일원으로 보였다.
데일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아까부터 차가운 심장 속에서 요동치는 이 느낌은 뭘까.
나탈리와 레온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 아니. 그들의 죽음은 데일의 탓이 아니다.
온전히 인간이었을 적에는 스스로를 자책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렇다면…….
‘분노.’
그래 분노. 데일은 지금 분노하고 있다. 그리고 눈앞에는 이 분노를 풀 상대들이 있었다.
데일은 마지막으로 마음속에 물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드물게도. 마음속 의견이 일치했다.
전부 죽여.
그들이 벌인 짓을 그대로 갚아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분노는 사그라들지 않을 것이다.
데일이 검을 뽑았다.
잠시 인간 흉내를 그만둘 때다.
* * *
이레네는 급하게 세워진 도시다.
악마에게 맞서기 위해 그 방어력만큼은 발군이지만, 행정적 체계나 시스템은 완벽하지 않았다.
더불어 이레네의 규모는 너무나 거대하다. 전성기 제국의 수도에 비교해도 밀리지 않을 정도다.
그리고 사람이 많다는 건 그만큼 다스리기도 어렵다는 뜻이다.
설상가상으로 동부 전선에서는 악마와의 전쟁이 한창이다.
황제는 전쟁이 잘 수행되도록, 물자와 인력을 차질 없이 보급해주어야 한다.
그러는 와중에도 틈틈이 전선의 장군들을 견제해야 한다.
지금의 전쟁에는 너무나 많은 힘이 쏠리고 있다. 인류의 명운을 건 전쟁이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전쟁이 끝난 이후다.
반쯤 우스갯소리로, 황제가 보유한 병사보다 전선의 장군 하나하나가 부리는 병사가 더 많다는 얘기도 있다.
전쟁이 끝나면 장군들이 순순히 군대를 해산할까?
수십 년 이어진 전쟁으로 단련된 베테랑 군인들을?
황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언제나 전선의 분위기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도시 운영과 전선 보급, 그리고 사령관들의 견제까지.
아무리 초인적인 황제라도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업무다.
그래서 황제는 도시를 구역별로 나누었고, 구역의 운영을 다른 이들에게 위임했다.
2, 3구역은 믿을만한 귀족에게. 외곽구역은 평의회를 세워 통치를 맡겼다.
외곽구역에서 영향력 있는 7명으로 구성된 평의회.
재판과 상업, 징수와 치안 유지를 모두 담당하는 평의회의 위상은 적어도 외곽구역에서는 드높기 그지없다.
그런 평의회의 높으신 분들이 지금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회의를 주최한 가란드가 이마의 땀을 닦으며 말했다.
“제가 준비한 보고서는 이미 읽어보셨겠지만, 다시 한번 정리하겠습니다. 이레네의 인근에서 악마의 하수인이 나타났습니다. 여러분도 들어보았을 이름입니다. 아르구르의 하수인, 하시나.”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더 설명하라는 무언의 표시였다.
주위를 한번 둘러본 가란드가 이어 말했다.
“다행히 저희 길드 소속 용병이 하시나를 처단하는 데에 성공해 더 큰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가만히 듣고 있던 누군가가 가란드의 말을 끊었다.
“말을 정정해주시지요. 그는 엄연히 저희 쪽 사람입니다. 용병 길드와는 잠시 같이하는 것뿐이지요. 그를 용병이라 소개하는 건 큰 무례라고 생각하지 않으시나요?”
밤의 신전의 사제장. 에리얼이 입가에 미소를 그리며 말했다.
하지만 그 목소리에는 조금의 온기도 없다.
가란드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하하. 불쾌하게 만들 의도는 없었습니다. 단지, 서류상으로는 데일 경이 용병 길드에 등록되어 있는 상태인지라……. 어쨌건 이건 당장 중요한 게 아니니 주제를 되돌리겠습니다.”
가란드가 어물쩍 넘어갔지만 에리얼도 더 따지지 않았다.
그의 말대로,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
“이레네 주위에 악마의 하수인이 나타난 건 이례적인 일입니다. 우리는 두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전선의 상황이 안 좋아 방어선에 구멍이 뚫렸고, 그 틈으로 악마의 하수인이 들어왔다. 아니면…….”
“전선에서 일부러 악마의 하수인을 통과시켰거나!”
말을 가로챈 건 외곽구역의 치안을 담당하는 경비대장이다.
험상궂은 얼굴의 드워프는 책상을 탕! 내려치며 외쳤다.
“전선의 장군 중 하나가 악마와 결탁하고 황제 폐하를 배신한 것이오! 아니. 꼭 하나라고는 확신할 수 없지! 어쩌면 장군들이 모두 악마에게 넘어갔을 수도 있소!”
“지나친 비약이에요.”
아름답게 웨이브 진 녹빛 머리를 한 여인이 경비대장을 제지했다.
그녀는 외곽구역 상인 길드의 수장이었다.
“악마의 하수인들은 재주가 많죠. 작정하고 잠입하려 하면, 누가 막을 수 있겠어요?”
경비대장은 콧방귀를 뀌었다.
“하! 장군들이 그렇게 말해달라고 부탁했소?”
“무슨 소리시죠?”
상인 길드장이 미간을 좁히며 되물었다. 경비대장은 다시 한번 책상을 내리쳤다.
“시치미 떼긴! 그대가 전방에 물자를 보급할 때, 장군들에게 이것저것 받아먹는다는 건 뒷골목 똥개도 알고 있소!”
“……대답할 가치도 없는 모함에 천박한 말투. 이래서 땅딸보들이란.”
“뭐?! 뭐라고 했소! 다시 말해보시오!”
이내 두 사람은 말싸움을 벌이기 시작했다.
가란드는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당최 이놈의 회의는 제대로 돌아가는 꼴을 본 적이 없군.’
개성 있는 자들의 모임이니, 얘기가 회의 주제에서 저 멀리 날아가 버리는 건 흔한 일이었다.
문제는 이곳에 있는 모두가 동등한 입장이라는 것이다.
누구도 강제로 입을 닥치라고 명령할 수가 없다. 그랬다가는 또 다른 싸움이 될 뿐이다.
이렇게 되자 다른 이들도 잡담을 나누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이번에 악마 하수인을 처치한 용병이 그 화제의 흑기사 아닙니까? 전 오히려 그쪽에 흥미가 가는군요.”
외곽구역의 행정업무를 처리하는 조피스 가문의 가주가 그렇게 운을 뗐다.
에리얼이 환하게 웃으며 말을 받았다.
“예. 데일 경은 우리 신전의 자랑입니다. 밤의 여신님의 위엄을 온 세상에 떨쳐주실 분이지요.”
가주는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그 기사에 대해서는 워낙 믿기 힘든 소문들이 많더군요. 사라진 성녀를 대신할 유망주와 함께 다닌다는 말도 있고요. 진짜입니까?”
가주는 조용히 듣고 있던 빛의 교단의 주교에게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주교는 별로 대꾸하기 싫다는 듯. 눈마저 꾹 감아버렸다.
에리얼도 뭐가 마음에 안 드는지 입꼬리를 내렸고, 가주는 머쓱하게 허허 웃었다.
말을 받은 건 대장장이 길드의 대표였다. 그는 어리둥절한 목소리로 물었다.
“흑기사? 흑기사가 전선도 아니고 도시에 있다고?”
가란드가 경악했다.
“맙소사. 어디 갇혀 있다가 지냈습니까?”
“그야 대장장이는 자기 공방에 갇혀 지내지. 내 나이에 그런 것까지 일일이 알아야 해?”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가란드는 설명했다.
“데일 경이라고. 요즘 활약하고 있는 흑기사가 한 분 있습니다. 대단히 특이하고, 특별한 분이시죠.”
“특별해? 그래 봤자 반송장에, 살육 기계 아닌가?”
살육 기계.
그야말로 흑기사에 대한 세간의 인식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단어였다.
이성을 잃고 아군조차 연료로 사용하며 오로지 살육만을 반복하는 괴물.
그들은 도저히 같은 편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족속이었다.
그렇기에 데일은 특별하다.
강력한 무력을 지녔지만, 이성을 잃었다고 보기에는 힘들다.
가란드가 설명했다.
“데일 경은 이유 없이 사람을 죽이지 않습니다. 얼마 전에 주점에서 난동을 부린 적이 있지만, 사망자는 하나도 없더군요.”
말싸움을 벌이던 경비대장과 상인 길드장도 어느새 가란드의 말에 경청했다.
가란드가 미소지으며 말했다.
“아시지 않습니까. 반 언데드인 그에게 살인은 마치 우리가 음식을 먹는 것과 비슷한 느낌입니다. 몹시 굶주린 상태에서 맛있는 음식을 보면 누구나 그 유혹을 참기 힘들 겁니다. 하지만 경은 참아냈지요. 대단한 자제심입니다.”
이야기를 듣던 이들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통제가 가능한 강력한 무력이라니.
모두가 눈독 들일 만한 인재 아닌가?
동시에 의문이기도 했다. 왜 가란드는 이 사실을 아무렇지 않게 털어놓는 걸까.
“어쨌거나 데일 경은 특별합니다. 지금껏 마구잡이로 살인을 일삼던 다른 흑기사와는 다르게…….”
그때. 가란드의 부하가 조용히 다가와 그에게 귓속말했다.
다른 평의원의 부하들도 각각 찾아와 갑작스러운 소식을 전했다.
이야기를 들은 대장장이 길드 대표가 말했다.
“음. 그 흑기사께서 사람 여럿 죽이고 있다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