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God of Magic RAW novel - Chapter 9
9
“레오파라!”
괴물이 엄니를 내리꽂았을 때 순간 레오파라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마치 그가 저 거대한 괴물의 몸뚱아리에 기어이 깔리고 만 것처럼. 그의 뼈도 으스러뜨릴 정도로 무거운.
하지만 신의 눈에는 똑똑히 보였다. 괴물이 앞으로 쓰러지는 순간, 아래로 민첩하게 내려가 엄니를 가까스로 피한 레오파라가 목검을 쳐들어 마법으로 괴물의 목을 아래에서 정확히 꿰뚫은 것을.
엄청난 피가 쏟아졌다. 경동맥이 잘린 게 틀림없었다.
괴물은 울부짖지도 못하고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레오파라는 몸을 돌려 무사히 빠져나왔다.
“레오파라!”
미친 듯이 달려갔더니, 레오파라가 부러진 목검을 땅에 박고 일어서고 있었다.
“다쳤구나, 레오파라!”
나는 급히 피 흐르는 그의 어깨를 지혈했다. 아까 뱀 꼬리에 얻어맞은 부분도 피멍이 들었을 게 분명했다.
“테오파노 님, 정말 대단합니다! 엄청났습니다.”
하지만 레오파라는 기뻐하며 소리쳤다. 아픈 기색도 못 느끼는 듯이.
“너 죽을 뻔했어.”
“테오파노 님이 구해 주셨죠.”
“네가 우릴 구했지. 네가 괴물을 죽였잖아.”
“테오파노 님이 괴물에게 치명상을 입혔기 때문에 숨통도 끊을 수 있었죠. 그놈을 제 손으로 죽이고 싶어서 죽였지만, 테오파노 님의 불덩어리만으로도 충분히 죽일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네가 숨통을 끊지 않았다면 놈이 죽기까지 더 오래 걸렸을 거고, 그동안 놈이 죽기 살기로 덤볐으면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몰라.”
“그렇다면, 우리 둘이 괴물을 함께 죽이고, 서로 구해 준 거군요, 하하하!”
레오파라가 웃었다. 나도 같이 웃었다.
새로운 마법을 엉겁결에 사용했지만, 멋지게 성공시키자 가슴이 그렇게 벅차오를 수가 없었다.
하지만 뭔가 새로운 걸 시도할 때마다, 마법은 바로 손아귀를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내게 저항하기보다 어른의 감독을 벗어나서 신나게 달려 나가는 어린아이처럼…….
그 느낌이 싫지 않았다. 다 발전 가능성이니까. 새로운 힘이라면 초창기엔 제어하기보다 널리 지평을 펼쳐나가고 싶었다.
“콜록… 콜록!”
하지만 연기가 우리에게 몰려왔다.
내가 지른 불이 점점 번져 가고 있었다. 괴물이 하도 잘 피하는 바람에 이쪽은 아니었지만, 마을이 있는 쪽으로 번져가고 있었다. 아니, 마을을 구해 주려다가, 홀랑 태워 버리게 생겼네!
“테오파노 님, 피하셔야 합니다!”
레오파라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레오파라! 마을이 위험해!”
“저들도 보고 있을 테니, 피할 겁니다! 무슨 일이 나면 당장 도망치라고 했으니까요!”
“하지만 저 불쌍한 이들이 마을까지 잃게 놔둘 순 없어!”
나는 마을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레오파라도 나와 함께 달려갔다.
“불이다! 불이 났다!”
“모두 도망쳐!”
그렇게 달려온 마을은 혼란으로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어른들은 소리 지르고 아이들은 엉엉 울었다.
아이들을 업거나 손을 잡아끌며 사람들이 도망쳤지만, 남아서 짐을 챙기고 가축을 풀어 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빨리 안 도망가고 뭐해?”
“도망가봤자, 식량이 없거나 가축을 잃으면 굶어 죽습니다!”
촌장이 외쳤다. 그러면서 더 대답할 새도 없이 짐을 챙기느라 바빴다.
“일단 도망쳐!”
“도망가도 어디로 가야 하나요? 불이 숲을 다 태울 것 같아요! 이 숲 덕분에 먹고 사는데!”
촌장의 아내가 가슴 치며 울었다.
정말 그랬다. 그나마 마을은 숲 근처에 있어서 아직 화마에 휩싸이지 않았지만, 나무들이 빽빽하게 밀집한 숲은 위험했다.
“우리가 어떻게든 해 볼 테니까 모두 도망쳐! 레오파라, 샘가로 돌아가자!”
마을에도 우물이 있지만, 불이 난 곳과는 거리가 있었다.
하지만 마을을 떠나 숲으로 들어가면 바로 옹달샘이 하나 있으니까.
“무리입니다! 그 작은 샘으로는 이 불을 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대로 가면 마을도 마을이지만 이 큰 숲이 타 버릴지도 몰랐다.
숲은 친누나인 숲과 사냥의 여신 엘라디안의 영역이었다. 또한 부모신과 숙부, 고모는 사계의 신들이어서, 학문이나 예술 같은 신들보다 자연을 더 사랑했다.
그런데 그분들이 귀여워하는 내가 숲을 태워 먹는다고? 그 결과는 생각하기도 싫었다. 엘라디안 누나의 분노 역시. 마을뿐 아니라 숲도 구해야 했다.
나는 그 샘을 향해 돌아갔다.
하지만 그 샘도 점점 다가오는 불길에 포위되고 있었다. 레오파라의 말대로 작은 샘이라 불을 끄기는 역부족이고. 나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여기까지 왔는지…….
“레오파라, 먼저 피해라.”
“그럴 순 없습니다, 테오파노 님!”
“걱정 마. 나는 신이다. 죽지 않아.”
여차하면 아버지 주신이 나서 줄 테니까.
그러겠지? 망하게 생겼으니 살려 달라고 울고불고 빌면 산불 쯤 꺼주겠지? 지금도 지켜보고 있는데 내가 눈치 못 채는 것뿐이겠지? 어머니 허락만 받고 냅다 내려간 막내 놈, 알아서 살라고 나 몰라라 하진 않겠지?
“나는 괜찮으니까, 너는 도망가라고!”
그렇지만 아버지가 나는 구해 줘도, 내 신도까지 구해 줄지는 의문이었다.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레오파라는 들은 척도 안 했다.
“어서 가라니까!”
네가 가야 내가 아버지한테 무릎 꿇고 싹싹 빌지. 첫 신도한테 그런 모습 보여 주고 싶지는 않다!
“절대로 테오파노 님의 곁을 떠나지 않겠습니다!”
“이렇게 고집부릴 때가 아니야!”
하지만 레오파라는 석상처럼 버티고 서서 떠나지 않았다.
그런 놈 앞에서 아버지한테 비는 건 내 체면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나처럼 위대한 부모도 없는 레오파라가 얼마나 위화감과 거리감을 느낄까.
적어도 노력하는 모습은 보여 주고 싶었다. 나는 마법을 발휘했다. 물을 움직여야 했다.
제일 먼저 발휘한 힘이 불이어서 그런지, 불을 사용할 때가 제일 편했다.
무엇보다 불은 결국 발화였다. 타오를 물질도, 공기도 사방에 있었다. 그럼 내 힘이 부싯돌처럼 작용해서 처음 불만 붙이면 알아서 탔다.
하지만 지금 옮겨야 하는 물은 이미 존재하는 물질이었다. 숲의 생명력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힘도 아니었고. 마법과 융화시키기 힘들었다.
“테오파노 님.”
그때 레오파라가 날 불렀다. 아니, 지금은 방해하지 말지…….
“불을 끄실 거죠?”
나도 그러고 싶다!
하지만 마법이라고 다 되는 것도 아니다. 역시 신도를 보내고 아버지에게 매달려-
“저도 돕겠습니다. 테오파노 님은 마법을 시도하세요.”
레오파라는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그러겠다고 대답도 안 했는데!
하지만 그는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일단 용병들이 주로 쓰는 큰 가죽 물주머니에 물을 가득 담았다. 일반 수통보다 크지만 그래 봤자 역부족이었다.
“그만둬! 소용없어!”
그래도 레오파라는 멈추지 않았다. 턱없이 모자란 그 물이라도 뿌렸다. 방패로 흙을 퍼서 뿌렸다. 불이 번지지 않도록, 불붙은 나뭇가지를 도끼로 쳐냈다.
위험해 보였다. 물을 바로 옆에서 끼얹으니까 흰 연기가 더 심하게 일었고, 나무를 쳐낼 때마다 불티가 날아올라 레오파라의 몸에도 떨어졌다.
“레오파라! 도망가라고!”
“마법에 집중하세요! 테오파노 님이라면 해낼 수 있습니다!”
될 거 같으면 도망가라고 하겠냐? 기적을 일으키는 신을 지켜보며 노래하고 춤추라고 하겠지!
하지만 내 신도가 포기하지 않는 한 그의 신인 내가 그럴 수는 없었다.
나는 다시 샘을 향했다. 솟아오르는 맑은 물에 집중했다.
뒤에서 콜록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때의 신음 소리처럼.
반사적으로 돌아보려고 했을 때 문득 깨달았다.
그때 내가 레오파라를 어떻게 치유했지?
피, 수액… 그래, 그 어떤 액체라도, 흐르기는 마찬가지.
흐름! 나는 흐름에 정신을 집중했다. 겉으로는 실체가 없는 듯하지만 막상 움직이려면 무겁고 부피가 큰물에서 벗어나서.
사람 몸의 피, 나무 수액의 흐름… 하지만 그렇게 복잡할 필요 없이 흐르기만 하면 된다. 그렇다고 흘러가 버리면 안 되고, 힘을 그 안에 모아야 한다.
레오파라가 표적을 겨냥하듯, 겨냥할 그 일점만 찾아내면……. 하지만 그 이전에 칼끝에 힘을 모으듯, 외부의 일점을 직격할 내면의 일점을 찾아야 했다.
가장 단순한 힘… 흐름… 내 안에서 시작하고 내 안에서 완결하는, 외부로 향하더라도 내 안의 흐름은 견고하고 영속하는…….
원.
마침내 찾아낸 해답은 너무나 단순했다. 눈물이 한 방울 뚝 떨어질 정도로 억울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 눈물도 물이고, 그 한 방울도 원이었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안에서부터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하하하하!”
나는 원을 일으켰다. 내 안에서, 내 밖에서. 마법이 내 안의 원을 내 밖으로 굴려 나가고 있었다. 산사태에서 점점 거대해지는 커다란 눈덩이처럼-
샘에서 커다란 원이 일어났다. 그 거대한 물의 원을 띄워 올린 순간, 나는 감격에 젖었다. 내 힘이면서도 내 힘 같지 않았다. 이 현상을 내가 일으켰다니.
그 안으로 나 자신을 던져 넣고 싶었다.
내가 일으킨 현상에, 머리끝까지 잠기고 싶었다. 내 전부를 던져, 속속들이 겪어 보고 싶었다. 깊은 바닷물 속처럼 일렁이는, 이토록 아름다운 힘을!
콜록… 콜록…….
하지만 뒤에서 들려온 기침 소리가 나를 일깨웠다.
휙, 몸을 돌려 봤더니, 레오파라가 화마와 싸우면서 콜록거리고 있었다. 얼굴의 반을 젖은 천으로 감쌌지만, 불과 전면에서 맞서 싸우느라 연기를 피할 수 없어서.
레오파라뿐만이 아니었다. 촌장도 다른 이들도, 그 백발의 늙은이까지 와서 미친 듯이 불을 끄고 있었다. 물동이로 물을 뿌리고, 흙을 뿌리고, 불이 옮겨붙은 나뭇가지를 쳐내면서 죽을힘을 다해 불과 싸우고 있었다.
이들이 아니었다면 나는 결코 늦지 않게 마법을 일으킬 수 없었을 터였다. 처음 해 보는 마법에 노력을 기울일 시간이 필요하니까.
그 시간은 이들이 내게 벌어 준 것이었다. 제때 마법을 일으키지 못한 나머지 되레 불에 당하지 않도록 나를 지켜 주어서.
그동안 도망치지도 않고 미련하게시리… 특히 레오파라는 괴물과 싸우면서 다친 몸이 다 낫지도 않았는데…….
그들을 붙잡고 마구 소리치고 싶은 감정을 억누르지 않았다. 그 감정마저 내 힘을 부풀리고 있었다.
그 감정에 분노와 속상한 마음만 있는 게 아니어서.
…이런 게 예술의 여신 라스카라사 누나가 누누이 말했던, 절정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동인가? 내가 좋아하는 춤과 노래도 아닌데.
숲의 생명력을 레오파라에게 보냈듯, 이번에는 레오파라와 다른 사람들에게 물의 원을 보냈다. 아니, 더 멀리, 그들을 벗어나, 한창 기세 좋게 타오르는 불의 한가운데로-
다들 내가 실패하면 대체 어쩌려고 했어?
그렇게 화재의 한복판에 내 모든 울화를 산산이 터뜨렸다.
커다란 물의 원, 마치 아까의 내 눈물을 무한히 확대한 듯한 것이, 가장 높고 가장 커다랗게 타오르는 불꽃을 위에서 단번에 덮쳐 눌렀다.
쿠쿠쿠콰쾅!
물이 저렇게 큰 소리를 낼 수 있을지 몰랐다. 폭포수보다도 더 큰 수량이 한꺼번에 떨어져 내리면서, 크고도 묵직한 소리가 났다. 바윗덩이가 떨어진 것도 같았다. 떨어지자마자 산산이 부서져서 사방으로 퍼져 나가고.
돌풍이 일었다. 물이 떨어져 내리는 기세에 바람이 일었는데, 그 바람에도 물방울이 섞이면서 마치 물을 사방으로 뿌린 듯한 효과가 났다. 그래서 불이 더 잘 꺼졌다.
가장 큰 불꽃을 단번에 꺼뜨리면서 기세를 죽이자마자 그 반동으로 아래의 흙도 들썩거리면서 사방으로 튀었다. 그런 흙 역시 불을 껐는데, 특히 사방으로 번지는 불똥을 잘 잡았다.
“테오파노 님…….”
레오파라가 쉰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연기로 충혈된 눈을 크게 뜨고서 충격 받은 얼굴이었다. 다른 이들은 입만 떡 하니 벌리고 있었다.
어때, 놀랐지?
…그래 봤자 당사자인 나만큼 놀랐겠냐마는…….
“저, 정말 대단하십… 쿨럭, 쿨럭.”
나는 나를 찬양하다 말고 기침을 해 대는 유일한 신도를 샘으로 끌고 갔다.
“다들 어서 따라오지 않고 뭐해? 모두 빨리 물을 마셔야 한다!”
다른 이들에게도 소리치자 연기 때문에 눈도 못 뜬 채로 비틀대면서도 서로 부축하며 따라왔다. 다친 사람은 없는 듯했다.
“테오파노 님…….”
나는 지친 기색이 역력한 레오파라가 더 말하기 전에 그의 얼굴을 샘에 갖다 댔다.
“그만 말하고 물이나 마셔.”
목숨 걸고 싸웠으면, 이제 꼼짝 말고 쉬어.
“이제 너의 신이 왔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