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Necromancer Of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10)
Chapter 9 – 9. 산군
산군.
산의 주인.
달리, 호랑이를 일컫는 말로도 사용되는 이 단어는 기술과 산업의 발전으로 딱딱해진 21세기 사회에서는 듣는 일이 아예 사라졌다고 봐도 무방했으나.
실제로 산군은 존재한다.
무당이셨던 우리 할머니 같은 경우만 해도 백두산 산군님을 위해서 제사를 드린 적이 있다고 말씀하셨을 정도.
물론, 진짜 동물인 건 아니다.
그들은 호랑이의 모습을 빌린 영혼이자, 하나의 수호신이었다.
그리고 당시 적적하여 손자에게 이런저런 말을 해주셨던 할머니는 내게 산군이 좋아하는 음식이나, 제사를 드리는 법을 말해주셨다.
[또 내게 찾아왔느냐, 소년이여.]데이우스의 나이가 28살이라서 소년이라고 칭하기엔 시기가 많이 지났으나.
수 천 년을 살아온 산군이 소년이라 부른다면 할 말이 없다.
“데이우스 베르디입니다. 세 달이란 짧은 타향살이를 마치고, 인사를 드리기 위해 찾아뵈었습니다.”
산군이 좋아하는 따듯한 술과 떡.
하녀가 데워준 술은 노스웨든 산맥의 한파에 이미 차갑게 식었으나, 노란빛의 마나가 술병을 부드럽게 감싸 쥐며 다시금 데운다.
내가 처음 산맥을 올라 산군을 만난 건, 데이우스 베르디가 되고 약 한 달이 지난 시점이었다.
당시에는 도망치려고 했었다.
마법을 배우는 것도 힘들고, 예절에 대한 공부도 어려웠으며, 쓰레기인 데이우스의 업보가 너무나 많았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시달렸던 게 바로 저택의 악령들이었다.
무슨 죄를 그렇게 저질렀는지 베르디 저택에 살아가는 악령의 숫자가 상당했다.
당시에는 사령술을 배우지 않았던 지라 악령들을 못 본 척 할 수밖에 없었으나 그 스트레스가 너무 극심해서 도망쳤다.
그러다 산군을 만났다.
내 뒤를 쫓아오는 악령들을 물어뜯고, 나를 불쌍히 여겼던 산군.
“산군께서 좋아하실 법한 술과 떡입니다. 부디, 입에 맞으시면 좋겠습니다.”
[…….]푸른빛의 영체가 산군의 입에서 나오더니 그대로 술과 떡을 감싼다.
그러자 영체에 흡수되듯 자연스레 사라지는 제물들.
표정에서 드러나지는 않고 있었으나, 짓누르듯 밀려오던 위압감이 사라진 걸 봐서는 마음에 들었던 듯하다.
[처음이군.]“…….”
함부로 말을 끊으면 안 된다.
나는 고개를 조아리며 느긋하게 이어지는 그의 말을 경청했다.
[수 천 년 간, 두려움의 존재였을 뿐. 인간 중 누군가가 내게 이리 다가온 것은 처음이다.]“산군께서는 저를 구해주셨으니까요.”
어색한 침묵이 산군과 나 사이에 감돈다.
다섯 달 전, 실은 그가 나를 지켜줄 생각은 아니었다는 거?
당연히 알고 있다.
고작 인간 하나가 악령한테 쫓기는데 산군이 왜 구해준단 말인가.
그는 본인의 산에 들어온 악령이 마음에 안 들어서 그들을 찢어발겼던 것뿐이지 나를 구해줄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게 무슨 상관이야.’
상관없다.
나는 이 관계성을 이용할 거다.
당신에게 그런 생각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내가 그렇게 만들어서 억지로 나와의 연결고리를 채우고.
‘그것은 목줄이 된다.’
묵직하게 깔려오는 목소리. 이제 본론으로 들어간다.
“실은, 산군께서 심기가 불편하실 거라 사료되어 미리 제가 방문 드렸습니다.”
[……무지한 이민족들이 나의 산에서 기승을 부리는 구나.]“허나, 저희는 이 산을 지킬 힘이 없습니다.”
산군의 푸른 눈동자가 번뜩인다. 한 겨울에 폭포를 맞은 것처럼 몸이 딱딱하게 굳으며 압박이 전신을 짓누른다.
[하여, 내게 도움을 청하러 왔는가? 감히 네가?]“산군이시여.”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심호흡하며 그와 눈을 마주본다.
협상 테이블에 올리기 위해 무릎을 꿇고, 재물을 공양했다.
저쪽에서 의자에 앉았고, 원하는 바가 있다는 걸 확신하게 되었다.
산에서 혼자서 잠이나 퍼질러 자는 호랑이 따위에게 협상의 주도권을 줄 생각은 없었기에.
손을 들어, 저 너머 동쪽을 가리킨다.
“동쪽의 사하르 라는 이름을 가진 사막은 이제 인간의 전초기지가 되었습니다.”
이번엔 그 반대. 서쪽을 가리킨다.
“서쪽의 파뤼에르 해역은 수중 터널과 해저 양식장을 건설했다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손을 뻗어 하늘을 가리킨다.
“산 너머 클락 공화국에서는 최근 글라이더라는 이름의 창공을 질주하는 도구를 개발하였습니다.”
[무슨 의미냐.]조심스레 손을 가슴에 얹으며 사죄한다.
“천 년 전. 사하르 사막은 인간에게 있어 저주의 땅이었습니다. 하루면 살을, 이틀이면 피를, 사흘이면 생명을 앗아간다 하였죠.”
[…….]“현재. 인간은 그곳에서 감자를 심고 있습니다. 되레 그곳의 기후에 적응한 감자는 잘 썩지도 않고, 단단하여 여러 보관이 용이하고, 조리법도 늘었다 들었습니다.”
이제 내가 하는 말을 이해했는지 산군의 눈가가 찌푸려진다. 당장이라도 나를 찢어발기겠다는 살기에 나는 지팡이로 땅을 짚는다.
없었으면 그대로 무릎 꿇을 뻔했다.
그렇다고 그걸 내보이면 안 된다.
똑같은 말투와 흔들림 없는 발음으로 말을 이어나간다.
“파뤼에르 해역의 악명 높은 레비아탄과 크라켄. 허나, 인간은 그들을 몰아내고 탐스러운 수중 자원을 탐내고 있습니다. 그곳의 소금 한 줌은 금 한 돈으로 거래가 된다 하더군요.”
[…….]“산군이시여. 불과 천 년 전. 인간이 하늘을 날 수 있다고 생각하셨습니까? 산군께서 한달음이면 도달할 거리를 한 달에 걸쳐 부지런히 걸어야 하는 미개한 인간이 말입니다.”
하얀 입김 덕분에 시야가 가려진다. 덕분에 산군의 모습이 흐릿하게 보여 버티는데 도움이 된다.
“산군이시여, 참으로 재밌지 않습니까? 미개하던 인간들이 영물의 보금자리를 하나둘 앗아가고 있습니다.”
[협박하는 것이냐.]쿵.
산군이 한 걸음 내딛는다.
산 능선에 서 있던 백호는 눈발을 뚫고 내 코앞까지 다가와 으르렁 거리며 이빨을 내보인다.
눈조차 깜빡이지 못할 찰나의 순간이었다.
패기로운 선언.
실제로 산맥 안이라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나.
“첫날 만 명을 몰고 올 것입니다.”
나는 물러서지 않는다.
“이튿날 또 만 명이 찾아올 것입니다.”
[…….]“사흘 그리고 나흘. 이번엔 이만 명이 오겠지요. 그리고 모두가 산군의 아래에 죽어나갈 것입니다. 시체가 쌓이고 쌓여 산은 나무가 아닌, 뼈와 살점으로 숲을 이룰 것입니다.”
산군이 강한 이유는 당연히 산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 산이 더러워진다?
“닷새.”
척하고 나는 손가락을 쫙 펼치며 선언했다.
“딱 닷새면 산군께서는 무너지실 겁니다.”
“산군이시여.”
뻗은 손이 자연스럽게 내려간다. 마치, 악수를 청하듯 산군에게 내밀었다.
“베르디 가문의 차남, 데이우스 베르디가 이 자리에서 맹세하겠습니다. 당신의 보금자리를 지키겠노라고.”
[……네가.]“함부로 인간의 발길이 닿는 일은 없을 겁니다. 감히 이곳에 인간의 깃발을 꼽으려 하는 자가 있다면 제가 먼저 죽이겠습니다.”
[…….]“그러니 산군이시여.”
무뚝뚝하지만 더없이 차가운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노스웨든의 온도가 내게도 영향을 미친 듯했다.
“저를 도와주시지요.”
* * *
“으음?”
노스웨든 산꼭대기 초소에서 쉬고 있던 핀덴아이는 연초에 불을 붙이다 뭔가 묘한 감각을 느꼈다.
마나는 아닌 것이, 자신의 목덜미를 한 번 훑고 가는 감각.
보통 사람이라면 단순히 잘못 느꼈다고 넘어갔겠으나, 핀덴아이는 달랐다.
짐승에 필적하는 감각을 가지고 있는 그녀는 옆에 둔 도끼를 낚아채며 벌떡 일어났다.
전투의 피로를 풀며, 노스웨든을 약탈할 작전에 대해서 구상하고 있던 그녀의 동료들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무슨 일 있어?”
“왜 그러십니까?”
핀덴아이가 레지스탕스인 고철상의 리더이긴 해도, 이들은 전부 한 가족이나 다름없었기에 격식 따위는 없었다.
애초에 노비 출신들끼리 격식을 따져봤자 어른 따라하는 뒷골목 대장놀이 정도로 보이지 않겠는가.
“뭔가 오고 있다.”
연초 연기를 깊게 내뿜으며 핀덴아이는 바로 바깥으로 나섰다. 초소에 있던 그녀의 동료들이 무기를 꼬나 쥐고 뒤따른다.
단순히 감이었으나, 그들은 핀덴아이의 ‘감’을 절대적으로 믿고 따르고 있었다.
“하아, 후속팀이 이제 곧 올 텐데.”
“시간만 끌어보지 뭐. 얼간이 백작 나리가 결국 지원을 요청했나?”
다리우스 베르디가 가문보다 노스웨든의 시민들을 선택했다는 것에 놀란 고철상의 일원들이었으나, 핀덴아이는 무시하며 시선을 멀리 두었다.
“후우.”
입에 물고 있던 연초를 꺼트린다. 아직 몇 모금 빨지도 못한 장초였으나, 물고 있을 시간이 아니라는 걸 눈치 챘다.
“그런 거 아니다.”
팔목을 돌리는 핀덴아이는 쏟아지는 함박눈 사이로 걸어오는 한 남자를 눈에 담았다.
“적은 한 놈이다.”
“하나?”
“예?”
유일하게 저격소총을 들고 있는 단원 중 하나가 스코프에 눈을 대고는 외쳐댄다.
“저, 정말입니다! 코트를 입고, 지팡이를 쥐고 있는 남자가 혼자 이쪽으로 오고 있습니다!”
“투항인가?”
“아니면 교섭이라도 할 생각인 건가?”
고작 한 명이라는 말에 풀어진 고철상 멤버들이었으나, 오히려 핀덴아이는 그 어느 때보다 긴장한 듯 도끼를 강하게 쥐었다.
그리고 저격수에게서 계속 이어지는 보고.
“마, 마법사인 듯합니다!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쌓인 눈들이 알아서 녹아내리고 있습니다!”
“고상한 마법사구만.”
“보면 그리핀 귀족 새끼들은 전부 멋만 낼 줄 아는 쪼다라니까?”
“투항이나 교섭하러 온 놈이 벌써부터 첫인상 썩창내고 있네.”
아직도 상황 파악 못하고 있는 동지들에게 핀덴아이는 날선 반응을 보였다.
“무뇌들아, 정신 똑바로 차려. ‘적’이라고 말했잖아.”
“예?”
“……?”
그때, 타들어오는 화염의 구체가 날아든다. 거대하지도, 그렇다고 위협적이지도 않은 마법.
핀덴아이는 일절 방심하지 않고 도끼를 휘둘러 정확하게 불구덩이를 반으로 갈라냈으나.
“……!”
자신이 반으로 갈라낸 불구덩이로 시선이 틀어진다.
반절로 갈라지며 지나친 불덩이가 다시금 하나로 합쳐진다.
그러곤 공중에서 휘어지듯 궤도를 틀어 다시 한 번 핀덴아이에게로 달려들었다.
[끼야하하하핫!]소름끼치는 비명소리와 함께.
후웅!
다시 한 번 갈라진 불구덩이. 허나 아무런 타격 없다는 듯 다시 하나로 합쳐졌다.
그것을 기점으로 마법사에게서 쏟아지는 크고 작은 불구덩이들.
[죽여! 죽이자아아아!] [자유다! 시발 자유라고오!] [피로 목을 축이고, 살로 배를 채우자아아!] [이민족들아! 철퇴를 받으라!]“뭐, 뭐야!”
“마법이 말을 한다! 지, 진형 잡아!”
“베어 넘겨도 다시 되돌아온다! 등을 맞대고 방진을!”
가지각색의 목소리가 담긴 불구덩이들은 마치 의지를 가진 것처럼 마구잡이로 하늘을 나돌며 쏟아지는 눈을 집어 삼키고 있었다.
그런 와중, 핀덴아이의 핏빛 눈동자는 한 걸음의 쉼도 없이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코트를 입은 마법사를 노려봤다.
“사령술사……!”
씹듯이 불러보는 놈의 정체. 당장이라도 물어뜯겠다는 듯 핀덴아이는 으르렁거렸으나.
데이우스 베르디는 시선조차 주지 않으며 산맥의 추위에 버금가는 낮은 목소리로 혀를 찬다.
“가서 먹어 치워라, 빌어먹을 악령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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